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17화 (117/280)

제117화

내 코스튬은… 삿갓과 두루마기였다. 거기에 흰색 탈까지 함께였다.

압권은 마이크였다.

"이건… 마패인가요?"

베이비 심사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코스튬 이름하여 '암행어사 출도야'에요."

"...촌스럽네요."

베이비 선배가 주변에 누가 듣는지 슬쩍 확인해보더니 내게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제가 다른 분들 것도 봤는데요.”

"네."

"이게 제일 낫습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성공하기 전인 파일럿 때는 코스튬이 굉장히 어설펐던 것 같기도 했다.

이 정도가 제일 낫다는 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금방 이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곧 찾아올 예정이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윤결 작가였다.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내 리얼리티 예능을 담당했던 노경진 PD와는 슈퍼스타 T 이후 자주 봤던 편이었지만, 윤결 작가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오랜 기간 파일럿 예능을 준비해서였을까, 몸은 이전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표정은 좋았다.

"이 프로그램 윤결 작가님이 기획하신 거죠?"

"맞아요! 제가 참여했어요. 다행히 TYB에서 노을 님 섭외해주셔서 잘 될 것 같아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다행이네요."

다행히 윤결 작가가 보기에도 나는 나쁘지 않은 흥행카드인 모양이었다.

"그럼요 노을 님! 큰 도움 주셨어요. 아, 이 방송에서 제일 중요한 게 비밀 유지거든요? 그러니까 절대, 가족에게도, 비밀엄수 해주세요. 멤버 분들도 모르시죠?"

1초 정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멤버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 회사 지시였다.

"네. 그냥 신작 예능 개인 스케줄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잘하셨어요! 그렇게 해주세요. 아셨죠? 잘 숨겨주세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마지막 촬영 때는 다 가면 벗고 공개할 거예요. 그다음에도 방영 날까지만 비밀 지켜주세요.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사실 내게는 딱히 비밀도 없었다. 나는 누가 출연하는지, 이미 그 가면 속을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오랜만에 mp3 덕 좀 봤지.'

* * *

어사 코스튬을 한 채로 베이비 심사위원과 함께 복도를 걸었다. 첫 미팅을 위해서였다. 코스튬 차림은 처음이라 걷는 게 좀 어색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아~"

"안녕하세요."

코스튬을 입은 가수 7명이 모두 무대 위에 모였다. 7명 모두 유명 가수 및 뮤지션이 멘토로 붙어 있었다. 거기다 MC인 오창선 선배까지 모이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문제는 그들 모두 코스튬이 엄청 어설프단 것이었다. 게다가 움직이기 불편해 보였다. 춘향, 국왕, 광대, 망나니, 사또, 심지어 괴물까지. 모두 하나같이 불편해 보이는 차림에, 무거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베이비 선배 말대로, 그나마 두루마기 차림인 내가 제일 편해 보였다.

오창선 선배는 어사가 이미 나인 줄 아는 듯, 나를 보고 눈을 '찡긋' 해 보였다. 나는 일부러 시치미를 뚝 떼고 공손하게 목례를 했다.

'아는 사람이 많구만.'

어제 오랜만에 mp3로 다시 '킹 오브 싱어' 파일럿 기사를 읽어두었다. 덕분에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 있었다. 어떤 코스튬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정확하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방송이 펼쳐질지도 미리 알 수 있었다.

오창선이 모두에게 공지했다.

"자, 그럼 이제 순서 결정 전입니다. 이번 순서 결정은, 게임을 통해 득점 순위대로 순위를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많이 맞춰주세요!"

순서를 결정하는 게임은 '노래 맞추기 게임'이었다. 노래를 아주 짧게 들려주고, 곡의 제목을 맞추면 됐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게임 중 하나였다.

"자 그럼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빰!*

리듬 소스 소리 하나만 가지고도 무슨 곡인지 알 수 있었다.

이것만은 회귀자여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 이전 생의 마지막, 택배 알바를 하면서 음악을 하루종일 들었었다.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언젠가는 지루해졌다. 그때부터 음악을 듣는 방식을 바꾸었다. 음악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그 조각에 집중했다. 어떤 때는 보컬에 집중해서 듣고, 다음에는 드럼에 집중해서 듣고 하는 식이었다.

