소설리스트

회귀가왕-142화 (142/280)

제142화

오하라 기자의 질문에 먼저 재호가 답했다.

"역시나… TV 출연 아닐까요? 한국에서 제일 잘 먹혔던 방법이죠."

오하라 기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지만, 반쪽짜리 대답인걸? 티브이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스타야. 티브이에 나와서 스타가 되는 게 아니지.”

나 역시 그에 동의하는 바였다.

사실, 비원더는 한국에서는 너무 쉽게 1위가 됐다.

비원더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프로그램인 '슈퍼스타 T’가 당대 최고의 인기 프로였다.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자연스럽게 시작부터 큰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 분명 비원더는 성쇠가 있었다. '잇츠쇼타임'의 제작자 소인중과 엮여서 방송국 보이콧을 당했던 적도 있었다.

문루아나 잇츠쇼타임 등 다른 경쟁 가수들과 경쟁하느라 1위가 되지 못한 기간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전체 차트 최상위권에 데뷔하자마자 입성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은 비원더와 같은 신인에게는 엄청난 특권이었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쉽게 모든 일이 진행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문루아와 함께 출연한 슈퍼스타 T가 화제가 되었다고 해도, 그래봤자 일본의 눈에는 외국의 오디션 프로였다.

심지어 종영 후 반년이 지난 프로그램이었다. 이제 슈퍼스타 T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게다가 이곳은 일본이었다. 제아무리 천채왕이 아시아 최고의 프로듀서라고 해도, 댄스그룹이 아닌 알앤비 그룹 비원더를 처음부터 큰 프로에 출연하게 해 줄 수는 없었다.

'이미 느끼고 있었지. 외국에 가니까 확실히 제작자들의 영향력이 줄었어.'

이는 소인중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사사건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비원더를 훼방 놓았던 소인중이, 일본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소인중은 화교권과 한국에서는 큰 힘을 발휘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중소 규모의 제작자에 불과했다.

잇츠쇼타임 또한 일본에서는 소규모 공연으로 바닥을 다지는 중이었다.

일본에서 잇츠쇼타임의 낮은 인지도를 보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결국 우리 비원더도, 일본 활동에서는 대형 기획사 TYB 덕을 보기 어렵다는 뜻이었으니 말이었다.

이번에는 환희가 오하라 기자에게 물었다.

"그럼… 공연? 인가여?"

오하라 기자가 위스키 잔을 쭉 들이키더니 환희에게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일본은 탄탄한 공연 시장이 중요하다고 들었어여. 게다가 저희는 3인조 보컬 그룹이니까 더더욱 라이브가 중요할 꺼구여. 공연으로 서서히 팬을 쌓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하라 기자가 환희의 대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야. 일본 시장에서 공연은 일종의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지. 수익 구조의 핵이기도 하고. 일본에서 공연에 꾸준히 와주는 팬덤이 있다면 아마 수입 걱정은 좀 줄어들 거야. 큰돈을 벌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럼 역시 공연인가여?"

환희가 재차 묻자, 오하라 기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공연도 역시 정답은 아니야. 공연은 오래 걸려. 편법이 없지. 게다가 어떤 가수가 팬들의 선택을 받을지는 신만이 알 뿐이야. ‘성공 비결'이라고 하기에는 좀 우스워. 애초에, 나는 '성공 비결'이라고 했는데, 가수에게 공연이 성공 비결이라는 건 너무 정론이잖아?"

환희가 잔뜩 심각해진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네여.”

이제 슬슬 내가 대답을 해 줄 차례였다. 내가 환희를 팔꿈치로 슬쩍 치며 말했다.

"환희 네가 좋아하는 거 있잖아."

환희가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제가 좋아하는 거여?"

"네가 일본에 대해서 제일 좋아하는 거."

"아… 애니여?”

"그래. 애니메이션, 아니면 드라마 OST."

오하라 기자가 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쾅'하는 소리가 났다.

"바로 그거야! OST! 스토리와 결합한 음악! 그게 있어야 성공한 가수가 돼. 한류 가수 중 성공 케이스 대다수가 당대 최고 인기 드라마, 애니메이션 OST를 부르면서 성공했다고. 이게 해답이야."

그 소리를 들은 환희가 싱글벙글 웃었다.

"와! 그럼 저희 이제 막, '러브 인 스파'나 '카츠네의 우울' 같은 애니메이션 주제가 부르는 건가여?"

