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유흥의 제왕. 그게 전부였다.
포장은 좋았다. 소인중은 전 세계를 누비는 파티 플래너로서 온갖 파티를 주도했다. 전 세계의 정재계 거물과 셀럽들이 모였다. 겉보기에는 정말 네트워킹에 강한 사업가 느낌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현상 외에 이면이 있었다. 그 일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이면의 작은 뒤틀림이,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차이를 낳았다.
소중인의 파티는 항상 선을 넘었다. 그것이 로비든, 마약이든, 성을 거래하는 행위든, 무엇이든 말이다. 그런 선을 넘는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끼리 엄청난 네트워크를 쌓았다. 그렇게 얻은 네트워크로 만든 사업체가 소인중의 실체였다.
모래로 만든 성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국내, 해외 사업가들이 하나하나 몰락해갔다. 그러다 결국 그도 덜미를 잡혔다. 외국에서 범죄자로 체포된 그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 했다. 모든 것을 잃은 후 소인중은 미국에서 거지로 살다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지금은 그의 그런 이면을 대부분 몰랐다. 겉보기에 그는 그저 멀쩡하게 유능한 사업가였다. 아마 엔터 업계에서는 한국어 사용자 중 세계 최고라고 봐도 무방했다.
미래에서 온, 나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 방법이 없었다.
짐짓 모르는 척 박찬용 드러머에게 대답했다.
“잘 모릅니다. 그냥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을 제작하셨다는 건 압니다. 한국 가수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이나 구룡도에서.”
“맞네. 정말 엄청난 실적을 올렸지. 전 세계의 거부들을 스폰서로 두고 있고 말이야. 그런데 소문이 안 좋네.”
“안 좋다면 어떤?”
박찬용 드러머가 주변을 슬쩍 돌아봤다. 주변에 소인중이나 그의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마약이나… 직업여성이나… 조직 폭력배나… 그런 것들에 연루되어 있다는 말이 많네.”
“오호…”
일부러 맞장구를 치면서 박찬용 드러머의 표정을 살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듯했다.
소인중은 음악계의 거물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아직 데뷔도 못 한 신출내기였다. 나에게 소인중에 대한 이토록 예민한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 이미 박찬용 드러머를 믿을 수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이미 그전에도 오디션을 보면서 박찬용 드러머와 신뢰를 쌓았었다. 이제는 더더욱 그를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찬용 드러머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뭐. 도덕적인 심판을 하겠다는 건 아닐세. 내가 드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업소에서 일하는 게 유일하게 밥벌이하는 방법이었네. 그중에는 조직 폭력배가 엮여있던 곳도 있었고. 나도 순결한 사람은 아닌 셈일세.”
박찬용 드러머에 말에는 오만함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의 겸손함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말씀을 하시는 거군요.”
“아무리 그래도 정도란 게 있는 걸세. 나는 사업 같은 건 모르네. 유흥도 관심 없지. 나한테까지 이런 소문이 들리는 경우는 몇 없네. 그리고 그럴 때는 대번에 문제가 됐지.”
박찬용 드러머는 정확하게 소인중의 실체를 알지는 못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미래를 몰랐다.
대신 그에게는 과거의 패턴, 데이터가 있었다. 경험이 자연스럽게 숙성시킨 본인의 직관을 통해서 소인중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조금 미리 느낀 셈이었다. 그리고 그걸 내게 알려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내 미래에 대한 지식을 조금 더 명분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었다. 선배의 조언을 따랐다고 이야기하면 됐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음? 뭐가 말인가?”
“그 긴 경력으로 다듬으신 직감인데. 틀릴 리가 없다 생각합니다. 저, 그럼 지금 가겠습니다.”
“지금 간단 말인가?”
“선배님 말씀을 믿으니까요. 괜히 더 엮여봤자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분에게는 매니저가 데려갔다고 적당히 말씀 주세요!”
“이, 이보게!”
“담에 제가 밥 사겠습니다 선배님!”
“허 참! 알겠네!”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박찬용은 내가 자신의 말을 100% 믿는 모습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사이 나는 미리 봐둔 후문으로 슬쩍 나갔다. 나가면서 슬쩍 보니 밴드 마스터와 소인중이 담배를 다 태우고 건물로 다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찬용 선배 덕에, 잘 도망쳤네.’
