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밴드 연습실에 들어올 때부터 공기가 달랐다.
“싸늘하다…”
타짜도 아닌데, 차가운 눈빛이 뒤통수로부터 느껴졌다.
박찬용 드러머였다.
뭐라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차가운 눈빛으로 볼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밴드 마스터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어 노을이! 왔어? 선곡 좋던데! 니는 80년대생이 무슨 7080 노래만 고르나.”
“아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내야 좋지. 우리 세대 노래 오랜만에 슈퍼스타서 하네. 자자 다들 준비합시다! 이번 곡은 스티비 원더의 I Just Want To Say I Love You입니다~.”
이번 선곡은 스티비 원더 곡이었다. 팝송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재호를 기리기 위한 곡이었다. 미디엄 템포의 편안한 음악이었다. 좋게 말하면 클래시컬한 팝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뻔하고 무난한 고전적인 곡이었다. 그만큼 애매한 템포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는 드럼이 중요했다.
문제는 드럼이었다.
쿵 탁! 쿵 탁! 쿵 탁!
첫 번째 합주가 끝나는 동안, 박찬용 드러머는 딱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딱히 나와 싸우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의견대립도 없었다.
연주가 문제였다. 악보상으로는 딱 맞는 연주였다. 하지만 이전 드럼에서 보였던 절묘한 긴장감이 사라졌다. 그루브도 없었다. 그냥 기계처럼 쳤다. 아무런 느낌 없는, 정박이었다.
슬쩍 박찬용 드러머를 봤다. 그는 또다시 나를 ‘뭘 보나?’ 하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밴드 마스터는 사근사근하게 내게 물었다.
“어때? 좋나?”
“네네 괜찮은데…”
편곡 방향 자체는 괜찮았다. 밴드 마스터가 충실하게 나와 대화해서 짜준 그대로였다. 드럼만 빼고. 슬쩍 밴드 마스터에게 이야기 좀 해달라는 뜻으로 드러머에게 시선을 돌렸다. 밴드 마스터도 드럼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슬쩍 박찬용 드러머에게 물었다.
“저… 찬용 선배. 어때요? 문제없어요?”
박찬용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문제가 뭐 있겠는가.”
내가 최대한 해맑게 말했다.
“저… 조금 느낌을 넣어 주실 수 있을까요?”
“허허. 뭐 기계를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람이 그게 되겠나?”
‘영감님 삐졌군.’
내가 재호에게 드럼을 프로그래밍으로 대체하라 말했다는 말을 듣고, 돌아선 것이 분명했다. 밴드 마스터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 아무리 마스터라도, 최연장자이자 최고 경력자인 박찬용과는 불편한 관계인 모양이었다. 드러머에게 뭐라 하는 대신, 기합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다.
“자 한 번 더 해봅시다!”
한 번 더 한들, 문제가 그대로인데 연주가 나아질 리가 없었다. 연주가 그대로 덜컹거렸다. 베이스와 드럼이 정박으로 연주는 했지만, 드럼이 칼박 똥필이니, 베이스마저 평이해졌다. 순식간에 최고의 연주자들의 합주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연주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쑥대밭이 된 연습이 끝났다.
‘이래가지고 무대가 가능할까?’
* * *
밴드 합주 후에는 개인 정비 시간이었다. 피아노가 있는 곳에서 개인 노래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연습 방향이 잘 잡히지 않았다. 멜로디와 가사는 이미 숙지한 상태였다. 문제는 편곡 방향이었다. 어떻게 음악을 이끌어야 할지 막막했다.
역시나 드럼 때문이었다. 감정도 긴장감도 없는 드럼 때문에 초반부가 늘어졌다. 후반부에 어떤 변화를 줘도, 초반부가 지루하니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연습실에는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 또한 고민 중인 나를 담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카메라가 없었지?’
