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오창선은 미혼이었다. 항상 청혼 노래를 부르는 발라드 가수가 미혼이다 보니 다양한 소문이 돌았다. 성적 취향에 대한 말부터 유흥에 대한 흉흉한 소문까지 별의별 루머가 다 있었다.
모두 틀렸다.
이전 생에서 코러스로 오창선의 투어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오창선은 자신의 스타일리스트, 윤은영과 사귀는 사이였다. 무명 시절부터 사귀었고, 내가 이전 생에서 죽었을 때까지 사귀었으니 20년 가까이 관계를 유지했던 셈이었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는지 물을 때면 오창선은 항상 질문을 회피했었다.
[야야. 결혼? 뭐 그렇지. 야 다른 얘기 하자 다른 얘기 하자. 노을이 넌 누구 안 만나냐?]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오창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여자친구 윤은영이었다.
‘뭐 사랑한다고 꼭 결혼해야 한다는 법은 없긴 하니까.’
여하튼, 그렇게 뜻깊은 관계인 윤은영이 지금 내 차 앞에 서서, 차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안녕하세요. 윤은영이라고 합니다. 오창선 님 스타일리스트입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창선 오빠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러셨군요.”
“한 번 봤을 뿐인데. 오랜 친구 같다고 하더라구요.”
윤은영이 환하게 웃었다. 이전 생에서도 자주 봤던 웃음이었다.
“아, 다행입니다.”
오창선이 내게 호감을 느끼는 건 맞는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오빠, 연락 잘 안 되죠?”
“네네.”
“죄송해요. 지금 빨리 오는 중이라고 연락 왔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거 드세요.”
윤은영이 뭔가를 꺼내서 내게 줬다. 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이전 생에서 알던 내용이었으니까. 그래서 모르는 척 물었다.
“이건 뭔가요?”
“창선 오빠 부모님 농장에서 직접 담근 사과 차에요. 목 보호에 좋데요. 드세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윤은영이 떠나갔다. 막내 작가가 살짝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사람 왜 저래? 사모님도 아니고…”
나는 그냥 싱긋 웃어 보였다. 사실상 사모님과 가까운 위치라는 건 비밀이었다. 그냥 나만 알고 있는 비밀로 담아 두기로 했다.
“꿀꺽꿀꺽.”
사과 차를 마셨다. 이전 생에서 자주 마셨던 따뜻하고 달콤한 맛이었다.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오창선이 연습실에 도착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뭐라 말할 시간도 없었다. 바로 연습을 진행했다.
오창선은 역시나 레전드 가수였다. '드럼과 심벌즈' 원곡은 그야말로 레전드 보컬의 듀엣이었다. 금속성의 거친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알앤비의 부드러운 느낌까지 가미한 독특한 톤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나도 질세라 최대한의 실력을 발휘했다.
<심벌즈만 있으면
리듬이 없어.
드럼만 있어도
그루브가 깨져.
함께하면 이렇게 즐거운데.
신이시여, 비트를 멈추지 말아줘요.>
오창선이 록 보컬이라면 나는 알앤비, 소울 보컬이었다. 내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리듬감을 살려서 노래를 불렀다.
원곡을 생각나지 않게 불러야 했고, 같이 듀엣을 부르는 오창선에 밀리지도 말아야 했다. 나는 그 해답을 나의 톤과 리듬감에서 찾았다.
가장 중요한 건 오창선과 함께 부를 때였다. 적절한 성량을 맞춰서, 함께 호흡을 맞춰서 불러야 했다.
<드럼과 심벌즈
함께 춤춰요.
영원히 계속될 그루브
이제 함께해요.>
처음으로 함께 완곡을 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오창선이 내게 말했다.
“노을이.”
“네!”
“조오오오온나 잘하네.”
“아 네… 감사합니다.”
오창선 특유의 거친 입버릇의 칭찬이 나왔다.
<노을이 조오오올라 잘하네! 미친 거 아니야?>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던 코러스 시절, 나를 지탱했던 게 오창선의 저 거친 칭찬이었다.
기분이 확 좋아졌다.
오창선이 녹음물을 들어봤다.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스튜디오에서 녹음 장비를 만지는 엔지니어가 장비를 조작하는 소리만 살짝 들릴 뿐이었다.
“음. 거기 다시 들려줘. 4초 전에. 어어.”
꼼꼼하게 나와 함께 들었던 녹음물을 들었던 오창선이 말했다.
“노을이 너.”
