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20화 (120/280)

제120화

나는 배영웅 매니저에게 핸드폰을 넘겨받아 통화를 이어갔다.

“저 근데 2라운드 노래 연습해야 해서 시간이 부족한데 괜찮을까요?"

"아아 괜찮아. 어차피 파일럿 프로기도 하고. 한 번만 하면 끝이잖아? 그 촬영 끝나고 하면 돼."

"무슨 프로인가요?”

"'소울메이트'알지?"

"아하 네."

2000년대 중반은 연예 버라이어티 천지였다. 한 번 보고 사랑한다고 프로포즈를 하고, 사랑의 작대기를 타고, 커플 댄스 및 게임을 하는 뭐 그런 방송 말이었다.

난 그런 방송은 질색이었다. 기본적으로 가수 활동에 관심이 있지, 연애 같은 건 별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가수로서 인정을 받고 싶지, 예능인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뭔가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뭔가 급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햐~”

천채왕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이게, 소울메이트에서 환희만 혼자 섭외가 왔단 말이야? 근데 얘 혼자 보내면 분명히 뭔가 연애 관련 사고 칠 거 같아서."

"하하..."

차마 아닐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지껏 환희가 했던 짓거리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갔기에.

"재호를 같이 보낼까 했는데. 재호는 또 인기 예능에 섭외가 와서 노을이 네가 같이 가서 좀 환희를 잡아주면 도움이 될 거 같은데."

"음… 그렇군요.”

일단 조금 고민했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 촬영은 괜찮을 것 같았다. 또 소개팅 예능을 언제 또 경험해보겠나 싶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계속 출연할 필요 없는 거죠?"

"다음부터 또 섭외가 오면 재호랑 둘을 세트로 보낼게. 재호야 뭐 걱정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 번은 경험 삼아 해볼게요. 다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가능하면 해주지. 뭔데?"

“그 조건은요…”

* * *

다음 날 아침.

바로 방송국으로 배영웅 매니저와 함께 출근했다. 쉴 시간이 없었다. 이제 2라운드 미션을 준비할 차례였다. 2라운드 미션은 '내 것이었으면 하는 노래'였다.

사실 내 것이면 좋았겠다 싶은 노래는 너무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무대에서 임팩트를 크게 보여줄 수 있는 선곡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없었다. 바로 6일밖에 남지 않았다. 연습만 하기에도 빠듯했다.

'오늘부터는 거의 연습만 하고 살아야겠군.'

아직 녹화방송만 땄을 뿐, 비원더 앨범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마 이 녹화방송 이후로는 '걔 쩔어' 홍보 방송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터였다.

물론, 이 방송도 '걔 쩔어' 홍보 방송의 일환이었지만 말이었다.

'일단은 지금 주어진 무대에 최선을 다해야겠지.'

우선 무대 회의를 위해 밴드 연습실로 향했다. 코스튬을 입은 채였다. 참가자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연습까지도 가면에 코스튬을 입고 참여해야 했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막 열려는 순간, 누군가가 콰아앙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소인중이었다.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한 듯 씩씩대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미처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서 어디론가 나가 버렸다.

배영웅 매니저가 멀뚱멀뚱 소인중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뭐죠?"

연습실은 더욱 가관이었다. 밴드 마스터부터 박찬용 드러머, 기타리스트 등 모두가 멍한 표정이었다. 기력이 없어 보였다.

내가 밴드 마스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밴드 마스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도 마라! 소인중 저 새끼가 얼마나 소리를 질러 대는지. 니한테만 유리하게 편곡을 했대나? 아니 우리는 그냥 가수가 하자는 대로 하는데 뭔 차별이 있단 말이고?"

"아..."

아무래도 소인중 대표가 한번 뒤집어엎고 간 모양이었다.

밴드 마스터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딴 놈 소개해줘서 미안타 노을아! 하 다시는 상종을 말아야지. 아주 어이가 없네. 외국계 인맥 좀 있다고 아주 개념이 없어.”

"아이고..."

