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04화 (104/280)

제104화

오디션 참가자가 분명했던 애드리아나가, 화려한 블랙 스커트를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그녀는 능숙하게 컨트리를 소개했다. 미안하지만, 사이먼 벅보다는 훨씬 나았다. 흑인음악 창법에 아주 약간 발음을 바꾸니 신기하게도 기가 막힌 컨트리 음악이 되었다.

문루아가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말했다.

"애드리아나! 잘한다!"

그러고 보니 '슈퍼스타 T' 때부터 유독 애드리아나와 친했다. 룸메이트이기도 했고, 항상 붙어 다녔었다. 아마 이번 미국행도 애드리아나 응원이 가장 큰 목적인 모양이었다.

애드리아나는 내가 알던 그 애드리아나였다. 완벽한 알앤비 창법으로, 안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본인의 모국어인 영어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되려 더 노래를 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대가 끝나고, 함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대다수가 스타인 사이먼 벅을 환호했다.

하지만 나와 문루아는 알고 있었다. 진짜 노래로 감동을 준 건 안정적인 가창력을 보여준 애드리아나였다.

내가 감상평을 남겼다.

"화음을 넣는 애드리아나가, 주 멜로디를 부르는 사이먼보다 더 안정적이네요."

문루아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의했다.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무대면 좀 실망스러울 텐데.'

* * *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참가자들의 노래는 사이먼 벅을 뛰어넘었다. 댄스 노래를 부르던 라티노 가수부터, 화려한 필리핀계 알앤비 남자 솔로 가수 까지. 다채로운 노래가 등장했다.

모두, 한국에서 봤던 웬만한 베테랑의 공연보다 수준이 높았다. 오창선 선배 정도 되어야 이겨낼 수 있는, 상당한 고난도의 무대였다.

넋을 잃고 가수들의 노래를 보다 보니, 문루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길 잘했죠?"

"그러게요. 이런 세계가 있네요."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무대와 건물, 그리고 청중을 확인했다.

사실, 노래도 대단했지만 그보다는 이 인프라가 부러웠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음질과 큰 규모의 공연장과 이를 채워주는 관객들, 그리고 이를 받쳐주는 실력 있는 스태프까지, 모두 한국서는 보기 힘들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가수가 저절로 힘이 날 것 같았다.

문루아가 무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큰 세계를 보면, 꼭 이런 무대에 서보고 싶어져요. 연습생 때 저도 그랬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요?"

“저는 슈퍼스타 T 나올 때부터, 월드 스타가 되고 싶었어요."

“풋."

항상 쿨한 표정이었던 문루아가 피식 웃었다. 그게 뭐냐는 표정이었다.

"꿈은 큰 게 좋으니까요."

"노을 군은 얼굴 표정에 다 보여요."

"뭐가요?"

“무조건 될 거라고 생각하죠?"

"아…"

사실 그랬다.

"뭐 자신 있는 건 좋은 거니까요."

그렇게 떠드는 사이에 드디어 애드리아나가 소속된 4인조 보컬 그룹, '루비아이'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다시 태어나

다가가려 해 너에게로]

‘루비아이'는 시작부터 화려한 화음으로 노래 포문을 열었다.

시작부터 깜짝 놀랐다. 엄청나게 복잡한 화성의 하모니기도 했지만, 절묘하게 음을 끌어서 일반적인 노래와 전혀 다른 느낌을 냈다. 음을 끌면서도 4명이 한꺼번에 같은 리듬으로 애드립을 넣어서, 마치 한 사람의 노래처럼 들렸다.

엄청난 단합력이었다.

[아직까지 너는 잠들어 있어.

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4인의 목소리도 모두 전혀 달랐다. 강렬한, 다크 초콜릿 같은 엄청난 저음, 잔잔하면서도 우아한 스탠다드 재즈 보컬, 하늘을 반으로 가를 것 같은 화려한 고음 알앤비 보컬, 그리고 정석으로 단단하게 어떤 장르도 능숙하게 소화하는 애드리아나까지 모두 전혀 다른 색깔을 냈다.

그런데 4명이 합치면 전혀 다른, 또 다른 색감의 목소리를 냈다. 그 조화의 쾌감이 엄청났다.