흥분해서 묻는 환희에게 오하라 기자가 찬물을 끼얹었다.

"음… 그런 애니메이션 진성 팬들을 위한 성인 애니메이션은 너무 시장 크기가 작아. 애니메이션이라면 역시 유아, 청소년 애니메이션이지. '투피스'라던지. ‘못 말리는 가족'이라던지…"

"에이, 재미 없네여!"

입을 비죽 내밀며 말하는 환희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야 하늘이 네 취향은 아닐 거 같다.'

오하라 기자는 또한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해주었다.

2천년대 초반부터 슬금슬금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어서, 지금도 간혹가다 한국 드라마가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특히 40·50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복고 감성이지. 그 사람들은 가수에 돈을 쓸 의향도, 돈도 충분한 사람들이야. 한류 드라마 OST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내가 일단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하라 기자는 남은 위스키를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슬슬 귀가하려는 분위기였다.

"그래 생각해 보라고. 직접 작사, 작곡, 편곡, 연주까지 하는 알앤비 그룹이라니. 나마저도 흥미가 생겼으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정중히 오하라 기자에게 인사를 전했다.

"또 보자구."

이 말을 끝으로 오하라 기자가 총총 도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보이지 않자, 때마침 멀끔한 정장 차림의 천채왕이 우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저 기자랑 좀 친해진 거야?"

내가 헤실거리며 대답했다.

"네, 어쩌다 보니."

"며칠 전에는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하더니 웬일로 그래?"

천채왕의 질문에 내가 겸연쩍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이번에는 우리를 좋게 본 모양입니다."

"뭐, 너희들 앞이니까 솔직히 이야기할게..."

천채왕이 독주 한 잔을 원샷 하더니, 그대로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저런 평론가 유형이… 별로야.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음악은 결국 느끼는 거야. 무슨 분류가 필요하고 연구가 필요하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허례허식 아니야? 나는 새로운 음악 만들기에도 바쁜 사람이라 그런지. 저런 사람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

내가 불만 가득 한 천채왕을 달랬다.

"자자 선생님. 너무 그러지 마시고. 한국은 몰라도, 일본에는 저런 사람들의 영향력이 제법 크잖아요?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내 말에 천채왕이 수긍하자, 나는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내 의견을 어필했다.

“그러니까, 그걸 잘 활용하면 되는 거죠. 그거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 뭐. 우리를 좋아한다는 걸 나쁘게 볼 필요는 없지. 그리고 저런 사람들이 과거 데이터 정리는 탁월해. 나보다 아마 과거에 대해 아는 건 많을 거야. 다만 너무 이상적이야. 음악은 결국 돈 버는 '사업'이라는 걸 간과한다는 말이야. 월급을 줄 수 있어야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단 말이야 노을아!"

나는 그에게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나눠보니 천채왕이 왜 탁월한 사업가인지도 점점 이해되었다.

그런 사람으로서는 수익성을 쫓는 걸 죄악시하는 오하라 기자와 같은 '평론가 유형'의 음악 애호가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천채왕처럼 미래를 만드는 사업가도 있다. 그에게 음악은 '사업'이다.

오하라 기자처럼 과거를 철저하게 다듬고 정리하여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도구로 음악을 활용하는 평론가도 있다.

그에게 음악은 '기록'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음악은 뭘까? 성공의 도구?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럼 내 삶의 이유? 조금 비슷했다.

하지만 왜 이게 내 삶의 이유일까?

내게 음악이란 뭘까?

왠지 이제는 이에 대한 고민을 거쳐야만 내 음악이 한 발 진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천채왕의 목소리가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하여튼 수고했어. 내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벌써? 라는 듯이 천채왕에게 재호가 물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정인가요?"

"곡 녹음도 해야 하고. 활동 준비해야지. 일본은 한국이랑 가까우니까, 곡 작업은 되도록 한국에서 할 거야. 다만 이제부터는 일본 싱글 음반도 계속 낼 건데. 이건 여지까지 음악이랑 좀 느낌이 다를지도 몰라."

재호가 기합이 힘껏 들어간 목소리로 천채왕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우리 숙소인 주택가 앞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다.

그깟 편의점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본 편의점은 한국과 음식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모두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항상 체중 관리를 해야 하는 가수였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칼로리 소모가 큰, 공연 날만은 제한 없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배영웅 매니저와 함께 숙소 앞 편의점에서 우리가 먹고 싶었던 간식을 잔뜩 샀다.

