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31화 (131/280)

제131화

이전 생에서 나는 오창선 선배의 코러스였다. 오창선 선배는 스타크래프트 등 온갖 게임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미쳐있던 게임 중에는 '쿵쿵따'도 들어 있었다. 좌우지간 선배는 어디를 가든지 쿵쿵따를 했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게임 실력이 점점 발전했다.

즉, 이 대결은 사실상 프로 게이머와 초심자의 대결과 같았다.

"숨 가쁨! 쿵쿵따!"

"크악!”

나의 회심의 일격에 갈 곳을 잃은 재호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러나 하늘이의 저항은 제법 매서웠다. 그는 제법 어려운 단어를 사용했다.

“무기한! 쿵쿵따!"

"한라산. 쿵쿵따!"

내가 너무 쉬운 단어를 외쳤다고 생각했는지 하늘이가 씨이익 웃더니,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산기슭! 쿵쿵따!"

하늘이의 좋은 한 수였다. 하지만 내게는 어림도 없었다.

"슭곰 발! 쿵쿵따!"

나는 이쯤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하늘이의 공격을 방어했다. 다시 지루한 장기전이 이어졌다.

하늘이의 차례였다.

"소인배. 쿵쿵따!"

드디어 내게 기회가 왔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다시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배! 아! 픔! 쿵쿵따!"

"아~~. 졌어!~! 아~~~ 배 아파...!!!"

하늘이가 분한 듯 바닥에 널브러져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이렇게 치열했던 우리의 ‘방 쟁탈전’은 내 승리로 끝났다.

'쿵쿵따로 나를 이기려면 15년은 더 연습하고 와라!'라고 생각하며 나는 피식 웃고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패자들을 바라봤다.

이전 생의 연습량이 준 승리였다.

* * *

나는 게임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수하고 잘 준비를 했다.

그래도 혼자 쓰는 방이라 한결 마음이 편했다.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스락바스락

'...화장실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만 빼면.’

내가 잠자리에 들려 했는데, 화장실에서 자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신경이 쓰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2시였다.

이미 자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화장실에 들어간 재호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불도 켜진 상태였다.

대체 이 새벽에 재호는 잠도 자지 않고 뭘 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은 재호의 모닝콜로 일어났다.

“야, 권노을! 일어나! 늦었어! 뭐 하느라 이렇게 피곤하냐고~"

얄밉게 나를 놀리듯 말하는 재호에게 ‘너 때문에 못 자서 그런다 인마'라는 말이 거의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말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게 뻔했다.

나는 툴툴거리며 옷을 챙겨 입었다.

밖에 나오니 이미 재호와 환희는 외출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주린 배를 쓰다듬으며 내가 재호에게 물었다.

"오늘은 계란 요리 없냐?"

재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요리는 점심에 하는 걸로 충분해. 게다가 여기는 제대로 된 요리 기구도 없다고.”

그러고 보니 부엌은 텅 비어 있었다. 동남아에서는 집에서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럼 오늘 아침은 뭔데? 시리얼?"

따지듯 묻는 나를 보며 하늘이가 하품하며 말했다.

"기왕에 구룡도까지 왔으니, 로컬 푸드를 먹어야죠..."

"그래? 메뉴가 뭔데?"

하늘이의 로컬 푸드 얘기에, 기대에 차 한껏 올라간 톤으로 묻는 나를 무심하게 재호가 툭 던지듯 말했다.

"토마토 라면이래."

생전 처음 듣는 메뉴에 내가 투덜댔다.

"토마토 라며언? 맛~ 있을 거 같지 않은데?"

* * *

몇 분 후, 나는 깊이 반성했다. 나 따위가 뭘 안다고 감히 메뉴가 좋아 보인다, 나빠 보인다 한단 말인가?

토마토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요즘 말로 ‘JMT’였다.

심지어 수도승 스타일의 다이어터인 문루아조차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에요'라는, 근거 없는 비과학적인 말까지 남긴 채였다.

