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노래가 끝났다.
슬쩍 주변을 봤다.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아서 한 큐에 다 불러 버렸다.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괜찮으신가요?”
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5초 정도 정적이 흐르고는 베이비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오세요.”
‘나오라고? 딱 한 번 불렀는데?’
일단 나오라고 하니 나왔다. 나오니 뭔가 다들 멍한 표정이었다. 키미 프로듀서는 손수건으로 눈을 닦고 있었다.
내가 모두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키미 프로듀서는 묵묵부답이었다. 베이비 선배가 말했다.
“이제 가셔도 돼요.”
“네?”
“노을 군은 녹음 끝났어요. 가시면 됩니다.”
“이거면 되나요?”
베이비 선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좋았어요. 키미 프로듀서는 살짝 울었어요.”
키미 프로듀서가 고함을 쳤다.
“선배!”
베이비 선배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뭐 어때요. 음악 하는 사람이 음악에 감동받아 우는 게 뭐 어때서요.”
“하하.”
베이비 선배가 콕 집어 재호에게 말했다.
“재호 군!”
재호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넵!”
“재호 군 코러스는 녹음 완료했어요. 확인해보니 건드릴 곳이 없네요..”
키미 프로듀서가 살짝 거들었다.
“오히려 제가 녹음 노하우를 배우고 싶을 정도였어요.”
재호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베이비가 재빨리 말했다.
“그런데 솔로 파트는… 아무래도 중저음이다 보니 오히려 어려운 거 같아요. 감정을 터트리는 부분이 아니라 쌓는 부분이라 임팩트를 주기 어려운데. 그렇다고 지금처럼 두면 너무 재호군이 묻힐 거 같아요. 그럴 순 없잖습니까? 내일 재녹음 하고 싶은데 괜찮아요?”
“네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재호가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하자 키미 프로듀서가 툭 내뱉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 오히려 지나치게 노력해서 문제 같은데. 쉬어요 그냥.”
“네넵.”
재호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소파에 풀썩 앉았다. 아무래도 완벽주의자이다 보니 자기만 재녹음하는 부분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사실 대부분이 환희가 너무 오래 녹음해서이지만.’
생각해보면 나 외에는 모두 엄청나게 세세한 디렉이 들어갔다.
새삼 TYB의 녹음이 빡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멤버가 녹음으로 고생하는 이상, 뭔가 멤버들을 위해 나는 다른 걸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날 밤.
키미 프로듀서가 한참 녹음물을 듣더니 입을 열었다.
“끝났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베이비 선배가 박수를 치며 우리에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모두들 정말 수고했어요~~ 데뷔곡이 이 정도면 역대급으로 빨리 끝난 거죠.”
키미 프로듀서가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짧긴 했죠.”
“그래요. 대단한 거예요 모두들! 재호 군이 좀 오래 걸렸는데, 녹음 초보가 이 정도면 대단한 거예요. 한 번에 녹음을 끝낸 노을 군이 비정상인 거죠.”
키미 프로듀서가 덧붙였다.
“노을 군은 웬만한 악기 연주보다 음이 정확했어요. 감정도 완벽해서 뭘 할 게 없었네요. 그런 신인은 처음이에요.”
내가 최대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재호는 녹초가 되어 소파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내가 준비한 뜨거운 차와 간식을 건넸다. 재호가 좋아하는 하몽과 레몬이었다.
재호가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먹었다.
녹음실에 같이 있어 준다. 그게 내가 멤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키미 프로듀서와 베이비 선배에게 슬쩍 물었다.
“두 분께 여쭤볼 게 있습니다.”
베이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뭔가요 노을 군?”
“TYB에서 활동하면 뭐가 좋나요?”
키미 프로듀서는 눈동자가 두 배로 커졌다. 베이비 선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그런 건 왜 물어보십니까?”