슬쩍 화장실로 들어가 mp3를 켰다. 그리고는 내가 여태껏 얻지 못한 특성들을 확인했다. 혹시나 박찬용 드러머와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사람의 마음을 잠시 조종한다던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던가 그런 거면 좋을 텐데…’
잠깐.
Mp3를 조작하던 손가락을 멈췄다. 뭔가 꺼림칙했다. 내 사고방식이 말이다.
박찬용 드러머는 여태껏 내가 만난 빌런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딱히 잘못한 건 없었다. 자기 드럼에 자부심이 좀 과하게 많은 기술자일 따름이었다. 지금도 내게 폭력을 쓰거나 무슨 쌍욕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악보대로 드럼을 쳐 줄 뿐이었다. 인심 좋은 서비스를 안 해주는 건데, 그게 되게 큰 잘못은 아니었다.
MP3로 본때를 보여줘야 할, 그런 종류의 일은 전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는 게 맞았다.
어느새 MP3에 너무 중독된 건 아니었을까… 이거면 뭐든지 해결이 너무 쉬우니까.
그때였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노크했다.
“누구세요?”
“노경진 PD입니다. 생방송에 찍을 인터뷰 담으러 왔습니다.”
안심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런가, 괜히 깜짝 놀랐었다.
“1분 내로 가겠습니다.”
* * *
정신을 가다듬고 화장실을 나왔다. 어느새 연습실에 카메라와 오디오가 설치되어 있었다. 인터뷰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번 생방송에서, ‘내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에 관한 영상을 틀려고 해요. 잠깐 인터뷰 괜찮아요? 문루아 양이랑 주환희 군은 이미 했어요.”
“네네 알겠습니다.”
노경진 PD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제작진이 전체 교체되는 홍역을 치렀다. 그럼에도 그는 프로답게 자기 태도를 유지했다. 이 사람을 총괄 PD가 되도록 유도한 건 정답이었다.
“노을 군처럼 타고난 가수한테 묻기엔 좀 웃긴 질문이긴 한데. 언제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웃기지 않습니다. 저는 가수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제 계기는 재호였습니다.”
“원재호 군이요? 그러고 보니, 둘이 동창이죠?”
“네. 사실은 저희 둘이 다녔던 중학교에서 팝송 콘테스트를 매년 했었는데…”
그렇게 나는 내가 가수를 꿈꾸기 시작한 계기를 최대한 자세하게 말했다. 재호가 스티비 원더의 노래로 팝송 콘테스트를 우승했다. 그때, 모두에게 인정받던 재호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도 재호처럼 되었으면 하고 꿈꾸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수 지망생이 되었다. 라는 이야기였다.
내 말을 듣던 노 PD가 말했다.
“야… 재미있네요.
“어떤 부분이요?”
“지금 시청자 입장에서 제가 보기엔, 권노을 군이 진짜 하늘이 내린 가수처럼 보이거든요. 원재호 군은 뭐랄까? 다 잘하는데, 가수를 하고 싶어서 가수를 하는 느낌? 그런 게 있어요. 두 분 다 노래를 잘하고, 두 분 다 잘생겼지만.”
“재호는 공부를 잘하게 생겼고, 저는 아니란 뜻이죠?”
“아 그런 뜻은 아닌데…”
“그런 뜻이시라면, 정답입니다.”
노 PD가 풋 하고 웃었다.
‘뭐 사실이니까.’
사실 재호는 뭘 하든 잘할 녀석이었다. 그래서 더 공부를 자기보다 잘했다는 형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지 몰랐다. 나는 깨끗하게 공부는 포기했기 때문에 자격지심도 없었다. 낙제생의 장점이랄까.
“가수 준비를 하다 보니, 생각했던 거랑 달랐던 점은 없어요? 저는 PD 지망했을 때 상상했던 거랑, 지금 하는 일이 전혀 다르거든요? 처음에는 그게 좀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죠. 노을 군은 어때요?”