주변을 살펴봤다. 밴드 멤버들은 물론 코러스까지 모두 기력이 쭉 빠져 있었다. 지금은 연습을 해봤자 소용이 없어 보였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단, 바람 좀 쐬었다 할까요?"

* * *

30분 뒤에 연습실에서 모이기로 하고 연습실을 나왔다. 방송실 건물 옥상에서 배영웅과 함께 캔 커피를 마셨다.

내가 중얼거렸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요?"

배영웅 매니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이스트 웨이브 때문일 거예요."

"이스트 웨이브요?"

"이스트 웨이브가 이번 '잇츠쇼타임' 활동 전략의 핵심이었던 건 확실하죠?"

"그렇죠.”

굳이 해외 유명 래퍼를 무리해서라도 한국 예능에 섭외를 했을 정도로 소인중은 이번 '잇츠쇼타임' 홍보에 진심이었다. 세계적인 작곡가 이스트 웨이브의 곡을 받았다는 사실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아, 대중의 관심을 끌겠다는 작전이었다.

"근데 어제 공연이 방송되면 어떻게 될까요? 역효과가 나겠죠. 라이벌 팀 메인 보컬 권노을 칭찬만 잔뜩 했으니까요. 아마 그 부분이 짜증이 났던 거 아닐까요?"

배영웅 매니저 말에 일리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동의를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곡 발표 후 확인했던 인터넷의 반응이 생각났다.

'잇츠쇼타임'의 신곡 반응은 뜨겁지는 않았지만 칭찬 일색이었다. 압도적인 명성의 팝 프로듀서의 곡이다 보니 비판하기가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좋은데? 질질짜는 가요보단 나음.]

[이스트 웨이브 노래 들어 봄?]

ㄴ 쓰루더월은 들어봤지

ㄴㄴ 그건 데뷔곡이잖아. 그 다음에 앨범이 몇 개 나왔는데. 음악못 ㅉ.

뭔가, 음악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음악 지식 자랑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에 반해 비원더의 신곡 '걔 쩔어'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큰 화제가 되었다.

비원더 치고 마이너 감성에 가까운 대중적인 멜로디나, 좀 더 팝스러워진 반주 덕에 곡은 좀 더 쉽게 다가왔다.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가사였다.

걔 쩔어가 뭐야 개쩔어 진짜.

ㄴ 개구림.

ㄴ 근데 은근 중독성 있지 않냐?

ㄴㄴ ㅈㄹㄴ

심지어 팬덤들도 '아무리 그래도 발라드 그룹 아니냐. 쩔어가 뭐냐.’ 라는 식의 반응도 많았다.

그게 오히려 우리에게 좋게 작용했다.

잇츠쇼타임에게 긍정적인 이슈 대부분은 이스트 웨이브 덕이었다. 그 이스트 웨이브가 내 노래를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다.

아마 ‘킹 오브 싱어' 파일럿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나서는, 그 긍정적인 바이럴의 상당수가 비원더로 옮겨갈 터였다.

그리고 비원더는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적인 의견과 섞이고, 서로 다른 두 의견이 싸우면서 오히려 화젯거리가 되고 있었다. 칭찬만 하는 잇츠쇼타임보다 싸우는 비원더 이야기가 더 재미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이야기가 더 많기는 해야 했다. 비난 의견이 더 많으면 소용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트 웨이브의 칭찬으로 비원더에 긍정적인 의견이 더해지면, 비원더 활동에 엄청난 청신호가 켜질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분을 이기지 못한 소인중이 밴드에게 한을 풀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영웅 매니저에게 짧게 내 심정을 말했다.

“대충은 어떤 말씀이신지 알 것 같네요."

"그렇죠?"

"그렇다면 이번 2라운드에서는 더더욱 비원더에 유리해지도록 무대를 구성해야겠네요."

배영웅 매니저의 눈빛이 잠깐 번뜩였다. 그러다 다시 사람 좋은 표정으로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쳤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하나 생각이 났어요.”

엄청난 필살기가 하나 떠올라 버렸다.

* * *

30분 후.

