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수사는 쉬웠다. MP3를 켜서 오창선이 관여한 미래의 기사들을 살펴보면 족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내가 알게 될 기사였다. 방송국과의 약속도 펑크낼 정도로 심각한 문제니 말이다.
그리고 확신도 있었다. 사람마다 자기 약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오창선의 경우에는, 그게 색욕은 아니었다. 여자가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보는 게 합리적이었다.
미래의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심지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바로 다음 달 기사였다.
제목: 충격! 탑가수 오창선, 도박 혐의로 구속.
역시나 여자는 아니었다. 대신 도박… 이었다.
기사를 살펴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라스 베가스, 마카오 등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많이도 원정 도박을 했다.
도박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오창선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캐나다 이민을 갔었다. 그래서 캐나다 시민권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록밴드도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했었지.’
이게 오히려 안 좋았다. 캐나다 영주권자인 덕에, 한국인은 출입할 수 없는 국내 카지노에도 갔다. 결국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났고, 채무자들이 폭로하면서 모두에게 드러났다.
이게 불과 다음 달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오창선이 도박으로 돈을 크게 잃은 일자를 확인했다. 바로 이번 주 목요일이었다. 즉, 내일이란 뜻이었다. 내 오디션 결승 하루 전날이기도 했다.
서둘러야 했다.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윤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가 알아낸 상황을 전달했다. 윤은영은 허탈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거였나요.
“확인해 보시겠어요?”
-그럴게요.
그렇게 통화를 끝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일단, 이제는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왜 그런 짓을…’
이런 고민을 해 봐야 쓸데없는 짓인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체 왜 그랬는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창선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 * *
밤 11시가 넘었다. 보통은 일정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일정이 남아 있었다. 천채왕 심사위원과의 미팅이었다.
그러고 보면, 천채왕 심사위원과는 방송이 재개된 이후에 처음 대면하는 셈이었다.
오디션을 뮤직넷이 주도했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연락도 자주 주고받았고, 주 2~3회씩 직접 만나기도 했다. 방송을 제외하고 말이다.
TYB 엔터테인먼트가 오디션을 주도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TYB 엔터 수장인 천채왕에게 회사 업무와 심사위원 업무에 더해서 제작자의 책임까지 주어졌다. 업무가 늘어나자 당연히 시간도 부족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천채왕 심사위원이 먼저 연락을 했다. 결승전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며 참가자들과 다과회 약속을 잡았다.
게다가, 녹화는 안 하기로 했다. 다른 스태프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미팅인 셈이었다.
문루아와 환희, 그리고 재호까지 모두 식탁에 앉아서 천채왕을 기다렸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었다.
곧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문이 열리고, 천채왕 심사위원이 수행원과 함께 들어왔다.
“잠깐 기다려줘.”
천채왕의 지시로 수행원은 문 앞에 남았다.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잘 지냈습니다.”
“오셨어요 쌤!”
다들 반갑게 인사했다. 천채왕이 식탁 의자에 무너지듯 앉았다. 털썩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고~ 미안해요. 자주 찾아 왔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없네요.”
문루아가 안부를 물었다.
“선생님, 바쁘시죠?”
“잘 시간도 부족해. 오늘도 차로 가는 동안에 잤다.”
“아이구~”
문루아가 혀를 찼다. 과연, 내가 보기에도 여지까지보다 훨씬 피곤해 보였다.
“프로듀서님.”
“네 노을 군.”
천채왕이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약간 억지로 에너지를 짜낸 느낌이기도 했다.
“대표님은 혹시 일탈하고 싶어진 때가 있으셨나요?”
“일탈요?”
천채왕이 눈을 껌뻑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왜요 노을 군? 요새 일탈하고 싶어요?”
“아, 전 아니고요.”
