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60화 (60/280)

제60화

반짝이는 무언가는… 반지였다. 관객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럴법했다. 오창선과 윤은영의 관계는 관객들에게는 비밀이었다.

오창선은 반지를 슬쩍 앞주머니에 넣었다. 사회자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바로 전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일단은 노래에 집중할 차례였다.

*

심벌즈만 있으면

리듬이 없어.

드럼만 있어도

그루브가 깨져.

함께하면 이렇게 즐거운데.

신이시여, 비트를 멈추지 말아줘요.

시작하자마자 오창선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전혀 다른 타입의 보컬인 오창선과 한 목소리로 화음을 불러야 했다.

심지어 나는 주 멜로디가 아닌, 테너 멜로디였다. 부 멜로디이기 때문에 오창선보다 목소리를 살짝 작게 조율했다. 내 음이 더 높기 때문에 조금 작게 불러도 충분했다.

밴드 마스터의 강렬한 키보드와, 박찬용의 든든한 드럼도 노래를 깔끔하게 보좌했다. 요즘 청자들에게는 원곡이 너무 느려서 아주 조금만 템포를 올렸다. 덕분에 조금 더 느낌 있게 부를 수 있었다.

마지막은 둘이 함께하는 리듬감 있는 애드립 부분이었다.

*

드럼과 심벌즈

함께해

완벽한 그루브

영원해

나와 오창선은 후렴을 함께 부르면서 절묘하게 애드립을 주고받았다.

“심벌즈~ 강렬한~”

오창선은 록 창법으로 부드럽게 주 멜로디를 살짝 뒤틀어서 불렀다.

“드럼~ 부드러운~”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알앤비 느낌으로 원래 멜로디를 완전히 변화시켜 불렀다. 실제 멜로디보다 조금 더 높은 음도 집어넣었다. 리듬은 초반에 살짝 당겼다가, 마지막에 살짝 밀어 넣었다. 내 변칙적인 애드립은 정석적이던 오창선의 노래와 완벽한 대구를 이뤘다.

노래가 끝난 후, 사회자가 물었다.

“오창선 님 반갑습니다. 오디션에서 오창선 님을 보게 될 줄이야.”

“반갑습니다.”

“함께 해보니 어떠셨나요?”

오창선이 내 팔을 만지며 대답했다.

“최고였습니다. 권노을 군은 엄청난 가수가 될 겁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생각하시죠?”

관중석에서 네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대가수와 함께 부르는데 전혀 밀리지 않던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노을 군은 제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오창선은 앞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졌다. 핀라이트 조명 하나가 오창선에게 비춰졌다.

오창선이 입술을 꾹 깨물더니 말을 다시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와 있습니다.”

갑자기 관중석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뭔지 다들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제대로 아끼지 못했습니다. 아마, 겁이 났나 봅니다. 권노을 군이 제게 깨닫게 해줬습니다.”

오창선은 반지를 꺼내 관중석 어딘가를 보고 말했다.

“은영 씨. 나랑 결혼해줘!”

화면이 클로즈업으로 윤은영을 잡았다. 입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놀람이 얼굴에 가득 보였다.

윤은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무대 끝나고 프로포즈를 하겠다 했을 때는 정말 놀랐었지.’

좀 놀랐지만 기분이 좋았다. 프로포즈를 계획하는 오창선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오창선 선배는 흔들리지 않을 터였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 * *

첫 번째 무대가 끝나자마자 의상을 교체했다. 두 번째 무대는 내가 마지막 순서였다. 다음 무대까지는 그래 봐야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들이 내 의상을 바꿔주기 시작했다. 모두 다급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은 발라드 가수가 의상을 교체해봐야 기껏해야 양복을 캐주얼로 바꾸는 정도였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달랐다. 내 두 번째 무대 컨셉은 무려… 사극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변해야 했다. 심지어 메이크업도 한복에 맞게 교체해야 했다.

