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95화 (95/280)

제95화

배영웅은 최대한 침착하게 일을 처리했다. 직원을 불러서 음료수를 가져가라 했다.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은 곧 방송을 해야 하니까. 일단 가시죠. 앞으로 직접 물건 받지 마시고 모두 저에게 주시고요."

환희가 입에 침을 꿀꺽 삼켰다.

"네네…”

나머지 둘이 나가면서 배영웅이 내게 슬쩍 말했다.

‘이거 뭔가요?’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저도 모릅니다. 다만 뭔가 냄새가 수상해서요.’

배영웅이 슬쩍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배영웅은 아마도 테러임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오늘 새벽에 저 미래를 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었지.’

* * *

몇 시간 전. 새벽에 mp3를 보다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경고 알림이 떴기 때문이었다.

[경고: 주환희 상태 이상.]

상태 이상에는 소화 불량, 성대 타격, 심지어 정신 쇠약까지 온갖 상태 이상이 걸려 있었다. 깜짝 놀라 미래 이유를 살펴보니 본드 테러 때문이었다.

환희는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 썼다. 남이 주는 건 바로 원샷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를 이용해 누군가가 그에게 정체불명의 약을 먹였다. 실제 누가 그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놈인지 밝히면 더 좋았겠지만, 무대 준비와 함께 병행하다 보니 간신히 막기만 했다. 하지만 선방한 셈이었다. 덕분에 일이 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환희는 몸은 물론 정신 건강까지 지킬 수 있었다. 앞으로는 TYB의 경계도 더 강해질 테고 말이었다.

우선 안도하며 무대로 올라갔다.

* * *

무대가 끝났다. 하루에 1번씩은 무대에 섰지만, 오늘은 왠지 더 각별했다. 3인 멤버가 건강하게 사고 없이 무대를 마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만한 일이구나 싶었다.

이제, 오늘의 순위가 남아 있었다. 우리뿐 아니라 모든 가수가 다 무대에 올라와서 인사를 준비했다.

사회자가 마지막 분위기를 띄웠다.

“자! 이제 마지막 순위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요?”

1위 후보는 우리와 잇츠쇼타임, 그리고 문루아였다.

환희가 슬쩍 내게 물었다.

"누가 1위일까요 횽?”

‘살살 귓속말로 해 귓속말로. 입술 손으로 가리고.’

아직은 인터넷이 발전이 덜 됐지만, 그래도 가끔 입 모양이나 소리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보는 광팬이 있었다. 조심해야 했다.

'누가 1위일까요 횽?’

'문루아 선배겠지 뭐. 2위 대결이야.’

문루아는 신곡으로 5주 연속 1위에 도전 중이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기세였다.

2천년대 중반에는 유행의 수명이 길었다. ‘For You Only'는 역사에 기억될 초대형 히트작이었다. 이런 곡이 1위 후보면, 그냥 무조건 1위가 될 운명이었다. 일종의 자연재해처럼 1위는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2위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가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상대는 잇츠쇼타임이었다. 잇츠쇼타임이라면 절대 질 수 없었다.

슬쩍 스코어를 봤다. 잇츠쇼타임은 워낙 열심히 방송에 나가 뮤직비디오 촬영 점수가 압도적이었다. 비원더는 음반 점수가 더 우월했다. 발표가 남은 건 팬들의 문자 투표뿐이었다.

‘제발!'

음료에 독약을 푼 가짜 팬이 아닌, 진짜 팬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살짝 팬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쳐다봤다. 잇츠쇼타임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았다.

"점수를… 공개합니다!!!"

점수가 나오자마자 우리는 신음을 냈다.

문루아 총 점수 3300점, 잇츠쇼타임 2813점 그리고 비원더는…. 2854점이었다.

시청자 투표로 간신히 턱걸이로 잇츠쇼타임을 이겼다. 게다가 1위는 우리 동료였다. 우리는 1위 한 것처럼 서로 얼싸안고 문루아를 축하했다.

옆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잇츠쇼타임을 힐끗 보기도 했다.

환희가 싱글벙글 문루아에게 말했다.

“추카해여 선배~"

문루아가 피식 웃었다.

