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99화 (99/280)

제99화

"같이요? 미국에?"

같이. 미국. 둘 다 뭔가 너무 충격이었다.

일단 미국. 제주도도 한번 안 가본 내게 미국은 너무 낯선 말이었다. 물론 뮤직비디오 업무를 위해 이탈리아는 며칠 가봤지만, 미국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같이'란 말이 더 충격이었다.

'같이라니! 문루아 선배랑? 대체 무슨?’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스태프랑 같이 가는 거예요!"

"아니 문루아 선배 언제부터 독심술을..."

"얼굴에 다 보이거든요!"

"아..."

바보같이 배시시 웃었다. 문루아 선배가 다행히 얼굴을 풀고 파하하 웃었다.

“사실 미국에 갈 일이 급하게 생겨서요. 미국에 갈 거예요. 긴 일정은 아니고 5일 이내에 돌아올 거에요."

“왕복 하루가 넘는데…”

"필요하면 가야죠.”

“우와~."

이게 월드 스타의 품격인가 싶었다. 제주도도 안 가본 내게는 너무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그래서 곡 작업할 시간이 없어요. 같이 가서 하면 모를까."

"저 근데. 굳이 같이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곡을 메일로 보내 주셔도 될 거 같은데요.”

"이왕 곡 작업을 하려면 같이 이야기도 해보고 그래야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도 좀 들어보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도 알아보고.”

사실 그게 맞긴 했다. 아무리 기술이 편리하게 만든다 해도. 음악 작업도 사람이 하는 작업이었다. 가까이에서 함께 할수록 당연히 나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가도 될까요?"

“왜요?"

“돈도 너무 많이 들고. 무엇보다 제 스태프가..."

"이왕 곡을 쓸 거면 제대로 써야죠. 스태프에게는 제가 이야기해줄게요. 게다가."

문루아가 굉장히 뜬금없는 타이밍에 말을 뚝 끊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게다가?"

“미국에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그게 뭔가요?”

"보면 알아요.“

* * *

문루아는 무려 천채왕 프로듀서에게 직접 연락했다. 나도 겁이 없었지만, 문루아 선배는 한술 더 떴다. 천채왕은 문루아의 전화 한 통으로 바로 티켓을 예약해 주었다.

‘부담 갖지 말고. TYB가 해주는 짧은 음악 유학이라 생각해~. 자세한 건 루아가 알려 줄 거니까~.’

일단 회사 단위로 결정되자 빠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나를 맡기로 했다. 어차피 음반 작업 중에는 딱히 환희와 재호는 매니징할 필요가 없긴 했다. 되려 키미 등 TYB 내부 프로듀서가 더 도움이 되었다. 배영웅 매니저는 빠르게 여권부터 비자, 비행기 티켓까지 모두 준비해줬다.

너무 편해서, 되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래서 연예인이 자기 카드로 편의점에서 물건도 하나 못사는 바보가 되기 쉽구나 싶었다. 그만큼 누군가가 자꾸 챙겨주니까 말이었다.

‘별로 익숙해지고 싶진 않은데. 솔직히 편하기는 하군.'

그런 복잡한 감정과 함께, 미국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한 바에 갔다. 바라고는 하지만 점심시간이라 술을 서빙하지는 않았다. 프라이드 치킨과 칠리콩 요리가 나왔다. 식사하는 장소 옆에서는 블루스 밴드가 라이브 연주 중이었다.

빌딩 숲, 지하철, 적당히 쌀쌀한 기온까지. 겉보기에 시카고는 한국과 매우 닮았다. 하지만 생음악 블루스 바가 한가운데 있다는 점은 서울과 전혀 다른 점이었다.

“뭔가 서울과 비슷한 듯 다르죠?"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문루아가 내게 말했다.

"네. 그러네요. 정말 본격적인 블루스 밴드를 바로 식사하면서 바로 볼 수 있다니."

"그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다르니까요. 도시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

"이거, 진짜 전설적인 뮤지션이 하는 블루스 바에요. 주인은 80대인데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에요. 대단하죠?”

"대단하네요.”

