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박찬용 선생님.”
“뭔가?”
박찬용 드러머의 목소리는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이번 무대에 고민이 있습니다. 평생 리듬을 연구하셨던 선생님이시라면 해답이 있을 거 같습니다.”
“뭐가 고민인가?”
‘당신이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화만 돋울 터였다.
“스티비 원더의 곡이요. 너무 편곡이 완벽합니다. 부드러운 팝인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손댈 부분이 없어요. 편곡에 방향을 잃었습니다.”
박찬용 드러머의 눈빛이 변했다. 본인도 느끼고 있던 모양이었다. 지금 편곡 방향은 개판이란 걸.
말을 계속 이어갔다.
“오랜 기간 드럼을 해오신… 박찬용 선생님이라면 뭔가 해법이 있으실 거 같아서요.”
박찬용 드러머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게 말했다.
“애초에 왜 스티비 원더의 곡을 하겠다고 한 건가? 보컬은 물론 편곡까지 완벽에 가까워서 재해석의 여지가 없는데. 잘 해봐야 본전 아닌가?”
사실이었다. 스티비 원더 곡은 한국이든 해외든 ‘오디션 금지곡’으로 통했다. 원곡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이었다. 원곡을 뛰어넘기 어렵다고 악명이 높았다.
그럼에도 왜 이 곡을 고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사정을 이야기했다. 내가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그 이야기를 말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내 감정까지 과감하게 드러냈다. 그래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학창 시절에 자신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살이 엄청 쪘었거든요.”
“이야기는 들었네.”
“수려하게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부르는 재호를 보고, 어떤 빛을 본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골랐다는 건가.”
좀 쪽팔린 부분까지 모두 보여줬다. 고민해보니, 결국 박찬용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을 설득하려면 내 취약점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를 능가하는 음악의 지식이나 경험은 없었다. 어차피 이성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차라리 불쌍함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네. 별생각 없이, 제 스토리와 감정만 생각해서 이 곡을 골랐습니다. 도저히 재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랜 기간 이 장르를 해오셨던 선배님이라면 혹시 좋은 생각이 있으실까 해서요.”
“나라고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이 곡이 나왔던 80년대에도 활동하셨죠? 위대한 탄생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젊은이가 그런 걸 알다니. 희한한 친구구만.”
박찬용 드러머의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얼굴에는 미소가 조금 번졌다.
미리, 그의 경력도 알아 두었다.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직 공부가 부족해. 데뷔는 그 전 미8군 밴드야~.”
미팔군 밴드 출신이라니. 정말 완전히 역사책에 나올 법한 인물이었다. 고지식한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는 말이야. 드럼 학원 이런 게 없었어. 그냥 혼나면서 배우는 걸세. 그러다가 부상을 입어서 그만둔 놈도 있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스틱을 잡을 때도 있고 그랬지.”
영화 ‘위플래시’에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나도 들었다. 드럼은 유독 체력이 필요한 악기였다. 부상으로 그만둔 사람도 많았다. 가수 장기하도 원래 드럼 지망생이었는데 부상으로 접고 뒤늦게 보컬이 된 케이스였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갈고 닦아야, 비로소 좀 들을만한 연주가 나오는 걸세. 밴드 음악의 등뼈. 척추. 지휘자지.”
그의 말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적어도 그가 왜 드럼 프로그래밍에 화를 내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을 갈아 넣어 만든 연주를 무시한 셈이니 말이다.
“죄송합니다.”
“뭐가 말인가?”
내가 재호에게 드럼을 무시하고 프로그래밍으로 연주하라 말해서 삐졌다는 말은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하긴, 본인이 생각해도 나이 차가 30살도 더 나는 새파란 친구한테 이런 거로 화를 낸다는 건 좀 쪽팔린 이야기긴 했을 터였다.
미안하다는 감정만 전해져도 충분했다.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
“그때부터 활동하셨던 선생님이라면 혹시 이 곡을 극복할 방법이 있을까 해서요.”
