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오~ 미스 문~~ 잘 왔어!!"
사이먼 벅이 볼 키스를 쪽 하면서 문루아를 맞이했다. 문루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이먼 벅을 맞이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놈의 음흉한 눈빛이 보였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이미 그놈의 어두운 본성을 느낄 수 있었다.
“으아니? 이… 친구들은 누구야?"
사이먼 벅이 문루아의 일행인 우리들을 보고 물었다. 뭔가 방해된다는 표정이었다.
"아 내 앙투라지 들이에요.”
문루아가 우리를 소개했다. 역시나 초등학교 때부터 TYB에서 케이팝 스타로 교육받은 문루아답게 완벽한 영어였다.
사이먼 벅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우리와 악수했다. 그야, 혼자일 때야 완력으로든 무엇으로든 범죄를 저지르기 편했으니까 말이었다.
"다들 반가워. 자자 사양 말고 앉아. 언제 봐도 매력적이야 미스 문."
사이먼 벅이 우리를 한 룸으로 초대했다. 고급 양주가 한가득이었고 살사 소스와 나초도 잔뜩 쌓여있었다. 한국이라면 한 10명이 배부르게 먹을 법할 간식이 잔뜩 쌓여있었다. 뭐랄까, 미국 스케일이었다.
"아아. 한국에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있다니 놀라운데. 큐우티 허니!"
“왜요?"
“그야. 전쟁으로 망가진 나라잖아. 어떻게 그런 여성이 있겠어? 큐유티 허니 빼고!!"
나름대로 사이먼 벅은 플러팅이라고 해 댄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나 문루아나 표정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 네네 뭐어..."
문루아가 최대한 좋게 대답했지만!
저 인간… 한국이 무슨 가난한 최빈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하면 아는 게 한국 전쟁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유명인이지만, 그에 반해 딱히 교양은 없어 보였다. 대화를 할수록 내 이런 의심은 깊어졌다.
"그래서 내가 그냥 총을 빵! 하고 쏴버린 거야! 그러니까 사슴이 놀라 자빠지더라니까 와하하하~. 잽싸게 사슴 배를 갈라서 방금 전까지 뛰던 심장을 씹는데. 맛이 얼마나 쫄깃한지~~~ 딜리셔스~~"
“아하하 네에..."
문루아 표정이 점점 썩어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20대 여성 앞에서 사슴 사냥 이야기를 하다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보다 심한 똥볼이었다. 게다가 문루아는 굉장히 동물을 좋아했다.
아무리 문루아가 좋게좋게 말을 멈추려 해도 사이먼 벅은 상세하게 자기가 어떻게 사슴을 씹어 먹었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문루아 얼굴은 흙빛이 되어 갔다. 그야말로 지옥의 맨스플레이닝 이었다.
껄껄껄 웃던 사이먼 벅이 일어나며 말했다.
“술이 떨어졌네. 잠깐 좀 술 찾아보고 오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수행원들도 자리를 떴다. 그제서야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몰래 문루아에게 물었다. 혹시나 누가 들을까 봐 한국말로 말했다.
'저 인간 왜 저리 무식해요?'
'왜요. 팝스타는 교양도 있고 인품도 훌륭할 줄 알았어요?'
'끙~ 솔직히 저거보다는 낫지 않을까 기대하긴 했네요.'
'한국에도 저런 선배들 흔해요. 뭐 신경 안 써요.'
‘한국 선배는 여자한테 이상한 약을 쓰는 건 안 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이 입 밖에 나왔지만 일단 참았다.
그의 실체를 내가 아는 건 일단은 내 비밀이었으니까 말이었다.
문루아가 살짝 투덜댔다.
'교양은 몰라도. 음악은 좀 더 잘 알 줄 알았는데. 음악을 아무것도 모르는 건 실망이네요.'
'음악을 몰라요?'
'아~ 아무것도 몰라요.'
'그 사람 곡도 자기가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다 허풍인가 봐요. 코드도 머니코드 뻔한 거밖에 몰라요.'
'......’
문루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미국의 록 뮤지션이라고 하면, 자신이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음악에 대해 하나도 모를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사이먼 벅은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금융 재벌과 프로듀서들이 합세해서 그를 스타로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의 실세는… 놀랍게도 소인중이었다.
'정말 난 놈은 난 놈이야. 백인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스타도 만들 정도의 인맥이라니.'
그 인맥이 마약과 범죄로 얼룩져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었다.
그 사이 사이먼 벅이 직접 술을 두 잔 가져왔다. 음흉한 얼굴 표정만 봐도 그놈의 속셈이 보였다.
저거, 분명 약이었다. 100%였다. 문루아에게 요상한 약을 먹이려는 수작이었다.
"오~ 미스 문. 잠깐 둘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가능해?"
드디어 짐승이 발톱을 드러냈다. 문루아에게 눈빛을 보냈다.
문루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내 신호를 읽은 것이 틀림없었다. 문루아가 사이먼 벅에게 말했다.
