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70화 (70/280)

제70화

“아니, 곡 하나 녹음에 반년이 걸린다구??”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늘이가 내게 되물었다.

“해어지화 아시죠?”

“알지.”

“거기 데뷔곡. ‘우리만 있는 세계’가 곡 녹음에 10개월 걸렸어요.”

“10... 개월…!”

“뭐 무대가 워낙 어려워서 무대 연습을 하면서, 멤버 바꿔가면서 준비하느라 그런 거긴 하지만요. 저희도 한 달 정도는 걸릴 수도 있어요.”

뭔가 머리가 아파왔다.

“그럼 우리가 뭔가 준비할 거는 없어?”

“없죠. 녹음을 제대로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준비를 하겠어요. 그냥 가서 깨지는 거지. 노래 기본기 연습 좀 하시면 될 거 같네요.”

“노래 기본기?”

“발성이나 음감이나 뭐 그런 거요. 그러고 보니 형들, 이제 레슨 받지 않아요?”

“아 그러네.”

그러고 보니 지난주부터 헬스 트레이너부터 보컬 트레이너까지, 온갖 스태프가 나를 빡세게 관리하기 시작했었다.

“그런 걸 잘하면 되죠.”

“음…”

‘슈퍼스타 T’ 시절에는 참여곡 녹음을 해보긴 했다. 하지만 신곡을 본격적으로 녹음하는, 창의적인 행위는 처음이었다. 이제껏 없던 노래를, 나만의 개성을 담아 녹음하는 작업은 처음이었다.

녹음이라는 작업은 매우 특별했다. 제아무리 곡을 잘 소화해서 무대에서 불러도 결국 X튜브도 없는 지금, 역사에 남는 건 오직 음원뿐이었다. 내 음악이 어떻게 남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하늘이 말대로 꼭 잘 해내야 했다. 쉽게 넘어갈 순 없는 단계였다.

하지만 하늘이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이었다.

* * *

그 후로 며칠간은 정비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의 휴식 시간이었다. 그동안 집중하지 못했던 운동과 보컬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나 외에는 다들 바빴다. 환희는 가녹음 본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천채왕 프로듀서에게 호출되었다. 재호 또한 거의 숙식하는 수준으로 스튜디오에 머물렀기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나만 편한 것 같아 미안하다 말하자 환희가 핀잔을 줬다.

<걱정 마요 횽. 녹음 가면 횽이 이제 죽음이니까.>

그러면서 TYB에서 메인 보컬들은 정말 호되게 당한다고 잔뜩 겁을 줬다. 아무래도 메인 보컬에게는 다른 멤버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녹음 때 요구하는 모양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노래 연습을 했다. 피아노로 스케일을 잡으며 음감과 발성을 가다듬었다. 새로 나오는 음반도 모두 구해서 들었다. 회사에는 엔간한 신보가 모두 구비되어 있어서 음악 공부하기에 좋았다. 연습실에서 노래 연습이 끝나면 바로 정신없이 새로 발매된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내 가창력 관련 수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C가 B가 되기는 너무 쉬운데. A가 S가 되기는 어려웠다. S가 더 올라가는 건 (만약 가능하다면!) 거의 입신의 경지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체력을 B+까지 올린 후에는 mp3의 스탯은 거의 잊고 지냈다.

요새 재미는 외국어 스탯이었다. 아예 까막눈이었던 언어는 MP3를 사용하니 정말 술술 늘었다.

‘노래도 외국어처럼 술술 늘면 좋을 텐데. 아니, 외국어도 A~S가 되면 이제 잘 안 늘려나?’

영어공부와 노래 연습을 병행했다. 그러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1주일쯤 지났을까? 오랜만에 매니저 호출이 왔다.

비원더 3인과 천채왕 프로듀서의 미팅이 잡혔다는 연락이었다.

TYB 본사 회의실에 가보니 이미 재호와 환희, 천채왕 프로듀서가 앉아 있었다. 특히 재호는 눈에 띄게 수척해 보였다.

내가 놀라서 재호에게 물었다.

“야 재호 너 뭐야! 왜 반쪽이 됐어?”

“새하얗게… 불태웠다구…”

그러면서 재호는 크크큭 하고 웃었다. 뭔가 엄청 피곤한데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무슨 새디스트냐 너. 왜 이리 고통스럽게 웃는 거야? 하나만 해 하나만.”

