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배영웅 매니저가 우릴 집으로 태워줬다. 아무 문제 없이 빠르게 녹음을 진행했음에도 벌써 새벽 두 시였다.
환희가 재호에게 말을 걸었다.
“횽.”
재호가 대답했다.
“왜?”
“앞으로 편집은 어차피 횽이 해야 하는 거자나요?”
“그치? 나랑 키미 프로듀서님하고 엔지니어분들이 함께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듬구 바꿔보구 하겠지.”
“그럼 그냥 디렉을 횽이 봤어야 하는 거 아녜여?”
“그러구 보니 그러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왜 천채왕 프로듀서가 환희에게 가이드를 맡겼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환희가 말했다.
“선생님이 실수하신 걸까여?”
재호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게?”
아무래도 내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계속 이 일에 대해 고민할 모양이었다. 슬쩍 내가 말을 끼어들었다.
“재호한테 디렉을 받는 경험을 주기 위해서겠지.”
재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내가 질문했다.
“무슨 말이야?”
“생각해봐. 앞으로 비원더가 활동하면. 쭈욱 니가 디렉을 볼 것 아냐.”
“그렇겠지.”
“한 번쯤은 니가 남에게 디렉을 받는 경험을 가져 보는 게 좋지. 그러면서 배우는 점이 있으니까. 안 그랬어?”
“그랬던 거 같기도 하구. 발음이라던가. 리듬이라던가. 느낌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번에 부르는 노래처럼 에너지를 끌고 가는지 같은 걸 배운 거 같기도 하네.”
“환희는 TYB에서 오랜 기간 연습생을 했잖아? 그나마 녹음에도 익숙하니까 처음에 한 번 경험하게 해보기 좋았겠지. 그러다 보면 다음에는 자기가 디렉을 보는 입장에서도 더 잘할 수 있을 거고. 사실 환희나 재호나 둘 중에는 음악에 따라 상황에 따라 누가 디렉을 봐도 상관없으니까.”
뭐, 회사도 환희가 이렇게 처음부터 잘해버릴 줄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내 말을 듣고 재호와 환희가 납득이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배영웅 매니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권노을 아티스트는 정말 통찰력이 좋으시네요. 마음을 다 꿰뚫어 보시는 것 같아요. 제 머릿속도 다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사실, 저 매니저의 생각은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 * *
배영웅 매니저는 우선 TYB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사는 환희를 데려다주었다. 이후 차를 돌려 바로 나와 재호의 동네로 향했다.
뒷좌석을 슬쩍 봤다. 재호는 수면 시간이 되어서인지 칼같이 수면을 시작했다. 어디에서 준비했는지 안대에 귀마개까지 완비해뒀다.
“쌔액~ 쌔액~”
잠자는 숨소리마저 초시계처럼 정확한 리듬이었다. 좌우지간 변태처럼 치밀한 놈이었다.
배영웅 매니저는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 중이었다. 콧노래로는 자세히 들으니 본인이 틀어놓은 로버트 글라스퍼의 복잡한 재즈 선율을 카피하고 있었다. 제법 음악에 재능이 있는 매니저였다.
말할 사람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다음 녹음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다음 곡 녹음은 반드시 잘 되어야 했다. 첫 발표곡으로 예정된 ‘남녀본색'이 우리의 색깔을 보여준다면, 두 번째 곡은 완벽하게 우리를 대중에게 각인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너무 중요한 곡이라 제목조차 아직 확정 짓지 않았다. 가사를 이미 완성했지만 말이다. 반드시 잘 돼야 한다는 의미로 ‘반드시'라는 가안 이름은 지어 두었지만.
그리고 이 곡이 중요한 만큼, 키미 프로듀서가 직접 디렉팅을 집도할 예정이었다. 천채왕 프로듀서에게 엄청나게 빡빡하게 디렉팅을 할 거라는 경고까지 받았다.