오창선 때문에 든 생각이었다. 성공한 가수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돈, 명예, 사랑, 모든 걸 갖춘 그가 왜 도박 같은 걸 했을까? 굳이 돈이 더 필요한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미래의 팩트를 MP3로 체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미리 확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를 알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20년 넘게 수많은 가수를 제작했던 천채왕이라면 그 해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가수가 마약이나, 도박이나, 가벼운 성적인 관계나… 다양한 방식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왜 그러는 건지, 대표님이시라면 생각이 있으실까 싶어서요.”
“아하… 그럴 수 있겠네요. 사실 이제 성공의 이면을 배우면 좋을 때에요. 저는 데뷔조 가수들은 모두 철저하게 토론을 하고 이런 트레이닝을 시켜주려 해요. 그런다고 문제가 안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 천채왕 심사위원이 슬쩍 주환희를 쳐다봤다. 주환희가 움찔하고 반응했다. 천채왕 심사위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봐야 후회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저는 가수가 자기의 정체성의 전부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수는 무조건 업앤다운이 있어요. 그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멘탈이 무너져요. 당연히 신경은 써야겠지만, 전부를 걸면 안 돼요.”
“네네…”
좋은 충고였다. 하지만 오창선과는 달랐다. 그는 지금도 전국 투어로 흥행하고 있었다. 최근 히트곡은 점점 줄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활동 중이었다. 무엇보다, 히트곡 몇 개로 먹고사는 건 발라드 가수에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커리어가 위태해진 경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또 있죠. 함께 하라는 거죠.”
“함께요…”
“제가 왜 아이돌 ‘그룹’을 주로 만드는 거 같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댄스 음악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댄서를 팀에 포함시켰어요. 방송국에 전속 무용단이 제 취지와는 좀 다른 춤을 추더라고요.”
“그랬군요.”
“그런데 신기한 게. 팀이면. 물론, 서로 뭉쳐서 저나 회사와 싸울 때도 있었지만. 여튼 서로 의지하고 경쟁하고 하면서 좀 더 오래 가더라구요.”
“어째서일까요?”
천채왕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서로 의지하고 끌어주기 때문인가? 여튼 그래서 ‘혼자서는 오래 가기 어렵다’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저와 대등한 동료들과 항상 함께하고 있고.”
그러고 보니 오창선도 솔로 가수였다. 그리고 밴드로 시작했었다. 나에게도 ‘함께 음악 하는 기쁨’을 강조했었다.
‘혼자여서 문제였던 건가?’
약간의 실마리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 * *
다음 날 오전, 느지막이 TOP4가 함께 연습실로 나왔다. 전날 새벽 늦게까지 천채왕과 고민 상담을 하느라 조금 피곤한 상태였다.
‘하지만 의외였어. 다들 그렇게 미래에 고민이 많았을 줄이야.’
다들 진지한 고뇌를 털어놓았었다. 당장은 오창선 문제 외에, 가수로서의 고민은 크게 없던 나와는 달랐다.
다들, 자기만의 지옥을 안고 살고 있었다.
오늘 오전은 TOP4 합동 무대 마지막 연습이 있었다. 키미 프로듀서가 하우스 밴드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미가 밴드 마스터에게 부탁했다.
“최종 리허설입니다. 오늘은 준비할 게 많으니 바로 시작하죠. 선배?”
밴드 마스터도 거침없이 대답했다.
“오케이. 간다!”
몸을 예열할 틈도 없이 바로 연주가 시작됐다.
곡의 시작은 부드럽게, 재호의 중저음으로 시작했다. 섬세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재호는 고음이 좀 약했다. 어제 재호는 천채왕 심사위원에게 ‘고음 가수가 아닌 내가 솔로 가수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매우 시리어스한 질문이었다. 천채왕 심사위원에 대한 답도 매우 진지했다.
<재호 군은 뮤지션이 되고 싶은 거예요 스타가 되고 싶은 거예요?>
천채왕은 뮤지션이 목표라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편곡 능력도 훌륭하고, 코러스 실력도 있다. 누군가를 받쳐주거나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보여주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실력이라고 천채왕은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불특정 다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목표라면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천채왕 심사위원의 말이었다.