"고마워요.”

문루아는 정말 침착했다. 대상 가수의 품격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나 같으면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하면 너무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릴 텐데 말이었다.

문루아는 침착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TYB 여러분. 귀여운 후배 비원더. 매니저님. 실장님. 천채왕 선생님, 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 팬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문루아는 침착하게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감사 표시를 해야 할 사람을 모두 말했다.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청해 듣겠습니다. For You Only!!!”

* * *

무대가 끝나고 평온한 분위기로 차에 탔다. 다들 잇츠쇼타임을 이겼다는 사실에 만족한 듯했다.

환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2위가 우리 최고 기록이져?”

내가 대답했다.

“그지? 야! 2위도 잘한 거야."

재호가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아니래? 나는 잇츠쇼타임 그 녀석들 지상파에서 이긴 게 우승보다 좋다? 지상파에 지들만 나온다고 거들먹거리는 게 꼴 보기 싫었다구.”

말은 안 했지만 잇츠쇼타임이 엄청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재호 너도 ‘녀석' 같은 말 쓸 줄 아는구나?"

"...바보냐."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첫 싱글 가요 프로 2위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과였다. 다만 왠지 이제 이번 활동은 정점을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운전하며 말했다.

“곧 선생님이 전화 주신다고 했습니다. 노을 아티스트님 전화로 거신다네요.”

환희가 되물었다.

"오? 선생님이요?”

“2위는 정말 대단한 성과니까요. 전화할 만하죠."

내가 슬쩍 물었다.

“사실 TYB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설마요! TYB는 의외로 데뷔곡은 매니악해서 순위가 좋지 않습니다. 데뷔부터 1위 했던 그룹은 '천신군단' 정도에요."

"하지만 후속곡은 잘 됐죠?"

"보통 그렇죠.”

후속곡은 꼭 잘돼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비원더는 구두계약만 하고, 아직 정식 계약 갱신은 후속곡 활동 이후에 할 예정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천채왕의 전화가 울렸다.

“축하한다! 데뷔곡 2위라니. 게다가 대진 상대가 나빴던 거지. 루아만 아니었으면 무난하게 1위였어."

"하하."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천채왕이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

"내일 회의 잡았어. 앞으로 활동 생각해보자."

재호가 되물었다.

“앞으로 활동이요?"

“이 정도면 이번 곡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은 다 했으니까.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좋아. 다음 곡 활동 준비를 슬슬 해보자.”

“알겠습니다.”

“내일은 8시까지 와. 아침 준비해놓을게."

전화 통화가 끝났다. 환희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물었다.

“뭔가 씁쓸하냐?"

“뭔가 시원섭섭하네여 횽. 워낙 이 곡으로 오래 활동 해와서여."

“나두 사실 좀 그래. 정이 들었거덩~. 매일같이 팬분들 만나구.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것도 즐거웠구.”

상당히 고생스러웠지만, 지나고 나면 다들 추억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재호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두 번째 타이틀곡은 가사랑 편곡 다 나왔어?”

환희랑 재호가 동시에 대답했다.

"아니?”

“아뇨?”

“저런.”

뭔가, 이번 준비도 상당히 고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 * *

다음날은 조금 일찍 일어났다. 매일 하는 트레이닝을 미리 해두기 위해서였다.

TYB로 온 뒤에 이런 점이 좋았다. 이전에 mp3와 함께 단둘이 했던 루틴을 이제는 회사의 지원을 받아 진행할 수 있었다.

달리기만 하던 내가 이제는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하고, 간단한 식사 후에 헬스클럽으로 직행했다. TYB가 끊어준 헬스클럽이었다.

운동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내 방식이 맞았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헬스트레이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거 뭐에요? 완전히 노래를 하기 위해 태어난 몸인데요?]

본인 10년 경력에, 이런 몸은 처음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뚱뚱할 때는 도저히 가수를 해먹을 수 없던 몸인 거 같던 내 몸뚱어리가 알고 보니 살만 빼면 가수에 최적화된 몸이었다.

