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51화 (51/280)

제51화

아폴로 빈과 주환희.

둘은 연습생 동기였다. 작사와 작곡이 특기인 주환희와, 뮤직비디오 연출과 무대 연출에 초반부터 재능을 보였던 연습생 시절의 독고빈은 주환희의 단짝이었다. 둘은 함께 연습생 시절부터 자작곡, 자작 뮤비를 선보이며 화제를 끌었었다.

그런 둘의 운명은 얄궂게 엇갈렸다. 아폴로 빈만 TYB의 보이밴드 ‘천신군단’에서 데뷔한 것이다. 주환희는 다시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을 계속했다. ‘슈퍼스타 T에 출연할 때까지 연습실에 틀어박혀야 했다.

주환희라면 아마 훌훌 털고 일어났을 거다. 하지만 주환희는 진짜가 아니었다. 주환희의 내면 속 주하늘은 빈정이 상했을 거다. 왜 자신은 안 되고, 아폴로 빈은 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되물었을 터였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주환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mp3를 확인했다. 오늘 오전에 올라올 예정인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고대현 기자의 특종 기사를 슬쩍 확인했다.

계획대로였다.

Mp3를 닫고 화장실 바깥으로 나왔다. 언제나처럼 재호가 먼저 일어나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들려왔다.

하나,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주하늘이 일어나서 식탁에 앉아 있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내리고, 표정도 생기가 없어 보이는 것이, ‘주하늘’인 모양이었다.

“웬일이냐 쭈?”

“일찍 일어나 보려구요.”

“그냐.”

거짓말이었다. 본인이 찔러넣은 아폴로 빈의 기사를 오매불망 기다리느라 일찍 일어난 게 분명했다.

슬쩍 찔러봤다.

“그러고 보면 쭈, 너는 넵튠 한 심사위원이랑 같이 연습생 생활했지?”

“맞아요. 넵튠 형은 워낙 오래된 연생이어서 접점은 없지만요.”

“나이 차도 좀 많이 나니까.”

“그죠. 아무리 같은 연생이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재호가 직접 요리한 토마토 계란 볶음을 접시에 담았다. 식탁에 앉아서 슬쩍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천신군단이랑 같이 연습 생활한 줄은 몰랐네. 그럼 거기서 누구랑 제일 친했어.”

‘재호 나이스!’

딱 내가 몰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대화가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막내 라인 멤버들이겠죠? 머큐리 정, 발카노…”

“아폴로 빈도?”

주하늘 표정이 굳었다. 주환희 연기는 뻔뻔하게 하더니만, 한 번 주하늘의 정체성으로 돌아다니니 영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툴렀다. 아마 주하늘로 살 때는 연기를 별로 못 해본 것 같았다.

“뭐 그죠.”

재호가 살짝 호들갑을 떨었다. 재호는 남자다 보니 남돌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아폴로 빈은 아는 이름인 모양이었다.

“와 그 뮤비 만드는 멤버지? 천신군단 모든 뮤비를 그 친구가 만들었다며.”

주하늘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촬영 감독님 있고, 안무팀 있고, 미술팀 있는데요 뭐.”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짜증이 보였다.

슬쩍 주하늘을 자극해봤다.

“아폴로 빈 좀 위험할 거 같은데?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뭐가요?”

“조이월드에 안 좋은 소문 돌던데. 연생 때부터 티 내면서 재벌 4세랑 연애한다고.”

주하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게 주하늘이 고대현 기자에게 제보한 기사 내용이었다. 금융 대기업 고전 캐피털 오너 집안 4세와 연습생 시절부터 사귀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암묵적으로 팬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했던 내용인 모양이었다.

주하늘이 이 기사를 제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다음은 쉬웠다. 확인해 보니 주하늘이 다른 사람인 양, 조이월드에서 아폴로 빈의 연애 행각을 고발하는 글을 쓴 흔적을 확인했다. 지금 나는 주하늘이 썼던 조이월드 게시글을 우연히 본 사람인 척 주하늘을 떠보고 있었다.

주하늘이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내 말에 대답했다.

“그, 그래요?”

