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오창선이었다.
“선배!”
오창선이 라이더 재킷을 휙 던져서 의자 앞에 뒀다. 그리고 내게 외쳤다.
“늦었다. 빨리 연습하자. 고고!”
“네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연습이 시작됐다.
* * *
폭풍 같은 연습이 끝났다. 오창선은 정말 레전드 가수다웠다. 오자마자 워밍업도 없이 바로 너무 멋진 노래를 불렀다.
연습이 끝나고 오창선과 함께 합주실 옆 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했다. 방에는 나와 오창선 둘 뿐이었다.
오창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연습. 미안했다.”
“괜찮습니다. 결국 와 주셨으니까요. 결승전 무대, 하시는 거죠?”
“당연하지.”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될 거 같습니다.”
“나 말고 은영이한테 감사해.”
“은영 님이요?”
“다행히 오늘 아침에 은영이가 회복했어. 긴 이야기를 했어.”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아마, 윤은영과 미래를 약속했을 터였다.
오창선이 말을 이어나갔다.
“은영이가 나한테 신신당부를 하더라고. ‘노을이가 내 은인이다. 걔 덕에 내가 멈출 수 있었다. 꼭 은혜 갚아라.’라고.”
“고맙습니다.”
“아니. 내가 더 고맙지. 덕분에 늦지 않게 멈췄다. 지옥행 갈 뻔했어.”
“이제, 안 하실 거죠?”
도박은 그만두실 거냐는 말이었다.
“신기하게. 이제 전혀 생각이 없어.”
“왜요?”
“네놈 말이 맞아. 은영이는 나한테 너무 중요한 사람이야. 나를 속이면 안 되지. 그 생각을 한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도박 생각은 안 들더라.”
아무래도 오창선의 경우에는 결혼이 정답이었던 모양이었다. 삶의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으로 최소한 도박보다는 나아 보였다.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너 말이야. 방금 ‘돌아서겠소’ 부른 거 봤는데.”
그러고 보니, 원작자인 오창선 앞에서 무대를 보여준 건 처음이었다.
그의 피드백이 궁금했다.
“어떠셨나요?”
“야 재밌었어. 국악 발라드라니. 오리엔탈 발라드라 하던가? 한 5년 전에 그런 거 엄청 유행했었는데. 잘 어울리더라.”
“감사합니다.”
“다만 딱 하나, 문제가 있어.”
“뭐죠?”
“노래야.”
심장이 덜컥했다. 노래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지금껏, 노래 실력이 문제라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어떤 부분이 문제였을까요?”
“너 너무 잘 불러. ‘너무’ 잘 불러. 꼭 미국놈 같애.”
“그게 문제인 걸까요?”
그러고 보니 환희가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너무 노래를 잘하려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특수한 분위기의 노래를 블루 아이드 소울 느낌에 맞춰서 불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가수 중의 가수, 오창선의 원곡을 불러야 했다. 당연히 뛰어난 가창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나는 니같이 부르는 게 좋아.”
“저같이라고 하시면?”
“담백하니. 감정을 절제해서. 딱 필요한 만큼만 힘을 주잖아. 꼭 팝같애. 근데 말이야. 여긴 한국이야. 여기 대중은 그런 거 안 좋아해. 눈물이 나오게 조사버려야 된다니까?”
아하.
이제야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회귀자란 게 문제였다. 회귀자이기에 나는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미션도 미리 알고 있었고, 돌발상황도 훨씬 부드럽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래에서는 회귀자라는 점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내가 너무 트렌디하게, 지금 2005년 현재 시점에는 ‘미래 취향’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2005년에는 스트레이트하고 감정적인 노래가 유행했다. 제대로 울어줘야 했다. 그래야 히트했다.
이전 생에서는 아니었다. 2020년에는 그런 창법은 부담스러웠다. 자연스럽게 나도 2020년도의 담백한 창법에 가깝게 점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005년이었다. 2005년에는 그에 맞게, 절절하게 불러야 했다. 여지까지와는 달리, 전통적인 오창선의 락 발라드를 선곡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이해했습니다.”
오창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이해했다고? 벌써?”
“네 그럼요. 무대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신감은 좋네. 그런 깡따구는 어디서 나오는 거야?”
“잘 모르겠네요.”
“짜식. 그래도 조심해.”
“뭘요?”
“다른 무대 리허설도 장난 아니던데? TOP4가 다 나름 매력이 있어. 아주 미친 세대야. 꼭 니가 우승한다는 보장은 없겠던데?”
