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50화 (50/280)

제50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데뷔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주환희의 편집 영상은 연습생 시절을 다뤘다. 스무 살이 되도록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영상이었다.

빈 연습실에서 매일같이 발성 연습하고, 춤을 추고, 피드백을 받는 주환희의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그사이에 한 줄기 빛처럼 슈퍼스타 T 로고가 나왔다.

주환희가 그동안 슈퍼스타 T에서 했던 활약들이 편집되어 나왔다. 나와 재호와 함께 ‘비원더’를 결성해서 만든 놀라운 멜로디. 마이크 넬슨의 노래를 놀랍게 재해석한 무대 등, 그동안의 무대 영상들이었다.

화면이 서서히 암전되면서, 주환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목소리와 함께 조명이 켜지며 주환희의 노래가 시작됐다. 내가 추천해준 ‘너에게 원한 건’이었다.

놀라운 무대였다.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이었다. 우선 절묘한 리듬감을 보여줬다. 거기에다가 창의적으로 원 멜로디를 변화를 준 화려한 보컬을 보여줬다. 경쾌하고 기분 좋아지는 무대였다.

하지만 왠지 이 무대 점수는 두렵지 않았다. 대중들의 반응도 뭔가 미지근했다. 심사위원들도 중간 정도의 평가를 내렸다.

주환희는 실망이 큰 눈치였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쉬운 결과의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주환희는 미션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니 감동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라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래는 기술이기에 앞서, 자신을 보여주는 예술이었다. 기술만으로 승부해서는 감동을 주는 진심을 이기기 어려웠다.

‘이번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 두루뭉술한 말로는 누구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전 생에서는 나도 기술만으로 노래를 불렀었지.’

주환희를 보면서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 * *

이번 대결의 우승자는 의외로 문루아였다. 진짜 자신이 오랜 기간 숨겼던 비밀을 공개해버린 게 주효했다.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줬는지 전화 합산표를 쓸어 담으며 1위에 올랐다. 나는 근소한 차이로 2등, 재호는 3등이었고 주환희가 꼴찌였다.

2위라는 등수, 내게는 만족스러웠다. 일부러 마지막 주에 모든 힘을 쏟기 위해 힘을 남겨두었다.

이전 생에서 결승전에서 패배한 이후, 15년 간 슈퍼스타 T 우승 실패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기존 슈퍼스타 시리즈를, 내가 나오지 않은 시즌까지 수없이 봤다. 보고 또 보니 자연스럽게 우승자의 패턴이 보였다.

오디션 프로에서 우승자는 대개 ‘평균 점수’가 좋은 참가자였다. 특히 후반 무대들이 중요했다. 그때 뇌리에 박힌 무대가 많은 참가자가 우승했다. 마지막 무대가 가장 중요했지만, 전체적인 평균도 높아야 했다.

나는 두 번의 라이브 무대에서 모두 2위를 했다. 뇌리에는 내가 가장 많이 남았으리라 짐작했다. 모든 무대의 평균점이 높았으니 말이다. 2위임에도 1위를 했던 무대보다 더 화제성이 높기도 했다. 마지막에 최고의 무대를 뽑아낸다면 충분히 우승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내 등수는 이번 무대에서 문루아가 워낙 많이 표를 몰아받아 2위였다. 하지만 다음 무대에서 더 많은 득표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무엇보다 문루아의 스토리는 두 번 쓸 수는 없는 필살기였다. 차라리 준결승에서 맞는 게 나았다.

‘지금까지는 내 분석대로라면 내가 가장 우승자 코스에 가까워.’

무대가 끝났지만, 나는 바로 마지막, 최후의 결승전을 머릿속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다.

* * *

“문루아 님은 오늘 밤 천채왕 심사위원과 급한 미팅이 있어서 회사로 퇴근하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윤결 작가가 우리 의사를 물었다. 왕작가니까 많이 바쁠 텐데, 참가자들을 성심성의껏 배려했다.

나는 딱히 뭘 할 생각이 없었다. 결승전까지 딱 한 주 남았다. 마지막 스퍼트를 달려야 했다.

“저는 숙소에서 쉬겠습니다.

재호와 주환희도 마찬가지였다.

“저도여.”

“저두.”

“알겠습니다. 세분이서 이 차 타고 가시면 됩니다. 오늘 밤은 푹 쉬세요. 내일부터는 막주라 조금 더 바빠지실 겁니다.”

