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85화 (85/280)

제85화

뮤직비디오 촬영 이후에는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되었다. 마스터링 등, 음원은 순식간에 작업을 완료했다. 데뷔 싱글이니만큼 1곡만 준비하면 되니 준비도 빨랐다. 후속곡 작업은 아직 멀었지만, 데뷔는 예정대로 1월 초에 바로 진행할 수 있어 보였다.

그리고 또 놀라운 소식이 올해 마지막 날에 있었다.

“올해 가요 대상. 영예의 대상 수상자는 바로… 문루아 씨입니다!!!”

TV로 동생과 함께 가요대상을 보다 놀라서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동생이 내게 말했다.

"오빠 봤어? 대박!"

“그러게 진짜 놀랠 노자네.”

"언니한테 축하 문자 보내야겠다.”

연말 가요대상은 놀랍게도 문루아에게 돌아갔다. 슈퍼스타 T 끝나자마자 낸 앨범 'For You Only'가 초대박을 내버렸다. 심지어 마지막 1주를 우리와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썼음에도 인기는 끄떡없었다.

“...나도 축하한다고 같이 말해 줘.”

뭔가, 내가 오디션에서 우승을 하긴 했지만 문루아 선배가 다시 멀어진 느낌이었다. 저 멀리 이미 다음 단계로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문루아는 그 전에 이미 아시아 최고 가수였다는 경력이 있었다. 게다가 슈퍼스타 T라는, 최대 시청률의 오디션 프로에 참여해 끝까지 갔다. 문루아는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며 준우승해서 관심도를 크게 높여놨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미리 소속사와 앨범을 준비해둔 채로 오디션에 참여했다. 덕분에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인기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내 차례야. 우선은 한국 최고. 그다음은 아시아. 그리고… 월드 스타까지.'

그래도 오히려 얼마 전까지도 함께 음악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던 사람의 성공을 보니 에너지가 솟았다.

그렇게 문루아를 축하하고, 우리도 그녀의 길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하며 연말을 마무리했다.

* * *

새해가 되자마자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서둘러서 비원더 3인이 모여 배영웅과 함께 회사로 갔다. 회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배영웅 매니저에게 재호가 물었다.

"천채왕 선생님은?"

배영웅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문루아 아티스트와 급한 용무로 구룡도에 가셨습니다. 오늘 회의에는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으로 참여하실 겁니다."

배영웅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비원더 방송 스케쥴이 전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데뷔가 곧 앞이었다. 그런데 방송이 잡히지 않는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환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TYB잖아요? 천신군단 데뷔 때는 Y 맨이니, 동거 산장이니 예능이란 예능은 다 융단 폭격 해썼는데…”

TYB는 10년간 한국 기획사 중 톱이었다. 당연히 엄청난 섭외력이 있었다. 그런 TYB가 제작하는 신인이 방송이 잡히지 않는다니, 뭔가 내 상식에도 맞지 않아 보였다.

어딘가에서 천채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면목이 없다.”

천채왕이 어느새 배영웅이 접속한 컴퓨터 화면에 나왔다. 나도 모르게 내가 우선 반갑게 인사했다.

“선생님!"

“이게… 뮤직넷이 문제인 모양이다.”

'역시 그랬군.'

2천년대 중반만 해도 지상파의 권위는 압도적이었다. 케이블 방송국은 지상파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그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이 바로 '슈퍼스타' 시리즈였다. 그리고 슈퍼스타 T는 그 정점이었다. 담당 제작진이 모두 교체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되려 압도적인 시청률과 관심도를 얻었다. 생각해보면, 그 오디션의 결과로 만들어진 팀, 비원더는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아시아 최고 스타였던 문루아와 달리, 비원더는 암묵적인 '지상파 방송 불가' 카르텔의 대상이 된 모양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재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어쩌죠?"

화면 속의 천채왕이 대답했다.

“아~ 하필 내가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겨서. 내가 한국 가면 바로 어떻게든 해볼게."

