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14화 (114/280)

제114화

2일 후.

첫 스케줄은 음악방송 녹화방송 스케줄을 위해 차에 탔다.

차에 타자, 배영웅 매니저가 우리에게 노트북을 건넸다.

내가 물었다.

"이게 뭔가요?"

배영웅이 사람 좋은 초승달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확인해보세요."

노트북 화면을 켰다. 화질이 썩 좋지 않은 영상이 보였다. 좋지 않은 화질의 카메라로 찍은 모양이었다.

"이게 뭐에여 횽들.."

재호가 환희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쉿!"

나와 재호는 바로 눈치챘다. 이건 우리의 라이벌, 잇츠쇼타임의 컴백 무대 영상을 몰래 녹화해 온 영상이었다.

어둑어둑한 화면이 보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펑! 하고 폭죽이 터지면서 팬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붉은 체크 셔츠에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의 흑인이 뛰쳐나왔다.

보자마자 누구인지 눈치챈 환희가 우리에게 되물었다.

"횽… 저 사람은...?"

내가 대답했다.

"그래."

이스트 웨이브였다.

이스트 웨이브는 거친 영어 랩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또 잇츠쇼타임을 소개했다. 내가 노자경을 통해 들었던 노래와 같았지만, 가사는 미묘하게 달랐다. 프리스타일로 하는 랩인 모양이었다.

[에요!

이스트 웨이브가 동방에 떴지! 누구보다 큰 파도를 일으키기 위해 왔지!

잇츠 쇼오오 타임!

하지만 너무 굽신거리지 말라구.

이제부터 동쪽은 너희들의 시간이야!]

그리고 빠바밤! 하는 웅장한 드럼과 관악기 소리와 함께 잇츠쇼타임 멤버 3인이 무대로 날아오듯 등장했다.

"와~ 멋지네여."

환희가 태평하게 감탄했다. 재호가 살짝 눈을 흘겼지만, 솔직히 나도 재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멋진 무대였다. 강력한 멜로디 라인, 화려한 화음, 거기에 언제나처럼 곡을 매듭짓는 앤젤의 화려한 고음 애드립까지 어디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뭔가 어색함이 느껴졌다.

"왠지… 엄청 좋은데. 우리가 질 것 같지 않은데?"

환희가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러게요 횽. 되게 좋은 곡인데. '한국에서라면' 우리가 훨씬 잘 될 거 가타여."

조수석에서 '힐끔' 안 보는 척 영상을 쳐다봤던 재호가 짐짓 쿨한척하며 말했다.

"그런 거를 뭐 신경 써. 그냥 우리 할 몫만 잘하면 되지. 잡담할 시간에 목이나 아끼자구."

나는 피식 웃었다. 방금 전 나는 봤다. 긴장을 못 이긴 재호는 몰래 청심환을 한 알 먹었다.

'지가 제일 긴장한 주제에.'

하지만 나는 왠지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분명 훌륭한 노래였다. 하지만 천채왕이 이전에 지적한 대로, 가요로써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약점 따위, 없었다.

'우리 무대가 훨씬 훌륭할걸?'

* * *

방송국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방송 준비를 끝내고 바로 리허설을 위해 무대로 향했다. 복도에서 왠지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술렁거리는 소리가 우리에게까지 들려왔다.

환희가 매니저에게 물었다.

“다들 저희를 쳐다보네여?"

배영웅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평소 표정 그대로 나지막이 대답했다.

"데뷔하자마자 2위까지 한 슈퍼 신인 그룹이니까요. 게다가 라이벌도 있고."

내가 말을 거들었다.