"아… 여기에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러지 말고.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조금... 컨피덴셜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으… 영어로 말을 듣는데도 느끼함이 느껴졌다. 문루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아주 미세하고 빨라서 나 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럼… 이거 먼저 마시고 할까요?’
'마셔?'
'한 잔 웰컴 드링크 마시면… 긴장이 완화되니까요.'
그러면서 문루아는 자연스럽게 사이먼 벅의 턱을 살짝 만졌다. 소위 미국인 턱이라는, 중간이 갈라진 턱 이었다.
사이먼 벅이 헤벌쭉 웃었다. 그야 약을 먹이자마자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면 자기 계획대로 되는 것일 테니까 말이었다.
문루아와 사이먼 벅이 서로 잔을 들었다. 원 샷을 하려 했다. 뭔가 불안함을 느낀 매니저들이 제지하려 했다. 문루아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괜찮아요.”
"하지만...! 위험합니다!”
배영웅이 한글로 말했다. 얼굴 표정은 굉장히 평온했다. 일부러 사이먼 벅과 그의 보디가드들이 내용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문루아가 대답했다.
"치어스."
쨍! 둘이 잔을 부딪치고 벌컥벌컥 마셨다. 문루아도 단숨에 원샷했다. 매니저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문루아를 바라봤다.
사이먼 벅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후후… 그럼 이제 가볼..."
그때였다. 마치 고목처럼 사이먼 벅이 풀썩하고 쓰러졌다. 문루아가 일부러 과장된 비명소리를 냈다.
"꺄아아아악!"
보디가드들이 서둘러 사이먼 벅을 향해 다가가 부축했다. 문루아가 귓속말로 나와 매니저들에게 말했다.
'당장 나가요. 빨리!'
* * *
사이먼 벅에게, 온 스태프들의 관심이 쏠린 사이에 우리들은 바로 빌딩을 탈출할 수 있었다. 빌딩 앞에 대기해 놓았던 차를 타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배영웅이 준비해둔 벤츠 500차량으로 우리를 수행했다.
문루아의 매니저는 이번에도 현지인이었다. 짧은 머리에 뿔테 안경을 낀, 그레이 정장 차림의 흑인 여성이었다. 아무래도 스타다 보니 매니저 실장과 '팀'이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3명을 배영웅 한 명이 관리하는 비원더와는 차원이 달랐다.
배영웅은 입을 꾹 다문 상태로 신호를 지키면서 최대한 조심해서 운전했다. 창문도 모두 닫았다. 배영웅은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미국은 한국 저리 갈 정도로 파파라치가 극성인 나라라 절대 얼굴을 외부에 보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운전석에는 배영웅, 조수석에는 내가 앉았다. 문루아와 매니저는 함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문루아가 내게 툭 말했다.
"고마워요. 미리 경고해줘서.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아닙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사이먼 벅이 이상한 수작 부릴 거란 거."
"아… 뭐..."
적당히 뜸 들이면서 핑계를 찾았다. 그러다 배영웅이 내게 말했던 '파파라치'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아! 그러니까 사이먼 벅에 대해 나쁜 소문이 좀 있더라고요. 파파라치 기사들을 좀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오! 보통 그런 인터넷 소문은 대개 거짓말인데 그중에 진주를 찾아내셨네요."
"아하 네네 뭐어. 사이먼 벅을 실제로 보니 저런 짓을 충분히 했을 거 같아서요."
"쓰레기 같은 놈이었어요."
문루아가 '쓰읍' 하고 입을 다셨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숙소에 가자마자 '가글'을 준비해 달라 부탁했다.
“가글은 왜?"
"술을 마시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자기가 마시려던 술에도 이상한 걸 처넣었을지 모르니까. 조심해야죠."
그러고 보니 문루아가 어떻게 상황을 타개한 건지 궁금했다.
"아, 컵을 바꾸신 건가요?"
“네."
"언제요?”
문루아가 싱긋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지으며 자기 턱을 살짝 만졌다.
"아!"
사이먼 벅의 턱을 만졌던 그 순간! 아주 살짝 끈적한 제스쳐를 보여줘서 모두의 시선이 문루아의 손으로 갔던 그 순간에, 문루아가 슬쩍 컵을 바꿔 친 거였다.
"아니, 그게 되나요?"
"저, TYB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입사했어요. 최연소였죠."
"와."
20대가 돼서야, 그것도 오디션으로 어쩌면 특채로 간신히 TYB로 들어온 나와는 완전히 다른 코스였다.
"그러다 보니 춤이랑 노래는 물론이고. 외국어에. 연기에. 별의별 과목을 다 배웠어요. 그중에 마술도 있었어요."
"그 손기술을 쓰신 건가요?"
문루아가 손으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손기술이라니요! 트릭이요 트릭.”
"아하하… 여튼 대단하시네요."