“그 같이하는 마지막 무대 리허설은 어떠셨어요?”
“아 철현이 형이랑 진찬이 형이 한 그거? ‘앙코르를 마치며.’ 말이지?”
“네.”
“좋던데? 무슨 한 팀 같았어.”
“선배님이 호흡을 맞추는 법을 알려 주신 덕분입니다.”
오창선이 혀를 차며 말했다.
“설마!”
“무슨 말씀이시죠?”
“배운다고 저렇게 팀워크가 만들어지진 않아. 그것도 성별이 다른 4명이. 팀을 안해 봐서 잘 모르나 본데, 저건 니들이 정말 잘 맞는 거야.”
“그런… 걸까요?”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랑 3인조 밴드를 했었는데도 박살 났지. 기타 놈은 아빠 회사 물려받겠다고 상경해버렸고 말야.”
“그러셨군요…”
“오디션 끝나도 그 관계, 소중하게 남겨라. 나중에 후회한다.”
오창선의 눈이 살짝 깊어졌다. 약간의 슬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게는 윤은영이 있으니,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창선이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나요?”
“제작진에게 사과하러 가야지. 사정 설명하고. 공연 때 보자.”
오창선은 그대로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사라졌다.
이제 오창선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시 그는 냉정을 되찾았다. 스스로 무너뜨렸던 제작진과의 관계도 다시 복구하려는 행동이 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면서, 나도 깨달은 점이 하나 있었다.
‘뭐 그 배움을 써먹는 건 우승한 다음이지만. 일단은 결승전부터!’
* * *
결승전 시작 10분 전.
노경진 PD는 초조하게 무대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미 관객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너무 많은 관객이 몰려 계단까지 채웠는데도 다 수용하지 못해 양해를 구하고 돌려보내야 했다. 그들이 스스로 뭉쳐서 뮤직넷 방송사 건물 바깥에서 거리 응원을 하고 있었다. 월드컵을 연상시키는 폭발적인 관심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무대는, 문제없이 스무스하게 진행되어야 했다.
“문제는 없겠죠?”
윤결 작가의 질문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윤결 작가가 초조하게 연필을 돌리고 있었다. 노경진 PD가 노트를 펴서, 하나하나 체크 리스트를 확인해봤다. 물샐 틈 없는 꼼꼼함이었다.
노경진은 모든 리스트를 3번씩 훑어본 다음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윤결 작가에게 대답했다.
“일단은 이거면 될 거 같은데?”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 방송. 문제없이 잘 끝나서.”
“그건 모르지. 오늘이 잘 끝나야지.”
“그래도 오창선 씨가 마지막에 와줘서 다행이에요.”
“관객석 꽉 찬 거 봐. 조작 논란으로 터질 뻔한 오디션인데. 시청자에 감사해야 해.”
윤결 작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라면 케이블 방송 역대 최대 시청률 갱신도 꿈이 아니었다.
윤결 작가가 약간 엉뚱한 질문을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 사전 투표는 문루아 참가자가 압도적이던데.”
“그러게요. 막판 스퍼트를 제대로 달렸어요. 지난주 무대가 괜찮았던 거도 있고. 아무래도 워낙 인지도가 있는 가수다 보니까 갈수록 뒷심이 있네요.”
“게다가 이번 무대 리허설 봤어?”
“리허설이요? 봤죠.”
“그런 무대는 진짜 나오기 힘들지. 솔직히 반칙 수준이지. 프로 가수도 하기 힘든 무대를…”
“’아시아의 달’ 문루아만이 할 수 있는 무대죠.”
문루아의 마지막 무대는 뮤지컬에 가까웠다. 아시아 최고 댄스 가수다운 역동적인 군무가 들어 있었다. 거기다가 압도적인 디바의 가창력이 더해졌다. 미국에서나 볼 수 있다 생각한 압도적인 완성도의 무대였다.
“아무래도 지망생급 경력이 이미 아니니까.”
“그럼 선배님은 누가 우승할 거 같으세요?”
노경진 PD가 윤결 PD를 슬쩍 봤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동시에 말해볼까?”
“그래요. 하나… 둘… 셋!”
“권노을!”
“권노을.”
그리고 둘은 피식하고 헛웃음을 날렸다. 뭔가 동질의식을 느낀 탓이었다.
…언더독에 승리를 걸어보고 싶다는, 그런 느낌이 왠지 들었달까?