문루아가 밴드가 연주하는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렸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이 미묘한 공기의 차이. 이런 걸 가끔 느끼고 싶어요. 그래서 이메일과 화상통화로 굳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도 가끔은 미국에 오려 해요. 여튼 제가 사랑하는 음악의 본고장이니까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리듬 앤 블루스 음악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겠네요. 공기의 차이라..."

문루아가 빙긋 웃더니 말했다.

“여기까지 굳이 왜 와야 하나 싶었죠?"

"윽.”

사실 그랬다. 곡 컨셉 이야기 좀 하고 나면, 문루아 선배가 딱! 1, 2주 뒤에 파일로 곡을 보내주고, 그걸 내가 확인하고, 통화로 감사를 표한다.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었다. 일반적인 곡 작업이 그랬고 말이었다.

"어차피 노을 군, 한국에서 할 것도 없잖아요? 다른 친구들이 곡 작업 다 하니까?"

"아."

"노을 군은 곡 작업이 끝나고 노래를 부르는 역할이지, 창작자는 아니니까요."

정곡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 번 미국을 와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선생님도 제 말에 동의해서 같이 가보라고 한 거고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사실 긴가민가했다. 미국에 온다고 내가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공기가 다르다는 말이 그 힌트가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흑인음악의 나라 미국에서 숨을 쉬기만 해도… 노래 실력이 는다. 뭐 그런 걸까?'

하긴, 첫 일정부터 남다르긴 했다. 확실히 이 블루스바에서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본격적인 블루스 생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걸로 뭐가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문루아 선배가 추천한 이 바에서 들리는 리듬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선배 말대로였다. 한국에 있다고 한들,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곡 작업까지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요?"

"일단은 첫날은 일정이 꽉 차 있으니까, 내일 오전에 제대로 이야기해 보죠. 만날 사람이 많아서요."

만날 사람이 많다니, 뭔가 멋져 보였다. 글로벌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미국이 처음이었고, 당연히 아는 사람도 배영웅과 문루아, 둘 뿐이었다.

"시카고에 자주 오셨나요?"

"활동을 쉬던 기간에 자주 왔죠.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 쪽 안무가들에게 레슨을 받으려 하고 있어요."

"선배가요? 아직도 안무 레슨을 받으시나요?”

"아직 한참 멀었어요."

문루아는 이미 데뷔 시절에도 춤으로는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배우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오다니, 혀를 내두를 정도의 향상심이었다.

"근데 그럼 저는 뭐 할 게 없겠네요. 제가 안무 연습을 할 수는..."

문루아가 갑자기 무거운 표정을 풀더니 피식 웃었다.

“노을 씨는 춤 안 추죠? 크큭!"

“왜, 왜 웃으시죠?"

"오디션 때 춤췄던 게 생각나서요.”

"윽!”

솔직히 나는… 몸치였다. 나도 이 시대 최고의 댄스 가수가 되고 싶었다. 마이클 잭슨이나 어셔마냥 가창력과 춤을 무대에서 동시에 뽐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체력을 올려도, 춤은 늘지 않았다. mp3도 노래 관련 스탯 외에는 잘 올려주지 않았다.

사실 노래 관련 스탯도 다들 S에 가까워지면서 요지부동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후 문루아는 매니저와 함께 자기 일정을 알려주었다. 오후에 그녀는 안무 교습을 받을 예정이었다. 이후에는 현지 작곡가들과 함께 다음 타이틀곡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었다. 그러고 나면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 일정은요?"

"아 그게 오늘 제일 중요한 일정이에요."

"제일 중요한 일정이요?"

"파티요."

"아니. 선배 의외로 파티광이셨군요… 하긴 댄스 가수시니까 그런 흥도?”

문루아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거.든.요! 비즈니스에요 비즈니스."

"비즈니스요?"

“현지 가수가 한번 보자고 해서요. 가보려고요. 노을 군도 같이 가요."

파티에는 큰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현지 가수라면 한번 보고 싶기는 했다.

"네. 같이 가시죠. 근데 누구인가요? 그 가수."

"사이먼 벅이요."

"사이먼 벅??!"

"왜요?"