아침 촬영은 제작진과 함께 현지 맛집에서 찍었다. 문루아와 방송국 직원이 모두 보는 앞이었지만, 워낙 음식이 맛있어서 나는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도 잊고 허겁지겁 먹었다.

우리는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바로 식당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나와 환희는 어제 봐둔 대로 현지 식당에서 재료를 사 왔다. 재호가 능숙하게 이를 다듬어서 요리 준비를 했다.

메뉴가 하나라 그나마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우리가 오픈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문루아는 음료 준비를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로 과일을 적당한 크기로 썰은 후, 믹서기에 과일과 얼음을 함께 가는 모습이 제법 전문가다워 보였다.

나는 환희와 함께 탁자를 닦고, 바닥을 말끔하게 청소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무렵에 시계를 보니 순식간에 오픈 시간인 11시가 되었다.

환희가 땀을 뻘뻘 흘리며 걸레질하며 내게 말했다.

“이걸 식당 운영하시는 분들은 매일 하시는 건가요, 횽?”

지칠 법도 한데 기운이 없기는커녕 장난스럽게 묻는 환희를 보며 나는 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매일 지나다니는 식당이 다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어."

그때였다. 가게에 두 손님이 쭈뼛쭈뼛 들어왔다.

내가 미리 연습해둔(사실 MP3로 능력치를 올려 둔) 중국어로 능숙하게 그들을 편한 자리로 안내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환희가 감탄하며 물었다.

"와, 횽. 중국어도 잘하네요? 언제 공부했어요? 독학 한 거예요?"

"그냥 배워두면 좋을 거 같아서."

적극적인 환희의 반응에 나는 쑥스럽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해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 사이 비빔밥 두 개가 완성되었다.

두 명의 손님은 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빔밥을 먹고는, 두둑하게 팁을 주고 가게를 나갔다. 환희가 남김없이 깨끗이 비워진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했다.

이렇게 한 사이클이 돌았다. 생각보다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손님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게릴라 팝업스토어고, 비빔밥이라는 생소한 메뉴를 다루다 보니, 애초에 들어오는 손님 자체가 적었다. 이미 먹고 간 손님들은 만족도가 높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몇 사이클이 돌고 난 뒤 잠시 한숨 돌리던 그때, 웬 자전거 한 대가 가게를 지나치면서 내 두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정체는 바로 구룡도 길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는 잇츠쇼타임의 데뷔곡이었다.

자전거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자전거에 스피커를 달아서 음악을 크게 틀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순간 환희와 내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싸~한 침묵이 흘렸다.

환희가 내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잇츠쇼타임... 곡이죠?"

"그랬지? 분명 한국어였어?"

당황스러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우선 상황 파악부터 하려는 나를 향해 환희가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데, 쟤네는 어떻게 저런 유명세를 떨치는 거예요!”

나는 흥분한 환희를 진정시키려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러게. 한번 물어볼까?"

나는 가게에서 맛있게 비빔밥을 먹고 있는 손님들에게 은근슬쩍 돌아가며 잇츠쇼타임에 관해 물어봤다.

놀랍게도 손님 대부분이 잇츠쇼타임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곡을 흥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아뿔싸 싶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소인중에게는 다양한 인맥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인맥은 역시나 화교계였다.

그런 면에서 구룡도는 그야말로 ‘소인중의 인맥’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다. 잇츠쇼타임 홍보가 당연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잇츠쇼타임은 한국에서 비원더보다 조금 아쉬운 성적을 낸 대신, 아시아 활동은 조금 먼저 시작을 한 듯했다. 이미 지난달에 쇼케이스를 가졌다는 정보도 들은 적이 있다.

'잇츠쇼타임보다는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데.'

그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이제 잇츠쇼타임과 비원더는 멤버 수도 3인으로 같았다.

장르 및 콘셉트 역시 비슷했다. 잇츠쇼타임과 비원더는 이미 빼도 박도 못 하는 경쟁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이번 활동을 통해 비원더가 잇츠쇼타임보다는 더 시선을 끌어야만 했다.