우선 폐활량이 엄청났다. 나는 mp3 덕인 줄로만 알았더니, 원래 내가 폐활량을 타고났다고 했다. 덕분에 노래를 부를 때 숨이 모자라서 헥헥거리는 적이 없었다. 달리면서 부르는 노래도 금방 적응했다. 알고 보니 이게 거의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내 몸에도 근육이 딱 노래에 필요한 부분들만 강력했다. 숨을 쉬고, 이를 유지하는 부분에 근육이 잘 잡혀 있어서 천성적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거라고 트레이너는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가수에게 몸은 자본이었다. 몸을 단련시키는 방향이 필요했다.

무엇을 목표로 트레이닝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내 답은 간단했다.

가장 오랜 기간 가장 건강하게 노래할 수 있는 몸이면 충분했다.

몸으로 보면 우리 팀에는 환희가 있었다. 마치 액션 영화 속 특수부대처럼 딱 보기 좋은 식스팩의 근육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잔근육 가득한 몸의 재호는 환희보다도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외모신동 원재호'는 외모만으로도 방송 제의가 들어 올 정도였다.

'재호는 미안해했지만, 그런 개인 활동은 오히려 환영이지. 개인 활동을 병행하면 팀 전체의 활기가 생기니까.'

게다가, 환희와 재호가 개인적으로 인기가 생기는 점은 나에게도 좋았다. 노래를 부를 때는 메인보컬인 내 분량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TYB에서는 그야말로 돋보이는 부분은 죄다 내게 주었다. 가장 성량이 크고 음역대도 넓으며 개성이 강한 내가 주요 부분을 도맡아 했다.

팀에서 한 명에게만 관심이 많으면 반드시 문제가 터지는 법이다. 그래서 되려 노래 외에 다른 부분에서는 환희와 재호가 활약을 많이 해주기를 바랐다. TYB의 메인보컬로써, 목소리로 기억되는 가수가 되면 나는 그걸로 족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다비드상처럼 준수한 몸의 재호나 환희보다는 평범하게, 적정한 수준의 운동을 했다. 보여주기 위한 몸보다는 실전에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실 있는 근육 위주의 트레이닝을 했다.

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했다. 슬쩍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흑발 머릿밑에 짙은 눈썹. 오똑한 코. 작고 여성스러운 입술. 과하지 않지만 확실하게 형태가 잡힌 근육까지, 제법 가수다워 보였다. 100㎏이 넘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가볍게 몸을 씻고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평소에는 매일 발성과 스케일 연습으로 음감과 목소리를 갈고 닦았다. 매일 매일 칼을 갈듯 나의 음감과 목소리를 갈다 보니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감각으로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니 즐거웠다. 스탯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게 느껴지는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아쉽게도 오늘은 발성 연습을 마음껏 하지는 못했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소집한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미 배영웅 매니저와 재호, 환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희가 핀잔을 줬다.

"횽 왜 이리 늦어써여? 늦잠 잤어여? 저처럼 배 실장님한테 깨워서 데려달라 하지 그랬어요!"

재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뭔 소리야. 노을이 매일 나와서 헬스 한다구."

"횽은 그걸 어떻게 알아여?"

"나도 매일 하거든."

"매일여?"

"그래. 여기 새벽 6시면 열어. 너도 해봐.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길어."

"으 저는 그건 못하게써여. 새벽에 더 작사가 잘된단 말예여."

"그거 다 핑계야. 정신과 몸이 건강하면 좋은 게 나오는 거지. 새벽에 더 잘 나오고 그런 게 어딨냐?"

환희와 재호의 티키타카를 구경하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회의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생각해봤다.

다음 활동은 이제 대중적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천채왕 프로듀서가 말했었다. 아마 제대로 힘준 활동일 터였다.

아마도 또 싱글 앨범을 발매할 테고, 이를 홍보하려면 '게릴라 콘서트' 같은 유명 예능에 나가거나 뮤직비디오를 지상파와 케이블에 폭격하는 등 공격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 * *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천채왕에게 물었다. 잘못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정규 앨범을… 내자고요?"

'이제까지 녹음한 곡이 두 곡밖에 없는 신인가수에게 갑자기 정규 앨범을 내자니?‘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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