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37화 (137/280)

제137화

구룡도의 명물 레이저쇼를 보러 수많은 인파가 매년 모인다.

동남아 최대 휴양지인 구룡도에서도 레이저쇼가 갖는 위치는 특별했다.

구룡도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술력을 자랑했다.

그 기술력으로 지은 건축물들에 레이저를 비추는 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구룡도의 건축물들은 콘크리트로 만들었음에도 적절하게 식물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또 이끼 등의 식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마치 자연스러운 식물처럼 보이게 했다.

여기에 연출력도 중요했다. 분기마다 한 번씩 열리는 레이저쇼는 매번 다른 콘셉트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다른 테마, 다른 스토리 라인, 다른 음악으로 쇼를 채웠다.

보통 폭죽만 터트리고 말면 사람들은 그냥 놀라기만 하고 끝이다.

하지만 추억의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리듬에 맞춰서 폭죽을 터트리면, 그 곡에 관련된 추억을 가진 팬이라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게 바로 음악과 스토리, 그리고 테마와 연출력이 가진 힘이었다.

그런 장중한 레이저쇼가 지금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테마는…

놀랍게도 '한국'이었다.

트로트를 시작으로 7080년대의 친숙한 가요가 흘러나오더니, 시간의 흐름을 타고 점점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노래가 이어졌다.

레이저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음악의 곡조와 장단에 맞추어 별처럼 반짝였다.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정작 인파 속에 있으면 잘 보이지 않아. 레이저쇼 전체를 담으려면 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그렇다면 어디가 제일 레이저쇼를 보기 좋은 장소일까?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빌딩 옥상, 호텔 등은 주변의 다른 건물에 가려 레이저쇼를 온전히 볼 수 없었다.

레이저쇼 주변 빌딩에 들어가 보니 모두 층마다 접근 제한을 둬서 잘 보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고 바깥에서 보자니, 평지에서는 너무 많은 인파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답은 단 하나, 바로 배에서 레이저쇼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작은 요트 한 척이면 충분했다. 그걸 깨닫고 나니, 문루아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구룡도 총영사는 요트도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는 바로 그 말이었다.

나는 우리 일행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문루아의 추진력 덕분에 순식간에 요트를 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빌린 요트 위에서 레이저쇼를 보던 재호가 말했다.

"하지만 설마, 진짜 요트를 이렇게 급하게 빌릴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문루아는 난간에 기댄 채로, 홀린 듯이 레이저쇼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이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녀 대신 재호에게 답했다.

"총영사님이 무슨 재벌도 아니고. 원래 안 되는 건데, 기적적으로 구룡도 관광청이 지원해줬다고 하더라고."

가만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시아 최대 스타가, 요트를 타고 좀 이쁜 화면에 당신들이 자랑하는 명물을 찍고 홍보까지 하겠다고 하는데, 누가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아마 총영사가 문루아에게 했던 장담도 이런 부분을 고려한 말이었을 터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룡도 바다에 우리 말곤 아무도 없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바다 위에서 비원더 3인과 문루아, 배영웅 매니저, 그리고 최소한의 제작진이 남아 레이저쇼의 아름다운 광경을 화면에 담고 있었다.

노경진이 레이저쇼를 지켜보며 감탄했다.

"야~ 진짜. 이 프로 될 프로네요."

"무슨 말씀이시죠?"

내가 노경진 PD를 쳐다보며 묻자, 그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렇잖아요. 하필이면 우리가 가는 마지막 날에, 이곳 명물 레이저쇼가 있어. 근데 하필, 그 테마가 한국 노래야. 이렇게 좋은 그림이 어딨겠어요? 시나리오를 써도 이렇게는 안 되죠."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이것보다 더 좋은 콘셉트는 없을..."

노경진 PD가 신나게 얘기를 이어가다 말고 갑자기 말을 멈췄다.

구룡도 현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의 멜로디를 듣고 너무 놀라서였다.

노경진 PD만 그런 건 아니었다. 요트 안의 모든 사람이 다 말을 잃은 듯이 침묵을 지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울려 퍼지는 멜로디는 분명…

문루아의 '달의 공주'였다. 하필 오늘 내가, 그것도 불과 1시간여 전에 문루아 선배와 함께 불렀던 그 곡이, 지금 이 순간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되어 구룡도 하늘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레이저들이 일제히 노란 빛을 뿜었다.