[이제 다시 태어나

다시 한번 태어나

다가가고 말 거야

담아내고 말 거야]

분명히 4명은 전혀 다른 보컬이었다. 색감부터 장르, 심지어 모음을 발음하는 방식까지 달랐다. 그럼에도 정확한 리듬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거기에 음을 끌고, 의성어, 숨소리까지 맞추면서 풍성한 화음을 만들었다.

이건… 비원더가 배워야 할 무대였다.

그리고 마지막 애드립 부분에, 메인 보컬인 듯한 여성이 화려한 고음을 꽂아 넣었다.

[너는 지금도 잠들어 있니]

다시 화려한 화음과 함께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이제는 결과 발표 시간이었다.

점수는 당연히...

오늘의 최고점이었다.

“와하우~~~!~!!!!"

관객들의 함성이 다시 땅을 울렸다. 관중들이 엄청난 무대에 무시무시한 환호로 답례를 표하고 있었다.

* * *

무대가 끝나고, 우리는 애드리아나를 대기실 출구에서 기다렸다.

문루아는 배영웅, 그리고 현지 직원과 함께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 이야기에 낄 수 없었다.

계속해서 마지막, ‘루비아이'의 무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루비아이'의 메인 보컬, '데스티니 아이'의 목소리가 계속 떠올랐다.

아마도, 내 평생 들어 본 노래 중 가장 뛰어난 노래 실력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루비아이'의 무대였다.

한 명 한 명도 비원더 못지않게 뛰어났지만, 그 ‘합'은 정말 엄청났다. 넷은 1+1+1+1보다 더 큰 4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무대를 보니 한 질문이 떠올랐다.

‘이건 대체 어떻게 한 걸까?'

* * *

공연 다음 날.

문루아는 오랜만에 애드리아나와 회포를 풀겠다며 현지 직원과 함께 애드리아나 숙소로 떠났다. 나는 배영웅과 함께 미리 잡아 놓은 LA의 호텔에서 잠을 잤다.

일어나자마자 배영웅과 함께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아침이라고는 해도 식단은 조절해야 해서 계란과 샐러드가 전부였다.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 ‘루비아이'의 무대를 떠올렸다.

솔직히,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지금껏 나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라이브 무대를 본 기억이 없었다. 노래는 언제나 내가 더 뛰어났다. 스타성이나 다른 점이 문제였던 적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었다.

루비아이의 무대는 달랐다. 분명 뜯어보면 멤버 하나하나는 나와 스타일이 다를 뿐, 나보다 특출나게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넷이 힘을 합쳐 만든 무대는 내가 절대 만들 수 없는 경지로 보였다.

뭔가 벽을 느꼈다.

하지만, 좌절할 일은 아니었다. 네 명 각각 개인을 뜯어보면 충분히 내가 상대할 만한 보컬리스트였다. mp3로 확인한 스탯으로 볼 때 나와 견줄 수 있던 멤버는 메인 보컬 데스티니 딱 한 명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뭔가, 4명이 합친 하모니에 비결이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삐빅 삐빅'하는 알람이 왔다. 배영웅이 말을 걸었다.

“노을 아티스트님. 전화 온 거 같네요.”

“아 네."

전화기를 꺼냈다. 오창선 선배였다.

"선배!"

-야~ 노을이! 미국물 잘 먹고 있냐? 촌티 잘 숨기고 있지?

오창선이 한참을 나를 놀렸다. 그러더니 슬쩍 본론을 이야기했다.

-너 아주 물건을 데려왔더라?

“누구 말씀이시죠?"

-자경이 말야 자경이.

“아하. 자경 씨요.”

그러고 보니, 잇츠쇼타임의 전 멤버 노자경을 오창선에게 소개했었다. 노자경은 자살 기도를 할 정도로 우리의 라이벌 그룹 잇츠쇼타임에서 심한 정신적 학대를 받고 있었다. 그는 노래로는 소질이 없지만, 세계를 휩쓸 안무가의 자질을 갖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기에, 그를 선배 가수 오창선의 무대 연출 팀에 넣었다. 언젠가는 그가 안무가 및 무대 연출로 대성할 거라 믿었으니 말이었다.

-아 걔가 일을 잘해~. 연예인 출신이라 건방질 줄 알았는데. 겸손해!

다행히도 오창선은 내게 노자경 칭찬을 하려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칭찬이 끝나자 내가 슬쩍 질문을 했다.

"저… 선배. 어제 제가 '글로벌 비젼' 미국 예선을 보러 갔는데요.”