“크크크크큭. 너도 들으면 알게 된다구. 놀랄 거거덩~.”

이미 재호의 편곡 실력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자신감은 놀랐다. 보통 재호는 아무리 훌륭한 편곡을 가져와도, 겸손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냐?”

“그 정도지.”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다.

우리 둘의 티키타카를 잠자코 보고 있던 천채왕 프로듀서가 불쑥 말을 시작했다.

“자 그럼 회의 시작하자.”

내가 잽싸게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네넵.”

“일단 재호가 말한 대로 녹음은 대충 끝났어. 완성도를 올리는 디테일한 작업은 이제 시작이지만. 뼈대는 대충 만들어진 상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재호는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환희는 뭔가를 노트에 끄적이며 듣고 있었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말을 이었다.

“그럼 한 번 들어볼까? 첫 곡 ‘남녀본색'부터.”

천채왕이 곡을 틀었다.

전위적인 드럼으로 곡을 시작했다. 여기에 동양적인 키보드 루프가 더해졌다.

시작부터 3인의 하모니가 풍성하게 들렸다. 20초 만에 비원더만의 사운드가 바로 드러났다.

이전에 우리끼리 만든 곡에서는 30초 넘게 일반적인 구성의 전주가 들어갔었다. 그 부분이 삭제됐다. 바로 10초 만에 ‘이게 비원더다!’라고 보여주는 본론이 바로 나왔다. 이게 더 임팩트가 있었다.

후렴은 3명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청자를 사로잡았다. 재호가 비원더 3인 역할을 모두 해냈다.

2절부터는 메인 보컬의 애드립까지 더해졌다. 브릿지에서는 조금씩 더해졌던 음악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졌다.

편곡 자체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잔잔해졌다. 하지만 악기를 덜어낸 덕분에, 클라이맥스에서는 오히려 악기들과 목소리들의 하모니가 더 웅장하게 들렸다.

마지막에는 드럼까지 없어지고, 키보드 루프와 메인 보컬의 목소리로 곡을 마무리했다.

곡이 끝나자 방에는 침묵이 흘렀다.

10초 정도 정적이 흘렀을까. 천채왕 프로듀서가 슬쩍 우리에게 물었다.

“어때?”

환희가 감탄했다.

“너무 좋네여…!”

나도 동감이었다. 전문가들이 편곡을 도와준다 해서, 뭘 더해줄까 생각했었다. 허를 찔렀다. 오히려 TYB의 전문가들은 악기를 덜어냈다. 그러자 남아있는 악기 요소 하나하나가 오히려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역시 최고의 프로페셔널은 다르구나 싶었다.

나도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재호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재호가 정말 고생했지.”

재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키미 프로듀서님과 선생님이 너무 많이 도와주셨구요.”

“그야 그건 우리가 할 일이니까. 아 그리고 환희 군.”

“네네.”

“두 번째 곡은 손을 그냥 아예 안 댔어. 너무 좋던데? 둘이 만든 곡 말이야.”

“아!”

TYB가 보기에도 두 번째 곡은 손을 댈 부분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었다. 열심히 한 작업이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천채왕 프로듀서는 회의를 이어갔다.

“일단 타이틀곡이랑 후속곡을 녹음해야 하는데. 가이드를 누가 하느냐. 이게 고민이었어. 사실 니들 정도면 직접 가이드를 봐도 되는데…”

내가 물었다.

“직접이라면 누가?”

“아무래도 이런 경우엔 멜로디와 가사를 붙인 환희겠지? 재호랑은 다르게 우리 회사에서 녹음도 몇 번 해봤잖아, 기억나?”

환희가 깜짝 놀랐다. 가이드를 자기가 맡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환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저는… 부담스러운데여. 제대로 녹음도 못 해 봤는데여.”

천채왕 프로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안심한 표정 같았다.

“사실 우리도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역시 키미를 가이드로 할까 싶었어.”

키미 작곡가는 TYB의 여성 가수들의 타이틀곡은 대부분 전담해서 쓰고 있었다. 가이드도 물론 본인이 했을 터였다. 심지어 본인이 가수로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을 본명으로 녹음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질 정도로, 본인도 출중한 가수였다. 키미 프로듀서라면 레코딩 디렉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건 답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첫 번째 곡은 환희가 가이드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환희가 제일 놀랐다. ‘펄쩍' 뛰었다.

