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36화 (136/280)

제136화

젤다는 구룡도 항구 거리 광장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인파가 엄청나.’

주변을 둘러보니, 그녀 주위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오늘은 구룡도 항구 광장 신인 쇼케이스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매주 1명씩 신인 아티스트를 초대해 무대를 꾸몄다.

이 쇼케이스는 버스킹이 엄격하게 금지된 구룡도에서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야외 문화생활이었다.

'그래도 인파가 평소보다 많아.'

젤다는 한국에서 외국인 패널로 연예인 생활을 하다 지칠 때면 구룡도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영어가 제1 언어인 구룡도에서는 그녀 아버지의 언어인 영어를 마음껏 쓰며 쉴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경험으로 보기에도 이번 쇼케이스는 유별나게 사람이 많았다.

아무래도 그 전에 비원더가 색다른 한국 요리 팝업 스토어로 활동을 며칠 했던 점이 먹힌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들, 한국 요리점 직원 아냐?"

"노래도 잘하나 봐."

"원래 가수래."

"근데 요리를 그렇게 잘하는 거야? 멋져~."

"저 피아니스트 잘생겼다."

"가운데 마이크에 앉은 사람도 키 크고 멋져!"

재호와 환희, 권노을 모두 훤칠하게 큰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주방장 옷과 웨이터 옷으로 그들을 꾸몄다면, 지금은 깔끔한 슈트 차림이었다.

옷이 날개라고, 저렇게 슈트를 입고 있으니 저 셋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 완전히 달라 보였다.

‘가수는 왠지, 무대 위에서 보면 몇 배 멋있어 보여. 그게 가수의 매력이란 걸까?’

젤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은 비원더의 데뷔곡 '음식 남녀'였다.

워낙 히트했던 최근 곡이라 그녀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곡을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평소에는 풍성한 전자음과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 그리고 드럼이 흘러나오며 시작하는 곡이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재호의 키보드 소리뿐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게 오히려 원곡보다 더 좋았다.

이렇게 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독주이기 때문에, 연주자 혼자서 미묘하게 리듬을 쥐락펴락하며 곡을 갖고 놀 수 있었다.

일반적인 연주자와 가수 관계라면 이렇게 제멋대로인 연주는 여차하면 가수와 불협화음이 나기에 십상이었다.

하지만 원재호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비원더의 멤버였다.

그는 오랜 기간 함께 활동하며 멤버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그래서 멤버들도 원재호의 피아노 연주와 한 몸이 되어 노래할 수 있었다.

악기 편성이 줄어드니, 되려 멤버들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딱히 피아노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문제’라는 단어를 언급할 이유조차 없는 연주였다.

원재호는 키보드 하나만으로 베이스라인, 감정, 그리고 리듬까지 음악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그의 능수능란한 연주로 채워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좌중을 압도하면서도 부드러운 포용력까지 갖춘 리더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에 주환희의 노래와 랩까지 가세하면서 비원더의 공연은 더더욱 풍성해졌다.

주환희는 마치 미꾸라지와 같은 노래와 래핑을 구사했다.

무대 위에서 주환희는 휙휙, 일련의 규칙성 없이 매끄럽게 요리조리 움직이는 또 하나의 생물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미꾸라지가 연못을 건강하게 만들 듯, 주환희도 곡 전체를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사 처리도 기가 막혔다.

마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버터와 같았다.

살짝 미끄러지는 발음과 스웨그가 넘치는 리듬감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후렴이었다.

그리고 후렴에는 ‘킹 오브 싱어'의 우승자이자 화제의 보컬 만재 권노을이 있었다.

그는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도, 가벼운 노래만으로도 곡 전체를 좌지우지했다.

다른 멤버들의 화음도 흔들리지 않고 여유 있게 받아주었다.

이런 셋이 합쳐지자, 마치 세 가지 색상이 섞여 전혀 다른 색상이 되듯, 가녀린 듯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가 구룡도 항구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게, 비원더의 소리였다.

‘그런데… 비원더가 이렇게까지 노래를 잘했나?'

젤다는 권노을의 노래 실력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두 멤버도 이 정도였나 싶었다.

게다가 젤다의 눈에는 셋이 함께하는 부분도 너무 훌륭해 보였다.

길거리에서 별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면서 왕왕 듣던 그 노래인가 싶은 정도였다.

그 비결은 역시나 원재호의 편곡에 있었다.

그리고 미도리와 박찬용은 아시아 제일의 연주자였다.

그렇게 실력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마구 써보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하지만 비원더는 과감하게 이를 버리고, 대신 노래에 집중했다.

'음식 남녀'에서 비원더의 목소리를 살리는 데 가장 좋은 편곡, 그것은 바로 덜어내는 편곡이었다.

