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21화 (121/280)

제121화

'킹 오브 싱어' 마지막 무대 하루 전.

원래 무대 전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드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랜만에 동생이 왔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저녁 식사인 만큼,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메뉴는 스테이크였다.

“와~ 스테이크 대박! 오빠 체중 조절해야 하는 건 아냐?"

"고기랑 채소는 괜찮아."

"피! 그런 게 어딨어. 먹으면 다 살찌는 거지.”

"다 너보다 잘 아는 전문가가 알려 준 거야."

"윽!"

오랜만에 동생 한 명이 왔을 뿐인데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

“와 맛있다. 뭔 소스를 넣은 거야?"

"아무 소스 안 넣었어."

“근데 왜 이리 깊은 맛이 나지?"

"와인을 조금 넣었어."

"그런 건 어디서 배웠데?"

"그냥 아는 수가 있어."

사실은 여동생이 온다고 하니까, 재호가 요리를 알려줬다. 물론 회사에서 먹어도 좋다고 하는 음식만 가지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요리였다.

"재호 오빠가 알려 줬구나?"

“컥!"

...탄로 나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오빠도 요리 좀 배워~. 그냥 출퇴근만 같이 하는 거야?"

“그러게 어쩌다 보니 그리됐네.”

비원더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만나서 그런지, 데뷔 후에는 자연스럽게 합숙을 하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슈퍼스타 T 시절 외에는 다 따로 지냈다. 게다가 요즘은 개인 활동이 많아져서, 점점 일 외에는 이야기가 줄었다.

그 점은 되레 좀 아쉬웠다. 재호와 환희와 함께한 '비원더'는 정말 마음에 드는 한 팀이었다. 그런데 정작 팀이 되어 활동을 시작하자 일에 치여서 대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감이 있었다.

“이번 활동 끝나면 같이 해외여행이라도 가야겠다.”

"그래 한번 이야기 해봐. 팀워크 올린다고 하면 회사는 좋아할걸! 그 김에 나도 좀 껴서 가고."

“그건 안 됨."

"피~ 왜에~?!"

그러고 보니, 천채왕 심사위원은 곧 비원더가 일본 진출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해외 활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같은 숙소에서 묵는 시간도 많아질 터였다.

그때가 되면 다시 셋이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뭐 봐?"

"볼 게 있어."

식사가 끝날 때 즈음, '킹 오브 싱어' 방송을 보기 위해 TV를 켜자 마침 방송 오프닝이 나왔다.

"오~"

오프닝이 제법 웅장했다. 유명한 뮤지션 멘토들이 모두 총출동해서 제법 볼만한 방송으로 보였다.

역시나, 전설로 남은 방송은 시작부터 달랐다.

"오오오! 코스튬 쩐다! 저게 뭐야?"

"저건 변사또지."

"이거 보는 거 보니까 오빠 출연해? 누가 오빠야?”

동생은 내 거짓말을 항상 정확하게 집어냈다. 어정쩡하게 거짓말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나았다.

"몰라."

동생이 볼에 바람을 가득 집어넣고 내게 짜증을 냈다.

"아 뭐야~ 짜증 나게. 그냥 말해!"

"싫은데."

"아! 개 싫어!"

사실 동생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알려주기 싫었다. 나야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 큰 감흥이 없던 파트도, 동생은 일일이 반응했다.

-세계 최고의 래퍼이자 프로듀서, 이스트 웨이브!!

"오오오오오!”

"누군지는 아냐?"

"왜 몰라! '쓰루더라이트' 그 사람 아냐?"

“오? 너 힙합도 좋아하냐?"

"나도 음악 하거든?"

...아무래도 일반인이라기엔 너무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 같긴 하지만 여튼.

동생을 보니까 시청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좀 아쉬웠던 무대에는 가감 없이 미지근한 반응이 나왔다.

"에이. 저건 좀 그렇다. 한 방이 없네!"

변사또(사실 앤젤)의 무대처럼 제법 훌륭했던 무대는 화끈하게 반응했다.