“너는 연습생부터 잘 알았다며. 맞아?”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그렇게 많이 알려졌다니 어쩔 수 없겠죠. 사실이에요.”

주하늘은 짐짓 자기가 비밀을 엄수하는 사람인 양 뜸을 들이더니, 결국 술술 내용을 불었다.

“무슨 봉사활동 같은 데서 만났다나 봐요. 팬들 시선을 조심하라고 다들 말했는데. 자제가 안 되나 보더라구요.”

마치 남의 일인 마냥, 주환희가 술술 불었다.

이제, 주환희를 조금 몰아세울 차례였다. 어차피 곧 있으면 기사가 나올 예정이었다.

“이거, 조이월드에 누가 올린 거지? 정황상 내부인인 거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주하늘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그냥 놓아 줄 생각은 없었다.

“증거 사진 각도도 그렇고. 하는 말도 그렇고. 연습생이거나, 신인 개발팀 직원이거나, 프리랜서 코치거나. 셋 중 하나일 거 같네.”

“모, 모르겠네요.”

“그래. 어차피 뭐, 나까지 보게 된 거, 누가 썼는지 알게 되겠지.”

“네? 음, 아니. 왜, 왜요?”

처음에 주하늘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그게 어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목소리를 가다듬고 침착한 척 내게 질문했다.

이미 나는 물론이고, 재호까지도 눈빛으로 대충 눈치를 챘다. 누가 봐도, 주하늘이 쓴 글이었다.

“이런 기사가 나왔다면. 당연히 누가 썼는지 확인해 보겠지. 내부인이라면 문제가 되니까.”

“누가 썼는지 알 수가 있어요?”

재호가 슬쩍 거들었다.

“당연하지. 인터넷이 더 쉽다구. Ip 주소가 남기 때문에 특정하긴 더 쉽지.”

“으음… 그래도. 그런 내부 고발은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팬과의 약속을 깬 거잖아요? 그런 건 말해 줘야죠.”

“내부자면 문제가 되지. 먼저 말을 했어야지.”

“말을 한들 되겠어요?”

“여튼 뭐 이 정도까지 게시글이 돌아다닐 정도면 언제든 이거 받아 쓴 기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네. 재벌가랑 연애한다는 기사 나오면 아폴로 빈은 파멸이겠지?”

불쑥, 마당에서 누군가 목소리가 들렸다.

“빈이 망하는 거여?”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는 주하늘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려 잠시 들리신 모양이었다.

“엄마?”

“빈이 망하는 거여? 그럼 안돼! 니가 막아라! 막어! 어떻게든!”

“무슨 말이야 엄마!”

주하늘의 어머니는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독고빈의 이야기를 했다.

사실 아폴로 빈, 그러니까 독고빈은 연습생 시절에 주하늘과 가장 친한 연습생이었다. 주하늘의 엄마와도 관계가 있었을 정도였다.

주하늘의 어머니는 3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희귀한 암으로 쓰러졌을 때, 독고 빈이 자신의 수술비를 전액 부담했다는 이야기를.

이제껏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주하늘은 먼 친척이 수술비를 대줬다고 알고 있었다. 사실 돈의 출처는 독고 빈이었다. 회사를 통해 주하늘의 사정을 알게 된 독고 빈이 주하늘 엄마의 수술비를 선뜻 내줬다.

말을 들은 주하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걸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

주하늘 어머니도 지지 않고 맞섰다.

“빈이가 절대 말하지 말라켔어!”

“아들한테 숨겨? 아오~~”

주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럴 만했다. 자신이 엄마의 생명의 은인인 친구의 등을 찌른 꼴이 됐으니까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오전 11시가 되었다. 기사가 나올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으로 아폴로 빈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다들 노트북 앞으로 와서 기사를 확인했다.

[제목: 아폴로 빈 결혼 이어 2세 소식까지 ‘겹경사’]

아이돌 그룹 ‘천신군단’의 멤버 아폴로 빈이 결혼 발표에 이어 출산 소식까지 전했다.

아폴로 빈은 지난 5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내년 3월에는 아버지가 됩니다.”라고 밝혔다.

