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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왕-58화 (58/280)

제58화

출연을 못 하겠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내일이 결승인데요?”

윤결 작가는 손톱을 이로 깨물고 있었다. 내게 뭐라 대답할 여유도 없어 보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핸드폰으로 오창선에 전화를 걸었다.

“…삐이~”

역시나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또 다른 전화번호로 연락했다. 윤은영이었다.

“…삐이~”

여전히, 답변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Mp3의 기프트 모드를 써서라도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Mp3를 켠 그 순간…

<따르릉 따르릉>

오창선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

* * *

오창선은 의외로 침착했다. 미안하다며, 지금은 통화할 정신이 없다 말했다. 실제로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으면 오라고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 주소도 알려 주었다. 제작진에게는 알려주지 말아 달라는 말과 함께.

방법이 없었다. 제작진에 양해를 구하고 혼자 오창선이 준 주소로 갔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성심 병원이었다.

‘병원은 왜? 누가 아픈가? 오창선 선배는 아파 보이지는 않던데.’

병원에 왔다고 연락하자 금방 오창선이 나왔다.

“진짜 왔냐.”

오창선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부르면 와야죠.”

“오라고 한 기억은 없는데. 진짜~ 죽어도 봐야겠으면 오라 했지.”

오창선이 머리를 긁으며 내 시선을 피했다. 나와 말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지금은 사정을 봐주기엔 시간이 없었다.

“내일 촬영 못 하신다면서요.”

“그렇게 됐다.”

“갑자기 지금 말씀하시면 저는 무대를 준비할 수가 없는데요. 이제 겨우 하루 남았습니다.”

“대타 가수 구하면 되잖아.”

“촬영 분량은 어쩌고요?”

“내일은 니들 무대 많아서. 영상은 몇 개 없어.”

“가창력은요? 선배님 같은 가수를 갑자기 어떻게 하루 만에 구합니까?”

오창선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삐죽하고 나왔다.

본인이 생각해도 미안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오디션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결승전에서 듀엣 무대를 빠진다니, 누가 봐도 너무 큰 피해였다.

오창선이 갑자기 내게 손짓했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오창선을 따라 복도를 지나, 계단을 건넜다. 그 끝은 병실이었다.

오창선이 떨리는 손끝으로 침대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윤은영이 누워 있었다.

“됐냐?”

* * *

오창선과 함께 병실을 나왔다.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도록,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가자마자 오창선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은영이랑 사실 오래된 사이였어. 짐작했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둘 사이를 알게 된 이유를 알려줄 수는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안 하는 게 최선이었다.

오창선은 내 눈빛을 살피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영은이가 오늘 쓰러졌어.”

“왜요?”

또 침묵이 흘렀다. 아무래도 이유를 말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말할 수 없어.”

“그러신가요?”

“미안하다. 그렇지만 이제 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창선은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아무래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려면, 먼저 대화를 더 진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 은영 님과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뭐를?”

“고민이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선배님이 무언가에 깊게 빠져 있는 거 같다고.”

오창선의 눈이 세 배는 커졌다.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은영이가 연예인한테 먼저 말을 걸었다고? 그것도 가수한테?”

“제가 선배와 빨리 친해진 편이라, 믿음이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배님 상태가 이상하다고 상담을 하셨어요.”

오창선은 이제는 다리를 떨고 있었다.

“은영이가 뭐랬는데?”

“은영 님은 선배에게 새 애인이 생겼다고 의심하고 계셨어요.”

오창선이 탄식했다.

“걔는 뭐 그딴 생각을.”

“처음에 본인과 연애를 시작할 때랑 똑같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는 켕기는 게 있는 듯 오창선이 입을 다물었다.

‘그야, 자기가 도박에 사랑에 막 빠진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그래서 제가 연애는 아닌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선배가 다른 애인을 만드시는 타입은 아니실 거 같아서요. 하지만…”

“하지만?”

“왠지, 다른 문제는 있으실 거 같아서, 최근 행적을 살펴보시라고 하셨어요. 특히 조금 언론에서 자유로운 해외여행에서의 스케줄을요.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기자가 많아서 거동이 부자유하시니까요. 여기까지가 제가 아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알려주면 틀림없이 윤은영은 눈치챌 거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오창선이 급격히 도박에 빠졌다는 사실을.

오창선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지?”

“없습니다.”

“은영이가 내 비밀을 알았어. 도박… 이었어.”

오창선이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시늉을 했다. 오창선이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충격이었나 봐. 우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혼절 상태였어. …이대로 은영이를 두고 갈 수는 없어. 얘한테 제대로 사과하기 전까지는.”