"와! 쩔어! 뭐야 저 사람!"

하지만 역시나, 가장 시선을 강탈한 건 이스트 웨이브의 반응이었다.

"뭐야 저 사람? 너무 불성실한데!"

"편집이 좀 과했어."

실제로도 좀 무관심하게 무대를 보긴 했지만, 편집본으로 보니 좀 심하다 싶었다. 무대를 쳐다보지 않는 건 기본이었다. 하품을 하거나, 잡담을 하고, 심지어 매니저를 시켜서 해바라기 씨를 쩝쩝거리기까지 했다.

"평가도 알맹이가 없어! 외국 가수면 다야?"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프로듀서니까 더 그렇겠지.”

"그래?"

"이 사람 지금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프로듀서잖아."

"그 정도야?"

"너는 곡 크레딧까진 안 보는구나?"

"보통은 그런 거까진 안 보지."

이스트 웨이브는 현재 트렌드를 완전히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 프로듀서였다. 이미 절정에 올랐지만, 앞으로도 10년 넘게 최고의 자리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니 세계 최고의 지망생은 물론 가수들이 줄을 서서 그의 곡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기준이 높은 게 당연했다. 어찌 보면 '글로벌 비전'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오디션 심사위원보다도 더 엄격한 사람이라 볼 수 있었다.

"권노을은 언제 나와? 오빠도 저렇게 찌발렸어?"

"찌발려? 단어 선정이 아주 품격있구만."

"발렸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앤젤의 심사평이 끝나고, 이제 나, 아니 '암행어사 출두야’ 차례가 되었다.

걸어 들어오는 실루엣을 보더니 동생이 피식 웃었다.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권노을 안녕~."

"큭."

"걸음걸이도 딱 권노을이네. 뒤꿈치부터 땅에 닿는 요상한 스텝."

그냥 아무 말 않고 잠자코 방송을 봤다. 여튼 내 정체는 절대 비밀이라고 방송사가 부탁했으니 말이었다. 실제로 팀원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다행히 파일럿이라 2주만 진행했다. 내일이 2라운드 라이브 막방이니, 내일까지만 비밀을 지키면 됐다.

노래가 시작됐다.

*

돌아서겠소

"때려죽여도 권노을이네."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동생이 중얼거렸다.

사실 자기 대표곡을 부른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가수라면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초반이니만큼 방송 포맷이 확실히 좀 덜 잡힌 느낌이었다.

그때 우우웅~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재호였다.

-권노을, 킹오브싱어?

'...얘도 보고 있었구만.'

아무래도 내 노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도입부만 듣고도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만큼 노래에 독창성이 있다는 뜻이니 기분이 좋아졌다.

*

돌아서겠소

돌아서겠소

"야~ 사운드 좋네."

내가 정직하게 감탄했다. 라이브 무대에서 볼 때보다 오히려 소리가 잘 잡혀 있었다. 음악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는 점이 실감이 났다.

덕분에 내 목소리가 더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그루비한 밴드 연주 사이로 내 진성의 고음이 뚫고 올라왔다.

박찬용 선배의 드럼은 언제 들어도 감탄스러웠다. 박자를 맞추는 수준이 아니었다. 드럼에 그루브가 있고 감정이 있고 기승전결 스토리가 있었다.

박찬용 선배의 드럼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내 음악이 한층 풍성해졌다.

노래가 다 끝나고 동생이 딱 한 마디를 남겼다.

“노래 좋다아~."

내겐 최고의 칭찬이었다. 노래 잘한다는 칭찬은 내 목소리 과시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노래가 좋다는 말은 내가 노래를 온전히 이해하고, 제대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스트 웨이브의 감상평 차례였다.

감상하기도 전에 동생이 이스트 웨이브를 보며 깔깔댔다.

"뭐야 저 사람. 노래 완전 푹 빠졌네. 크크크.”

"노래가 마음에 들었나 보지."

"권노을 노래가 맘에 들었나?"

