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52화 (52/280)

제52화

“뭘 해요?”

“쭈 너잖아. 조이월드에 폭로한 거.”

주하늘이 침묵했다.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눈이 두 배는 커졌다. 땀을 뻘뻘 흘렸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니 얼굴 표정에 다 쓰여 있어.”

재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mp3로 이미 상황을 읽고 있었지만, 예상외로, 주하늘은 연기를 잘 못 했다. ‘아폴로 빈’ 관련 일에는 유독 감정을 조절하지 못 하는 걸로 보였다.

주하늘은 고개를 떨궜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후회하고 있는 거잖아? 그럼 사과를 해야지. 아폴로 빈한테. 언젠가는 니가 폭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는데? 천채왕 프로듀서가 찾으려고 하면 못 찾을 거 같아?”

“큭…!”

연예계의 대부. 프로듀싱의 신. 천채왕의 이름에는 주하늘도 동요했다.

하지만 사과하라는 내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하늘 입장에서 잠시 생각해봤다. 지금 주하늘은 무슨 생각을 할까? 뭐가 가장 걱정일까?

이미 주하늘은 후회하고 있었다. 자기 집안이 가장 힘들 때, 구해준 은인의 등을 자기 손을 찌른 셈이었다.

그가 망설이는 건 사과할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과를 받아줄까 싶어서 망설이는 거라 보는 게 맞았다.

주하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조금 도와주면, 분명히 발을 딛을 수 있어 보였다.

“지금 해라.”

“네?”

“너 후회하고 있잖아.”

주하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누가 봐도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맞아요…”

재호가 나지막이 물었다.

“왜 그랬어? 내가 니 친형도 아니고 훈계하려는 거 아니구.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래.”

“몰라요. 그냥 항상 주는 거 없이 미웠어요. 빈 형이.”

주하늘은 대답하면서 훌쩍거렸다.

나도 주하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도 실패한 가수 지망생 생활을 오래 해봤으니까 말이다.

실패가 계속되니, 내가 부족해서 실패한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핑곗거리를 찾았다. 나의 경우 이윤강 PD였다. 물론 방송을 조작한 나쁜 놈이었지만, 내가 진짜 될 놈이었다면 오디션 2위면 충분히 가수가 가능했다. 내가 이전 생에서 가수가 못된 건, 결국 내 그릇이 그 정도라서였다.

아마 주하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저렇게 마구 연애하는 티 내는 사람도 되는데 나는 왜 안돼?’라는 억울함이 분노로 터지는 걸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해가 되니, 도와주고 싶었다. 회사, 특히 PR팀이나 천채왕 등 경영진만 모르면 어떻게든 수습이 가능했다.

“지금 사과하라고. 지금이 제일 빠를 때니까. 전화로 하지 말고 직접 가서 말해. 지금 말하면, 그냥 별일 아닌 걸로 넘어갈 수 있어. 바로 아폴로 빈한테만 말해. 회사에는 절대 말하지 말고. 차 불러줘?

주하늘이 잠시 침묵하다 힘없이 대답했다.

“네…”

제작진에게 차 한 대를 달라 전화로 요청했다. 주환희가 TYB 관련 업무 때문에 잠시 가봐야 한다 말했다. 윤결 작가는 큰 고민 없이 차량 한 대를 제공해 주었다.

차를 타고 가기 전, 주하늘이 모기 기어가는 소리로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형.”

잔잔했지만 목소리에 약간의 단단함이 왠지 느껴졌다. 끝 음이 좀 더 분명해졌달까? 뭔가 주하늘의 미래에 희망이 보였다.

* * *

주하늘이 나가자마자 mp3로 주하늘의 미래를 확인했다. 사과의 결과가 어떨지가 궁금해서였다.

검색하고 검색하고 검색해봐도 없었다. 확실했다.

TYB의 주하늘 방출 기사가 사라졌다.

“휴우~”

긴장이 쭉 풀렸다. 이제 문제가 일단락되었다 생각하니 힘이 쫙 빠졌다.

‘이제부터 주하늘은 어떤 인생을 살까? TYB와 화해해서 드디어 가수로 데뷔하려나? 아니면 여전히 작곡가의 삶을 살까?’

Mp3를 만지작만지작했다. 찾으려고 하면 충분히 주하늘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피식 미소가 나왔다. Mp3의 ‘Gift mode를 해제했다.

위험 상황은 해결했다. 이제부터는 주하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앞으로의 미래는 굳이 몰라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그편이 더 재미있을 거 같았다.

‘mp3에 중독되면 안 되지.’

Mp3를 주머니에 넣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완전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재호는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있었다. 주하늘을 보고 생각할 구석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한 명이 더 있었다. 문루아였다. 어느새 완벽하게 세팅을 끝낸 채로, 탁자에서 해독주스를 마시며 독서 중이었다.