당장 걱정이 좀 되었다. 하지만 일단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회귀 전, 나는 궁금했다. 대체 히트곡은 어떻게 나오는지 말이다. 그래서 노래를 미친 듯이 연구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노력으로 살을 뺐어야… 아니. 이전 생에서는 왠지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았었어. 어머니가 준 보약 먹은 이후로.’
여하튼, 그렇게 처음에는 발라드, 알앤비 가수 위주로 연구했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TYB는 대형기획사 중 유일하게 고음 알앤비 보컬을 2020년까지 유지하는 회사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항상 흥행에 성공했다.
이 회사의 비결이 궁금했다. 그래서 TYB의 모든 타이틀곡을 모사하고 연구했었다. 이전 생의 일이었다.
회귀 후 내가 ‘슈퍼스타 T’를 내 데뷔 무대로 택한 이유는, 그게 가장 빠른 데뷔 무대이기도 했지만, 그게 가장 빠르게 TYB로 가는 길이라서이기도 했다. 2020년까지 최고를 유지하는 기획사라면 나를 맡겨도 될 거라 생각했다.
지금 신곡을, TYB가 디렉을 볼 예정이었다. 과거 곡을 원곡 가수 스타일로 부르는 건 쉽다. 그건 성대모사니까. 하지만 신곡을 특정 스타일로 부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보통, 가수들의 노래 스타일은 공기 같아서 한번 자리 잡으면 바꾸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가능했다. 비유하자면 나는 TYB학 박사 정도는 됐다. TYB가 주최한 오디션도 우승했으니 SCI급 논문도 보유한 급이라 봐도 될 터였다.
그러니, 녹음을 앞둔 천채왕 프로듀서의 은근한 도전이 오히려 반가웠다. 저 난이도 높은 미션을 통과해서 녹음을 완료하면 높은 완성도와 대중성을 갖춘 트랙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 * *
다음 날 오전.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11시였다. 일어날 만한 시간이었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니. 밴드 마스터였다.
‘이분이 갑자기 왜 전화를?’
전화하기 전에 살짝 머리를 굴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를 부를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생각을 포기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노을이! 왜 이리 전화를 안 받나?
“어제 녹음하느라 좀 늦게 잤습니다.”
-아이구 벌써! 고생하네. 크리스마스 전에 앨범 낼 생각인가 본데. 하긴 뭐 열기 식기 전에 빨리 내는 게 잘하는 기다.
“네 무슨 일이시죠?”
-지금 강남역 쪽에 있는데.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딱히 거절할 명문이 없었다. TYB에는 두 시까지만 가면 됐다. 심지어 사옥도 근처였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거실로 나와 스트레칭을 하면서 잠을 깼다. 거실 탁자에 뭔가 놓여져 있었다.
‘이건 뭐야?’
확인해보니 빼빼로였다. 옆에는 동생이 쓴 쪽지도 놓여 있었다. 수능으로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빼빼로 데이도 못 챙겨준 거 같아서 미안해서 하나 줬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센스 있게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 초콜릿 맛이었다. 동생의 배려에 마음 한 켠이 시큰해졌다.
못 참고 포장을 뜯어서 하나를 먹어봤다.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 퍼졌다.
‘강남역 점심보다 사실 이게 더 좋긴 한데.’
그래도 일단, 부르니 한 번 가보긴 해야 했다.
* * *
혹시나 대중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선글라스에 마스크, 모자를 끼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아무도 알아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출근길에도 매니저가 차에 태워 줄 법도 한데, TYB의 출근은 자율이었다. 재호와 환희는 배영웅 매니저가 데려다주기로 했다.
나는 정식 데뷔 전까지는 최대한 안전하게 조심조심 혼자 출근만 해보겠다 말했다. 대중교통 등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감각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아니, 어차피 그것도 오래 못 가려나?’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예약해 두었던 일식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밴드 마스터가 일어나서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어! 노을이. 왔어?”
그곳에는 익숙한 사람, 박찬용 드러머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였다. 은갈치 정장에 베스트까지 쫙 빼입었다.
우선 최대한 예의 바르게 모두에게 인사했다.
“선배님들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분이 계시네요?”