그러면서 나를 콕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넵.”
“완벽하네. 흠잡을 게 없어. 완벽한 소울 알앤비 보컬이야.”
“감사합니다.”
선배 레전드 가수인 오창선의 칭찬은 또 다른 각별함이 있었다.
천채왕이나 키미 같은 제작진의 칭찬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좀 달랐다. 그들은 어쨌든 나와 ‘다른’ 타입의 사람이었다. 가수와 함께하면서 돈을 버는 조력자들이었다.
오창선은 달랐다. 그는 레전드 선배 가수였다. 노래를 부른다는 게 무엇인지 정말 잘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큰 의미에서 나의 경쟁자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직접 내 노래를 인정하자 그 의미가 또 각별했다.
오창선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뭘 개선하면 좋을까요?”
오창선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헤드폰도 앞의 탁자에 놓았다.
“너는 완벽하다니까? 개선할 건 없어.”
“그렇다면?”
“우리 둘의 호흡의 디테일이 하나도 안 맞아.”
“아.”
호흡의 디테일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어디서 숨을 쉬는지. 같이 노래를 부를 때 얼마큼 노래를 끌지. 그때 어떤 발음으로 부를지. 어떤 감정으로 끝음을 처리할지. 같은 걸 다 맞추는 게 좋아. 그래야 듣는 사람이 한 곡이구나~ 하고 느껴. 지금은 서로 다른 두 곡을 겹쳐서 듣는 느낌이야.”
“그렇게까지요?”
“…”
오창선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원래 그런 거야. 한 팀이잖아? 이전에 비원더로 3명 미션 할 때는 잘만하더만.”
“아.”
사실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맞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오창선은 내가 지금껏 했던 ‘비원더’무대는, 그런 디테일이 모두 맞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저는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요.”
“그랬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맞춰 준 거야.”
“맞춰줬다고요?”
“그래. 니 버릇이나 디테일을 보고, 남들이 너처럼 불러준 거야.”
“아…”
생각지도 못한 발견이었다. 여지껏 재호와 환희가 내게 맞춰줬던 거였다니.
“뭐 남들이 맞춰주면 그것도 좋아. 실제로 나도 코러스들이 다 나한테 맞춰. 까라면 까는 거지. 내가 디테일을 하나하나 일일이 다 지시하거든.”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다. 오창선의 코러스이던 이전 생에서 오창선은 정말 세세한 디테일까지 다 정해두고 지시했다. 어디서 숨을 쉴지부터, 어떤 발음으로 얼마큼 음을 끌지까지 모두 정해진 대로 불렀어야 했다.
오디션에서 메인 가수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그 시절을 잠시 잊고 있었다.
오창선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코러스 경험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 걸 모르는 게 당연한 거지.”
‘코러스 10년 차인데요. 그것도 당신 코러스.’
물론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네넵.”
“남이 너한테 맞춰주는 가수만 하면 뭐가 문제냐 싶을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야. 그렇게 부르면 한계가 있어.”
대충 짐작이 갔다.
“노래에 한계가 생기겠죠?”
디테일한 부분에서 코러스들이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아는 가수만이 코러스를 잘 활용할 수 있었다. 그게 오창선의 강점이기도 했다.
오창은 아마 내게 코러스의 마음을 가르치려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창선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아니? 뭐 그런 거야 좋은 스태프 만나면 되지. 가수가 꼭 직접 코러스를 운영할 필요는 없잖아? 다른 사람이 하면 되지.”
“아 그게 아닌가요?”
“그보다는 노래의 재미랄까?”
“재미요?”
전혀 뜻밖의 이야기였다.
“서로 호흡을 조율하고. 디테일한 부분의 퍼즐 조각을 맞추고. 그렇게 같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느껴지는 희열 같은 게 있어. 남들이 다 맞춰주면 그런 기분은 절대 못 느끼지. 노래하는 사람이 그런 기분 못 느끼면 억울하잖아? 나야 밴드로 시작했으니까 그런 재미에 익숙한데. 솔로 발라드, 알앤비 하는 애들은 코러스나 콰이어 안 하면 그런 재미를 모르기도 해.”
“네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노래를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대한 쾌감이었고, 나를 좋아해 주는 타인의 칭찬과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면서 얻는 기쁨이라니. 그런 건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그럼 한번 디테일하게 맞춰 볼까?”
“네넵. 부탁드립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일단 부딪쳐 보면서 배워보면 될 것 같았다.