배영웅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이걸로 되겠어요? 일본까지 와서 편의점 과자라니. 장어라던가. 회라던가. 하다못해 스키야끼라도. 좀 좋은 거 드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재호가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답했다.

“괜찮아요, 실장님.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피곤하구."

환희도 씨익 웃으며 재호의 말에 동의했다.

"마자여. 게다가 편의점 음식, 먹어보구 싶어써여."

배영웅 매니저가 착잡하게 우리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를 흘깃 봤다.

장바구니에는 온갖 음식이 가득했다.

재호가 고른 야키소바, 환희가 고른 초코 샌드과자, 그리고 내가 고른 아이스크림까지 온갖 간식이 다 들어 있었다.

인스턴트 수프부터 이온 음료까지 죄다 들어 있었다.

배영웅에게는 초라해 보이는 식사였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히 진수성찬이었다.

오히려 회처럼 비싸지만 건강한 요리는 언제든 조금 무리하면 먹을 수 있었다.

매번 다이어트를 하는 우리에게는 이런 정크푸드가 더 먹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우리를 집으로 바래다주었다.

주인 할머니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우리는 방에서 우리끼리 파티를 시작했다.

하늘이가 우걱우걱 초코과자를 집어 먹으며 감동했다.

"이야… 단 거 진짜 오랜만에 먹어보네요. 느무 맛있네. 이게 제 소울푸드예요. 소울푸드."

내가 하늘이를 보고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소울푸드는 무슨..."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재호가 말했다.

"그래.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그덩~."

"그건 또 뭔 소리냐?"

재호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뭐 하는 놈이냐? 뭐 하는 놈이냐구? 예능인이냐? 모델?"

나는 '얘가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싶어 하며 그에게 답했다.

"글쎄?"

"...나는 가수야. 그것도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나는 프로듀서가 될 거라구."

뭐, 어느 정도 이해되는 말이었다.

“그래. 그게 네 꿈이었잖아. 중학교 때부터.”

재호가 단호하게 내 말에 응했다.

"유명해지는 건 그다음이야. 나 예능 고정 당분간 안 하기로 했어.”

나는 재호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물었다.

"큰 기회일 텐데? 그 프로그램 유명해질 거 같아."

"괜찮아. 좋은 프로듀서가 된 다음에 유명해지면 되거덩~."

재호는 예능에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아쉽지 않은 듯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힘을 실어주듯 맞장구쳤다.

“그건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이런 재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나도 잘 몰랐다.

하지만 내 직감이 이게 옳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 * *

밤이 점점 깊어갔다. 이번에는 하늘이가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놓았다.

"좀… 힘들지 않아요, 형들은?"

"뭐가?"

나와 재호가 하늘이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하늘이는 고개를 떨구며 말을 이었다.

“우리… 한국에서는 나름 잘 나갔잖아요. 다 알아보고, 방송도 쉽게 쉽게 출연하고."

"그랬지."

"근데 이제는, 길거리에서 행인들 10명 대상으로 공연하고 그러잖아요.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어떻게 위로 올라왔는데,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갑자기 약한 소리를 하는 하늘이에게 내가 말했다.

“야, 뭐 얼마나 해왔다고 그래? 그래 봐야 우리 활동한 지 반년인데."

하늘이가 내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형은 반년이지만. 저는 연습생 기간까지 합쳐서, 진짜 오랜 기간에 된 거라고요. 근데 다시..."

재호가 말끝을 흐리는 하늘이 대신 그의 말을 마무리해 주었다.

"다시, 연습생 신분이 된 기분이구나?"

하늘이가 대답 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하늘이 입장에서는 힘들 수 있겠다 싶었다.

나와 재호는 작년까지 일반인이었다.

우리는 하늘이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는 무관심에 익숙했다.

하지만 하늘이는 이미 연습생 경력이 길었다.

그동안 자신과 함께 배웠던 이들이 유명한 가수가 되는 걸 몇 번이고 지켜봤다.

그런 오랜 기간을 견딘 후, 이제야 1등 가수가 됐다.

그런데 그런 가수가 되자마자 또다시 무명 가수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하늘이도 제법 힘들겠구먼.'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기우였다.

불과 며칠 뒤, 주환희는 갑자기 일본에서 화제의 인물로 등극했다.

그 이유는…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