"잇츠쇼타임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배영웅 매니저 말이 일리가 있었다. 잇츠쇼타임은 일부러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컴백 일정을 잡았다. 게다가 세계적 팝스타를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아마 우리를 훼방 놓으려는 속셈일 터였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이 됐다. 잇츠쇼타임의 엄청난 화제성이, 그 라이벌인 비원더에게까지 옮겨갔다. 잇츠쇼타임이 뜨거워질수록, 그 라이벌인 비원더까지 관심을 얻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원더를 무너뜨리려는 소인중과 앤젤의 노력이 오히려 비원더를 키워주고 있었다.

재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것도 잇츠쇼타임을 이길 수 있을 때에 이야기겠죠?”

나는 피식 웃었다.

우리가 이길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야 잘 될 거야. 우리 이번 활동 준비부터 촥촥 됐잖아?"

환희가 거들었다.

"마자여 횽. 마침 딱 그런 안무가분도 소개해주셨구."

재호도 그 부분만은 인정했다.

“그건 대단했다구. 설마 몸치인 노을이 너까지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는 안무를 그렇게 순식간에 만들 줄이야."

역시나 노자경은 미래의 대 안무가였다. 천채왕이 직접 전화해서 부탁하자 1시간도 안 돼서, 음악에 딱 맞는 안무를 만들어 왔다. 게다가 맞춤으로 세 명에게 수준에 맞는 안무를 준비해주었다.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한 환희에게는 심지어 댄스 브레이크 파트까지 배분했다.

'덕분에 이번 무대에 더욱 만전을 기할 수 있었지.'

마침 어딘가에서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얼굴도 몇 보였다. 팬들이었다.

"화이팅~~~!"

“외모 신동 원재호!"

"잘생겼다!"

손을 흔들어 팬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방송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 팬클럽 이름이 있던가?'

의문이 들어오는 사이에, 바로 방송 무대로 들어갔다.

* * *

"하~~ 제에에발 하느님!"

비원더 비공식 팬클럽 리더 배현주가 손을 모아 처음으로 신에게 빌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 '비원더'가 이번 컴백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녀의 아이디 '가시노비'. 원래 '슈퍼스타 T’에서 권노을 악플을 다는 게 취미였었다. 그러다 권노을의 압도적인 무대들에 반해 '덕통사고'를 당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비원더, 그중에서도 권노을의 팬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컴백 무대 날이었다. 데뷔곡이 2위라는 훌륭한 성과를 냈기에, 되려 컴백이 중요했다. 이때 1위로 확실한 성적을 내야 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지 못하면 밀릴 뿐이었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거슬리는 점도 있어.'

잇츠쇼타임이었다. 누가 봐도 비원더를 모방해서 나온 알앤비 그룹이지만 비원더보다도 요란한 홍보를 자랑했다. 심지어 내부 문제로 멤버 한 명이 탈퇴했는데도 그 실체를 파헤치는 기사 하나 나오지 않았다. 보도자료 복사 붙여넣기 한 내용뿐이었다.

그 잇츠쇼타임이 하필, 엄청 유명하다는 팝스타가 피처링한 초대형 곡을 발표했다. 게다가 단독 컴백쇼까지 잡을 정도로 엄청난 푸쉬를 받았다.

그에 비하면 비원더는 평이한 음악방송 컴백이었다. 미리 알아둔 컴백 스케줄도 예능 등, 일반적인 스케줄뿐이었다.

"아 진짜 소속사 일 개 못하네! 그거 하나 방송 따악~. 단독 컴백방송 못 잡아? 어?"

사실 '가시노비'도 알고 있었다. 비원더 소속사인 'TYB'는 최대 대형기획사였다. 게다가 비원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잇츠쇼타임'의 푸시가 비정상적인 거지, 비원더의 푸시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제발! 이번 무대로 그냥 작살을 내줬으면!"

그사이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서서히 비원더 3인이 올라왔다.

"끼야아아아!"

팬들의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멤버 3인 외에도 주변에 누군가가 있었다.

댄서들이었다.

'비원더가 웬 댄서?’