탁자에 앉자 문루아가 나를 보고 책을 덮었다. 슬쩍 책을 보니 에밀리 디킨스 시집이었다. 무려 영어 원서였다.

“원서를 다 보세요?”

“시는 번역이 안 되잖아요. 시집이 작사에 도움이 돼요.”

하긴 문루아는 13살에 연습생을 시작했다 들었다. 춤 노래뿐 아니라 외국어까지 완벽하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목표는 월드스타인데, 영어 스탯도 올려야 하나? Mp3로 그런 거도 되는지 확인해봐야겠네.’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사이, 문루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좋은 어드바이스였어요.”

“뭐가요?”

“환희한테 하신 말이요.”

문루아는 계속 2층 방에 있었다. 아무래도 2층에서 우리가 했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는 게 확실해진 이상 발뺌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주환희가 TYB로 간 이상, 어차피 TYB의 핵심 멤버인 문루아에 귀에는 들어갈 거라 보는 게 타당했다.

“그럴까요?”

“아폴로는 환희가 사과만 하면, 회사에 알리지 않을 거예요.”

내 조언이 다행히 정답이란 소리였다.

“다행이네요.”

“왜 경쟁자를 돕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문루아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장난을 친다는 느낌이었다.

“하하 뭐… 회사랑 환희 관계가 저랑 상관은 없으니까요.”

웃으면서 시선을 돌리자 재호가 보였다. 재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표정이 진지해서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뭘 보냐 너?”

“다음 미션.”

“다음 미션이 홈페이지로 나와?”

“지난 라이브 때 사회자님이 말했잖아. 경연곡 중 하나는 시청자 투표로 정한다고.”

“그러고 보니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주환희와 내 선곡 신경 쓰느라 다음 미션까지는 미처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문루아도 호기심이 든 모양이었다. 모니터를 보러 나와 재호 뒤로 슬쩍 걸어오며 말했다.

“오 결과 벌써 나왔어요?”

“아, 오늘 정오에 마감입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투표 결과를 슬쩍 확인했다.

“음…”

딱히 뭐라 이야기할 것도 없었다. 정말 대중이 딱 잘 아는 곡들이라는 느낌이었다. 내게 추천하는 곡들은 발라드의 정석 ‘만나고 싶다’나 시티팝 느낌의 팝 ‘오늘이 지나면’ 록 발라드 ‘돌아서겠소’ 등 전형적인 대중적인 노래방 히트곡들이었다.

“어때요?”

문루아가 내게 슬쩍 물어봤다.

“글쎄요. 너무 유명한 곡들이고. 너무 가창력 자랑하는 곡들이라 오히려 무대에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가창력 자랑할 때 쓰는 곡들이긴 하네요.”

문루아 덕에 다음 주 선곡을 미리 고민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조금씩 무대 구상을 시작했다.

마지막 경연은 개인 무대 두 개, 그리고 단체 무대 하나를 준비해야 했다. 훨씬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머릿속에서 무대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 * *

오전 스케줄이 시작됐다. 이제는 익숙해진 스케줄이었다. 헬스로 시작해서 보컬 트레이닝, 밴드와의 협주 등이 계속되는 스케줄이였다. 숙소에 돌아온 이후 3주째 계속 이런 일정을 소화했다.

운동 시간에 주환희도 들어왔다. 밝은 표정이었다. 슬쩍 주환희에게 물어봤다.

“어땠냐?”

“좋았어요 횽.”

“잘됐네.”

주환희는 기쁜 표정으로 미팅 이야기를 했다. 아폴로 빈은 이미 대충 알고 있었다. 아폴로는 이 기사가 아니어도, 이미 회사와 상의해서 잠정적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었다고 했다. 누구도 피해는 없었다며,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횽이 저한테, 꼭 이번에 데뷔하라고 그래써요. 그 말 할 때는 정말이지…”

항상 쿨했던 주환희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주환희는 주하늘이 연기로 만든 배역이었다. 그럼 저 눈물도 거짓이란 뜻인 걸까?

“그 말투는 계속할 거냐?”

주환희는 슬쩍 카메라를 쳐다봤다. 다행히 헬스 미션 이후에는 헬스 중에는 카메라는 없었다.

“네. 대중이 제 이런 모습을 좋아 하니까여. 저도… 주환희가 좋고여. 오히려 주환희가 더 리얼한 저 같을 때도 이써여.”

주환희는 어느새 눈물을 싹 지우고 평소의 경쾌한 말투로 답했다.

뭔가 이제는 이 녀석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연기를 하다 보니 점점 주하늘 본인이 주환희 같은 면모가 생겼다. 게다가 주하늘의 마지막 유산이던 ‘데뷔하지 못해 회사와 아폴로 빈에게 삐진 자신’마저 사라진 지금, 주하늘에게는 정말로 주환희의 면모가 보였다.