의상을 바꾸면서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를 귀로 들었다. 듀엣 무대에서부터 다른 참가자들이 칼을 갈았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특히 코러스가 특기인 재호는 가창력 최고의 알앤비 여제 ‘애니’와 함께 절절한 노래를 불렀다. 뛰어난 가창력의 디바와 함께 노래를 부르니 재호의 안정적인 화음이 더욱 빛났다. 가요대상 무대에서도 보기 힘든, 특급 노래였다.

‘저건 솔직히, 내 듀엣곡으로는 이기기 힘들겠는데?’

4명의 무대 중, 아마도 내 순위가 꼴찌일 확률이 높았다. 다른 무대보다 절절하고 극단적인, 소위 ‘튀는’ 감정이 없었다. 임팩트가 약한, 부드러운 노래였으니까.

이런 방식의 노래로는 고득점이 어려웠다. 이미 알고 있었다. 내 계획의 일부였다.

게다가 무대가 끝난 후에는 오창선의 프로포즈까지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순간 검색어 상위권은 모조리 ‘오창선 청혼’으로 도배가 됐을 터였다. 정작 내 무대는 잊혀졌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모두 계획대로였다.

어차피 오늘 내가 할 무대는 두 개였다. 두 무대를 모두 기억에 남길 필요는 없었다. 모든 힘을 마지막에 쏟아낼 계획이었다.

내 우승 계획 플랜은 깨지지 않았다. 아직은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추가로 하나 걸리는 게 더 있었다. 지난번 미팅 때 천채왕 심사위원장이 했던 말이었다.

[저는 오디션이 싫어요. 착각하게 만들어서요.]

이윤강 PD가 설득해서 방송을 시작했지만, 사실 천채왕 심사위원장은 오디션 프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짓이라는 뜻이었다.

천채왕 프로듀서에 따르면, 가수는 다른 가수와 경쟁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물론 최고의 가수는 한 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를 꿈꾸는 가수는 당대에 많아야 다섯 팀도 되지 않는다. 대다수의 가수들은 생존이 주목적이었다.

가수에게 중요한 것, 나아가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건 ‘관객’이지 ‘경쟁’은 그다음 이야기고 본질이 아니라고 천채왕 심사위원장은 말했다.

그런데 오디션은 이를 ‘옆 경쟁자와의 대결 구도’로 바꿨다. 그래서 알기 쉬웠다. 등수로 결정했으니까. 옆에 사람보다만 잘하면 됐다.

하지만 이는 위험했다. 정작 중요한 건 내 음악을 들어주는 관객인데, 내 옆에 경쟁자만 이기면 훌륭한 가수로 성공하게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그게 천채왕 심사위원이 ‘오디션이 싫다. 착각하게 만든다’라고 말한 이유였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미팅에서 이 말을 했을 때,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심지어 아무도 천채왕 심사위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달랐다. 심사위원장의 말에 사무치게 동감했다. 이전 생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이전 생에서 2위였다. 그래, 이윤강 PD가 조작해서 우승은 놓쳤다. 하지만 2위면 충분히 좋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데뷔를 실패했다. 이전 생에서 4위였던 재호는 데뷔하고, 사고가 나기 전까지 프로 가수로 잘 생활했는데 말이다.

중요한 건 오디션 등수가 아니었다. 이를 통해 얼마나 내 음악을 들을 용의가 있는 팬을 만드느냐가 진짜 승부였다.

내가 집중해야 할 사람은 내 옆의 경쟁자가 아니었다. 바로 내 앞의, 관객들이었다.

결승이라고 특별히 더 떨 필요도 없었다. 다르게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 앞의 관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래한다는 기본만 지키면 됐다.

이전 생과 사뭇 다른 기분으로 결승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간 점수를… 공개합니다!>

귀를 열어 점수를 확인했다. 내 등수는… 꼴찌였다.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조금은 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했다.

아직 내 계획대로 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내 결승 플랜은 아직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설사 우승한다 해도 그걸로는 부족했다.

우리 참가자 4명은 물론, 지금 오디션을 관장하는 천채왕 심사위원장까지, 모두 ‘슈퍼스타 T’의 포맷에 불만이었다. 내용물을 바꿨지만, 결국 이건 이윤강 PD가 만든 판이었다. 그의 농간에 우리가 놀아나고 있는 셈이었다. 설사 내가 노래를 잘 불러서 우승한다고 해도, 이윤강 PD의 계획에 충실하게 따라주는 셈이었다.