"하아. 하지만 아쉽네요. 대형 팝가수랑 이야기하면 뭔가 새로운 음악 네트워크가 생길 줄 알았는데. 전혀 소득이 없었어요. 인간 불신만 쌓였네요.”
"그러게요.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다짜고짜 자기 매니저 통해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클럽에서요?"
"네."
"뭔가 좀 너무 수상하지 않나요? 일면식도 없는데?"
“뭐 미국이니까 원래 그렇게 시작하나 싶었죠. 생각하면 진짜 음악에 관심 있었으면 녹음실에서 만나자고 했을 거 같네요."
"통화라도 한 번 해보시지…"
"그 사람. 핸드폰이 없다네요."
“전화번호가 없다고요?"
"네.”
"아니, 그러면 생활이 어떻게 되죠?”
“누가 뒤치다꺼리 다 해주는 거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팝스타에 대한 나의 아름다운 상상이 하나하나 박살 나고 있었다.
"형편없네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요. 이제까지 만난 팝 가수 중에는 소탈하고 멋진 분들이 더 많았어요.”
"누가 있었나요?"
"글쎄요? 음… 멜리나가 좀 의외였어요."
“멜리나? 그 버블팝 가수 멜리나요?"
멜리나라고 하면 딱 봐도 '파티 중독자' 컨셉으로 가벼운 댄스 노래를 히트시킨 청소년 타깃 버블팝 가수였다. 매번 남자친구를 바꾸는 걸로 유명했다. 실체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딱 TYB 시카고 지부에 캠핑카가 있어서 그 차 타고 같이 국립공원에 놀러 갔었거든요. 그날은 참 좋았는데."
"헤에 그렇군요…”
"본인이 직접 고기 갈아서 햄버거 만들어 주는 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그런 면이 있었군요."
"연예인 이미지와 실제는 완~전 다른 경우가 많아요. 조심해야 돼요."
“명심하겠습니다."
갑자기 문루아가 살짝 장난기 있는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다들 저 같지 않다구요."
그러더니 문루아가 꺄르르 웃었다. 나도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긴 뭐 연예계 사람들이 다 문루아 선배 같으면 편하긴 하겠지. 앤젤이나… 사이먼 벅, 소인중 같은 광인이 좀 많아서 문제지.'
* * *
대화를 하던 사이에 숙소에 도착했다. 아시아 최고 스타인 문루아는 5성급 호텔에 들어갈 법했는데, 뜻밖에 평범하게 나쁘지 않은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을 잡았다. ‘쓸데없는 지출에 익숙해지면 안 돼요'라는 이유였다.
'내가 그 위치면 바-로 6성 호텔 스위트룸에서 컨시어지 서비스로 펑펑 쓸 거 같은데. 참 배울 점이 많은 선배야.’
내 목표는 세계 최고의 가수였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시장인 미국을 문루아라는 훌륭한 선배와 함께 간 것은 크나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미국의 이면, 허세를 냉철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문루아 옆 방에서, 배영웅과 함께 2인실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먼저 샤워를 끝내고 노트북을 켜서 이런저런 기사를 확인했다. 사이먼 벅 관련 기사는 없었다. 언론을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털썩.
뭔가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배영웅 매니저였다. 하루종일 긴장했는지 샤워를 끝내자마자 쓰러져서 쥐죽은 듯 잠이 들었다.
'뭐 워낙 위험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MP3가 또 미친 듯이 왱알왱알 울었다. 급하게 알람을 확인했다.
[경고! 파파라치가 호텔 주변을 포위했습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머리가 지끈했다. 하지만 살짝 심호흡을 하고, 냉수 한 잔 마시고 생각을 정리해보니 결론은 뻔했다.
소인중이었다.
사이먼 벅은 소인중의 수중에 있는 가수였다. 분명 매니저나 보디가드 등, 사이먼 벅의 주변에 누군가가 소인중에게 문루아와 그의 일행이 왔다 갔다는 이야기를 해줬을 터였다.
그렇다면 분명히 TYB에 악감정을 갖고 있는 소인중은 분명 자기 인맥으로, 기자들에게 연락할 수 있을 터였다.
아마 그는 자기의 '정보망'을 가동해서 문루아와 일행의 위치를 찾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슬쩍 그 위치를 파파라치들에게 흘렸다.
우선 커튼을 쳤다. 혹시나 누군가 나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커튼을 치면서 슬쩍 보아하니, 딱 봐도 수상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쫙 깔려 있었다. 파파라치들이었다.
‘일단 이 호텔 주변. 그리고 공항은 완전히 파파라치가 쫙 깔렸다고 봐야겠군.'
아마 파파라치들은 호텔에도 잠복하고 있을 터였다. 당장 방 호수를 직원들이 흘리진 않겠지만, 방 바깥에 나갔다가 언제 사진을 찍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루아와 권노을, 미국의 호텔에서 사진 찍혀' 이런 기사라도 나왔다간 한참 피곤해질 터였다.
우선, 적으로 가득한 이곳을 탈출해야 했다.
다행히도 내게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