음악에 대한 꿈을 놓지 못해 미련이 남아서 했던 짓이지만, 그게 지금은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우선 그때 들었던 수많은 음악들이 바로 내 음악 작업의 자양분이 되었다. 보컬은 물론, 편곡 등에서 엄청난 데이터베이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이런 음악 퀴즈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정답!"

오창선이 깜짝 놀랐다.

"오… 암행어사 출도야 님. 이 노래 알아요? 제 연배 노랜데 아하하. 연식이 드러나나베~. 정답은?"

"비 내리는 오후의 유화입니다!"

"정답!"

무대에 모인 참가자들은 물론, 멘토들과 하우스 밴드 멤버들까지 술렁댔다.

“저 노래를 안다고? 최소 엑스세대인데?"

"저게 뭐예요?"

"뭐가 들리긴 했어? ‘삑’소리만 났는데?"

"제작진이랑 짠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마스크는 귀를 가리지 않아서 모든 내용이 자~알 들렸다. 하지만 굳이 반응할 필요는 없으니 무시했다.

'저 '제작진이랑 짠 거 같다' 빈정대는 놈은 엔젤이구만.'

덤으로 출연자 중 몇 명은 누구인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음성변조를 해도 말투나 사고방식을 숨길 수는 없었으니 말이었다.

저 사또 복장의 코스튬 가수는 무조건 잇츠쇼타임의 엔젤이었다.

게임은 계속되었다.

"정답!"

"오~ 천하무적 변사또 님! 정답은?"

변사또가 의기양양하게 내 쪽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내 멘토인 베이비 선배를 쳐다봤다.

"베이비 심사위원의 '오명'!"

"저엉다압~! 아 아깝네요 어사 님. 멘토분이 정답인데 그걸 놓쳤어! 멘토분한테 쿠사리 좀 먹겠는데? 하핫!"

베이비 심사위원이 귓속말로 내게 말했다.

'노을 군. 저 노래 오디션에서 불러 봤잖아요? 잘 아는 노래 아니에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비 선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대답 안 했어요?'

'일부러요.'

'일부러요?’

"정답! '비 내리는 광화문!'"

"정답! ‘I Know You Luv Me!’”

"정답! '너와 나의 의미'"

정답을 외치고 외치고 나니 결국 나와 엔젤 둘의 2파전이 되었다.

"자. 이제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문제입니다. 이거 맞추는 분이 1등 되겠네요~? 그럼 갑니다!"

*

"정답!"

나와 엔젤이 거의 동시에 '정답'을 외쳤다. 하지만 내가 간발의 차이로 좀 더 빨랐다.

“카메라 판정 결과, 암행어사 출도야가 조오오금 빨랐어요. 답을 말해주세요!"

씨이익 미소를 지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 아무도 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정답은 '퍼플 레인보우' 입니다!"

"딩동댕동~ 정답입니다. 야 이걸 맞추네. 며칠 전 발표한 잇츠쇼타임 곡이죠?"

슬쩍 옆을 봤다. 자기 곡을 놓친 엔젤이 안절부절못하는 게 여기까지 보였다.

'어차피 내가 봐준 거니까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야.'

‘킹 오브 싱어'를 매번 봐서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잘 해봤자, 압도적으로 이기면 소용이 없었다. 그런 판은 바로 통편집이었다.

내 분량을 늘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엔젤에게 정답의 개평을 줬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내가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만큼 나와 엔젤의 반응 속도는 큰 차이가 있었다.

덕분에 엔젤은 내 승리를 돋보이게 해주는 좋은 '명품 조연'이 될 수 있었다.

고오마운 놈이었다.

* * *

이후 1주일간은 눈코 틀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비원더로써 각종 음악방송과 라디오 방송 등을 소화했다. 이번에는 심지어 3인이 함께 촬영하는 예능도 잡혀서 조금 더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킹 오브 싱어' 무대를 준비했다. 아무래도 나는 예능에서 눈에 띄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외모가 빼어난 '외모 신동'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재호나, 연습생 시절이 길어서 시키는 건 다 적극적으로 하는 환희가 더 적합했다. 사실 내가 바라는 게 그쪽도 아니었다.