박찬용 드러머가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불쑥 말했다.
“사실 그때도 이미 있었네.”
“네?”
“드럼 프로그래밍 말일세. 그때도 이미 있었네. 그때 프로그래밍으로 1명이 혼자 만든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네.”
“뭐라구요?”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알고 고른 거 아닌가?”
“그럴 리가요. 그렇게 오래된 곡의 크레딧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원곡을 들어보게. 전자 드럼이야.”
Mp3를 꺼냈다. 보통 mp3 모드로 해 두었다. 음악을 틀었다. 정말 프로그래밍한 드럼 특유의 기계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몰랐습니다. 정말이네요.”
“그 곡은 스티비 원더가 혼자 다 했지. 피아노부터 프로그래밍까지 전부 말이야. 컴퓨터 음악이 이미 이때부터 있던 걸세. 천재 한 명이, 연주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만의 비전을 완벽하게 실현한 음악 말이야. 그때는 나도 이제 다른 기술 알아봐야 하나 싶었네. 다행히 그런 날은 오지 않았지만.”
이제야 그런 곡이구나 하고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흥분해서 덥석 박찬용 드러머의 손을 잡았다.
“뭔가?”
“선생님! 있습니다.”
“뭐가 말인가?”
“제가 스티비 원더를 이길 방법이요.”
“그게 뭔가?”
“선생님이요.”
박찬용 드러머가 ‘헉’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뭘?”
“제가 스티비 원더보다 노래를 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티비 원더가 프로그래밍한 기계 드럼보다, 더 사람답고, 더 그루브하고, 더 현장감 있고, 더 열정 있는 드럼을 박찬용 드러머 님이 쳐주실 수는 있어요! 제아무리 전자음악이 판을 쳐도, 드럼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스티비 원더도 무대에서는 리얼 드럼을 쓰잖아요. 박찬용 님만큼 훌륭한 드러머를 섭외하지는 못하겠지만요.”
“비행기 태우는 소리 하지 말게.”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얼굴 표정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저는 노래 완전히 숙지했습니다. 좀 바뀌어도 금방 적응됩니다. 편곡을 선생님에게 완전히 맡기겠습니다. 내일까지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최대한 현장감 있는 드럼이 사는 편곡으로요.”
“내가 말인가?”
“네네 밴드 마스터님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한다. 심지어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능숙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면 더더욱.
“허… 허허 참. 젊은이가 엉뚱하구만!”
말과는 달리 드러머는 기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가능하실까요?”
“한번 내일 합주까지 편곡을 생각해봄세.”
“감사합니다!”
이로써 박찬용 드러머는 완전히 내 편이 된 듯해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뒤돌아서는 순간…
“잠깐!”
박찬용 드러머의 목소리가 나를 멈춰 세웠다.
“네?”
“그걸로는 부족하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노래가 부족하단 말일세. 스티비 원더의 진짜 장점이 뭔 거 같은가?”
“노래도 잘하고. 곡도 잘 쓰고. 연주도 잘하고. 다 장점 아닌가요?”
“훌륭한 답변이야.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세. ‘그걸 다 해봤다’는 게 핵심이야. 노을 군 자네는 노래가 유일한 특기지?”
정말 그랬다.
“네넵.”
“피아노나, 드럼이나, 춤이나… 다른 인접한 무언가를 해보면, 노래만 부를 때 몰랐던 무언가를 반드시 알게 되네. 스티비 원더는 음악에 미친 사람이야. 그는 밴드의 거의 모든 악기를 완벽하게 다루네. 하모니카 같은 일부 악기는 그 악기의 연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뛰어나게 다루지. 그게 노래에도 영향을 미치네.”
“아…!”
“그냥 ‘노래를 잘한다’ 정도로는 스티비 원더의 곡을 더 잘 부르기는 어렵다는 뜻일세. 원곡을 아는 사람은 그 아우라의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각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사실이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제 와서 피아노를 배울 수는 없었다. 곡을 바꾸라는 뜻인가 싶었다.