재호의 바톤을 잇는 건 주환희였다. 매우 세련되고 안정된 톤으로 곡의 긴장감을 조금씩 조성했다. 언뜻 아이돌의 창법처럼 보이는 섬세하면서도 대중적인 느낌이었다. 알앤비 가수라기엔 아이돌스러웠고, 그렇다고 아이돌 가수를 하기에는 너무 능숙하고 화려한 느낌이었다.
주환희는 ‘자신이 아이돌 기획사에서 데뷔할 수 있는 나이인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했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TYB의 프로듀싱을 책임지는 사람이니만큼, 이런 질문은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환희는 과감하게 질렀다.
이에 대해 천채왕의 대답은 담백했다.
<앞으로 TYB는 아이돌 그룹만 만들지는 않을 거예요. 가능성만 있다면 다양한 장르의 팀을 하려 합니다. 우리 회사와 지향점만 맞다면 록밴드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환희 군의 최대치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해요. 그게 안 되면, 저희가 오히려 먼저 계약을 풀어줄 거구요. 저희 입장에서도 안 되면, 다른 곳에 투자해야 되니까.>
솔직하고, 약간 냉정해서 오히려 설득력도 있는 위로였다.
후렴은 문루아와 내가 함께 불렀다. 내가 상당히 큰 볼륨으로 노래를 불렀음에도, 문루아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굉장한 가창력이었다. 게다가 따로 맞추지 않았음에도 내 톤에 어울리는 화음을 자연스럽게 깔아줘서 나를 돋보이게까지 해줬다. 한창 요새 대중이 좋아하는 감성의 보컬이었다.
어제, 문루아는 천채왕에게 ‘2년간의 공백 기간 동안 인기가 떨어진 거 같다’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천채왕 심사위원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금 루아는 충분히 대중적인 음악성을 갖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제작을 계속 이 방향으로 하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 회사 스태프를 믿고 갔으면 좋겠어. 걱정하지 말고. 걱정은 내가 하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이미 아시아 스타였던 경력에, 인지도에, 노래 실력, 작곡 실력까지 갖춘 문루아에게도 이런 고민이 있었다.
클라이맥스는 4명의 하모니였다. 누구 하나 튀지 않게, 화음과 리듬을 절묘하게 맞춰서 하나의 목소리처럼 노래를 불렀다.
이전이라면 그냥 나는 마구 내 식으로 노래를 불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오창선의 권유로 미리 제안해서 4명의 호흡부터 벤딩, 발음까지 모든 부분을 맞췄다. 막상 내가 맞추자고 하니까 모두 신나서 음을 맞췄다.
노래를 부르면서 점점 웃음이 나왔다. 기쁨이 차올랐다. 4명이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전율 같은 고양감이 느껴졌다. 이게 오창선 선배가 말한 ‘함께 호흡을 맞춰 노래하는 즐거움’인가 싶었다.
경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대임에도, 너무도 보람찼다.
키미가 처음으로 박수를 쳤다. 항상 까다롭게 디테일을 지적하던 타입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패스였다.
“너무 좋아요! 고칠 부분 있나요?”
키미가 밴드 마스터에게 슬쩍 물었다. 밴드 마스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뭐 완벽한데.”
키미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디테일이 딱딱 맞아요? 꼭 한 팀인 거 같아요.”
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한 팀이니까요.”
경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너무 듣기 좋은 말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을 슬쩍 봤다. 다들 웃고 있었다.
모두 같은 마음인 모양이었다.
* * *
TOP4 합동 무대 연습이 뜻밖에 빨리 끝나서 여유가 생겼다. 바로 모두 자기 솔로곡 및 듀엣곡 연습에 들어갔다.
다음 스케줄은 오창선과의 듀엣 무대 연습이었다. 윤결 작가가 나를 데리러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윤결 작가가 뛰어 왔는지 숨이 턱까지 닿아 있었다. 쎄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지금 연습하러 가야 하는데요.”
윤결 작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게 말했다.
“오창선 선생님이 내일 무대를 못 하겠데요. 방금 통보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