대충 짐작한 대로였다.

오창선은 도박에 이제 막 중독된 참이었다. 해외에서 했던 카지노 도박이 점점 버릇이 되었다. 급기야 자신의 외국 국적을 사용해 한국의 카지노에서도 도박을 하다 큰돈을 잃었다. 빚을 갚지 못해 덜미를 잡혔다. 이게 내가 mp3로 발견한 미래였다.

다행히 내가 유은영에게 미리 말해 둔 덕에, 오창선이 큰돈을 잃는 미래는 바뀌었다. 대신, 사실을 알게 된 윤은영이 충격으로 쓰러진 모양이었다. 오창선은 윤은영 덕에 도박을 멈췄다. 덕분에 원래 오늘로 예정된 패가망신도 면했다. 윤은영이 오창선을 구한 셈이었다.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왜 오창선은 도박을 했는가? 잘 나가는 가수인 그가 무슨 근심 걱정이 있다고 도박에 빠졌는지는 도통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왜 미래가 바뀌었는가? 이전 생에서는 분명 오창선은 도박으로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이전 생에서도 도박을 했지만 안 걸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도박을 하는 기세로 볼 때 금방 걸릴 수밖에 없는 수준의 중증 중독자였다. 분명 과거에는 이 정도로 도박에 중독된 적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무엇이 오창선의 운명을 바꾸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말은 최대한 간결하게 했다.

“그러셨군요…”

오창선이 내게 물었다.

“한심하냐? 도박이나 하다 걸리고 그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가?”

“선배는 꿈을 이루셨잖아요. 지금도 수많은 리스너들이 선배만 보고 있는데. 왜…”

오창선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뭐? 야! 니가 나를 알아? 꿈이 이뤄진 다음을 아냐고! 그냥 그래! 아무것도 없어. 가수로 성공하면 존나 좋을 거 같지? 음방 1위 해도 한 10분 좋고. 그걸로 끝이야. 그리고 또다시 자고. 내일 출근이야. 쳇바퀴 도는 삶이야. 더 좆같은 게 뭔지 알아?”

오창선의 목소리가 급격히 격양되었다. 하는 말 또한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말이었다.

“더 이상 이룰 꿈이 없다는 거야. 가수 말곤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꿈이 없다고 시발!”

급기야 오창선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괜히 가수가 아니었다. 감정이 얼마나 급격하게 파도처럼 변하는지, 내가 다 휩쓸릴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해줄 말은 있었다.

“선배.”

“뭐 임마! 크흑…”

닭똥 같은 눈물이 오창선의 볼을 타고 흘렀다.

“선배 아직 못 이룬 꿈이 있잖아요.”

“뭐가 있어 내가! 다들 니처럼 뭐 ‘월드 스타’니 뭐니 하는 허황된 꿈 꾸는 줄 알아?”

“아니요. 은영 님이요.”

오창선이 그대로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었다. 이건 생각 못 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입을 멀리고, 눈은 멍한 채로 굳어서 10초 정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세를 몰아 내가 말을 이어갔다.

“선배, 은영 님 사랑하잖아요? 어정쩡한 상태로 두시지 말고, 그분을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걸 새 목표로 하시면 되죠.”

어느새 오창선은 눈물을 뚝 그쳤다. 호흡은 아직 거칠었다.

“공개? 하라고? 결혼? 그러면 팬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공허함을 채우려고 도박하다 쫄딱 망하는 가수보다야 결혼한 가수가 낫죠.”

물론 공허하다고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창선은 내가 말 하기도 전에 먼저 ‘결혼’이라는 말을 입으로 꺼냈다. 사실은 결혼을 무척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커리어가 무너질까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기피했던 건 아니었을까?

오창선이 조금씩 진정됐다. 눈물은 모두 말랐고, 호흡도 안정됐다.

“선배.”

“왜?”

“저는 이제 다시 합주실로 돌아갈 겁니다. 내일이 연습이라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솔직히, 듀엣 무대 저 혼자 해도 됩니다. 하.지.만. 대타는 비워 두겠습니다.”

“!”

오창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 대답했다. 눈동자가 커지고, 크게 흔들렸다.

“선배가 와주실 거라 믿습니다. 오늘 리허설 하자고는 안 할게요. 내일 최종 리허설 까지만 와주십시오. 내일 오전 11시까지만 오심 됩니다. 믿겠습니다.”

오창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아직도 고민 중인 얼굴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는 운명에 맡길 뿐이었다.