젤다는 몇 주 전에 있었던 잇츠쇼타임의 쇼케이스를 떠올렸다.

'소울메이트'를 촬영하기 전, 젤다는 휴가차 들린 구룡도에서 우연히 잇츠쇼타임의 쇼케이스를 보았다.

게다가 비원더의 쇼케이스가 펼쳐지고 있는 항구 광장은 젤다의 최애 장소였기도 했다.

사실 잇츠쇼타임의 쇼케이스는 젤다의 마음에 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잇츠쇼타임이 무대에 힘을 많이 썼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잔뜩 서 있었으니 말이었다.

거기다가 밴드까지도 화려한 재즈 편곡으로 관객들의 정신을 빼놓았다.

하지만 그들의 무대는 어딘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젤다는 그 이유를 젤다는 비원더의 공연을 보고서야 느꼈다.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젤다지만, 음악은 만인의 공통 언어였다.

뭐라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들으면 바로 느낄 수 있는 게 음악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났던 젤다의 구룡도 현지 지인들은 모두 잇츠쇼타임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번 쇼케이스를 계기로 그 비율이 바뀔 거 같았다.

젤다는 벌써 오늘 공연의 다음 곡이 더욱더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 * *

"휴우…"

나는 공연 대기실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음식 남녀' 공연 후에는, 각 멤버가 하나씩 솔로곡을 불렀다.

나 역시 '배고파 죽겠어'를 미도리와 함께 둘이서 불렀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미도리의 아름다운 기타 연주를 듣는 순간, 나는 너무도 신이 나서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내 솔로곡에 있어서도, 의외로 재호가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다.

박찬용과 미도리는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최정상 연주자였다.

재호는 그 사람들을 과감하게 필요 없는 곡에서 '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의외로 그게 효과가 좋았다.

피아노만 있던 곡과 기타만 있던 곡, 키보드로 연주하는 신시사이저와 드럼만 있는 곡 등이 의외로 느낌이 좋았다.

모두 최정상의 연주자들과 함께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면 우리 비원더 3인의 목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었다.

다른 악기를 뺄수록 아무래도 목소리가 잘 들리기 마련이었다.

이번 쇼케이스 편곡은 원곡만큼 아름답고 도발적이며, 치밀하고 조직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편곡은 비원더 3인의 목소리를 소개하기에는 최적의 편곡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어느새 공연은 클라이맥스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때 나와 함께 대기실에 있던 문루아가 굳은 표정으로 내게 손짓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인형 옷… 입고 노래하시나요?"

"노래하다 가면을 벗으려고요."

가면을 벗는다고? 나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문루아에게 물었다.

"왜요?"

"그게 더 멋지잖아요?"

인형 옷을 입고 공연을 하자는 아이디어는 내가 낸 것이다.

인형 옷을 입으면 문루아는 익명성을 얻을 수 있어서 한 제안이었다.

여기에 문루아는 그녀만의 연출을 추가했다.

나는 일전에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가 중간에 인형 옷을 벗으면 어때요?]

[그럼 문루아 선배라는 걸 들키잖아요?]

[그게 더 비원더 입장에서 화제가 될 거예요. 제가 가수 문루아지 뭐겠어요!]

문루아는 비원더의 성공을 위해서 과감하게 자기 얼굴을 감췄다가 나중에 공개하는 연출을 하기로 했다.

게다가 그녀는 선곡도 현지인이 잘 모르는, 문루아가 내게 써준 신곡인 '배고파 죽겠어' 말고 다른 곡을 선택했다.

그 곡은 바로 문루아의 일본 활동 당시 최고 히트곡이었던 '달의 공주'였다.

워낙 유명한 노래라 구룡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영어 가사니, 현지인들이 따라 부르기도 좋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제안했고 거기에 문루아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무대가 시작되었다.

내 꿈속 나는

달나라에 갇힌 공주

수천 년간 너를 기다려

문루아가 잔잔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무대 위에서 ‘달의 공주’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 원작자 문루아라는 게 너무 티 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른 점은 꼽자면, 그녀가 일본에서 이 노래로 활동했던 고등학생 시절보다 10년 이 지난 지금이 더 실력이 늘었다는 정도였다.

문루아의 솔로 파트가 어느 정도 흘렀고, 이젠 내 차례였다.

내 파트에서는 원곡과 다르게 내가 개사 한 버전으로 불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

언젠가 너와 나는 이어질 거니까

슬슬 재호의 편곡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미도리는 독특하게 기타 줄을 때리는 주법을 사용하여 동양의 느낌이 물씬 나는 사운드를 냈다.