“악기를 새로 배우란 건 아니네. 이미 가지고 있는 걸 쓰라는 거지.”
“무슨 말씀이시죠?”
박찬용 드러머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렇게 가까이서 눈을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깔끔하게 다듬은 흰 수염과 구릿빛 피부 사이에 깊은 눈이,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자네, 코러스 했지? 그것도 꽤 오래.”
!!
최대한 감정을 다스렸다. 조금이라도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그건…”
박찬용 드러머가 그대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네. 뭔 이유가 있겠지.”
박찬용 드러머는 내 노래만 듣고, 내가 코러스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게 분명했다. 역시 베테랑은 달랐다. 다행히 그는 자기랑 관련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타입은 아니었다.
“네네.”
적당히 얼버무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다고 ‘15년 회귀한 14년 차 코러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럴 수는 없었으니까.
“그건 큰 자산이야. 코러스 경험을 살려보게. 지금처럼 언뜻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장점을 아예 살려보는 거야. 그것만으로 노래가 훨씬 좋아질 걸세.”
말이 끝나고 박찬용 드러머는 내 어깨를 손으로 툭 치고 바깥으로 나갔다.
‘코러스 경험이라…’
해답뿐 아니라 새로운 무기도 하나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 *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라이브 대결 당일이었다.
TOP 4는 사이좋게 미장원에 앉아 헤어 메이크업을 받았다. 문루아는 여가수답게 훨씬 오래 걸리는 관계로 따로 메이크업을 받았다. 남자들은 뭉쳐서 한 번에 진행했다. 머리를 받는 동안 윤결 작가가 들어왔다. 상태 확인을 위해 온 듯했다. 그녀가 우리에게 물었다.
“준비 잘 되고 있나요?
내가 대답했다.
“네에~”
“아시죠? 오늘 녹화 끝나고는 하루 자유시간 드립니다. 편하실 대로 쓰세요. 내일 오전까지만 오시면 됩니다.”
윤결 작가는 문루아 상태를 확인하러 옆 방으로 넘어갔다. 내가 재호에게 슬쩍 물었다.
“재호 너는 또 형이랑 형 선배란 사람 만날 거지?”
“뭘 또냐? 이번에는 꼭 만나야지. 벌써 형 못 본 지 몇 달째야. 매번 꼭 뭔 일 생기더라구.”
“그냐.”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Mp3를 통해 확인했다. 오늘도 재호가 대록그룹 3세와 관련해서 마약으로 잡혀 들어간다는 알람이 떴었다. 하도 자주 봐서 이젠 떨리지도 않았다.
마약과 재호의 악연을 드디어 끊어 줄 때였다. 이미 준비는 다 완료했다.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재호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니는 뭐 할 건데?”
그러고 보니, 계획을 짜느라 정작 내 자유시간 계획을 못 짰다.
“그러고 보니 계획을 못 짰네. 무대 신경 쓰느라.”
“뭐야 싱겁게. 너도 따라올래? 너도 인맥 좀 쌓아야지. 도움이 될 거야. 최고 로펌 변호사라구.”
“……뭐 그러자.”
직접 보면 더 안심이 될 수도 있을 듯했다. 급한 경우에는 내가 재호를 끌고 나가는 방법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이미 손을 써서, 미래는 이미 바뀐 걸 mp3로 확인했다. 하지만 대비가 철저해서 나쁠 건 없었다.
* * *
라이브 방송 3시간 전. 무대에서의 마지막 리허설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박찬용 드러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습 잘 같이했다. 분위기도 좋았다. 근데 하필 이날, 마지막 밴드 리허설 날 그가 오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혹시 어딜 다쳤나? 그렇다기에는 다른 TOP4의 무대 리허설은 문제없이 매끄럽게 끝났다.
‘설마 지금까지 날 방심시키고 마지막에 내 등에 칼을 꽃는다건가…’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사라졌다. 그렇게 별의별 생각이 들 때 즈음이었다.
덜컥.
문이 열렸다. 박찬용 드러머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