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박찬용 드러머 옆에 누군가 있었다.
“조금 늦었네. 이 친구들을 데려오느라 말이야.”
누구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악기가 그들이 누구인지 증명했다. 4명 모두 서로 다른 관악기를 들고 있었다.
“브라스 팀일세. 급하게 데려왔지. 밴드 마스터랑 PD 허락은 이미 받아 뒀네. 괜찮겠지?”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저야 너무 좋지요. 유불리 논란이 나올까 봐 걱정이긴 한데.”
“그건 걱정 말게. 내가 이야기 다 해두었네. 인터뷰도 했고. 뭣보다 브라스가 다른 무대에도 참여하면 되니까.”
“아 네 그러면…”
갑자기 박찬용 드러머가 자기 무대처럼 내 무대를 신경 써주고 있었다.
박찬용 드러머가 드럼 자리로 돌아갔다. 브라스도 자기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합주 준비는 끝났다.
합주를 시작하기 전, 밴드 마스터가 슬쩍 내게 와서 물었다.
“야 노을이! 너 저 양반 어떻게 구워삶았어? 대단하네. 저 양반 저러는 건 첨 본다.”
“아하 네. 뭐…”
“현식이 형쯤 돼야 좀 쫓아다니던 형인데. 여튼 대단해. 자! 그럼 잘 맞춰 보자.”
그렇게 마지막 합주가 정신없이 시작되고, 또 끝났다.
“어떤가?”
말 한마디 덧붙이기 어려웠다. 그만큼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저 엄지 척! 하나면 충분했다.
* * *
3시간 후.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기사를 검색해봤다. 마지막으로 대록그룹 3세의 기사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여기저기 기사를 검색해봤다. 아무리 찾아봐도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준비해둔 기사는 나중에 나올 모양이군.’
아무래도 이번 라이브 방송이 끝난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선가 제작진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권노을 참가자! 5분 남았습니다. 스탠바이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무대 뒤로 이동했다. TOP4가 모두 이미 대기 중이었다. 그중 가장 여유 있는 경력자인 문루아가 나를 맞았다.
“늦었어요.”
“네네.”
“준비는 잘 됐어요?”
“네 저는 뭐… 선배님은요?”
“저요? 저도 하긴 했죠. 오늘 저는 조연이지만.”
“조연이요?”
그때, 바로 방송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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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정장을 입은 사회자가 인사했다. 생방송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기적을 부르는 노래. 슈퍼스타 T! 그 첫 번째 라이브가 시작됩니다. 지금 저희 무대에는, TOP4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무대로 우리를 감동시킬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명이 켜졌다. 조명 아래에는 바로 우리, TOP4가 서 있었다.
“끼야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함성이 들렸다.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기분 좋은 떨림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우선, 공연을 보기에 앞서, 한 주간 참가자들이 어떻게 보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조명이 꺼졌다. 대신 무대가 열리고, 거대 스크린이 등장했다. 화면에 그간 우리의 모습을 찍은 편집 영상이 나왔다.
우리는 그사이 대기실로 돌아갔다. 무대 경험이 적은 재호가 특히 긴장해 보였다. 그에 반해 문루아와 주환희는 일상생활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연예계 짬밥 차이가 좀 느껴졌다.
주환희가 내게 반갑게 말을 걸었다.
“준비 잘했어요 횽?”
“그렇지 뭐.”
특별한 준비는 내가 한 게 아니라 박찬용 드러머가 했다고 봐야 했다.
“뭐에요 횽. 그래놓고 무대 찢어 버릴려구.”
“그러는 너는?”
환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희야 오늘은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옆에서 잠자코 걸어가던 문루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리야?”
대기실로 돌아가 화면을 보니, 두 사람의 말뜻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재호의 노래를 듣고, 음악에 빠지게 됐어요.]
[브라이언 맥나잇의 그 노래로,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어요.]
이번 화는 완전히 재호와 내 위주 편집이었다.
문루아와 주환희는 이미 대중에게 많은 부분이 공개된 참가자였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제 와서 발굴할 새로운 정보가 거의 없다는 뜻도 됐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에 대한 주제는 되려 신인인 우리들이 분량 챙기기에 유리했다.
주제를 바꾼 노경진 PD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적은 나와 재호를 배려해 이런 미션을 줬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노경진 PD와 새로운 제작진에게 감사를 느끼며 시청을 계속했다.
카메라가 시청자들을 나와 재호의 중학교로 인도했다. 심지어 담임쌤 인터뷰까지 땄다.
[재호는 항상 모든 면이 완벽한 아이였습니다. 성적도 우수했고, 리더십도 있어 항상 학생들이 따랐죠.]
인터뷰에 내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사실, 나는 선생님이 기억하기도 어려운 아이였었다. 아무리 빼려 해도 빠지지 않는 살로 무너지는 자존감에 허덕이고 있었다. 존재감이 아예 없던 학생이었다.
제작진이 어떻게 찾았는지, 나와 재호가 함께 찍었던 중학생 시절 사진들을 공개했다.
다음 장면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생이었다.
[오빠는 항상 재호 오빠랑 친했어요. 함께 어울리던 재호 오빠가 팝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학교 스타가 됐죠. 그때부터였어요. 오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윽엑. 권예슬 너 말투 뭐야.’
TV 인터뷰를 하는 동생 말투는 또 새로웠다. 국어책 읽는 듯한 딱딱한 음성이 아~주 일품이었다.
화면은 그대로 대회 화면으로 이어졌다. 나와 재호가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촬영 허락을 받더니만, 이런 식으로 쓰는 줄은 몰랐다.
‘비원더’ 팀 무대도 나왔다. 재호와 함께 연미복을 입고 신나게 노래 부르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봐도 정말 행복해 보였다.