"아니! 엄청나게 유명한 가수잖아요!“

* * *

사이먼 벅. 엄청난 유명 록 가수였다. 솔로 록 가수로써 2천년대에 이례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팝록을 주로 했지만 요즘은 전자 음악에도 열심이었다. 나이는 마흔쯤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젊은 층에까지 다양한 계층에게 인기를 얻은 가수였다. 찰랑이는 금발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후 2009년 즈음에 순식간에 인기를 잃고 몰락했지만 말이었다.

"그 가수를 여기서 보다니..."

미국에 오자마자, 이렇게 월드 스타를 가까이에서 보게 되다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문루아 선배를 따라 미국까지 오길 잘했다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배영웅과 함께 클럽에 갈 준비를 했다. 배영웅이 직접 골라준 네이비 아르마니 수트에 갈색 아르마니 티셔츠 차림으로 캐주얼하게 꾸몄다.

"근데 팀장님도 같이 가시나요?"

배영웅은 어째 나보다도 말쑥하게 꾸몄다. 라기보다는, 배영웅은 항상 잘 차려입고 있었다. 매니저는 대부분 편한 복장이라 들었지만, 배영웅 매니저는 전혀 아니었다. 항상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를 쫙 빼입었다. 키도 190으로 말쑥하게 커서 비원더와 함께 가면 본인이 멤버 중 하나로 보일 정도였다.

배영웅이 싱긋 웃더니 말했다.

"같이 가야지요. 당연히."

“당연히요?"

"미국의 클럽이잖아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폭력에 휘말린다거나. 이상한 사진이 찍힌다거나. 매니저로서 당연히 같이 가야죠.”

“헤에… 그렇게 위험한가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렇게 이해해 주세요. 너무 긴장하실 필요까지는 없으니까요.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즐기고 있으면 됩니다. 긴장해야 하는 건 저희들 스태프의 역할이니까.

배영웅이 사람 좋은 초승달 눈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내용은 무시무시했다. 그 언밸런스함 덕에 되려 더 공포감이 느껴졌다.

"조, 조심하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대답이 나왔다.

역시 배영웅은 능력이 있었다.

기분 나쁘지 않게 아티스트가 사생활에서 조심하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었다. 그 분야에서 배영웅은 정말 탁월했다. 적절한 표현으로, 가수가 기분 나쁘지 않게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했다. 연예인 매니저라면 이런 능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특히 주환희처럼 폭탄 같은 놈이라면 더더욱.'

배영웅 매니저가 우리 비원더의 매니저가 되었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싶었다.

그리고 내 이런 예감은 바로 그날 밤 맞다는 사실이 증명이 되었다.

* * *

우리가 간 곳은 시카고 북쪽의 한 빌딩이었다. 빌딩의 한 층이 통째로 클럽이었다.

클럽으로 들어가자 휘황찬란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어디서나 보던 클럽이었다. 클럽은 세계 어디나 모습이 비슷했다.

문루아에게 내가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죠?"

배영웅 매니저가 대신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시면 됩니다."

2층으로 가는 입구였다. 2층은 VIP 라운지였다. 험상궂게 생긴 스킨헤드의 보디가드들이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보디가드들이 우리를 보더니 길을 막았다. 손을 내보였다. VIP 증거를 내라는 표시였다.

"잠시만요.”

문루아가 뭔가 종이를 꺼냈다. 그걸 들여다본 보디가드들이 뭔가를 통신을 통해 중얼중얼 확인했다. 그러더니 우리를 마지못해 보내주었다.

"......"

사실 그들이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저런 동양인 놈이 여긴 왜....'라고 노려보는 느낌이었다.

'압도되면 안 돼요. 우리도 연예인이잖아요?'

문루아가 나직하게 내게 말했다.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쫄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세를 꼿꼿하게 바꿨다.

그랬다. 압도되면 안 됐다. 당당하게 행동해야 했다.

무엇보다 내게는 임무가 있었다. 사이먼 벅에게서 문루아를 지켜야 했다.

그야 지금 사이먼 벅은 멀쩡한 팝스타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3년 후, 사이먼 벅이 상습적으로 여성들에게 몰래 마약을 먹이고 나쁜 짓을 해대는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저 개 같은 놈이 문루아 선배를 초대했다면,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오늘은 그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신 차려야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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