그것들이 하늘에 수놓은 형상이 마치 달과 같았다.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곳은 바로 원작자 문루아였다.

문루아는 감격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입을 열고 레이저쇼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긴, 나라도 그럴 터였다. 자기 노래가 먼 이국에서, 그것도 현지인의 손에 편곡되어 울려 퍼지는 경험이 얼마나 감격스럽겠는가?

나는 지금 문루아가 음악 하나로 완전히 다른 사람과 한마음이 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짐작했다.

'역시, 나는 여기서 만족할 순 없어.'

문루아 선배 대표곡의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 레이저쇼를 보며 나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더 커서, 글로벌 가수로 성공해 보겠다는 결심이었다.

갑자기 노경진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끝없이 펼쳐지려고 했던 내 공상이 뚝 끊겼다.

"자! 여기서 클로징 할게요. 내일 일찍 문루아 씨도 나가고, 다른 사람들도 일정이 이제 불규칙하니까. 방송은 여기서 끊는 게 좋겠어요. 이 이상 좋은 그림 어떻게 만들겠어. 여기서 쳐 내야지."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클로징 멘트로 각자 촬영 소감을 말했다.

재호부터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 취미가 요리인데. 정말 원 없이 해본 거 같아요. 구룡도에서 잘 대해주신 팬분들 감사하고요. 하지만 역시 한국 팬들이 그립네요. 곧 갈 거거든요? 지치지 마요."

'마가린에 버터 말아 먹을 새끼...!’

재호의 느끼한 말투는 내게서 소리 없는 탄식이 다 나오게 할 정도였다.

이럴 때의 재호는 그야말로 아이돌 재능이 타고난 인재였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팬들이 좋아할 말을 했다.

반면에 환희의 촬영 소감은 의외로 담백했다.

"새로운 곳을 봐서 조아써요. 이걸 재료로, 더 좋은 음악 만들어 보게 씁니다."

환희답지 않게(?) 진중하니 좋은 엔딩 멘트였다.

나는 내 차례에서 문루아 선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매번 같이 있어서 몰랐는데. 선배가 얼마나 먼 존재인지 해외에 나오니까 실감이 납니다."

문루아 선배가 수줍어하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무슨..."

하지만 사실이었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그런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데뷔부터 워낙 화제가 되었던 오디션 프로에 우승자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설사 나를 좋아하거나 내 노래를 듣지 않더라도, '권노을' 이름 세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반도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국경을 살포시 넘어 보니, 내 인지도가 이 정도구나! 하고 뼈저리게 실감이 났다.

심지어 한국에서 1위를 했음에도, 해외에서는 한국을 매우 좋아하는 극소수의 마니아층만 나를 안다고 봐야 했다.

그러나 문루아 선배는 달랐다.

그녀는 제법 긴 공백 기간 후에 복귀했음에도 정체를 숨기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인지도가 내 목표는 아니었지만 앞으로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척도였다.

내가 얼마나 그 문화권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는가에 대한 척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루아 선배는 이미 수많은 구룡도 주민들에게 감동을 준 게 분명했다.

게다가 큰 행사의 피날레로 그녀의 곡을 활용할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힘겹게 현지 팬들에게 고맙다고 카메라에 말하는 문루아를 보면서 나는 앞으로 내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직감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내 노래로 감동을 전달하려면,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다.

* * *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문루아는 일본 투어 일정으로 급하게 먼저 새벽에 나갔다.

비원더 3인은 배영웅과 함께 오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환희가 재호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길은 왜 가는 길보다 빠르게 느껴질까요, 횽?"

재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에게 답했다.

"글쎄? 그냥 지구 자전 방향으로 가는지, 반대편으로 가는지 그런 거 아냐?"

"...횽은 너무 낭만이 없네여."

"네가 뜬구름 잡는 거지."

둘이 쓸데없는 잡담을 하는 동안에 내가 은근슬쩍 배영웅 매니저에게 말을 꺼냈다.

"저, 부탁드린 건…”

"네 완료되었습니다. 오늘부터 거기로 가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재호가 환희와 입씨름하다 말고 내게 물었다.

"뭐가 완료됐는데?"

“이사."