“아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은갈치 정장 사나이가 명함을 꺼냈다. 금박이 칠해진 으리으리한 명함이었다.
‘주식회사 골든위크 서울 지사장 소중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주식회사 골든위크의 서울 지사장 소중인이라면 익히 알고 있었다. 20대에 TYB 매니저로 시작. 30대부터 이것 저곳 이적하면서 일본, 구룡도, 한국, 심지어 호주까지. 아시아 전역을 누비면서 다양한 연예인을 성공시킨 아시아 연예계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한국이 아닌 국제적인 경력으로 보자면, 소중인이 천채왕보다도 더 경력이 화려할지 몰랐다.
앉자마자 소중인이 말을 시작했다.
“매니저는 함께 안 오셨나욥?”
뭔가 희한한 말투였다. 항상 말머리 끝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네. 정식 데뷔 전까지는 되도록 대중과 함께하는 감각을 잊지 않고 싶어서요. 그래서 선배한테도 식당을 룸으로 예약해달라 했고요.”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저라면 소속 가수를 이렇게 혼자 두지 않을 텐데욥.”
밴드 매니저가 소중인의 팔을 잡았다.
“어허! 중인이. 그런 말은 안 하기로 했는데.”
“아아 죄송해욥.”
그러면서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 수저를 챙겨주었다.
일식 회가 하나하나 새롭게 나오는 오마카세 식당이었다. 한 점씩 회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소중인의 영업은 노골적으로 변했다.
소중인은 내게 꼬치꼬치 TYB의 대우를 물었다. 거의 검사인 줄 알았다.
“그쪽 회사는 어떤 차로 이동하나욥?”
“네 뭐. 볼보 차량 쓰더군요.”
“고작 그 정도인 가욥? 저희라면 훨씬 고급… 원하시면 부가티라도 가져올 텐데.”
‘연예인 매니저가 왜 부가티를 몰아요. 뭐 아우토반 달릴 거야?’
그렇게 혼자서 생각하고 있을 때, 박찬용 드러머가 물었다.
“뭐, 자세히 말은 못 하겠지만. 곡 작업은 잘 되나? 궁금하구만.”
나는 씩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 뭐 재미있게 잘 되고 있습니다.”
“편곡이야 재호 군이 할 테고. 디렉은 누가 보나?”
“저희들이 할 때도 있고. TYB 프로듀서가 할 때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때, 소중인이 또 끼어들었다.
“비원더처럼 모든 걸 할 수 있는 그룹이라면 간섭은 안 좋지 않나욥? 저희라면 완전히 다 지원해드릴 텐데요. 영국 애비로드 스튜디오라도 무제한 지원 해드릴 텐데!”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비원더는 록이 아니라 흑인음악 뮤지션이다. 애비로드도 좋지만 차라리 미국 LA나 뉴욕의 전설적인 흑인음악을 녹음한 녹음실이 훨씬 궁금했다.’
소중인이라는 사람의 명성과는 달리, 딱히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소중인의 들이대기식 영업에 보다 못한 밴드 매니저가 나섰다.
“야. 야. 마! 니 뭐하노? 담배나 태우러 가자.”
밴드 매니저가 소중인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식사 자리에는 나와 박찬용 드러머만 남았다.
방금 행동 덕분에 밴드 매니저에 대한 의심이 풀렸다. 밴드 매니저는 나를 영업하라고 소중인을 데려온 건 정말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좋은 의도로 후배 소개해주려 왔다가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영업해서 당황한 듯했다.
앞으로 저 선배 초대는 좀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새우튀김을 입에 넣었다.
박찬용 드러머가 나지막이 말했다.
“조심하게.”
“뭘요?”
“소중인 저 친구 말이야. 명성은 대단하네. 아마 한국 국적을 가진 제작자 중 가장 글로벌 시장에서 유명하지 않을까?”
“대단하네요.”
“근데 그에 비해 소문은 썩 좋지가 않네 왜인지 아는가?”
당연히 모를 줄 알고 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저는 알걸랑요.’
회귀자라면 소중인의 실체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