말하는 사이, 벌써 라이브 시작 1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카운트 다운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관객들의 함성 소리 뿐이었다.
무대 시작이 가까워졌다. 노경진 PD가 침착하게 모두에게 무전기로 지시했다.
“모두 스탠바이. 5초 전! 조명 오프!”
노경진 PD가 지시하자 조명이 꺼졌다. 무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5…
4…
서서히 관객들 사이에서 환호가 끓어올랐다.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3…
2…
1…
조명이 폭죽처럼 터졌다. 사회자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적을 부른다! 슈퍼스타 T! 드디어 대망의 결승 무대 날이 밝았습니다!”
관객들의 비명 소리가 무대를 울렸다. 너무 소리가 커서 피부로 소리가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은 특별히, 마지막 날이니 만큼, TOP4가 평소보다 훨씬 많은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하셔도 좋겠습니다. 심사위원장님!”
노경진 PD가 손짓했다. 바로 천채왕 심사위원의 단독 바스트샷으로 방송 화면을 전환했다.
“네!”
“오늘 무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3주 연속으로 라이브를 준비한다는 일이, 생각보다 굉장히 피곤합니다. 미리 준비할 수도 없게 1주일 전에 미션을 줬고요. 그럼에도 참가자분들이 너무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우선 전하고 싶습니다.”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손을 들어 잠시 진정을 시켜야 했을 정도였다.
관객이 진정되자 천채왕 심사위원이 말을 이어갔다.
“누가 이기든, 오늘, 이번 오디션 사상 최고의 무대가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우선, 참가자들이 마지막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볼까요?”
무대 스크린에 화면이 등장했다. 마지막 소미션을 담은 영상이었다.
‘이거 편집하느라 정말 고생했지.’
영상을 시작하자마자 차 문이 열렸다. 안대를 하고 귀마개를 하고 있는 권노을 참가자가 나왔다. 귀마개와 안대를 풀자 전혀 어디인지 모르겠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주변에는 외국인만 걸어 다녔다. 마치 미국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답답한 권노을 참가자가 바로 한 명을 붙잡고 물어봤다.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가 어디인가요?”
관객들 사이에서 ‘오오~’하는 함성이 들렸다. 권노을이 완벽한 영어로 외국인과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결 작가가 노경진 PD에게 말을 걸었다.
“저 부분 진짜 놀랐죠.”
“그지. 다른 참가자들은 그렇다 치고, 권노을 참가자는 영어 같은 건 잘 못 할 거라 기대했는데. 제~일 잘해 버리던데? 덕분에 예능적으로는 망했지만.”
권노을은 외국인 행인의 도움으로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했다.
TOP4가 떨어진 곳은 미군 기지였다. 권노을 참가자는 능숙한 영어 실력으로 미션을 해결했다. 미군 기지 회관으로 가자 바로 미군 위군 공연이 시작되었다. 기존에 오디션을 하면서 불렀던 팝송 레퍼토리를 부를 시간이었다.
권노을 참가자의 선곡은 오디션 첫 번째 곡, ‘Just Come’이었다.
권노을의 노래에 미군들이 울고 웃고 얼싸안았다.
노경진 PD가 이번에는 먼저 윤결 작가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좀 미친 소리란 거 아는데.”
“뭐가요?”
“권노을 참가자. 그 사이에, 영어 실력이 는 거 같지 않아?”
“설마요! 몇 달 되지도 않았고. 그 사이에 영어 공부 같은 걸 할 시간도 없었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분명히 근데 처음이랑 다른데…”
이들은 설마 그사이에 영어 실력이 늘었으리라고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미군들 사이에서 공연 투표를 했다. 결과는 권노을 참가자의 승리였다.
마지막 소미션을 성공한 덕분에, 권노을 참가자가 순서를 정할 수 있었다. 화면이 순서를 정하는 권노을 참가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이니까. 제가 마지막에 서고 싶어요. 두 번째 시청자 미션 마지막 순서로 갈게요.”
그렇다는 뜻은, 첫 번째 미션에서는 권노을이 첫 번째 순서라는 뜻이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권노을 참가자가 무대에 걸어왔다.
그 옆에는 또 한 명의 가수가 서 있었다. 최고의 발라드 가수 오창선이었다. 그를 알아본 관객들이 더욱 큰 함성을 질렀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카메라가 오창선을 클로즈업했다.
오창선은 손에 뭔가 반짝이는 것을 쥐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