사실 이러려고 팀을 한 감도 있었다. 나는 노래를 잘하고 싶었다. 그 외의 부분은 내게는 부산물일 따름이었다. 예능도 하고 싶어 안달인 두 멤버들이 예능을 소화하면서 팀의 인지도를 높이면 나는 예능 활동을 최소화로 하면서 가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예능만은 달랐다. 오로지 노래만으로 승부하는 노래 대결 예능 '킹 오브 싱어' 만큼은 욕심이 났다.

세계 최고의 노래왕, 가왕이 되고 싶던 만큼, 킹 오브 싱어 초대 우승자 타이틀은 꼭 타고 싶었다.

게다가 이 방송은 파일럿 때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킬 프로였다. 초대 우승자로 유수의 실력파 가수를 제치고 비원더의 메인 보컬이 우승한다면 비원더 이번 앨범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래서, 이번 킹 오브 싱어는 1라운드 '자기소개 무대'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무대를 준비했다. 거의 데뷔 직전, 오디션 준비하는 마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로 한 음 한 음을 다해 연습했다.

그리고 드디어, 1라운드 '자기소개 무대' 날 아침이 밝았다. 이제는 벌써 익숙해진 코스튬을 입고 리허설 장으로 향했다.

'코스튬이 의외로 편하네. 메이크업도 안 받아도 되고.'

벌써 익숙해진 발걸음으로 리허설장에 왔다. 하우스 밴드와 오창선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도 오셨어요?"

"어사 씨 노래도 듣고 싶어서요."

짐짓 오창선 선배는 나를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인사했다. '선배'라고 말하면 안 되는구나 싶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하하. 나보다 어린 건 맞나 보네. 이번에 내 노래 선곡했담서요? 누군지 차암 궁금하네에~ 아하하하하!"

오창선 선배는 '누군지 다 알지롱'이란 표정이었다. 나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정체를 숨기는 것이 방송 컨셉이라 하니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 무대 곡은 오창선 선배 말대로 오창선의 노래 '돌아서겠소'를 골랐다. 내게는 큰 의미가 있는 선곡이었다. 나를 슈퍼스타 T에서 우승시킨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불렀던 몇 안 되는 전형적인 고음 발라드라서 그런가, 내 솔로곡 중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노래이기도 했다. 나를 소개하기에 적합한 노래인 셈이었다.

*

돌아서겠소

돌아서겠고

이번에는 편곡을 역으로 갔다. 이전에는 독특함을 보여주기 위해 국악기를 활용한 오리엔탈 발라드를 했다면, 이번에는 전형적인 팝, 알앤비 발라드 구성으로 갔다.

원곡의 구성인 록발라드를 할 수는 없었다. 오창선 선배의 원곡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르를 살짝 비트는 정도라면 가능했다. 이번에는 정석, 직구로 승부할 계획이었다.

진짜 승부는 2라운드일 테니 말이었다.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았어 노을이~."

이번 하우스 밴드는 이전과 친숙했다. '슈퍼스타 T’의 하우스 밴드가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내게 소인중을 소개해줬던 하우스 밴드 리더와, 나와 데뷔 싱글 활동을 같이했던 박찬용 선배가 모두 소속되어 있었다. 든든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너무 지나치지 않게, 컨디션을 유지하는 선에서 리허설을 마무리했다. 오창선 선배가 박수를 쳤다.

"정~말 좋네! 무대가 더 기대되네요. 이거 내 곡 뺏기는 거 아닌가? 하하."

"선배… 아니 선생님 원곡이 너무 훌륭해서요. 그런 걱정은 없을 거 같습니다."

박찬용 선배와 하우스 리더도 모두 쉬려는 듯 악기를 내려놓고 우리 주변으로 왔다.

그때였다. 엄청난 함성소리와 함께 엄청난 인파가 우르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서 나는 소리였다.

내가 물었다.

"뭐죠?"

박찬용 선배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러더니 그가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 친구가 온 모양이야. 월드 스타가."

"월드 스타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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