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61화 (61/280)

제61화

“가성?”

오창선의 원곡은 1절부터 사람을 쓰러지게 만들었다. 절절한 감정을 첫 후렴에서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권노을 참가자는 이를 절제해서 가성으로 표현했다. 세련되긴 했지만, 조금 심심했다.

‘아쉬운데요.’

베이비 심사위원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순간, 노래는 2절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또다시 노래가 휙 뒤바뀌었다.

“전조?”

노래를 감각으로만 듣는 관객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에게는 들렸다. 교묘하게 노래가 한 키 올라갔다.

2절서부터 한 키를 올리다니,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A 파트를 딱 한 번 부른 권노을 참가자는, 바로 2절 후렴으로 넘어갔다. 또 노래가 한 키 올라갔다.

이번에는 진성이었다. 노래가 그야말로 사자처럼 포효했다.

*

돌아서겠소

그대가 원한다면

떠나주겠소

그것이 진심이라면

베이비 심사위원이 탄성을 질렀다. 엄청난 보컬이었다. 알앤비 느낌이 진하게 들어있어, 원곡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슬쩍 다른 심사위원들을 보았다. 넵튠 한은 쌍욕을 하며 듣고 있었다. 그는 진짜 좋은 노래를 들을 때면 욕을 하고는 했다. 천채왕 심사위원은 눈을 꼭 감고는 고개를 젖히고 음악에 완전히 젖어 있었다.

베이비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에 완벽하게 몰입되었다.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2절 후렴 전에 교묘하게 또 노래를 한 키 올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 정도로 노래가 흡입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렴은 한 번 더 반복되었다. 노래는 다시 또 전조되었다. 한 키를 더 올렸다.

원래도 엄청나게 높은 곡이었는데, 권노을 참가자는 계속 끝도 없이 최고음을 올렸다,

‘이걸 지금까지 아껴뒀단 말인가요?’

고음. 가장 단순하고 간단하게 사람의 귀를 사로잡는 방법이었다. 돌이켜 보면 권노을 참가자는 엄청난 고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고음으로 승부했던 적이 없었다. 지금껏, 마지막에 임팩트를 주기 위해 숨겨왔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히든 카드를, 바로 지금 썼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엄청난 성량의 고음이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심사위원까지 눈을 꼭 감고, 권노을 참가자의 노래에 온몸을 맡기고 있었다. 노래를 듣는다기보다 폭풍에 몸을 맡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

돌아서겠소

돌아서겠소

돌아서겠소

마지막에는 잔잔하게 마무리를 짓는 듯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멜로디를 고음으로 변주했다. 최고음이 경신될 때마다 관객들은 깜짝깜짝 놀랐다.

권노을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호흡으로 덮여 있으면서도. 그 속에는 강렬한 알맹이가 들어있었다. 고음이 끝도 없이 올라가면서도 감정과 발음, 리듬의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마치 바로 옆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마저 들었다.

*

이 삶이 끝나기 전

다시 한번

그대를 볼 수 있기를

그렇게 노래가 끝났다.

* * *

“후우…”

권노을은 무대가 끝나고 목소리를 살짝 가다듬었다. 보통은 무대가 끝나도 태평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오디션 무대에서 했던 노래들 중 가장 빡센 편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찬용 어르신 그분이 아주 독하게 편곡을 하셨단 말이야.’

밴드 마스터와 박찬용 드러머에게 내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편곡을 해달라 부탁했다. 둘이 가져온 편곡은 과연, 기절할 만큼 어려웠다. 숨 쉴 부분도 짧았고. 노래는 계속 전조되어 나중에는 처음보다 무려 다섯 키나 높은 최고음을 내야 했다.

<마지막인데 이 정도는 돼야 재미있지 않겠나?>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연습하다 보니 곡이 소화가 됐다. 굉장히 높은 음이지만 절묘하게 내가 부를 수 있을 만큼의 길이로 디자인이 되어 있었다. 박찬용과 밴드 마스터의 솜씨였다.

연주도 훌륭했다. 가야금과 태평소 등이 곡을 장식했다. 여기에 밴드 마스터의 키보드가 사운드에 화려함을 더했다. 국악임에도 정통 발라드의 느낌을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박찬용은 자유자재로 쪼개는 드럼으로 전체를 하나로 묶었다. 마치 말이 달리는 소리처럼 잘게 쪼개면서도 리듬이 흔들리지 않고 정교했다. 그야말로 태산 같은 드럼이었다. 거기다가 드럼 소리 하나하나에 감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야말로 천의무봉의 경지였다. 덕분에 국악 악기로 장식되고, 엄청난 고음을 쌓아놓은 전체 곡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워낙 어려운 편곡이라 일반 관객들은 노래만 들릴 터였다. 하지만 전문가가 들으면, 혹은 대중도 다시 곱씹어보면 볼수록 음악도 놀랍게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편곡이었다.

심사위원 평가가 남았다. 심사위원 평가를 이전과는 달리 초조하게 기다렸다. 워낙 어려운 노래라 기가 빨려서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베이비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순간 권노을 참가자가 우승한 줄 알았어요. 1등 축하 무대로 보였어요.”

천채왕 심사위원이 핀잔을 줬다.

“아~ 그러면 안 되죠! 결과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시청자 의견도 중요하고요.”

“맞아요. 그러면 안 되는데. 저절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네요. 정말 어안이 벙벙한 노래 아니었습니까?”

넵튠 한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굉장한 무대기는 했죠. 진짜… 사람인가? 싶었어요. 저도 가수잖아요?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저는 안될 거 같아요. 절반만 불러도 탈진이 오지 않을까요?”

천채왕 심사위원이 말을 이었다.

“보통 그렇지요.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

넵튠 한이 웃으며 말했다.