* * *

마지막 날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내 독주 무대는 물론, 듀엣 무대도 혼자 연습했다. 혹시 몰라서 솔로곡도 하나 준비해두었다.

최선을 다한 선곡이었지만 역시나 오창선과 부르는 듀엣곡과 같은 임팩트는 있을 리 없었다.

연습이 끝난 후, 화장실에 들어갔다. 간 김에 mp3를 확인했다. 새로운 특성을 활용해보고 싶어서였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등급: B

설명

: 하루 딱 한 명, 질병 치유나 상태 회복을 할 수 있다.

: 질병이나 상태의 심각성에 따라 재사용 가능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이미 아는 사람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윤은영에게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했다. 화면이 하얗게 변하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윤은영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했다. ‘기절’ 상태에서 ‘정상’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일단 이걸로, 윤은영의 건강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제는 오창선의 마음의 문제만 남아 있었다.

‘마음도 mp3로 삐용! 하고 회복시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 * *

Mp3 사용까지 끝내고 숙소에 돌아오니 자정이 넘었다. 내일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잘 시간이었다.

방에는 문루아만 있었다. 문루아는 이전에 본 에밀리 디킨슨 시집을 계속 읽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안 주무시나요?”

“잠이 안 와서요.”

“아이고. 내일 중요한 날인데. 컨디션 조절하셔야죠.”

문루아가 책을 덮었다. 콘택트렌즈가 아니라 안경을 쓴 채였다. 여지까지 본 적 없는 편한 차림이었다. 화장도 지운 상태였다. 오디션을 치르면서 문루아도 점점 우리에게 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제 오디션이 끝나면 다시는 보기 어려울 모습이었다.

문루아가 내게 대답했다.

“아쉬워요.”

“뭐가요?”

“애드리아나도 함께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나머지 셋은 한 팀이었잖아요.”

“이제는 경쟁자인데요 뭐. 똑같죠.”

“그래도 다르죠. 예전에도 그랬었어요.”

“예전이요?”

“데뷔 초기요. 저 말고 다들 팀이었는데. 저만 솔로였죠. 베이비 선배 정도만 예외였고.”

“솔로니까 수익 정산도 많고 좋지 않나요?”

문루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외로웠어요. 한 팀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처음에는 선생님 원망도 좀 했고요. 이젠 솔로로 자리를 잡아 버렸으니 어려운 일이지만요.”

그러고 보니, 오창선 선배도 원래 밴드로 데뷔했었다. 그러다 솔로로 전향한 케이스였다.

원래 팀으로 시작했던 사람이, 사정이 생겨 혼자 솔로 가수를 하게 되면 외로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야 솔로로도 팀으로도 안 해봐서 잘 몰랐지만. 아니, 오디션 하면서 ‘비원더’로 팀 생활을 해본 건가?’

“저도 팀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이제 저희가 팀이 되면 되죠.”

“네?”

문루아가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저희 TOP4, 함께 무대 내일 하잖아요? 이제 저희가 한 팀이라고 생각하면 되죠. 대신 앞으로 평생 솔로 활동만 하는.”

문루아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풋!’하고 웃었다.

“아… 너무 어이없었나요.”

문루아가 간신히 웃음을 참으려 입을 가리고 대답했다.

“푸후웃! 아 아니에요. 미안해요. 그냥 너무 엉뚱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어요. 기분 나아졌어요. 고마워요. 들어갈게요.”

“네네.”

문루아는 책을 들고 슬쩍 방으로 사라졌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문루아와 달리 내 기분은 여전히 썩 가벼워지지 않았다. 여튼 오창선이 와 줘야 무대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었다.

MP3를 만지작만지작 했다. 내일 미래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mp3를 주머니에 넣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했다. 이제 와서 미래를 안 들 바꿀 방법도 없었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 * *

그리고 대망의 다음 날 아침.

11시, 마지막 밴드 리허설 시간이 되도록 오창선은 오지 않았다. 윤결 작가와 노경진 PD 표정이 하얗다 못해 종이처럼 차가워 보였다.

“...결국 솔로곡 불러야 하나.”

밴드 마스터가 내게 슬쩍 물었다.

“노, 노을이…”

“…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창선과의 듀엣곡 대신, 비상으로 준비해 둔 솔로곡을 하자는 뜻이었다. 밴드 마스터가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며 나를 위로했다.

“힘내.”

“괜찮습니다.”

마이크를 잡았다. 오창선은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이제 내가 혼자서 무대를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그때였다.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합주실 문 쪽으로 갔다. 합주실 문이 열렸다. 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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