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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왕-101화 (101/280)

제101화

"크크큭."

소인중이 웃음을 최대한 삼켰다. 하지만 웃음이 계속 나왔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모욕했던 권노을. 그 자식을 드디어 엿 먹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천채왕이 니놈을 지켜줄 수 있는 건 국내뿐. 해외는 내 구역이지.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오다니. 멍청한 놈."

처음 사이먼 벅의 담당 보디가드에게서, 사이먼 벅이 약물 쇼크로 병원에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소인중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황을 듣다 보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이건 딱 함정 파기에 좋은 상황이었다.

소인중은 잽싸게 자기 네트워크를 통해 파파라치, 연예지 기자들에게 소문을 뿌렸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시아 최고 스타 문루아가 자기 애인인 신인 가수 권노을과 시카고에 밀월여행을 왔다.]

물론 소인중은 알고 있었다. 그런 활동일 리가 없고, 그저 음악 작업을 위해 왔을 거란 사실을. 하지만 상관없었다. 사진과 기사를 통해 적당히 편집하면 얼마든지 둘을 애인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추가로 소인중은 결정적인 정보까지 흘렸다. 하나는 문루아와 권노을이 (서로 다른 방이지만) 묵고 있는 호텔 주소였다. 또 하나는 문루아와 권노을이 갈 수 있는 공항 주소였다. 권노을은 기자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너는 끝났다.'

소인중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3시간이 지나고 8시간이 지나 동이 트고 아침이 와도 아무런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에 다 피운 시가로 재떨이가 가득 찼다.

"이 자식들 왜 보도를 안 하는 거야?"

참다못한 소인중이 파파라치의 리더격인, 연예 매체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보를 줬는데 왜 기사가 나오지 않느냐고 따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인중의 계획은 어긋났다. 되려 쌍욕만 먹었다.

-셧업! 니 때문에 아까운 인력만 낭비했잖아. 호텔에도 공항에도 그런 녀석들은 없었다고!

소인중은 당황했다.

"그 그럴 리가. 분명 거기 있을 거라고! 당신들이 놓친 거 아니야?"

-문루아처럼 핫핑크색으로 염색한 동양 여자를 놓칠 리가 있냐? 자꾸 엉터리 정보로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마. 알겠어!

편집장이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소인중은 분을 참지 못하고 전화기를 바닥에 던졌다. 핸드폰이 대리석 바닥에 명중했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났다.

"권노을 이 새끼… 어디로 간 거냐?"

* * *

'여기가 그러고 보니 어디더라?'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콜로라도입니다."

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나와 배영웅 매니저, 문루아, 그리고 LA 담당 TYB 직원 자넷까지, 4인을 태운 캠핑카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뒤에 위치한 침대에서 문루아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네, 선생님? 네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문루아가 잠깐 핸드폰에 귀를 떼고 내게 살짝 말했다.

"선생님이 바꾸래요.”

핸드폰을 받았다.

-노을아!!!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탈출한 거고!

이렇게 흥분한 천채왕은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떻게 소인중이 나와 문루아를 엿 먹이려 했던 걸 알았느냐. 그리고 독한 미국 파파라치들 틈에서 어떻게 탈출했느냐. 하고 묻는 것일 터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천채왕도 소인중에게서 정보원을 심어 두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정보는 빠르게 받았지만, 미국까지 확인은 좀 느렸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다급하게 문루아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새벽에 바람같이 호텔에서 사라진 이후였다.

"조금 늦으셨네요 선생님."

-그러니까! 난 아직 기사가 안 올라왔길래 아직 안 늦었나 싶어서 빨리 전화했지. 근데 루아가 이미 니들, 빠져나왔다고 해서. 어찌나 놀랐는지 참…

천채왕이 한참 쏟아내더니 조금은 안정을 찾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는 가요계의 제왕, 천채왕다운 위엄있는 모습으로 돌아와 내게 어떻게 탈출했는지 물었다.

"사실 처음에 딱 떠오른 건 자동차였어요. 근데 그게 안 되겠더라고요."

-왜?

"이미 보디가드들이 배영웅 매니저가 운전한 자동차를 봤으니까요."