하지만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저렇게 크게 돈을 번 사람이 그냥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더 질척댈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 * *
TYB 양재동 녹음실. 오늘도 재호가 나를 맞아줬다.
“늦었다구~!”
...손목시계와 함께 말이다.
“아 좀 봐줘. 대충 맞았잖아.”
“약속 시각까지 8분밖에 안 남았어! 10분은 미리 와야 한다구.”
“니는 어떻게 매번 시간을 딱딱 맞추냐? 니 시계는 안 틀려?”
재호가 갑자기 팔을 들어 내게 시계를 보여 줬다. 뭔지는 몰라도 되게 아방가르드한 시계였다.
그러고 보니 재호는 옷은 의외로 실속있는 구제나, 자신이 직접 만든 옷으로 멋을 부리는 타입이었다. 다만 시계만은 예외였다.
“봐! 이건 절대 안 틀리는 시계라구. 게다가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시침을 맞추면서 하루를 시작하지. 틀릴 리가 없다구.”
‘...변태 자식! 변태 자식! 변태 자식!’
욕지기를 꾹 참고 소파에 앉았다. 배영웅 매니저와 환희도 나와 재호의 만담을 쿡쿡 웃으며 보고 있었다.
분위기도 바꿀 겸 배영웅 매니저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키미 프로듀서는 어디 계신가요?”
“네, 키미 팀장님은 지금 베이비 아티스트님과 함께 위에 발코니에서 회의 중이십니다. 아마 이번 녹음 디렉 방향을 잡고 계신 거 같아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목에 좋은 꿀차 드릴까요?”
“아, 아, 네네.”
슬슬 차는 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배영웅 매니저는 지치지도 않고, 매번 같은 꿀차를 가져왔다. 실제로 마시니까 뭔가 목에 온기가 도는 게, 노래에 도움이 되는 것도 같았다.
꿀차를 마시면서 오늘 녹음할 더블 타이틀곡 가사와 멜로디를 확인했다.
반드시 떠야 하는, 비원더 첫 번째 활동 후속곡이었다. 그런 만큼 천채왕 프로듀서도 엄청 빡세게 녹음할 거라고 경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대체 어떤 식으로 녹음을 하기에 그러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머릿속에서 살짝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봤다. 내가 그동안 훈련했던 ‘TYB 스타일'의 가창으로 한번 불러봤다. 그리고 그 중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이번에는 내 특유의 스타일로 한 번 더 불러봤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내 노래를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쳤다. 뭔가 점점 더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다섯 번쯤 노래를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부르고 있을 때쯤, 키미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어서 미안해요!”
키미 프로듀서와 베이비 선배가 들어왔다.
베이비 선배는 생각해보니 슈퍼스타 T 이후, 처음으로 본 셈이었다
베이비 선배가 말했다.
“반갑네요 모두! 잘 지냈어요?”
재호가 대답했다.
“잘 지냈습니다 선생님께서 어쩐 일로?”
베이비 선배가 친근하게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이제 선배라고 불러요 재호 군. 저도 후배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시겠죠 후배님?”
“네 네 선배님.”
재호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연습생 생활이 길었던 환희나, 회귀 전 다양한 가수를 봤던 경험이 있던 나와 달리 재호는 아직 선후배 가수들이나 연예계 인사들을 만나면 좀 경직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내 노래를 녹음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잘 나진 않았다.
베이비 선배. 90년대를 장식했던 댄스 스타였다. 최초로 아시아에서 맹위를 떨쳤던 한국 가수기도 했다. 거기다 지금은 작사가로 변신, 특히 TYB의 모든 여성 아티스트의 타이틀곡 가사는 도맡아 진행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외부 가수들에게도 가사를 주며 현재 가장 각광받는 작사가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2020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사가였다. 작곡가보다도 롱런하기 어려운 작사가로서 놀라운 성과였다.