윤결 작가가 신호를 주자마자 검은색 카니발이 우리 앞으로 왔다. 우리를 숙소로 태워 줄 차였다.

차에 탔다. 벌써 날씨가 쌀쌀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7월에 시작했던 오디션이 벌써 10월 후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간 있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회귀했던 일, 재호와 주환희를 묶어 ‘비원더’를 결성했던 일, PD를 쳐냈던 일, 재호를 구했던 일, 그리고 지금 주환희에 일까지…

차에 타자마자 재호는 곯아떨어졌다. 재호는 유독 편곡에 신경을 쓰는 타입이라 그런지, 무대를 준비하면 할수록 잠이 부족해졌다.

주환희는 말이 없었다. 이번 무대 성적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아 그런가 짐작했다. 주환희는 계속 애꿎은 가방만 쳐다봤다. 아마도 가방 안에는 노트북이 들어 있을 터였다.

“……”

일단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집에 가면 곧 뭔가 일이 생길 예정이었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 두어야 했다.

“횽.”

“응?”

의외로 주환희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제 이번 무대, 많이 별로였나요?”

오늘 무대 점수를 마음에 아직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너는 어때?”

“실수한 건 없는 거 같았어여. 그에 비해 좀 반응이 아쉬워써요.”

“너는 어땠어?”

“네?”

주환희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노래 부르는 너는 어땠냐고. 너는 마음이 편했어?”

“모르게써요… 연습은 많이 했는데.”

“많이 연습한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지.”

“뭔가 방향성이 잘못됐나 봐여.”

“그런가 보지…. 뭐 더 할 말 없냐?”

슬쩍, 주환희에게 떠봤다.

“뭐요?”

아직도 주환희는 살살 피했다.

“…됐다.”

어차피 주환희의 연극도, 오늘까지였다.

아니 뭐 내일도 이어질 수는 있지만, 일단 오늘 밝혀질 운명이었다.

* * *

새벽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눈을 비비며 건물로 들어갔다. 일부러 주환희를 맨 앞으로 보냈다. 주환희가 문을 열어야 했다.

“쭈! 문 열어.”

“네 횽.”

주환희가 내게 숙소 열쇠를 넘겨받아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순간…

“하늘이 왔냐! 뭔 놈의 방송이 이리 늦게까지 하냐.”

주하늘의 엄마가 와 있었다. 내가 미리 손을 써 뒀다. 주하늘의 엄마에게 집에 오시라고 말해두었다. 명분도 좋았다. 주하늘의 핸드폰을 돌려주는 명분이었다. 제작진도 참가자의 어머니가 잠시 온다고 하니 별생각 없이 허락해줬다.

“엄… 마?”

주환희, 아니 주하늘의 얼굴이 썩었다.

거짓말이 모두 들통났으니 그럴 만했다.

“워메~ 방이 뭐 이리 더러브냐!”

“아 엄마 그만 좀 해요. 너무 소리가 크잖아요. 새벽 한 시에요 지금. 일단 자요.”

주하늘은 꼼짝없이 어머니에게 붙잡혔다. 어머니가 방에서 온갖 잔소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주환희 저 녀석, 교포 아니었어? 하긴 뭐 교포셔도 1세 어머니는 저러실 수 있나?”

“그럴 순 있지. 하지만 쟤는 아니야.”

“뭐?”

“이름이 다르잖아? 주하늘이래잖아. 환희가 아니라.”

“그러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곧 알게 될 거야.”

곧 모든 게 다 밝혀질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 * *

조금 시간이 지나자 조금 목소리가 잦아졌다. 그리고 주환희, 아니, 주하늘이 나왔다. 엄마가 머리를 건드렸는지 항상 올백으로 넘겼던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툭 말을 걸었다.

“엄마는 주무시냐?”

주환희가 나랑 재호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0.5초 정도 지났을까. 작은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교포 말투가 아니었다.

“네.”

“어때,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잘까?”

“궁금하죠 형?”

주환희가 먼저 우리를 잡았다.

“뭐, 궁금하긴 하지.”

“제가 과장했다는 거…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원래 저는 방구석 찌질이에요. 도저히 소심해서 가수를 할 수가 없었어요. 가수가 되고 싶어서 성격을 바꿨어요.”

재호가 얼굴을 슬쩍 찌푸렸다.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가능해?”

“불가능하죠. 그래서 제가 연기할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그게 주환희란 거냐?”