“그야 그렇죠. 말이 그렇다는 거구요. 진짜 엄청난 테크닉이었어요. 이 정도 에너지로 이 정도 난이도의 노래를 끌고 갈 수 있는 가수가 있을까?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떠오르지 않아요. 참가자 수준이 아닙니다.”

마지막이라서였을까? 심사위원의 칭찬이 그야말로 노빠꾸였다. 듣는 나도 듣다가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리액션이 나왔다.

베이비 심사위원도 입을 열었다.

“여기서 권노을 군을 제일 처음 본 건 아마 저지요? 예선을 제가 치뤘습니다. 기억나나요 노을 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정도의 체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놀랐습니다. 우선 수려한 외모가 인상적이었어요. 아직도 심사를 받으러 걸어 들어오는 기억이 나구요.”

천채왕 심사위원이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아 이거 참. 저같이 생긴 사람들은 서럽습니다!”

“아니 선생님 많이 괜찮아지셨잖습니까?”

“야! 그 말이 더 기분 나빠! 계속하세요.”

천채왕이 장난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베이비 심사위원이 푸훗 하고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무튼. 하지만 더 선명하게 기억 남는 건 첫 곡이었습니다. Just Come이었지요? 제가 데뷔하기 전, 열심히 들었던 곡이었습니다. 원곡은 완벽하게 기억합니다. 제 인생 곡 중 하나였구요. 그런데 권노을 군은… 원곡을 능가하는 인상을 제게 남겼습니다. 80년대 전설의 팝 명곡의 인상을 제 귀에서 지워 버렸어요. 이제는 Just Come하면 권노을 군 버전이 떠오릅니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굉장한 거지요.”

“그러니까요! 무슨 베테랑 가수도 아니고. 지망생이 이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를 넘어가면서 권노을 군은 성장했어요. 이미 전설의 팝 가수 수준의 가창력이었는데, 아주 미세한 개선점을 기어코 찾아내서 개선하더라구요. 놀라운 행보였습니다.”

객석에서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목례를 꾸벅했다.

베이비 심사위원은 두 손을 들어 관객들의 박수를 잠잠하게 했다. 아무래도 생방이다 보니 빠르게 진행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말을 이어갔다.

“제게 오히려 영감을 주는 행보였습니다. 이미 제가 평가할 수준의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료로서 존경스럽구요. 그동안 멋진 무대와 성장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그야말로 극찬이었다.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심사 코멘트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천채왕 심사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분명 빠른 움직임인데,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제 제작 경력이 계산해보니까, 한 25년 쯤 됩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중 한 20년은 한국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거 같습니다."

과언이 아니었다. 정말로 천채왕은 지난 20년간 최고의 가요 제작자였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숱한 재능을 봐 왔습니다. 고음을 잘 내는 사람. 리듬감이 좋은 사람. 감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사람. 호흡이 탁월한 사람. 발성이 탁월한 사람. 음색이 독특한 사람. 성량이 큰 사람까지. 하지만 이건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지껏 제 제작자 인생 25년 동안, 권노을 군의 노래가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관객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오늘 노래도 그렇습니다. 오창선 가수가 누구예요. 모두가 아는 전설의 발라드 가수 아니겠습니까? 가창력 하면 오창선 가수를 생각하는 분도 많으실 거예요. 그 가수와 듀엣 무대를 하고, 그 가수의 가장 유명한 노래를 불렀어요. 사실 엄청난 부담이에요. 웬만한 가수 지망생은 부담이 돼서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할 거에요. 권노을 군은 그걸 해냈어요.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결승에서요! 놀라운 배짱이고, 자신감이에요. 솔직히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겁이란 게 있긴 해요?”

천채왕이 장난스럽게 내게 물었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대로 천채왕 심사위원이 말을 마무리 지었다. 목소리에는 감탄이 실려 있었다.

“가수는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매력이 있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감동을 줘야 해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권노을 군은 노래를 정말 잘합니다! 정말 정말 잘해요. 그리고 매력이 있어요. 그냥 잘생겼다는 수준을 넘어섰어요. 자기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이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묵직한 감동을 줘요. 이 노래를 들으면, 권노을 군이 어떤 사람인지가 보여요. 그게 예술이거든요. 단순하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어마어마한 칭찬이었다.

“앞으로 권노을 군이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저는 권노을 군에 팬이 될 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점수를 공개할 차례였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돋구었다.

“최후의 심사위원 점수를… 공개합니다!”

이미 내게 필요한 점수를 계산해 둔 상태였다. 현재 1등인 문루아의 평점은 총 700점 만점에 684점이었다. 문루아보다 1점이라도 높으려면 내게 필요한 점수는 무려 390점이었다.

“권노을 군에 대한 심사위원의 점수는… 바로…!”

전광판에 숫자가 밝혔다.

“헉!”

관객석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나는 정확하게 298점을 받았다. 나머지 두 심사위원이 99점을, 천채왕 심사위원이 100점을 줬다.

내 결승전 마지막 노래 점수보다 정확하게 1점이 더 많았다. 사실상 만점이었다.

“후우…”

이전 생에서 나는 무릎이 꺾일 정도로 충격을 받았었다.

인생 2회차라서일까. 이번에는 그 정도로 떨리지는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최후에 승부를 가를 시청자 점수였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네! 이제 정말 마지막 점수입니다. 권노을 참가자의! 시청자 점수를…!”

이전 생에서는 말도 안 되게 낮은 점수를 얻었었다. 나중에야 조작된 점수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제 조작의 주체인 이윤강 PD는 없었다. 남은 건 진짜 시청자의 평가를 받는 일뿐이었다.

‘내게 필요한 점수는 92점!’

뜸을 들이던 사회자가 목소리를 이어갔다.

“공개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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