제아무리 미국 시카고라도, 벤츠 500 같은 고급 차는 금방 눈에 띄었다. 호텔에 세워진 벤츠 차량을 탔다간 바로 파파라치에게 들킬 터였다. 자동차는 탈락이었다.

“그다음 대안은 택시였습니다. 여튼 택시는 너무 많으니까 모든 택시를 다 알아보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아마 나는 택시를 불렀을 거야.

택시를 급하게 타면, 일단은 모든 자동차를 막지는 못하니 당장은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택시를 타는 건 좋은데… 그다음에 갈 데가 없더라고요."

-그렇지.

이 도시를 나갈 방법이 없었다. 공항은 이미 파파라치가 쫙 깔렸다. 되려 호텔보다 더 많았다.

이 도시를 탈출할 방법이 없어진 셈이었다.

"머릿속에서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회사에 부탁해서 헬기를 띄워야 하나도 생각했어요."

-하지 그랬어. 제트기를 띄워 줬을 텐데.

"제, 제트기요?"

-농담이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사실은 농담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천채왕의 재력에 살짝 아찔했다. 하지만 일단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여, 여튼. 그러니까 간단하더라고요. 시카고를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때 번뜩! 생각이 났다. 문루아와 멜리나가 함께 캠핑을 떠났다는 말이었다.

[딱 TYB 시카고 지부에 캠핑카가 있어서 그 차 타고 같이 국립공원에 놀러 갔었거든요.]

바로 그거였다. 캠핑카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줬다. 택시와는 달리, 어디든 멀리 갈 수 있었다. 게다가, 벤츠 차량과는 달리 소인중은 TYB가 캠핑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하게 새벽에 결단을 내렸다.

"시카고 지부 직원에게 호텔 근처 주차장에 캠핑카를 갖고 대기해달라 부탁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어떻게 가고?

“그냥 화장 지우고, 츄리닝에 후드티에 모자 푹 눌러쓰고 걸어 나왔어요."

-그냥 걸어 나왔다고? 그게 돼?

“그게… 되더라고요. 어차피 다들 벤츠나, 택시 타는 사람들만 찾고 있으니까요. 미국 사람들은, '걸어서 나갈 수 있다'는 기발한 생각은 못 하니까. 그것도 연예인이.”

그랬다. 미국인은 정말 바깥을 걷지 않았다. 아시아의 달, 문루아라는 연예인이 새벽에 혼자 밤길을 걷는다? 아무리 위험하지 않은 번화가라지만 미국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를 당연히 관광객이겠거니 하고 지나쳤다.

-야 미국인들 문화의 맹점을 찔러버린 거네. 대박… 네가 나보다 낫다.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천채왕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한참을 '야...' 하고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아니, 진심이야. 나도 그렇게 다급한 상황에 그 정도는 하지 못했을 거야.

"아닙니다. 다 시카고에도 캠핑카, 직원까지 있는 TYB의 인프라 덕인데요."

사실이었다. TYB는 각 대도시마다 인프라가 깔려 있었다. 게다가 배영웅처럼 유능한 직원들도 많았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덕에 문제를 항상 해결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도 살았다. 고마워. 이건 잊지 않고 갚을게.

"감사합니다.”

-소인중 기획사는 한층 더 경계를 강화할게. 이런 일 없도록.

"네네."

-신경 쓰지 말고, 곡 작업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줄게. 어떻게든.

"감사합니다."

든든했다. 왠지 이제는 천채왕 말 대로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천채왕은 전화를 끊었다. 문루아가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선생님이 뭐라시나요?”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야 다행이죠!"

문루아는 의외로 태평했다. 자리 뒤에 침대에서 스트레칭이라도 했는지 온몸을 고양이처럼 쭈우욱 늘렸다.

"잘 주무셨나요?"

“네 계속 잤어요. 새벽에 바로 뛰쳐나갔으니까, 잘 틈이 없었잖아요."

"아하 그러네요.”

하긴 그랬다. 바로 오늘 새벽, 내가 자기 직전의 문루아를 전화로 급하게 깨웠다. 그리고 걸어서 캠핑카에 타서는 시카고를 탈출했다. 시카고를 나서서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해가 떴다. 생각해보니 잠을 잘 시간이 애매했다.