내가 되물었다.

"어떻게든 이요?"

"뭐 안되면 전쟁이라도 불사해야지."

전쟁이라는 건, 기획사 소속 가수를 통해 지상파를 보이콧하겠다는 뜻이었다. 지상파 방송국의 권력이 절대적인 2006년에,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싱글 곡 활동 둘밖에 계약이 안 되어있는 외부 게스트에 가까운 가수에게는 상당히 큰 투자였다.

내가 답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저희는 게스트인데요."

“아아 그렇게 말하지 마. 계약 기간 동안은 니들도 우리 회사 가수야. 게다가, 이건 우리 회사의 문제기도 해. 천하의 천채왕이 얼마나 얕보였으면, 지상파가 보이콧을 하냐?"

배영웅 매니저가 대답했다.

“저도 처음 보는 일이긴 합니다. 오디션 참여가 처음이긴 하지만요."

천채왕이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누군가가 뒤에 있나?"

‘설마? 소인중?’

뭔가 의심이 갔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지금 그런 말을 한들, 딱히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여러 각도로 회의가 이어졌다. 우선 음반 활동은 무조건 시작할 것.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것 뮤직넷에 지원을 더 크게 받아서 뮤직넷에 방송 융단 폭격으로 승부해보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회의가 대충 정리되자 천채왕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래 오늘 할 이야기는 이 정도네. 더 물어보고 싶은 거 있니?”

내게는 질문이 있었다.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저희에게 이런 내용을 왜 알려주신 건가요?”

천채왕이 되물었다.

"무슨 뜻이야?"

"사실 이런 건… 매니저분만 알면 되는 거 같은데. 신인인 저희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시는 게 의외라서요."

“야 당연하지. 이렇게 사정을 말해주지 않으면 니들이 TYB가 지상파 방송 안 잡아주는 거 아닌가 생각할 거 아냐. 전혀 아닌데.”

"아 오해를 막기 위해서군요.”

“니들을 꼭 영입하고 싶기도 하고. 이건 우리 자존심이기도 해. 어떻게든 해보자 알았지!"

"넵!”

천채왕에 대한 신용이 조금 더 올랐다.

재호가 한 마디 더 질문을 보탰다.

"저희는 더 준비할 거 없을까요?"

천채왕이 대답하며 눈동자가 커졌다. 뭔가 의외의 질문인 모양이었다.

"너희들이?"

"네. 뭐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구. 그래서.”

"지금까지 다들 너무 잘해줬어. 왜, 뭐가 부족한 거 같아?”

“뭔가 벽에 부딪친 느낌입니다."

천채왕은 한 3초 정도 고민하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너무 노력해서 그래. 다들. 첫 앨범 작업하고 그러다 보니 너무 음악만 했을 거야. 우리 스태프랑만 있었을 거고."

사실이었다. 게다가 소인중과의 식사 이후에 매니저가 스케쥴을 더욱 타이트하게 관리하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가끔은 음악 하지 않는 친구랑도 어울리고 그래. 음악과 관련 없는 책이나 영화 같은 거도 보고. 그게 길게는 도움이 돼. 음악만 해서는 음악 잘할 수 없어. 기능에만 집중하면 기능에 문제가 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천채왕의 말이 제대로 우리 상태를 꿰뚫고 있었다. 정말 우리는 최근에는 음악 작업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천채왕이 그런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었다. 재호는 편곡, 환희는 작사 작곡, 나는 보컬을 갈고 닦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그 분야에 집중하지 말고, 다른 일을 조금씩 하면서 알아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뭔가 재호는 석연치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약간 막막했다. 노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래 말고 다른 것을 좀 하라는 말이, 썩 와닿지는 않았다.

‘누군가, 좀 이런 거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을까?'

그러고 보니,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 * *

회의가 끝나고,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노을이 오랜만이다?

오창선 선배 목소리였다.

"선배님 잘 지내시죠? 결혼식 준비는 잘 되세요?"