내 인터뷰도 나왔다. 재호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
[재호요? 최고의 친구죠. 지금도, 또 앞으로도.]
재호에 대한 내 신뢰는 확고했다. 15년간 재호를 봐 왔기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진짜 진국이었다.
이번에는 재호 인터뷰 차례였다.
[오디션 참가하고 우연히 노을이를 봤어요. 깜짝 놀랐죠! 다른 사람이 됐으니까요. 너무 잘생겼구…]
그리고 재호는 살짝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노을이가 인정을 받게 돼서 정말 기뻤어요. 항상 최고라구 생각했구. 겉모습으로 인한 선입견으로 인정을 못 받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거덩요? 이제 맞아떨어지는 거 같아서 기분 좋네요?]
다음 질문이 자막으로 나왔다. ‘권노을 군과 대결하게 되었는데 기분이 어떤지?’
[기분이 좋죠. 높은 자리에서 만난 거니까요. 기분이 좋구… 하지만.]
재호가 카메라 정면을 쳐다보며 말했다. 꼭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호락호락하게 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나도 바라는 바였다.
* * *
무난하게 문루아, 주환희 무대가 끝났다. 이후 재호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재호답지 않게, 편곡에 힘을 쫙 뺀, 원곡에 가까운 음악이었다.
필살기는 후반에 나왔다.
[당신이 새 삶을 선사했어요.
내 이 외로운 삶에 말이에요
당신이 구원을 줬어요
딱 내가 필요했던 때에요.]
음악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원곡은 브라이언 맥나잇의 단독 애드립이 나왔었다. 고음이나 기교가 특기가 아닌 재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재호의 승부는 ‘목소리’였다. 미리 자신이 직접 녹음해둔 코러스를 바로 이 클라이맥스에 썼다. 엄청나게 화려한 팔세토 가성이었다. 대중음악에서 듣도 보도 못한 아름답고 오묘한 화성의 화음은 덤이었다.
재호다운 필살기였다.
심사위원 또한 칭찬 일색이었다. 심사위원 평균 점수는 무려 94점, 총점은 372점이었다. 넘기 힘든 고득점이었다.
물론, 이 정도는 되어야 할 맛이 낫다. 내게도 비밀 병기가 있었다.
“권노을 참가자! 스탠바이 해주세요!”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 * *
‘원재호 참가자의 무대는 이기기 힘들겠지?’
넵튠 한 심사위원이 슬쩍 대본을 확인했다. 마지막 무대인 권노을 참가자의 선곡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곡을 확인한 넵튠 한이 헉 소리를 냈다.
‘스티비 원더? 만용이 좀 심한 거 아니야?’
넵튠 한이 고개를 저었다. 스티비 원더라니. 김범수 같은 최정상 보컬리스트도 함부로 해선 안 되는 선곡이었다. 하물며 오디션에 참여하는 신예 가수가 하기엔 너무 어려운 선곡으로 보였다.
‘커버곡 무대는 일종의 원곡 가수와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대가 스티비 원더라니. 오디션 참가하는 애송이에게는 무리인 거 같은데. 심지어 선곡도 노래로 뭘 해볼 수 있는 곡도 아니라구. 이래서 되겠어?’
자연스레 넵튠 한은 비관적인 시선으로 무대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윽고, 드러머의 큐와 함께 연주가 시작됐다. 벌써 원곡과는 달랐다.
‘어?’
넵튠 한 심사위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러머가 잡고 있던 건 스틱이 아니었다. 브러쉬였다. 좀 더 부드럽고 섬세한 드럼 사운드를 위해서였다. 브러쉬가 뜻하는 건 하나였다.
‘설마… 재즈 드럼인가.’
기존의 강렬한 알앤비 비트가, 부드럽고 화려한 재즈 드럼으로 바뀌었다. 다른 악기도 자연스럽게 정통 재즈에 가까운 연주를 했다.
그리고 권노을 참가자가 자연스럽게 여기에 노래를 얹었다.
[축하할 새해도 없어요.
선물할 초콜릿도 없어요.
봄이 온 것도, 노래할 것도 아니에요.
그냥 또 하나의 보통 날이에요.]
헛웃음이 나왔다. 권노을 참가자는 완벽에 가까운 보컬이라고 원래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가장 리듬이 어려운 장르, 재즈에 맞추어 원숙하게 노래했다. 마치 원래부터 재즈 가수인 듯한 완성도였다.
‘뭐 이런 애송이가 다 있냐. 축구 천재인 줄 알았는데 농구도 잘하는 꼴인데.’
권노을은 자유롭게 리듬을 가지고 놀았다. 분위기도 쥐락펴락, 화려하게 전환했다. 그야말로 노래 9단이었다.
연주도 훌륭했다. 쫀쫀하게 재즈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도 오래 먹으면 배부른 법이었다. 2절까지 재즈 보컬로 가자 슬슬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원곡이 문제였다. 명곡이었다. 하지만 너무 잔잔했다. 오디션에서 뭔가 임팩트를 남기기에는 적절한 선곡이 아니었다.
‘아마 원재호 참가자가 중학교 팝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할 정도는 됐겠지. 하지만 대한민국 최강자들이 붙는 오디션이라면? 좀 아쉽다는 그런 느낌?’
권노을 참가자가 잔잔하게 후렴을 마무리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무대 밑에서 누군가들이 번쩍! 점프를 하며 등장했다.
브라스였다.
그와 함께 박찬용 드러머가 브러시를 버리고 스틱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그 스틱으로 심벌즈를 챙챙챙! 사정없이 내리쳤다.
갑자기 무대가 급격하게 요동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