“맞아요. 찐따 같고 소심한 주하늘 말고. 쿨하고, 시원시원하고, 도발적인 교포 가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너랑 가장 다를 법한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서 연기한 거구만?”

“그죠…”

“그리고 아예 이름까지 바꿨고?”

“맞아요.”

“근데 이름을 바꾼다고 바꿔줘? 그게 말이 돼?”

“제가 주환희라는 캐릭터를 만든 건, TYB 오디션 때에요.”

“아하.”

“제 평소 모습으로 오디션을 봤을 때는 항상 실패했어요. 성격이 무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죠.”

지금 주환희를 보니 대충 짐작이 갔다. 내 눈을 피하면서, 조용조용히, 모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주하늘은 확실히 무대에 설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TYB를 할 때면 달랐던 거야?”

“다시 태어나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짓으로 만들었어요. 서류에 이름과 분명 달랐는데, 어쩐 일인지 합격했어요.”

“이후에도 아무 말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직원분들이 항상 ‘뭐 필요한 거 없냐’ ‘뭐 할 말 없냐’라고 자꾸 물어보셨던 거 같아요.”

“대답은.”

“아무 말도 안 했죠.”

TYB는 20년 짬밥의 연예 기획사였다. 그리고 아이돌 기획사에서 연습생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서류상의 오류를 몰랐을 리가 없었다. 일부러 떠본 게 분명했다.

주환희가 지금껏 데뷔하지 못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듯했다. 그러고 보니 천채왕 심사위원장이 내게 이전에 했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다들 권노을 참가자만 같으면 참 제작하기 편할 텐데요.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면 오히려 고맙죠. 문제를 숨기면 일이 커져요.>

아마도 주하늘, 이 녀석을 두고 한 말로 보였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네 자신으로는 도저히 안 됐다. 그래서 대중과 기획사가 좋아할 법한 캐릭터인 ‘주환희’를 만들어서 지금껏 연기했다, 이거야?”

“맞죠.”

“그게 뭐 어때서?”

주하늘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아니, 그게 뭐 어때서? 연예인이 원래 그런 거지. 환상을 파는 거잖아? 아이돌이 진짜 연애 한 번도 안 해서 팬밖에 모른다고 하겠어? 에미넴이 진짜 싸이코여서 그런 랩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발라드 가수들이 진짜 평소에 자기 애인한테 찌질해서 찌질한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잖아? 그런 면도 조금 있는데, 그걸 한껏 증폭시키는 거지.”

“그럴까요…”

주환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지만 좀 연기를 하는 거지. 안 그래 재호야?”

“음. 뭐. 난 평소에도 이러지만서두.”

…참 융통성 없는 놈이었다. 일단 재호는 재껴두고 주하늘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 별거도 아니야. 앞으로도 대중한테는 계속 그렇게 살어 그냥.”

“그래요?”

“그래. 지금 너, 좀 노잼이야.”

“그렇죠…”

주하늘은 힘없이 대답하면서 시선을 땅에 떨어뜨렸다. 주하늘 본래의 모습은 무서워서 농담도 못 할 타입이었다.

“그래도 우리끼리 있을 때는 가끔 니가 그러고 싶을 때는 지금처럼 편하게 있는 거도 좋겠다.”

이 말에는 재호까지 놀란 것 같았다.

“왜요?”

“아, 왜?”

“우리도 더 편하잖아. 조용하고. 감정이 과하지도 않고.”

“뭐 그건 그렇네. 일단 숙소에 여자는 없겠네.”

재호도 금방 동의했다. 무엇보다 주하늘이라면 주환희와는 달리 숙소에 여자를 데려오거나 할 리는 전혀 없다는 점에 꽂힌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주하늘로 다녀도 되고 주환희로 다녀도 되고. 니 맘대로 해. 오키?”

주하늘이 다급했는지 내 말을 도중에 끊고 말했다.

“그럼 형들, 사람들한테 말 안 할거에요?”

“뭐하러?”

“거짓말이잖아요.”

“연예인의 본 모습은 안 보는 게 좋아. 뭐 범죄를 숨기는 거도 아니고.”

“그래요 그럼!”

주하늘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이 났으니, 이대로 상황을 종료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주하늘은 ‘아직도’ 모든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주하늘이 뭘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도 자기 소속사 선배이자 동갑내기 동기 연습생, 아폴로 빈의 기사를 새로 고침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내가 다 손을 써 놨으니까 말이다.

곧, 주하늘이 기대하는 기사와 전혀 다른 기사가 올라올 예정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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