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49화 (49/280)

제49화

주환희는 ‘천신군단’의 기사를 검색해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서브보컬 ‘아폴로 빈’의 기사를 확인 중이었다.

정확하게, mp3를 보고 내가 짐작한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아녜요… 횽.”

말과 달리, 주환희 눈이 평소의 두 배는 커졌다.

“아 그래?”

주환희를 그대로 두고 쓱 내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찾아봐도, 주환희가 바라는 기사는 나올 리가 없었다. 이미 내가 손을 써 두었으니 말이다.

예상이 적중했으니 큰 고민 없이 내 무대에 집중할 때였다. 마지막으로 머릿속에서 내 무대를 그려봤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라이브 당일이 밝았다.

* * *

라이브 당일.

언제나처럼 TOP4가 함께 헤어 메이크업을 받으며 무대를 준비했다.

계속 주환희는 뚫어져라 노트북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아폴로 빈의 기사 검색결과를 새로 고침 중인 모양이었다.

헛된 노력이었지만 말이다.

일부러 주환희에게 신경을 안 쓰는 척, 재호에게 말을 걸었다.

“무대 준비 잘했어?”

“그치 뭐.”

사실 재호는 이미, 지난번에 재벌 3세 놈 일을 겪으며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눈빛도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에 주환희는 딱 봐도 불안해 보였다. 자작 랩도 있을 텐데 가사나 외울 수 있을까 싶었다.

“야 쭈!”

“네 횽!”

주환희 어깨가 휙 올라갔다. 입도 헤 벌리고 있었다.

“뭘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대나 신경 써. 이거 평생 남는다. 미련 남기면 평생 후회할걸?”

내 이전 생의 경험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내가 조금 덜 노력했던 무대들이 그렇게 평생 한이 됐었다.

주환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뭐가 그리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당당해야 할 앞에 무대를 봐.”

“…고마워요 횽.”

이번에는 나도 좀 신경 써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았다.

“권노을 참가자님! 오늘 메이크업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오늘 무대의 컨셉은 ‘내 운명을 사랑하자’였다. 뭔가 상견례 패스상 느낌으로, 단정한 느낌을 내고 싶었다.

“오늘 정장을 입고, 어머니에게 노래 부르는 듯한 느낌으로 부를 거 같습니다. 그런 느낌으로 해주시겠어요?”

“알겠슴다~~”

노래를 부른다는 건 가수의 일 중 매우 좁은 부분에 불과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스태프 하나하나의 수고까지. 모두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레전드 가수 말마따나, 가수가 되려면 노래 외에도 100가지는 더 배워야 했다. 서서히 그런 점을 배워가고 있었다.

* * *

5

4

3

2

1

핀포인트 조명이 비치며 방송이 시작됐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두 번째 라이브 무대가 다가왔습니다. 이번 주제는 TOP4의 ‘진짜 내 모습’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 전에, 이들이 이번에는 라디오 방송에 나왔다고 하는데요? 근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함께 보실까요?”

무대 전, 우리를 찍었던 몰래카메라 편집본 영상이 올라왔다. 객석이 까르르~ 하고 웃는 모습이 대기실에까지 들렸다.

몰래카메라가 끝났다. 첫 번째 주자인 재호가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사회자가 무대에 올랐다. 이번 생방송 대결 주제를 공개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생방송 주제는 ‘숨겨진 진짜 내 모습’ 입니다. 겉보기에는 굉장히 매력적인 4명인데요. 그 속에는 또 다른 매력이 숨겨 있다고 합니다. TOP4 속에 숨겨진 모습이 뭔지, 함께 알아보실까요?”

첫 번째 무대 순서인 재호부터 편집 영상이 나왔다. 방송 대기를 위해 이제는 무대 뒤로 자리를 옮길 차례였다.

* * *

재호는 ‘모범생이 되지 못하고 가수가 된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는 무대를 했다. 세상의 기준을 깨고, 나만의 기준으로 살겠다 결심하는 무대였다. 내가 조금은 도움이 된 듯하여 뿌듯했다. 이제 마약 누명을 쓰고 몰락하는 재호는 없었다.