“오히려 노을 씨가 대단하네요."

"뭐가요?"

"어제 거의 잠을 못 잔 거 아니에요? 지금 한 15시간 달렸는데 아직도 안 자잖아요."

"아하. 네 뭐어..."

그냥 웃어넘겼다. 'mp3란 게 있는데요, 거기에 위버멘쉬의 회복력이라고...'라고 설명할 수는 없으니 말이었다.

문루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졸리지도 않아요? 강철 체력이네요. 댄스 가수 감이에요."

"윽, 그건 아닙니다. 춤 잘 추면 진짜 좋겠는데."

나는 몸치 중의 몸치였다. 그것만은 mp3도 구제 불능이었다. 내 소원이 '가수'여서 그런가, 춤은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을 키워주지 않았다.

"저랑 같이 레슨 받을래요?"

"누구에게요?"

"안무가요."

"아. 아니요… 폐만 끼칠 거 같네요."

아시아 최고의 댄스 가수 문루아가 미국까지 가서 받는 댄스 레슨이라니, 보나 마나 세계적인 수준의 레슨일 터였다. 그걸 굳이 내가 가서 산통을 깰 이유는 없었다.

가만히 우리 말을 듣고 있던 배영웅이 말했다. 어느새 배영웅은 운전을 자넷에게 맡기고 조수석에 앉은 상태였다.

"보컬 레슨은 관심 있으세요?"

"보컬 레슨이요?"

문루아가 손가락을 튕겨 딱! 하고 소리를 냈다.

"맞네요! 보컬쌤 유명한 분 많으니까. 만나 볼래요?"

그러고 보면, 슈퍼스타 T에 가서 잠깐 배운 게 전부였다. 거기서도 보컬 트레이너가 가르칠 게 없다며 거의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건 해보고 싶네요.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배워본 적이 없다고요?"

"네."

문루아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리며 말했다.

“그럼 노을 씨는 대체 노래를 어떻게…?"

"그냥 부르다 보니까 점점 늘었어요."

“그냥 됐다고요? 발성도 안 배웠어요?"

“네. 그냥 저절로."

문루아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배영웅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제대로 배우신 적도 없는데 저 정도라니. 제대로 배우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안 가네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꼭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 보고 싶었다.

"꼭… 배우고 싶습니다.”

문루아는 스케줄을 한번 맞춰 보겠다고 말했다.

* * *

운전은 계속되었다.

미국은 정말 더럽게 넓었다. 차를 타고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똑같은 풍경이 끝이 없었다.

달라지는 것은 라디오의 음악과, 이를 그대로 모사하는 배영웅의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도시 지역인 시카고에서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힙합, 알앤비가 흘러나왔다. 시골이 되면 될수록 포크, 컨트리 음악이 비중이 높아졌다. 배영웅은 컨트리 음악에도 멋들어지게 휘파람을 불었다.

해가 질 때쯤이 되자 좀 숲과 산이 보이고 풍경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배영웅이 지도를 확인하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캠핑장에 도착하겠네요. 다들 준비하세요."

"네에~"

문루아가 대답했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우쿨렐레였다.

“오. 우쿨렐레네요. 연주하시나요?"

"할 줄 알죠."

“오늘 밤에 연주해 주시려고요?"

갑자기 문루아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곡 써야죠 이제. 우리 왜 왔는지 까먹은 거예요?"

아차. 어느새 미국을 달리다 보니 잊고 있었다. 나는 문루아 선배에게 솔로곡을 받기 위해 온 거였다.

"그러네요. 설마 선배가 혼자서 곡을 쓸 줄은."

문루아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제가 무슨 전문 작곡가도 아니고. 미도리를 원래 시카고에 불렀어요. 근데 다급하게 나가다 보니까 미처 못 불렀죠. 지금 비행기 타고 LA에 도착했다고 하니. 내일이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내일이요? 내일 또 운전해서 LA 가나요?"

"당연하죠."

“왜요? LA까지 굳이 갈 일이..."

문루아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툭 쏘아붙였다.

"당연히 가야죠! 우리가 LA로 왜 가는지 설마 모르는 거예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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