* * *
일일이 호흡을 배려해서 불렀던 적도 있었다. 이전 생에 코러스 시절에서였다.
그와 반대로 완전히 내 멋대로 불렀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에 권노을의 오디션이었다.
서로 상의하면서 일일이 디테일을 맞추고, 내 의견도 상대방의 의견도 아닌 중간점을 타협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처음이었다.
사실 아직은 희열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어색했다.
“잠깐 쉴까?”
“네넵!”
슬쩍 시계를 봤다. 11시가 넘어갔다.
연주자들과 엔지니어들은 담배를 피러 가거나, 화장실을 가는 등 녹음실을 떠났다. 오히려 오창선과 나만 남았다.
“넌 담배 안 피냐?”
“안 피웁니다. 목에 안 좋으니까요.”
“별나네. 가수들 대부분 피자네?”
“대부분… 인가요?”
“우리 때는 대부분 폈지.”
“선배님은 왜 안 피시나요?”
“별로 입으로 들어가는 거에 중독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오창선은 맹물을 쭉 들이켰다.
그러고 보면 오창선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중독에 대한 내성이 좀 약한 편이었다. 좋은 의미에서 그는 일단 음악 중독자였다.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다섯 봉지씩 먹었던 적도 있다. 껌도 너무 씹다가 턱이 안 예쁘게 굳을까 봐 윤은영이 금지시킬 정도였다.
“그러시군요.”
“음악에 중독되는 게 좋지! 자기 하는 일에 중독되는 게 최고야.”
“그럼요.”
맞장구치면서 자연스럽게 오창선 옆 소파에 앉았다. 나도 오창선을 흉내 내며 냉수를 한 잔 들이켰다.
“너 근데, 이거 말고 노래 뭐 하냐?”
“TOP4 단체곡이 있고요.”
“뭐 할 건데?”
“김철현의 ‘앙코르를 마치며’요.”
“잘됐네.”
“어떤 것이 잘된 거죠?”
“보컬팀 노래를 부른다는 거 말야. 거기 아카펠라 그룹이자네?”
“맞습니다.”
“그럼 아마 곧 조율을 배우게 될 거야. 서로 화음을 맞추고. 볼륨 조절하고. 끝음 처리나 애드립 같은 디테일을 맞추고.”
“아…”
아카펠라 그룹은 당연히 목소리 사이의 호흡이 중요했다. 오창선이 알려 준 비법을 바로 당장, 내일부터 연습에서 써야 하는 셈이었다.
“당장 오늘 배운 거 써먹으면서 배우면 되겠네. 그래야 금방 배우지.”
“네넵. 조언 감사합니다.”
오창선이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이번 생에는 이제 겨우 두 번째 본 사람인데, 십년지기처럼 친밀했다. 뭐, 나는 이전 생부터 치면 십년지기가 맞았지만 말이다.
“뭐 그런 거 가지고. 이왕 나랑 한 편 먹는데 우승해야지 인마. 미션곡이 하나 더 있다고 했지?”
“네.”
“그건 뭐야?”
싱긋하고 웃음이 나왔다.
“’돌아서겠소’요.”
“뭐? 내 곡이자네?”
“네네.”
“야~~ 너 어떻게 편곡할 거야? 짐작도 안 된다 야. 얘기해봐!”
이후로 오창선은 신나서 내 편곡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리듬으로 편곡할지, 키는 어떻게 바꿀지, 무대는 어떤 식으로 연출할지 등등을 세세하게 다 알려주었다. 오창선은 눈을 반짝이며 다 들었다. 이윽고는 매우 디테일하게 원곡의 감정과 기획 의도, 그리고 내가 살려야 하는 부분과 버려야 하는 부분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너무 많이 키체인지를 하는 건 나는 비추. 노래 전반적으로 멜로디가 스트레이트해서 그 맛으로 부르는 게 좋아. 삘링이야 노을이 니 식으로 소울 느낌으로 가더라도.”
“알겠습니다.”
“연습하다 모르는 거 있으면 또 물어 보구. 알았지?”
“네네.”
확실히 좀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후배 가수 입장에서 만난 오창선은 의지가 되는 선배였다. 특히 자기 일에는 열정이 넘쳤다.
‘PD가 걱정했었지 아마? 오창선이 그렇게 신인 가수를 쥐잡듯이 잡는다고.’
내게는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오히려 최고의 아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는 몰랐다.
오창선에게, 내가 모르는 엄청난 파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