“저희가 두 곡 활동 끝내면, TYB와 계속 가거나 다른 기획사를 알아봐야 합니다. 계약으로 묶인 아이돌과는 다른데요. 그래서 저희를 엄청 편하게 대해 주실 줄 알았는데 녹음이 엄청 혹독하더라고요.”
키미 프로듀서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싫어요?
내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아닙니다! 이만큼 치밀하게 하니까 곡도 좋을 거라 믿습니다. 다만 그래서, 저나 다른 멤버들이 TYB에 오면 이런 게 좋다! 라고 느낄 포인트가 뭐가 있을까 싶어서요. 특히 전속 작곡가이신 키미 님이나, 평생 TYB에서 활동하신 베이비 선배라면 좋은 대답이 있을 거 같아서요.”
베이비가 대답했다.
“그것도 그렇군요. 선생님이랑 저는 또 입장이 다르지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더니 베이비 선배가 연필을 꺼내더니 손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말을 시작했다.
“아마, 이제부터 느끼게 될 거에요. TYB의 위력을. 그건 ‘음악만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이에요.”
내가 되물었다.
“음악만 생각하게 해준다…”
“연예계는 정말 거칠어요. 별의별 일이 다 있어요. 매니저가 매번 바뀌기도 하고. 꼭 공평하게 멤버들이 음악이 배분되지도 않고. 온갖 음악 외적인 일들이 일어나요. 신인에게 투자하기도 어렵구요.”
뼈저리게 느꼈던 부분이었다. 이전 생에서, 누구도 나에게 투자해주지 않았으니까.
베이비 선배가 말을 이었다.
“TYB는 오랜 기간 방송사와 팬덤에게 얻은 신뢰가 있어요. 그래서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죠. 사실 저는 어쩌면 온실 속의 화초에요. 선생님의 보호 속에서만 살아왔으니까요.”
내가 재질문했다.
“보호라고 하시면?”
사실 대충 짐작 가는 건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굳이 물어봐야 했다.
베이비 선배가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었다.
“조직 폭력배라던가… 스폰서 브로커라던가. 질 나쁜 사람들이 잔뜩 있었죠.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TYB만 그런 건 아니고 다른 기획사들도. 가수들이 직접 만든 기획사들이 90년대에 생겨났어요. 그 사람들이 가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웠죠. 그 결과 지금은 그래도 가요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아직 멀었지만요.”
역시나 예상대로 지금 소인중이 함께 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족속들 이야기였다.
재호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가수를 하다 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요?”
베이비 선배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을까요? 저에게 접근했던 사업가가 나중에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고 그런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저야 TYB에서 크로스 체크를 해줘서 아직까지 다행히도 큰 실수는 없었지만요. 외줄 타기 하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여자 연예인에게 도덕적 논란은 치명적이기도 하니까요.”
재호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재호라면 듣기 싫은 말이기는 했다. 재호는 논란이 싫어서 연애도 절대 사절인 녀석이었다. 옷도 매일같이 세탁하는 녀석이니 논란이라면 질색일 만 했다.
재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사양하고 싶네요. 저는 음악만 하구 싶어요.”
환희는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이번 베이비 선배의 말로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 * *
오늘 자 녹음이 끝나고 나는 일부러 나를 마지막으로 내려 달라고 슬쩍 배영웅 매니저에게 귀띔했다. 그리고는 다른 멤버들을 집으로 데려다줄 때까지 기다렸다.
재호를 데려다주고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슬쩍 물었다.
“무슨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네?”
“재호 아트스트님과 노을 아티스트님은 같은 동네라, 누구 집에 먼저 가도 큰 차이가 없는데. 굳이 재호 아티스트님을 먼저 내려 달라는 건 무슨 뜻이 있는 거 같아서요. 아니신가요?”
말하면서 배영웅 매니저가 눈을 슬쩍 떴다. 항상 실눈을 하고 다녀서 조금만 눈을 떠도 살짝 무서웠다.