동생은 이미 내가 불렀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진짜 굉장한 건 애드립이 매번 달라진다는 거야. 리허설 때도 저 친구 노래 들었는데. 나쁘지 않았어. 근데 본 경기는 완전히 달라. 아예 다르게 불렀어. 아마 저 친구, 다시 부르라 하면 또 다르게 부를 거야. 그게 예술이지. 그 즉흥성! 진실함! 잘하고 있어 친구! 진실하게 하라구

"저 사람 되게 웃긴다. 크크. 그래서 오빠 우승하는 고야?"

"난 아무것도 몰라."

동생의 교묘한 유도신문을 슬슬 피하며 물을 마셨다. 재호랑 환희도 마구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하긴 재호는 프로듀서고, 환희는 힙합을 좋아하는 작사가, 탑라이너(멜로디를 만드는 사람)니 이스트 웨이브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겠네.’

급기야 전화벨이 울렸다. 재호였다.

"뭐냐?"

-노을이 너 이스트 웨이브 앞에서 노래했냐? 어쩐지… 니만 스케줄이 텅 비었더라. 짜증 났다구.

"난 아무것도 모르… 아 그건 미안하다."

'노래로 승부 보는 예능에는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기조로 천채왕이 유독 내 활동 스케줄을 많이 배려해줬다. 다른 멤버들은 라디오부터 신문사 인터뷰, 잡지 인터뷰까지, 딱 봐도 하루 15개가 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배영웅 매니저는 '비원더가 실력파 가수, 가창력 가수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멤버들에게 미안함은 느끼고 있었다.

[일정 끝나면 다 알려줄게.]라고 문자를 보내고 '고맙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이번에는 동생이 말을 거들었다.

" 라이브 방송이 바로 내일이네?”

"그러네?"

오늘 방송은, 예상대로 내가 화제성을 독식했다. 특히 이스트 웨이브의 칭찬 덕을 많이 봤다.

하지만 내일 무대는 이스트 웨이브가 없었다. 또 하나의 대형 게스트가 올 거라고는 했는데 누구인지는 비밀로 부쳐졌다.

여튼 이번에는, 이전 라운드보다 훨씬 더 만전을 기한 무대가 나올 거라고 봐야 했다.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왠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내게는 또 하나의 비장의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다음날. '킹 오브 싱어' 2라운드 라이브 방송 10분 전.

베이비 멘토가 긴장된 모습으로 대기실에 들어왔다. 방금 자신이 멘토링 하는 권노을 군과 이야기를 끝낸 참이었다.

'잘 돼야 할 텐데요.'

베이비 심사위원은 그 누구보다 권노을을 믿었다. 하지만 드라이 리허설을 볼 때는 굉장히 두렵기도 했다. 모든 가수들이 다 벼르고 온 필살기를 잔뜩 꺼내왔기 때문이었다.

어제 방송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팝스타 출연 버프로 20%를 넘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래서인지 온 가족이 엄청난 무대를 준비했었다.

그럼에도 권노을은 정말 여유만만했다. 자신의 무대가 훨씬 더 낫다는 확신이 있는 눈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노을 군을 봤을 때도 그랬었죠.'

베이비는 권노을을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도, 간절한 오디션 첫 라운드임에도 뭔가 권노을은 담대했다. 마치 인생 2회차인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그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노래 실력을 선보이며 단숨에 베이비 심사위원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권노을은 그야말로 계속해서 베이비 심사위원을 사로잡는 노래를 불렀다.

특히 성장 속도는 무서울 수준이었다. 베이비 심사위원을 처음 만났을 때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 한두 달 뒤에 만날 때마다 권노을의 노래는 성장해 있었다.

'이번 무대 준비에는 기껏 멘토링을 하려 했는데 ''가수로서는'' 더 이상 해줄 조언이 없다는 걸 알고 제법 좌절했었죠.'

이미 권노을의 노래는 베이비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베이비 심사위원의 멘토링은 헛되지 않았다. 그녀가 권노을의 이번 무대에 엄청난 '비밀 무기'를 하나 제공했으니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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