결혼과 2세 탄생 등의 이슈와, 아티스트 본인의 의사에 따라 당분간 아폴로 빈은 천신군단 활동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약속한 대로 천신군단은 오는 12일, 콘서트를 예정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아폴로 빈 또한 관객으로 방문 예정이다.

“……!!!”

모두들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침묵했다. 기사에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내가 손을 써둔 기사였으니까.

* * *

Mp3로 관련 내용을 모두 확인했다. 아폴로 빈의 기사뿐 아니라, 주하늘이 슬쩍 올린 조이월드 기사까지.

더 중요한 건, 그 이후 결과였다.

당연히 아폴로 빈은 연예계 생활에 치명타를 입었다. 아니, 연예인으로서는 사망했다. 이후 조용히 재벌가 사위로 삶을 살았다. 심지어 가명으로 활동해, 나중에는 세계적인 뮤비 감독이 되었다.

그렇다, 딱히 그렇게 불행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주환희였다.

이 스캔들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환희는 방출됐다. 사내 루머를, 내부에 상의도 없이 폭로한 정황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기자는 취재원을 지켰지만, 조이월드 게시물이 발목을 잡아 걸려 버렸다.

주환희는 그 이후에도 후회를 안고 살았다. 뒤늦게 엄마가 아폴로 빈, 그러니까 독고 빈이 자신의 병원비를 내줬다는 사실을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독고 빈은 주환희를 용서했지만, 평생 주환희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딱히 아폴로 빈이 불행해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주환희가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주환희는 이후 가명으로 작사가가 되었다. 제법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내가 본 주환희는 팬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사는 천상 가수였다. 가수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아폴로 빈과는 애초에 달랐다. 그런 그가 연예인 생명이 끊기는 일은 주환희 본인에게 크나큰 마이너스였다.

주하늘의 공격은, 상대에게는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자기 날개만 꺾었을 뿐이었다.

막아야 했다. 아폴로 빈이 아니라, 주환희를 위해서 말이다.

방법은 쉬웠다. 아폴로 빈은 이미 회사와 철저하게 상의 중이었다. 임신도, 결혼도 모두 회사에 이야기했다. TYB는 일단 제명은 하지 않되, 가수 활동은 하지 않으면서 팬들의 반응을 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아폴로 빈은 이미 임신 및 결혼 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어차피 굳이 주환희가 폭로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게 될 사실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운명을 살짝 틀었다.

TYB가 슈퍼스타 T를 프로듀싱 하면서, 수많은 TYB 직원들이 촬영장에 상주했다. 그중에는 팀의 선배 넵튠을 응원하러 온 아폴로 빈도 있었다. 넵튠 한이 참가자들에게 아폴로 빈을 소개해줬다.

그때, 몰래 아폴로 빈의 주머니에 쪽지를 넣었다.

‘토요신문 고대현 기자는 아폴로 빈의 애인에 대해 알고 있다.’

일단 내가 미래를 알려주자, 아폴로는 벼락처럼 행동에 옮겼다. Mp3로 아폴로 빈의 행동을 확인했다. 아폴로 빈은 바로 TYB의 PR팀에 연락해, 고대현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당신이 쓰려 하는 단순 열애설 기사보다 더 큰, 임신 및 결혼 인정 기사를 대가로 주겠다는 뜻이었다. 고대현 기자는 당연히 승낙했다.

순서가 생각보다 중요했다. 어차피 아이를 낳은 지금, 아폴로 빈이 최정상 아이돌 활동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주하늘은 구제해줄 수 있었다. 아폴로 빈이 직접 발표한 이상, 내부 고발자를 찾지는 않을 터였으니까.

슬쩍 주변을 봤다. 재호는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워낙 자기관리가 철저한 녀석이다 보니, 남이 자기관리에 실패해 무너지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주환희 어머니는 독고 빈의 결혼을 축하한다며 박수를 쳤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어머니들에게는 열애설 폭로는 나쁜 거지만 결혼은 경사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주하늘. 주하늘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표정은 일그러졌다. 하지만 뭔가 크크큭 하고 소리를 내며 웃고도 있었다.

자기도 자기 마음이 정리가 안 된 모양이었다.

“어이 쭈.”

주하늘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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