“사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말하기 전 살짝 심호흡을 했다. 잠시 뜸을 들였다. 말을 멈추니 주변 상황이 보였다. 조금씩 바깥에 내리는 눈. 배영웅 매니저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카마시 워싱턴의 재즈 트럼펫 소리. 그리고 그보다 더 빠르게 뛰는 내 심장 소리까지 말이다.
떨리는 이유가 있었다. 이 말을 한 다음부터는 배영웅 매니저가 우릴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질 터였다. 그래도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얼마 전에 슈퍼스타 T를 하면서 알게 된 분과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거기서… 소인중 님을 만났습니다.”
배영웅 매니저 눈이 세 배로 커졌다.
“그러셨.... 군... 요.”
최대한 태연한 문장을 내뱉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목소리는 매우 떨렸다.
“아무래도 제게 계약 같은 걸 말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부담스러워서 재빠르게 빠져나왔어요. TYB와 일하는 동안 다른 회사와 계약 이야기를 하는 건 상도가 아닌 것 같기도 했고요.”
“감사합니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저는 TYB 직원입니다. 사 측 입장을 대변하자면… 이제는 점심시간도 제가 체크 해야겠네요. 저녁 술자리만 제가 마크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비원더. 인기 좋으시네요. 앞으로 제가 좀 더 면밀하게 확인할 것 같습니다. 괜찮으세요?”
“그렇게 요청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린 겁니다.”
사실 나는 이미 마음이 TYB로 기운 상태였다. 이전 생에서 이미 미래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소인중은 몇 년 가지 못해 몰락했다. 그에 비해, TYB는 2020년까지 최정상 기획사로 유지했다. 그런 회사는 몇 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내가 잡아야 할 동아줄은 TYB였다.
아마 소인중은 집요하게 나는 물론, 다른 멤버들까지 꼬시려 별의별 작전을 쓸 터였다. 나는 흔들리지 않겠지만. 특히 TYB에 대해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는 환희가 불안했다. 그 녀석이 흔들리기 전에, TYB에 말해서 아예 회사가 소인중을 막아주기를 바랬다.
비원더가 TYB에 남는 게 낫겠다 생각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배영웅 매니저가 되물었다.
“왜요? 더 많은 기획사를 만나면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사 측이지만. 노을 아티스트 입장에서는요.”
“저는 TYB를 믿습니다. 다른 곳에는 큰 관심 없어요.”
“노을 아티스트께서는 다른 기획사 가 보신 적 없지 않나요? 어떻게 여기를 이렇게 믿으시죠?”
‘그야 미래를 봤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이왕이면 배영웅 매니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방식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영웅 님 같은 매니저가 있는 기획사라면 믿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배영웅 매니저가 피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나를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저는 어떤 매니저인가요 권노을 아티스트님?”
“외국어에 능통하고. 호신술도 완벽하죠. 거의 보디가드 급이에요. 거기다가 카마시 워싱턴 같은 최신 재즈 음악을 들으시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요. 이런 매니저가 흔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 배영웅 매니저에게는 감탄했다. 여전히 내게 마음을 여는 느낌은 없었다. 항상 가면을 쓰고 나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일 적인 관계라는 느낌이라 되려 편하기도 했다.
그런 면을 제외하면 배영웅 매니저는 매우 훌륭한 매니저였다. 일정을 철저하게 지켜줬고, 너무 과하게 내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았다. 그 외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매니저로서의 능력은 모두 최상급이었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정말 비원더를 신경 쓰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때마침 집에 도착했다.
배영웅 매니저가 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티스트님. 솔직히… 연예인에게 감동 받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TV에 나온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이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렇겠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연예계는 겉과 속이 다른 놈들 투성이였다. 이전 생에서 나를 속이고 배신했던 수많은 놈들이 떠올랐다. 배영웅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해주신 말씀은 좀 감동했습니다. 당분간 노을 아티스트를 제가 못 지켜준다는 게 아쉬운 정도네요.”
‘나를 못 지켜준다고?’
“왜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