밴드 연습실에 하우스 밴드가 모두 모였다. 이전 '슈퍼스타 T’ 때 그대로였다. 거기에 나, 그리고 내 멘토인 베이비 선배까지 모였다. 내 다음 무대 선곡 및 편곡 논의를 위해서였다.

베이비 선배가 내게 물었다.

"무슨 곡 하고 싶은지는 정하셨어요?"

"정했지요."

"뭔가요?"

"여러 곡 생각 해봤는데요. '로프' 해보고 싶습니다."

"로프요?"

베이비 선배 목소리가 당황해서 끝이 올라갔다. 그럴 만했다, '로프'는 문루아 선배의 많은 곡들 중 덜 알려진 곡이었으니, 조금 의외인 모양이었다.

"제 곡 중에 더 알려진 곡도 많은데 굳이 그런 곡을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이 곡이 좋습니다. 멜로디도 지금 들어도 너무 세련됐고요. 너무 템포가 늘어지지도 않고요. 무엇보다 형식이 너무 재미있어요."

'로프'는 형식적인 실험이 굉장한 곡이었다. 언뜻 들으면 평범한 발라드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곡의 특징은 곡 안에 숨어있는 바이올린 연주에 있었다. 이 곡 속에서 바이올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자기 멜로디를 연주했다. 이 끝까지 이어지는 멜로디가 곡 전체의 분위기의 특징을 잡아주었다. 전주 때도, 후주 때도, 심지어 노래를 부를 때도 바이올린은 교묘하게 음과 리듬을 바꿔가며 곡 전체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 곡은 과거보다는 오히려 요새 들어야 더 좋을 노래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박찬용 드러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 곡 재미있었지."

"재미있으셨다는 게 무슨 뜻이죠?"

"아 그 곡, 내가 드럼 쳤네."

"네에~?"

베이비 선배가 이제 기억났다는 듯 가볍게 박수를 한 번 '짝' 소리 나게 치며 맞장구쳤다.

"아 맞아! 그랬죠 선배."

“허허 벌써 10년 전일세."

박찬용이 베이비와 함께 레코딩 당시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정말 생소한 남미의 리듬을 접목한 곡이라 반대도 많았는데, 작곡가의 데모가 마음에 든 천채왕이 밀어붙였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곡이 발표될 당시 큰 히트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일본, 구룡도 등 아시아 전역에서 안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심지어 지금도 이 곡의 가사와 어울리는 초여름이면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스테디셀러가 됐다.

하지만 내가 이 곡을 재해석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이 곡을 선택하려 했다.

“특히 이 곡은 리듬 파트가 어렵죠. 그래서 좀 걱정했는데… 박찬용 선배가 있으니 든든합니다."

"뭘 싱겁기는. 그래도 익숙한 곡이니까. 내일까지 한번 리듬을 만들어 오도록 하지."

밴드 마스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나일론 기타로 쳐야겠네. 우리 기타리스트 말고, 이런 장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섭외해와야겠어. 베이스랑 기타도, 이런 리듬으로 연주 가능하나?"

다들 문제없다 말했다. 남미 음악은 듣기 편한 대신, 연주자는 죽어나는 음악이었다. 다행히 최고의 전문가들이 있는 덕에 문제없이 내일까지는 리허설 준비가 완료될 듯했다.

베이비 심사위원 또한 세심하게 가사를 다듬어서 남자 가수에게 적합하게 바꾸어 주었다.

그때 베이비 심사위원이 말했다.

"근데 노을 군. 이 정도로 괜찮을까요?"

"이 정도로요?"

"이번 파일럿을 장식하는 마지막 무대인걸요. 근데 지금 구성은 너무 심플해 보여요. 물론 이런 심플함이 원곡 '로프'의 매력이었던 건 맞구요. 하지만 이렇게 끝내는 게 맞을까요? 관객들은 좀 더 기대할 것 같은데요."

역시나 베이비 선배의 멘토링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내게는 복안이 있었다. 베이비 선배에게 내 생각을 알렸다.

"선배님. 실은 제가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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