* * *

오늘 하루 장사를 마무리 짓다 보니 어느새 4시가 거의 다 되었다. 나와 재호, 환희 모두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잇츠쇼타임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재호와 환희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일정은 계속됐다.

다음 일정은 버스킹 공연 준비였다. 연습을 위해 몰래 섭외해 둔 스튜디오에 비원더와 함께 모든 멤버가 모였다.

언제나 우리의 드럼을 책임지는 박찬용 선배, 그리고 우리의 기타리스트 미도리가 그들이었다.

환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근데 베이시스트가 없네요?"

모자라는 인원을 찾는 나를 보며 박찬용이 재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잖나."

스튜디오 한쪽 편에서 기타를 세심하게 조율하던 미도리 또한 재호를 바라보며 박찬용의 말을 거들었다.

"잘 부탁해요."

나는 재호에게 축하를 해줘야 하는데, 왠지 납득이 잘 안됐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재호는 베이스 못 치지 않나요?"

재호는 대부분의 악기를 잘 다루기는 했지만, 기타류는 젬병이었다.

오히려 그 부분에서는 환희가 더 나았다. 재호는 기타뿐만 아니라 물론 베이스 기타도 못 쳤다.

재호가 의구심 가득한 나의 질문을 뒤로하고 자기 앞에 놓인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며 손을 풀었다. 그러면서 눈을 감은 채로, 약간 스스로 도취한 채로 말했다.

"베이스도 키보드로 잡으면 되지."

"무그 베이스인가 그건가."

키보드로 베이스를 잡는다는 재호의 말에 나는 무그 베이스를 떠올렸다.

무그 베이스는 신시사이저의 일종으로, 훵크 뮤지션들이 베이스로 자주 활용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을 기억이 있었다.

일반적인 베이스 기타로 내기 힘든 두껍고 공격적인 저음역을 자랑하기 때문에 R&B나 훵크와 같은 흑인 음악에 널리 쓰였다고 했다.

재호가 연주하려는 것이 그 무그 베이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키보드로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우리는 세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박찬용은 곡에 따라, 간단하게 젬베로 연주를 보조하거나, 전자 드럼으로 가볍지만 화려하게 곡을 주도했다.

그의 연주는 너무나도 경쾌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곡 전체의 중심을 잘 잡은 연주였다.

내가 감탄하며 박찬용 선배에게 말했다.

“와… 전자 드럼도 엄청나게 잘하시네요."

박찬용이 나를 보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의외인가?"

"...네. 솔직히 조금 의외네요."

박찬용의 기에 눌려 움찔하며 대답한 나에게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야외무대에서 드럼 풀세트를 매번 들고 다닐 수는 없잖나. 시대가 바뀌니 적응해야지."

"대단하시네요."

"나는 음악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생각이 있네. 굳이 해외까지 가서 재능있는 신인들하고 함께 하는 것도 그런 이율세."

참으로 감동적인 말이었다.

재호 또한 키보드로 때로는 록 기타처럼 강렬한 리프를 연주하고, 때로는 침착하게 베이스로 사운드 전체를 보좌했다.

연주에 문외한인 내가 들어봐도 상당히 괜찮은 연주자임이 분명해 보였다.

'재호 녀석, 매번 예능에 외모 신동 콘셉트로 나가면서 연습은 또 언제 했대?'

박찬용과 미도리는 모두 세계 수준의 연주자였다.

재호가 그들 사이에 낄 수 있을 정도의 연주를 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지 나로서는 상상도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이 밴드를 완성하는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미도리의 기타였다.

전자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바꿔가며 미도리는 기가 막힌 개성을 뽐내며 곡 전체를 주도했다.

하늘하늘 가벼운 연주로 곡 전체 분위기를 붕 띄워 버릴까 싶다가도, 터져야 할 때는 여지없이 강렬한 사운드로 곡 전체의 기승전결뿐만 아니라 감정선도 어김없이 책임졌다.