그와 동시에 재호가 잔잔한 키보드로 중심을 잡아 주었다.

여기에 박찬용 선배의 든든한 드럼이 들어가니, 오직 3명으로 이뤄진 밴드임에도 빈 구석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와 문루아가 1절 후렴을 마치고, 전주가 흘렀다.

문루아가 스르륵 가면을 벗고, 그녀의 정체를 드러내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끼야아아아아~~~"

"언니이이!!!"

"아시아의 달이야~! 이게 웬 횡재야."

관객석은 단숨에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 무료 공연에서 볼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적인 스타를 만난 셈이니 말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문루아 정도의 인기를 자랑하는 가수가 되어야겠다 결심했다.

그 결승점을 향한 여정의 첫 발걸음이 이 쇼케이스였다.

그렇게 나는 문루아와 함께 최선을 다해 '달의 공주'의 피날레를 불렀다.

달이 가까워져

달이 가까워져

달이 가까워져

달이 가까워져

언젠가 우리는 같은 하늘 같은 땅에 설 거야.

“꺄아아아아아아!"

함성은 말할 것도 없고, 청중들의 반응 또한 엄청났다.

문루아를 보기 위해 청중들이 다가오는 걸 보안요원들이 억지로 저지해야 할 정도였다.

문루아와의 듀엣곡을 공연 순서 거의 막바지에 넣어 둔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우리는 깜짝 게스트로 인해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며 이 쇼케이스의 마지막 곡이자 비원더에게 한국 1위 타이틀을 가져다준 곡인 '걔 쩔어'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 무대는 당연히 노래와 함께 율동에 가까운 댄스가 들어갔다.

“꺄아아아아아앗!"

"너무 멋져!"

"언니!"

'...하하하. 아주 좋아. 반응 아주 좋아. 잘하고 있어. ...음? 근데, 잠깐. 언니???'

나는 대체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 옆을 슬쩍 봤다.

무대 뒤쪽에서 문루아가 그녀 특유의 싱그러운 미소를 얼굴에 머금은 채, 츄리닝 차림으로 우리의 율동과 같은 춤을 따라 추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시아 최대 스타인 ‘그’ 문루아가, 비원더의 백업 댄서를 해주고 있던 것이었다!

* * *

문루아와 함께한 비원더의 마지막 무대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흥분이 공연이 다 끝난 후에도 도통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일단 정신없이 배영웅 매니저의 안내를 따라 호텔로 정신없이 빠져나와야 했다.

특히 문루아의 안전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우리는 휘몰아치듯 공연장을 빠져나와 도착한 호텔 방에서 일단 잠시 숨을 돌렸다.

다들 땀에 푹 젖어 있었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역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었다.

몸에 감돌던 공연의 열기가 사그라들 때쯤, 내가 슬쩍 문루아를 쳐다봤다.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문루아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

"왜요?"

"그… '걔 쩔어' 춤은 대체 언제 준비한 거예요?"

문루아와 함께 옆에서 내 말을 들은 주환희가 피식 웃었다.

문루아가 부끄럽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그냥 보면 출 수 있어요."

아직도 흥분이 덜 가라앉은 듯한 주환희는 몸을 흔들흔들하며 옆에서 그녀를 거들었다.

"선배는 TYB 최고 댄서라구요, 횽… 횽 같은 몸치랑 달라여."

"그래, 너 춤 잘 춰서 좋겠다.”

재호는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별생각 없이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저기, 식물원 주변에 왜 이리 사람이 모인 거예요?"

배영웅이 재호를 따라 창밖을 스윽 보더니 말했다.

"오… 오늘 레이저 쇼하는 날인가 봐요. 구룡도 명물이죠."

그냥 레이저 쇼라고만 하니, 사실 난 머릿속에 그게 어떤 형식의 쇼인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레이저 쇼가 그냥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게 묻는 내게 문루아가 손을 빠르게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절대 아니에요! 매번 다른 콘셉트로, 진짜 화려한 빛과 음악의 쇼를 보여줘요. 한 번쯤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는데..."

배영웅 매니저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됩니다."

너무나도 단호한 그의 말에 문루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재호도 레이저 쇼를 못 보게 된 게 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왜요?”

"위험하니까요. 일반인들이 다 모여있는 곳인데,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요. 쇼케이스를 방금 끝냈잖아요? 그리고 특히, 문루아 님은 더더욱 안 됩니다. 방금 관객들 반응 보셨잖아요? 너무 위험해요."

조곤조곤 힘있게 말하는 배영웅 매니저의 말에 문루아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바닥만 내려다봤다.

그때였다.

안전을 보장하면서 레이저 쇼를 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불현듯 나의 뇌리를 스쳤다.

"선배! 방법이 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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