천채왕 심사위원의 말을 듣고 비로소 깨달았다. 우승한다고 이윤강 PD를 물리칠 수는 없었다. 그를 이기려면, 그가 만든 판에 순응해서 최고가 돼선 안 됐다. 그가 만든 판을 엎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준비까지, 이미 다 해두었다.

이건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 * *

문루아의 두 번째 무대가 끝났다. 어마어마한 무대였다. 40명의 과격한 군무에다가, 마지막에는 초고음까지, 끝도 없는 자극이 이어졌다. 마지막에 초고음을 치고 난 후 바로 이어지는 독무를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봤다.

이제 남은 무대는 딱 하나, 권노을 참가자의 무대였다.

베이비 심사위원이 슬쩍 대본을 확인했다. 선곡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에구구, 선곡 운도 지지리도 없네요.’

옆에서 넵튠 한이 슬쩍 말을 걸었다.

“봤어요 선배?”

베이비 심사위원이 대답했다.

“그래요.”

“’돌아서겠소’라니… 너무우~ 어려운 선곡 아니에요? 저라도 곡 바꾸고 싶을 거 같아요.”

넵튠 한이 끅끅 헛웃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베이비 심사위원도 동의했다.

“딱히 재해석할 여지도 없구요. 그런 곡은 더 잘해버려야 하는데. 원작자는 가창력 중의 가창력, 오창선이잖아요. 최악의 상황이죠.”

“게다가 점수는… 드라마틱하게도 전체 4등이네요.”

정말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베이비 심사위원이 씨익 웃었다. 본인의 직감이 재미있어서였다. 최악의 상황인데도, 왠지 권노을 참가자가 우승할 거라는 느낌이 왔다.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권노을 참가자!”

권노을 참가자가 들어왔다.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진청색의 유생 한복 차림이었다. 권노을의 새하얀 피부와 가는 선이 유생 한복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마치, 로맨스 퓨전 사극 주인공 같았다.

‘그러고 보면, 첫 오디션부터 놀랐었죠.’

베이비 심사위원은 처음 권노을 참자가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지금처럼 체계적인 외모 관리를 받지 않았다. 간단히 세수만 한 얼굴에, 사이즈가 맞지 않는 큰 옷을 입고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주얼에 한번 놀라고, 가창력에 한 번 더 놀랐었다. 이런 인재가 아직 기획사가 아닌 아마추어로 남아 있다니, 기적이라고 생각했었다.

3개월 조금 더 지나, 드디어 그가 마지막 관문에 섰다. 과연 처음의 그 무대처럼 충격적인 무대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사회자가 권노을 참가자에게 가볍게 말을 걸었다. 무대 시작 전 가벼운 아이스 브레이킹이었다.

“권노을 참가자, 기분이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레전드 가수, 오창선 님의 곡이시던데요. 어떠십니까?”

“솔직히 좀 부담스러운데요. 그래도 시청자분들이 골라 주신 곡이니만큼, 한번 정성껏 불러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듣겠습니다. 참가번호 4번! 권노을 참가자의 무대입니다~.”

무대 불이 꺼졌다. 무대에 빛이 비추었다. 빛은 이윽고 궁궐을 만들었다. 반짝이는 한옥 지붕들 사이에 권노을이 우뚝 서 있었다.

“우와~”

베이비 심사위원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한복을 입은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바로 가야금이 전주를 시작했다. 원곡의 기타 연주가 가야금으로 대체됐다. 더더욱 한복과 궁궐 컨셉의 무대가 잘 어울렸다.

*

돌아서겠소.

첫 소절에서 그야말로 팬들이 자지러졌다. 그만큼 호소력 있는 목소리였다.

점점 감정을 쌓아 나가던 권노을 참가자. 서서히 A 파트와 브릿지를 넘어, 후렴으로 넘어갔다.

후렴 부분에서, 베이비 심사위원은 깜짝 놀랐다. 권노을 참가자가 너무도 의외의 테크닉을 썼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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