“뭔 소리예요 횽!”

“‘남녀본색' 이 곡은 저희 세 명이 비원더의 사운드를 보여주기 위해 꼼꼼하게 계획한 곡입니다. 편곡부터 가사, 창법, 모든 부분에서 우리 셋의 의견이 들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음악 진행이랑도 많이 다르고요. 이 곡은 완전히 저희 의도대로 녹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툭 내뱉었다.

“신인들이 스스로 녹음 디렉까지 보겠다. 천하의 TYB에서?”

천채왕 프로듀서는 어이없다는 듯 씨이익 웃었다. 이를 본 재호랑 환희 표정은 흙빛이 되었다. 심지어 항상 포커페이스던 배영웅 매니저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이번에는 둘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재호의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둘 다 내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막상 천채왕 프로듀서에게 말을 할 때가 되니 겁을 잔뜩 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물러서야 하나? 싶을 때쯤, 천채왕이 입을 열었다. 크게 한바탕 웃기 위해서였다.

“크하하하하하하하!”

그가 웃는 동안 비원더 멤버 3명 모두 가만히 있었다.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야! 한번 니들 맘대로 해봐! 진짜 대박이다 니들. 어디서 그런 깡따구가 나오는 거야?”

내가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천채왕이 다시 슬쩍 냉정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후속곡은 안 돼.”

“네.”

동감이었다. 후속곡은 ‘잘 되어야' 하는 곡이었다. 엄청나게 대중적인 곡이기도 했다. 비원더만의 색깔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흥행공식을 지킨 곡이었다. 이 곡은 베테랑의 디렉션을 받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이 곡은 시장에 평가를 받기 위한 곡이니까. 우리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나아. 누가 디렉 볼지는 내가 찾아볼게.”

내 생각과 똑같은 말이었다. 내가 힘차게 대답했다.

“네넵!”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유독 환희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내가 핀잔을 줬다.

“땅 꺼지겠다,”

“하아… 하게따고는 했는데 걱정이네여.”

“뭐가?”

“녹음이요. 저는 레코딩 해본 경험도 별로 없는데 어쩌죠.”

환희는 걱정이 태산인 모양이었다. 초보가 갑자기 선장이 된 셈이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사실 큰 걱정이 되진 않았다. 다 생각해놓은 게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코러스를 하면서 오창선 선배의 곡을 참 많이도 함께 녹음했다. 창선이 형이 꼭 나를 코러스로 써야겠다고 박박 우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녹화 현장을 참 많이도 갔었지.’

당시에는 돈 조금 주는 일이라고 툴툴거렸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엄청나게 귀중한 경험이었다. 초 베테랑 가수의 녹음 현장을 미리 체험했고, 노래도 불러 봤으니 말이었다.

이 경험을 활용하면 충분히 좋은 녹음이 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환희에게는 하나 더 믿는 구석이 있지.’

내가 아는 환희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 * *

며칠 후, 드디어 녹음 시간이 되었다. 제대로 된 신곡을 녹음하는 첫날이었다.

이전 생에도 녹음을 종종 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코러스 입장이었다. 주 가수로 하는 제대로 된 신곡 녹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걱정이 들었다.

녹음실은 이전에 오디션 끝나고 뒤풀이를 하려 했던 그 단독 주택이었다. 정말로 그곳을 TYB의 녹음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단정히 정리된 분재 같은 나무와 잔디밭을 넘어 방으로 들어갔다.

재호와 환희가 복도에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내가 물었다.

“뭐하냐?”

재호가 대답했다.

“누가 있어서.”

“우리가 녹음하기로 되어있잖아? 그렇게 말해 그럼.”

“그게 안 된다구.”

“왜?”

재호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녹음실 안이었다. 그곳에는 한 여성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금발에 화려한 고딕풍의 검은 자캣 복장이었다.

재호가 그걸 보면서 말했다.

“한국말을 못 하시더라구.”

“어느 나라 분인데?”

“몰라. 발음으로는 아마 일본?”

“아하.”

그렇다면 내가 나설 차례였다. 문을 열고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재호 목소리가 들렸다.

“야 권노을 뭐 어쩌려고 그래~”

검은 자켓 소녀가 고개를 돌려 내게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아마 일본어를 못 하는 재호에게는 이렇게 들렸을 거다.

“XXX XXXX XXX?”

하지만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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