-야… 그걸 봤어 노을이! 출세했네. 티켓 구하기 쉽지 않을 텐데. 어떻디?

"저 사실은..."

오창선에게 내 고민을 상담했다. 다 듣더니 오창선이 잠자코 말했다.

-이거. 그대로 너희 회사 대표. 천채왕 회장님한테 물어봐.

"선생님에게요?"

-아, 그래. 니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회장님에게 물어봐. 그럼 답을 알게 될 거야.

시간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아직 천채왕이 잠들기 전 시간대였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천채왕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노을이! 웬일이야?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지금 LA는 꼭두새벽 아니야?"

“맞습니다.”

-무슨 일이야?

“일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뭔 충격을 받아? 무슨 일 생겼어?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어제 글로벌 비전 콘테스트 결승 무대에 문루아 선배와 사람들과 같이 갔습니다. "

-와~. 그거 티켓 구하기 힘들 건데. 어떻게 갔어?

"그 왜, 저희와 함께 ‘슈퍼스타 T' 했던 '애드리아나'가 거기에 참가했거든요."

-아 그랬지 그랬지. 기억난다.

"그 친구가 사줬습니다."

-그래. 근데 왜?

"...처음으로 벽을 느꼈습니다."

-벽을 느껴?

슈퍼스타 T에서 봤을 때, 애드리아나는 분명 뛰어난 가수였다. 그래서 그녀가 메인 보컬이 아닐까 생각했다.

개뿔. 택도 없었다. 여기서 그녀는 화음을 주로 넣는 서브 보컬이었다. 그녀의 팀 '루비아이'' 동료들은 묵직한 저음부터 화려한 고음 보컬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서로 다른 장르와 개성의 목소리들이 섞여 하나의 보컬 그룹을 했다는 점에서는 '비원더'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들의 무대는 차원이 달랐다.

압도적으로 개성 있는 톤, 넘치는 여유의 무대 매너, 거기다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의 자유로운 애드립과 기교까지… 그들의 무대는 마치 벽을 만난 것 같았다.

노래의 나라 미국에서의 라이브는 나를 처음으로, 놀라게 만들었다.

지금껏 나는 '노래 실력'은 내가 최고라고 자부해 왔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처음으로 여기서 깨졌다. 건방지다 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여기까지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천채왕이 말을 걸었다.

-노을아.

"네."

-난 제작자이자 사업가지만. 그 이전에는 가수였어. 알지?

"네."

천채왕은 제법 유명했던 방송인이자 포크록 가수였다. 비록 가수로는 1위를 하지 못했지만.

-가수였던 사람으로서… 난 정~말 니가 질투 난다.

"왜… 왜 그러시죠?"

-너는 한국에 얼마 안 되는, 그 글로벌 레벨의 가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제, 제가요?"

-생각해봐. 보통 사람은 너처럼 벽을 느끼지 않아. 아예 너무 수준 차이가 나서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고. 너, 미국 가서 코비 브라이언트의 농구 실력을 본다고 기분이 나쁠 거 같아?

"아니요?"

-실력 차이가 너무 나니까, 그지?

"네."

-니가 해 볼 만 하니까 그 정도 감정인 거야. 아무래도 노을이 니가 세계 수준의 라이브 무대를 처음 봐서 좀 냉정을 잊은 모양이야. 그 증거로 말야 노을아 너 그거 아냐?

"네."

-그 무대에 있던 애들을 개별적으로 보면, 너보다 압도적으로 더 뛰어났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장담해.

사실 나도 그 부분이 이상했다. 분명 한 명 한 명 뜯어보면 내가 상대해볼 만한 보컬리스트였다. 다만 그들이 합친 팀 무대가 엄청났을 뿐이었다.

"좀 위로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위로해 주려는 거 아니야.

"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내가 노을이 널 얼마나 아끼는데 위로 같은 걸 하냐?

"그럼…”

-딱 바로 그. 글로벌 월드 스타들이 찾아가서 노래 배운다는 보컬 트레이너한테 연락 해둘 테니까. 미국 떠나기 전에 한번 레슨 받아봐. 뭐가 필요한지 알려줄 테니까.

마음속으로 나는 쾌재를 불렀다.

'대박!'

이거라면 내가 느꼈던 벽을 뛰어넘을 힌트를 얻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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