이제는 환희의 내면이 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 쭈, 마지막 무대 잘 해보자.”

“고마워요 횽.

* * *

오후에는 언제나처럼 합주 연습이 있었다. 정오가 지났다. 그 말은 선곡 투표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제작진이 ‘시청자 선곡 미션’ 결과를 전달했다. 내 선곡은 ‘돌아서겠소’였다.

“끄응.”

투표 상위권에 있는 곡들 대부분 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곡이 가장 골치였다. 내심 이 곡은 안 되길 바랐었다. 여지없이 가장 까다롭다 싶던 곡이 걸렸다.

천천히 전체 곡을 들어봤다.

<돌아서겠소

그대의 마음이 그렇다면

떠나주겠소

그대를 위하는 것이라면>

뭔가 내 감성에 안 맞는, 마초냄새 가득한 90년대 록발라드 곡이었다. 정서적으로 내가 그동안 일부러 부르지 않았던 ‘남자 남자 록발라드’를 딱 마지막 결승에서 만난 셈이었다.

음악으로도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음악과 전혀 달랐다. 여지껏 나는 알앤비, 혹은 깔끔한 팝발라드를 주로 불렀다. 특히 리듬감이 있는 노래를 선호했다.

록발라드는 내가 해왔던 음악과는 전혀 달랐다. 투박하게까지 느껴지는 정박의 리듬과 강렬한 기타 리프, 후렴에 쭉쭉 뻗는 고음 등 여지껏 내가 해왔던 무대와 많이도 달랐다.

문제가 있었다. 이 곡은 너무 전형적이었다. 전형적이어도 너무 전형적이었다.

피아노로 잔잔하게 시작하는 전주 부분부터 후렴에 터지는 기타 반주, 후렴 후의 기타 솔로, 터지는 고음까지 모두 전형적인 록발라드였다.

그대로 부르면 승산이 없었다. 원작자도 전설적인 레전드 보컬이자 내가 코러스를 했었던 오창선이었다. 같은 편곡으로 원작자의 그림자를 지우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다른 편곡으로 바꾸자니 이 부분도 골치였다. 너무 전형적인 록발라드라 바꾸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해봐도 저렇게 해봐도 어색했다. 애초에 주 멜로디 자체가 너무 전형적인 록발라드이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봤다. 지금은 문루아의 밴드 합주 시간이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이었다. 그 안에 편곡 계획을 세워 두어야 했다.

여지까지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편곡 고민을 할 시간이 있었다. 그래 봐야 내가 준비할 무대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무대를 두 개 준비해야 했고, TOP4 합동 무대까지 준비해야 했다. 첫 미팅부터 편곡에 확고한 방향을 잡고 가야 했다.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20분 안에 가능할까?’

피아노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던 순간,

[우웅 우웅. 우웅 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동생이었다.

“여보세요?”

-뭐하는 거야 오빠!

“뭐가?”

-오늘 아침, 통화하는 날이었잖아!

아차.

원래 매번 경연 다음 날 아침은 꼭 동생과 통화를 했다. 매번 이렇게 통화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환희 관련으로 여러 일을 하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다.

“아 놓쳤네 미안 미안.”

-아휴~ 정말!

동생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입시 막판이다 보니 동생도 스트레스가 많았다. 내가 들어 주기만 해도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통화가 끝나갔다. 동생이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이잖아? 무대 준비는 잘 돼?

살짝 고민했다. 괜히 동생에게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 약간의 침묵의 틈을 동생은 예민하게 포착했다.

-뭐가 잘 안 되는구나? 말해봐. 말해봐.

“말하면 뭐 알겠냐. 니가 편곡 고민을 해봤어?”

-매일 하지~ 야 권노을! 나 음악 전공이야! 국악 무시해?

“아.”

그 말을 듣자마자 편곡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0분이 남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 * *

밴드 합주 준비를 간신히 완료했다. 준비된 계획을 맞춰보기만 하면 됐다. 흡족한 계획이었다.

편한 마음으로 밴드 합주실로 가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권노을 참가자!”

윤결 작가였다.

“네네.”

“밴드 합주 끝나면, 바로 입구로 와주세요. 손님이 있어요.”

“손님이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네, 다음 미션 중 하나가 ‘기성 가수와 듀엣 미션’이라서요. 권노을 군과 함께 듀엣 할 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신데요? 비밀인가요?”

윤결 작가가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내게 낮은 목소리로 슬쩍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오창선 씨랑 듀엣 할거에요!”

오창선?

내가 이전 생에서, 코러스로 활동하며 옆에서 지켜본 그 오창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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