하늘을 달리듯 질주하는 록적인 무대도 의외로 재호랑 잘 어울렸다. 재호의 풍성한 코러스 편곡이 여기에 더해졌다. 가스펠 락이란 느낌이랄까? 점수도 무난하게 높았다.

오히려 의외였던 건 두 번째 무대인 문루아였다.

“가수 문루아에 대해 지쳤었어요. 배부른 소리란 걸 알지만… 은퇴를 생각했었어요.”

편집 영상 속 문루아는 자신이 왜 자취를 감췄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슈퍼스타 T를 통해 돌아왔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천채왕 선생님이 은퇴 대신 유학을 보내주셨어요. 그곳에서, 제가 원래 좋아했던 잔잔한 R&B 음악을 다시 발견했어요. 이런 음악을 팬분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문루아가 자신이 그동안 써 놓은 곡들을 맛보기로 조금씩 보여주었다. 멜랑콜리한 알앤비 곡들이었다.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던 빠른 템포의 댄스 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문루아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정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들려 드리고 싶어요.>

이미 나는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문루아는 알앤비 가수로 변신하기 위해 슈퍼스타 T에 참가했었다. 그리고 나를 (과거 PD의 주작으로) 꺾고 우승했었다. 이후 그녀는 종합 육각형 가수로 오랜 기간 활동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공개한 건 우승하고 나서도 한참 후였다. 자신이 쉬는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왜 자신이 자취를 감췄는지는 슈퍼스타 T를 진행하는 동안 꼭꼭 숨겼었다. 마치 밝히면 안 되는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뭔가 세계선이 바뀌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바꾼 수많은 과거의 일 중 하나가 문루아의 뭔가를 바꾼 모양이었다.

하긴, 이전 생에서는 애초에 이런 미션이 없었다. 제작진도 바뀌었고, 천채왕 심사위원의 롤도 바뀌었다. 미션부터 일정까지, 과거의 슈퍼스타 T와 전혀 다른 오디션이 되었다. 과거와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내가 알던 과거의 데이터 내에서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크게 긴장할 건 없어 보였다. 안심하면서 문루아의 무대를 지켜봤다.

<워~~>

무대 뒤에서 지켜본 문루아의 무대는 굉장했다. 듀스의 ‘말하자면’을 그루비한 알앤비 곡으로 재해석해 불렀다. 댄스곡을 가져와 알앤비로 바꾸는 도발이었다. 이 곡을 자연스럽게 바꾸듯, 나도 나 자신을 알앤비 가수로 바꾸겠다는 기합이 느껴지는 좋은 무대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세 번째 무대는 바로 나였다.

‘이전에 마지막에 불러보니까 너무 부담돼서 말이야.’

최대한 침착한 마음 상태를 유지했다. 심호흡을 하고 무대에 올라왔다.

관객들이 숨죽이고 내 무대 전 영상을 보고 있었다. 내가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었다.

<시청자분들도 많이 익숙하시겠지만, 제가 살이 많이 쪘었어요.>

내 목소리와 함께 내 과거 사진이 나왔다. 지금의 내 사진이 겹쳐지니 정말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그때는 원망을 많이 했어요. 아무리 해도 살이 빠지지 않으니까. 왜 나는 이리 살이 쪘을까 했었죠. 하지만 제가 틀렸어요.>

화면은 내 인터뷰 화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노경진 PD는 예능PD지만, 화면 때깔이 뛰어났다. 내 얼굴도 정말 눈이 부시게 연출해주었다.

<자신감이 없던 우울한 상태였어서, 오히려 재호의 무대를 보고 가수를 동경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외로운 상태여서, 혼자서 제 우울한 기분을 지켜볼 수 있었고요. 어쩌면, 지금 제가 가수 생활하는데 가장 큰 재산을 모두 그때 얻었던 것 같아요.>

화면은 내 학창 시절 사진들을 비춰줬다.

<예전에는 뚱뚱하게 낳아 주셨던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강했어요.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차마 불치병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나도 약간의 거짓말은 했다.