-당연하지. 니 덕분이야. 야 축가는 노을이 너다. 알지?

"아 그거는 매니저에게 한번 상담을..."

-짜아식! 연예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 넌 무조건이야. 알았어?

오창선의 목소리는 밝아 보였다. 오창선과는 슈퍼스타 T에서 인연이 있었다. 오디션 듀엣으로 만나서, 어쩌다 얽혀서 오창선이 자신의 숨겨진 여자친구 윤은영과 교제를 인정할 수 있게 도왔다. 덕분에 오창선과 관계가 좀 더 특별해졌다.

게다가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가창력 보컬이기도 했다. 지금 내가 고민을 상담하기에 적격이었다.

“선배 하나 여쭤볼 게 있습니다."

-뭔데?

“노래를 더 잘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푸훗'하는 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렸다. 콜록콜록하는 기침 소리도 들었다. 사레라도 들린 모양이었다. 이윽고 오창선이 말했다.

-왜에~?

"제 특기가 노래니까요. 노래 실력을 늘려야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야 솔직히 노을이 니는 노래 실력으로는 아예 흠이 없어. 어이없을 정도야. 세계적으로도 니 나이 때 니 정도 노래하는 애 거의 없을걸?

"그래도 뭔가 좀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오창선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

-노래 기술에 집중하면 안 돼. 이미 너는 그 수준은 넘었어.

"그럼 어떤...?"

-음악도 예술이잖아. 예술성을 올려야지. 너는 그 수밖에 없어.

아무래도 이게 S급에서 노래 실력 랭크를 올릴 수 있는 비결인 모양이었다. 이미 mp3의 노래 실력 연관 스탯은 미동이 없었다. 최근에는 외국어 스탯 외에는 다 완성 단계에 다다랐는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오창선은 나보다 더 높은, S+ 랭크의 노래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보컬리스트니 그 정도는 될 법했다. 그런 그의 비결이 뭔지 드디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예술성을 어떻게 올릴까요?”

오창선이 내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런 방법이…!'

너무 뜻밖의 방법이었다. 바로 오늘 밤부터 시도해봐야겠다 싶었다.

* * *

1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에, 비원더의 데뷔 무대가 확정되었다. 뮤직넷은 이미 약속했던 리얼리티 다큐와 음악 방송은 물론, 토크쇼 등 비원더만을 위한 각종 홍보를 약속했다.

천채왕 프로듀서는 귀국해서 지상파와 담판을 짓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 소득이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데뷔는 뮤직넷의 음악 프로, '음악세상'으로 확정했다.

데뷔곡 '남녀본색'의 첫 무대를 여기서 선보일 예정이었다. 비원더 멤버 셋 모두 이탈리아풍 양복을 입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그 느낌 그대로였다.

환희가 무겁게 말했다.

"저희 다른 음방은 없는 거죠…”

재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지?"

"그럼 이거 진짜 잘돼야 하는 거잖아요 재호횽."

“그지?”

"진짜 나 여기서 틀리면 안 되는데…”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구! 그럴 기운 있으면 음정 연습이나 해. 절대 틀리면 안 돼."

“알게써요 횽..."

재호도 환희도 뭔가 좀 날이 서 있었다. 나도 잠자코 둘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실 나도 잡생각이 많았다.

하필, 대기실로 가는 길에 그 녀석을 봤었다. 제작자 소인중이었다. 그는 내게 썩은 미소를 날렸었다. 마치 '너 따위는 이제 관심 없어' 뭐 그런 느낌의 미소였다.

'그 녀석이 여길 왜 왔지? 설마 뮤직넷에 우리 보러 온 건가? 그럴 리는 없어. 그럼 무슨 일이지?'

머리가 아파왔다.

그때였다. 방송 무대 쪽에서 엄청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빨리 무대 모니터 화면으로 갔다.

“저 녀석은...!”

그곳에는 깜짝 놀랄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야 납득이 됐다.

'저것 때문에 소인중이 뮤직넷에 왔었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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