비원더는 알앤비 그룹이었다. 발라드 활동 위주기에 당연히 멤버 3인만이 무대를 꾸몄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날렵해 보이는 정장 차림의 댄서들이 함께였다.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와 함께 강렬한 드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절로 스텝을 밟고 싶었다.

댄서들은 물론, 멤버들도 드럼 비트에 맞춰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이상하게 전혀 과하지 않았다. 마치 원래 들어가야 하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네 생각을 해]

(쩔어)

"풋!"

'쩔어'라는 유치한 말이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왠지 싫지 않았다. 드럼 비트 소리에 촥 달라붙어서 '쩔어'라는 강력한 어감의 단어가 음악적으로 들렸다.

후렴은 더더욱 강력했다.

[넌 정말 쩔어! 쩔어~. 쩔어, 쩔어어! 개 쩔어우우우우~ 쩔어!]

팬들조차 푸우웃! 하고 웃었다. 권노을이 엄청나게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쩔어~ 쩔어~'라고 알앤비 소울 창법으로 불렀고, 그 사이 사이에 원재호, 주환희가 절묘한 화음을 넣었다. 너무 웃겼지만 아름다운 소리가 겹쳐서 더욱 인상적으로 변했다.

안무도 포인트였다. 여지까지 비원더의 노래는 '듣는' 노래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가벼운 스텝은 물론 귀여운 율동이 들어있어서 보는 맛도 있었다. 1절과 2절 사이에는 주환희가 주도하는 제법 고난이도의 댄스 브레이크도 있었다.

특히 안무 중에는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정말 걔~~~! 쩔어!]

마지막 부분에는 세 멤버가 딱 정지했다. 셋 모두 하트를 그렸다. 다만 포즈가 달랐다. 환희는 머리 위 하트, 재호는 깨물 하트, 그리고 권노을은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마무리했다.

"귀여워어~~~!"

이미 잇츠쇼타임과의 비교는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세 멤버의 하트 포즈와 '쩔어'라는 단어 하나만 머릿속에 남았다.

[넌 정말 쩔어! 쩔어~. 쩔어, 쩔어어! 개 쩔어우우우우~ 쩔어!]

입속에서 후렴이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팬덤이 아닌 사람들까지 후렴을 중얼거렸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계속해서 이 노래를 되뇌이며 갈 예정이었다.

* * *

녹화방송이 끝나고 다음 날. 바로 다음 일정이 시작됐다. 바로 '기습 콘서트'였다.

언제나처럼, 볼보 차량을 타고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배영웅은 뮤지크 소울차일드의 음악을 틀어놓고 휘파람을 불며 운전했다.

이번에는 내가 조수석이었다. 슬쩍 뒷좌석을 보니 재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뭐 안 좋은 소식 있냐?"

재호가 신문을 구기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온통 잇츠쇼타임 기사뿐이라구."

“무슨 내용인데?”

"영화배우를 해외에서 공수해서, 전쟁 테마로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찍었다네. 그 이야기뿐이야."

배영웅이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아! 그거 저도 들었어요. 베트남 전쟁 신을 진짜 찍었다면서요? 방콕 클럽도 빌렸다고 하고. 대단하네요."

재호가 뭐라고 말을 하려다 내 표정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노을이 너 뭐냐구?”

"뭐가?"

"왜 이리 태평해 다들? 나는 걱정되거덩~.”

배영웅이 말했다.

“저는 선생님을 믿으니까요. 천채왕 선생님을 카피해서 이기려고 하고. 물량 공세로 이기려는 사람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선생님은 정공법으로 돌파하셨죠.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어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체험을 못 해서기도 했고,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유야 어쨌든, 직원에게 신뢰받는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사실, 나는 배영웅보다 더욱 확신이 있었다. 잇츠쇼타임의 신곡은 디자인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비원더는 매우 잘 디자인되어 있었다.

승리는 우리 것으로 예견되어 있었다.

때마침 배영웅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도착했습니다. '기습 콘서트' 촬영 시작해볼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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