어떤 곡을 연주하든 편곡에서 원곡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멋진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너무 좋아하다 못한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이 정도 퀄리티면 라이브 앨범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할 정도였다.

나는 점점 이 공연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연습이 끝나고, 우리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뒤풀이를 겸해 저녁 식사를 했다. 역시나 현지 맛집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의 이름은 홍콩식 솥 밥인 '클레이팟'이라 했는데 한국의 햄버그스테이크 같은 맛이 났다.

“그만 먹어요 노을 씨!"

...어찌나 맛있었는지 나는 하도 맛있게 먹다가 그만 문루아 선배에게 한 소리 들었을 정도였다.

하긴 그녀가 내게 이러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순식간에 세 그릇이나 비워 버렸으니 말이었다.

그렇게 우린 적당히 방송 분량을 채운 후, 카메라를 껐다. 그제야 제작진도 옆에서 조금씩 식사하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꺼지자 드디어 진짜 뒤풀이가 시작됐다. 박찬용과 미도리는 재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도리는 특히 재호의 연주에 감명받은 것 같았다.

"재호 군. 다른 악기들도 잘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키보드는 저어엉말 최고였어요. 사이코(최고)."

"고맙습니다."

미도리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재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러모로 뒤풀이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미도리가 오랜만에 진지한 표정으로 재호에게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호 군. 이제 비원더는 1위 가수잖아요."

미도리의 말에 재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렇... 군요."

미도리는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재호 군은 그런 싱어송라이터 그룹의 사운드를 책임지는 프로듀서고요."

"그렇지요."

차분하게 대답하는 재호가 답답했는지 미도리가 살짝 고조된 목소리로 따지듯이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밴드에게 끌려가면 어떻게 해요? 이건 우리 둘이 하자는 대로 끌려만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안 되죠. 재호 씨가 비원더의 소리를 책임져야죠. 외부인에게 맡기면 안 돼요.”

미도리의 말은 그야말로 뼈를 사정없이 때리는 촌철살인과 같은 말이었다. 표현은 좀 강했지만, 사실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호는 녹음할 때는 욕심을 많이 부렸다. 자기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연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공연을 위한 편곡에서는 전적으로 연주자들에게 의지하는 감이 있었다.

게다가 TYB에서는 매번 비원더에게 한국 정상급 세션 연주자만 섭외해 주었다.

사실 재호로서는 그들에게 기대기 너무나 쉬운 환경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 라이브 공연에서 재호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매번 우리의 공연 리포트를 작성한 김나리 사원도 언제나 이 부분을 지적했었다.

연주에 있어서 기타리스트 미도리와 박찬용 드러머의 의견을 철저하게 따르다 보니, 프로듀서가 의도하는 곡의 개성이 드러나기보다는 연주자의 주관이 더 두드러졌다.

워낙 대단한 연주자들이다 보니 그래도 딱히 상관없었지만, 비원더의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편곡이 정작 라이브에서는 평범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재호는 미도리의 말이 이해가 안 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제가 기타리스트도, 드러머도 아닌데 간섭을 한다는 게… 좀..."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박찬용 드러머도 논쟁에 참여했다.

"나도 재호와 같은 생각일세. 나와 미도리 정도 연식의 연주자라면,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세. 모든 걸 프로듀서가 다 할 순 없지. 심지어 재호 같은 연차의 신인 가수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야."

하지만 베테랑 연주자인 박찬용의 말에도 미도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냥 연주자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그건 예술이 아니지 않을까요?"

미도리의 반박에 박찬용도 지지 않고 되물었다.

"잘하는 사람이 해서 최상의 결과물을 끌어내는 것. 그게 예술 아니겠나?"

...두 사람 다 정말 징~할 정도로 음악에 있어서 진지했다.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이대로 저 둘을 내버려 두면 아무래도 날을 새서 이야기할 기세였다.

하필 중재를 할 수 있을 만한 배영웅 실장도 이런 때에 경호 이슈가 있는지 어딘가로 나간 채였다.

아무래도, 보아하니 별다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중재에 나설 차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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