사실, 언젠가 하긴 해야 하던 일이었다. 지금 있는 집은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하던 시절 내가 간신히 월세만 내고 있던 곳이었다.

그 당시 내 동생은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기숙사가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나 혼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언젠가 동생에게 내가 없을 때 친구 데려와서 놀아도 좋다고 말하니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오빠 여긴… 오빠 집이잖아. 내 물건 둘 데도 없고. 그냥 오빠 보러 가끔 올게. 오키?]

나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이 집은 동생이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왜 그걸 몰랐을까...'

그때부터 나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아니, 사실 데뷔 0년 차니까 모을 돈도 없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비원더는 예외였다.

계약할 때, TYB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이것이었다.

일반적인 TYB의 아이돌 계약에서는, 아이돌보다 기획사가 가져가는 수익 비율이 현격히 높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게, 그들의 관점에서 아이돌은 자기가 트레이닝하고, 기획해서, 여러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대상이었다.

재계약을 할 무렵에나 아이돌의 입지가 슬슬 올라간 상태가 된다.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나야 아이돌로서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는 형편이 될 수 있다.

이 일반적인 시스템에 비원더는 적합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 중에는 연습생 출신이 환희밖에 없었다.

나와 재호는, 애초에 TYB가 리스크를 안고 키운 연습생이 아니었기에, 일반 아이돌처럼 높은 비율을 요구하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이 팀은 싱어송라이터로 구성되어있다는 점 또한 문제였다.

환희는 대부분 곡의 가사를 썼다. 멜로디도 상당 부분 담당했다.

편곡에는 대부분 곡에 재호의 손길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개 쩔어'처럼 TYB가 주도했던 곡도 있었지만 그런 곡에도 재호와 환희는 참여했다.

다수의 곡이 재호와 환희가 주도하여 작업을 진행한 곡들이었다.

예전에 소인중이 괜히 우리 셋이 TYB와 안 어울릴 거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셋은, 아이돌 전문 대형기획사 TYB와 한솥밥을 먹는 게 다소 어색했다.

하지만 그렇게 이질적이기 때문에 도리어 시너지가 일어난 것도 있었다.

아이돌식 안무, 아이돌식 하트 만들기 등으로 성공시킨 '걔 쩔어'가 그 시너지의 좋은 예시였다.

다행히 일반적인 계약조건 대신 천채왕은 화끈하게, 새로운 종류의 계약을 제시했다.

바로 성과제 계약이었다.

음반 수익에 관해서는 특히 곡 작업에 참여하는 재호와 환희를 배려했다.

그 둘이 참여하는 곡마다 일정 비율의 금액을 받게 해 주었다.

이게 앞으로 그들에게 은근히 쏠쏠한 수입이 될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아직 정산이 안 됐지.'

음악 저작권료는 생각보다 받는 데 오래 걸린다.

90년대처럼 돈을 떼먹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정말 오오오래 걸렸다. 아마 재호와 환희가 지금 성공의 대가를 제대로 크게 받으려면 내년은 돼야 할 터였다.

하지만 딱 하나 더, 우리에겐 또 다른 수익이 있었다.

그것은 각종 행사를 포함한 '공연 수익'이었다.

...이거는 그냥 건별로 주겠다고 천채왕은 말했다.

그 말에 살짝 내가 눈이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음반 작업 안 하고 쉬는 동안 계속해서 다양한 행사를 뛰었다.

다행히, 노래 하나는 자신 있던 덕에 행사 섭외는 쉬웠다.

그렇게 음반 1위를 할 때쯤, 그래도 그럴싸한 투룸 빌라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금방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행사에 있어서는 천채왕이 워낙 요율을 높게 쳐 준 덕이었다.

참 신기한 게, 가수가 축가나 기업행사와 같이, 별다른 유흥거리가 섞이지 않은 기분이 좋아지는 행사만 잡아도 어떻게든 돈은 벌렸다.

그리고 그 노력이 지금, 드디어 그 열매를 맺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오늘은 동생도 없고. 나 혼자 파티라도 해 볼까.'

내가 나만의 소박한 꿈을 꾸던 그때, 산통을 깨는 환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횽! 집들이해여, 집들이! 쌔집이잖아여!"

'...나 혼자 조용히 싱글남의 럭셔리 나 홀로 파티를 즐기려고 했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