<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아 ‘널 사랑해’를 부르려 합니다. 이렇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기분으로요. 하늘에서 어머니가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화면이 암전되었다. 대신 조명이 나를 비췄다.

“꺄아아~~”

“노을 오빠~~~”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피부로 느껴졌다. 워낙 큰 소리라서 물리적인 힘까지 느껴졌다. 그 에너지가 그대로 내게 전해져 왔다.

관객들은 바로 방금 내 편집 영상을 보고 온 참이었다.

사회자가 내게 물었다.

“이번 무대, 어머니에게 바치신다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외에도,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사회자가 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 인류 대다수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서 그런 듯했다.

“관객분들도… 그리고 누구보다, 권노을 참가자님 어머님께서도 듣고 계실 겁니다.”

사회자에게 목례로 답례하고 무대를 시작했다.

이번 무대는 이전 무대들과는 조금 다르게 시작했다.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서 코드를 잡았다. 피아노와 함께 나 혼자 노래를 불렀다.

밴드 마스터의 아이디어였다.

‘노을이! 코드는 잡을 줄 안다며? 잔잔하게 혼자 피아노를 치면서 시작해보면 어때? 원곡은 웅장한 밴드 전주로 시작하니까. 오히려 변화를 줘 보 는거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나 혼자서 노래를 시작했다. 밴드 연주도 아니고, MR도 아닌, 나의 연주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일은 오디션에서는 처음이었다.

악기를 덜어내자 오히려 더 친밀하게, 내 감정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한 음 한 음에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담았다. 어머니가 물려준 가난, 어머니의 보약이 내게 준 비만, 그리고 우울함. 하지만 이를 뚫고 지나면서 누구보다 단단한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반짝이는 존재가 된 지금까지 말이다.

내가 받은 대다수의 것은 어머니가 준 것이었다. 나의 목소리, 나의 발성, 나의 폐활량, 나의 이목구비…

Mp3로 내 자신의 살을 빼고, 내 스탯을 올리자, 더더욱 내가 얼마나 가진 게 많았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다. ‘널 사랑해’라고 말이다.

1절 후렴부터 비로소 밴드가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나도 그랜드 피아노를 박차고 일어났다. 고정되어 있던 마이크를 손에 잡았다. 연주를 잠시 멈추고, 노래에 집중할 차례였다. 풍성한 사운드에 맞춰 부드럽게 노래했다

2절 후렴까지 부른 다음에는, 내 회심의 필살기가 나왔다.

밴드가 다시 연주를 멈추었다. 이번에는 내 피아노 연주도 없었다. 무반주 상태로 후렴을 불렀다. 딱 한 번이었다.

<널 사랑해>

관객들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성량에 자신감이 있어서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 성량은 내 노력으로 얻은 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그 성량이었다.

그 힘을 오늘 한 번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후렴 후 마지막은 가장 화려하게 편곡된 밴드 연주와 함께 노래를 마무리했다.

* * *

심사위원들은 호평 일색이었다. 특히 평소에 가장 냉정했던 천채왕 심사위원이 되려 가장 흥분했다.

“정말 미쳤네요! 야… 전성기에 휘트니 휴스턴 라이브를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지. 성량이 어떻게 이렇게 좋아요?”

천채왕 심사위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런 노래를 듣게 해준 제가 감사하죠. 이건 진짜 뭐랄까. 미친 성량이에요. 실내 건물에서 들었을 때도 놀랐는데, 이렇게 정식 라이브 무대에서 들으니까… 뭔가 어이가 없네요.”

보통 반드시 개선점을 덤으로 얹어 줬던 천채왕 심사위원이 이번에는 칭찬 일색의 심사평을 남겼다. 다른 심사위원들 평도 지난주보다 오히려 좋았다. 심사위원 점수를 포함, 380점을 넘겼다. 전체 2위였던 지난주보다 높은 점수였다.

그리고 이제, 대망의 마지막 무대 차례였다. 바로 주환희의 무대였다.

일부러 나는 마지막 순서를 피했다. 지난번에 우연히 해보니 마지막 순서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주환희에게 넘겼다.

…사실 주환희의 무대는 썩 큰 기대가 되지 않았다.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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