그리고 키미 작곡가. 문루아의 타이틀곡을 시작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미래에는 2020년까지 가수를 가리지 않고 TYB의 숱한 히트곡과 명곡을 남기는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월드뮤직부터 힙합까지, 온갖 생소한 장르까지 몽땅 다루는 폭넓음이 그녀의 특기였다. 빌보드 차트에까지 오르는 곡을 쓰는 최정상 작곡가 중 하나였다.
그런 그들이, 내가 속한 팀의 곡의 녹음을 봐주려 했다.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키미 프로듀서가 녹음실에 앉아서 우리에게 말했다.
“자. 환희군. 먼저 시작하죠.”
환희가 대답했다.
“아 넵!”
환희가 녹음 부스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키미 프로듀서 입장에서 가장 편한 TYB 연습생 출신 환희부터 녹음을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녹음은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키미 프로듀서는 어마어마하게 꼼꼼하게 녹음 디렉을 봤다. 음 하나를 듣고는,
“다시요.”
이렇게 말하곤 또 녹음했다. 100번 넘게 녹음한 음도 있었다. 모든 부분을 꼼꼼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부분은 정말 숨소리 하나까지 신경 썼다.
키미 작곡가의 피드백은 이런 식이었다.
“조금 더 끝 음에서 밴딩(노래에서 끝 음을 살짝 아래에서 위로 올리면서 처리하는 기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과하지 않게. 아주 살짝.”
그래서 밴딩을 하자 이번에는 이런 피드백이 나왔다.
“호흡이 조금 과해요. 조금 숨이 모자란 듯 숨을 들이쉬고 부르면 좋겠어요.”
나름대로 노래의 디테일에 자신이 있다 생각했는데, 키미 프로듀서에 디테일에는 혀를 내두르게 됐다. 숨 쉴 곳과 숨을 쉬는 정도를 정확하게 정해주는가 하면, 모음 발음 하나 가지고 10분간 발음 강의를 하기도 했다. 발음할 때 혀의 위치와 이동 속도까지 일일이 지정했다.
노래가 너무 길어져 목이 아프겠다 싶으면 재호가 들어가서 코러스 녹음을 했다. 여전히 똑같은 빡빡한 기준으로 진행했다. 그러다가 재호가 지친다 싶으면 이번에는 환희가 들어가서 노래를 불렀다.
가장 압권은 그렇게 반나절 간 녹음한 후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환희 군 고생했어요. 역시 경력자라 좀 쉽게 끝났네.”
‘이게 좀 쉽게 끝난 거라고?’
머리가 살짝 띵 했다.
환희가 녹음실 부스를 나가며 말했다.
“고맙슴다~”
“조금 모자란 부분만 내일 한 번 더 녹음하면 될 거 같아요. 중간에 애드립 부분만.”
이렇게 치밀하게, 오래 녹음해 놓고 내일 또 녹음하다니 놀랄 노 자였다.
누군가는 이를 너무 과하다고 할 것이다. 심지어 갑질이라 생각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TYB의 노래를 끈질기게 들어온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이 끈질김이 TYB가 다른 기획사와 달리 결과적으로 30년이라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던 이유였다.
대중적인 성공은 도박이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퀄리티는 달랐다. 노력해서 집요하게 파고들면 반드시 최고 퀄리티의 음악은 나왔다.
그리고 최고 퀄리티와 그 바로 아래, 적당히 좋은 퀄리티의 차이는 바로 사소한 디테일에서 나왔다.
마치 호텔 레스토랑과 같았다. 오창선 선배 말로는, 호텔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법은 간단했다. 커피를 시키면 됐다. 호텔 식당에서는 커피가 가장 덜 중요한 메뉴이기 때문이었다. 커피가 훌륭하다는 건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다는 의미였다. 커피가 좋다면 스테이크와 같은 본 메뉴는 더욱 훌륭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 생에서 들었던 TYB의 노래들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거기에 가수 권노을만의 해석을 넣어서 머릿속으로 이번 곡을 재해석해봤다. 그렇게 하다 보니 뭔가 자신이 생겼다.
그때, 재호의 녹음을 보던 키미 프로듀서가 내게 대뜸 말했다.
“노을 군 이제 본인 차례에요 부스로.”
이제 회귀자의 녹음 짬밥을 보여줄 차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