역시 노경진 PD, 능숙했다. 자기 이야기를 슬쩍 하면서 인터뷰 대상자의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었다.
나도 깊은 이야기는 환영이었다. ‘관객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모시던 레전드 가수의 가르침이었다.
“많았죠.”
“하나만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떠올랐다. 당연히 박찬용 드러머도 볼 테니, 좀 둘러서 표현해야 했다.
“인간관계요.”
“인간관계가 고민이에요? 벌써?”
“고민이라기보다… 제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더라고요. 예전에는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오디션도 겪고, 나이도 먹으면서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어떤 인간관계가 고민이에요? 시청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거 같아요.”
“글쎄요. 예를 들자면, 코러스와의 관계라던가, 연주자와의 관계. 프로듀서, 작사가, 매니저… 모두와 관계가 있더라고요.”
“그죠 그죠. 권노을 군쯤 되면 대형가수를 노려야 하니까. 스타디움을 채우는 가수는 목소리도 뛰어나야 하지만, 그만큼 팀도 위대해야 하잖아요?”
“맞습니다. 다른 분들이 하자는 대로만 하면 휩쓸리고, 제 특성에 안 맞는 음악이 되더라고요.”
이전 생에 내 이야기였다. 자신감이 없어 세션들이 하자는 대로만 했다. 돌이켜보면 점수는 잘 받았지만, 내 개성이 전혀 없는 무대들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내 무대는 철저하게 잊혔다. 성량 자랑만 있고, 내 개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개성을 최대한 살리기로 했다. 무대 기획에 주도적으로 뛰어들었다. 무대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그렇다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니까, 그것도 문제가 있더라고요. 오해도 생기고, 그중에 사실도 있고요. 점점 주변과 안 좋은 감정이 쌓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남의 도움 안 받고 모든 걸 나 혼자서 할 수도 없고.”
“맞아요. 저도 그래요. 후배가 편집하면 마음에 안 들어요. 그렇다고 제가 다 편집한다? 말이 안 되죠. 돌아가는 카메라가 몇 갠데. 결국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어요. 그 균형점을 잡기가 진짜 어려워요.”
그러고 보니, 음악 무대를 꾸미는 나나, 방송을 지휘하는 노경진 PD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바로 궁금증이 생겼다.
“PD님은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주변이 PD님 계획에 반대할 때?”
“어떻게 하냐~. 뭐 당연하지만 그때그때 다르겠죠? 저보다 미숙한 후배면, 미안하지만 내가 까라는 대로 까야죠. 하하. 그 많은 친구들을 다 설득할 수는 없으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건 편집, 편집!”
그러면서 노 PD는 장난스럽게 가위질 흉내를 냈다.
“믿을 만한 사람의 항의라면요? 예를 들면… 저보다 훨씬 더 경력자에, 전설적인 분이라면?”
“신용할 수 있는 분이라면… 저 같으면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이야기요?”
너무 뻔한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노 PD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제 전체 그림을 알려주는 거예요.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렇게 될 거다. 생각보다 사람들, 다른 사람 입장을 잘 몰라요. 다들 자기가 경험하고, 자기가 본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라. 내 입장을 찬찬히 설명하고, 내 의도를 설명하면 보통은 따라오더라고요.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뭔가요?”
“도와달라 그래요. 이런저런 의도가 있다. 그러니까 이런 도움이 필요하다. 도와달라. 그러면 선배들은 또 잘 도와주더라고요. 자존심 쎈 양반들이 많아서.”
뭔가 힌트를 찾은 느낌이었다.
“이번 질문은 적당히 편집해줄까요? 누가 고민의 대상인지까지는 드러나지 않게끔?”
역시 노경진 PD, 출연자의 미래를 방송만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신뢰가 갔다.
“네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갈까요?”
* * *
그날 밤, 모든 일정이 끝났지만, 나는 밴드 합주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밀크티를 든 채였다.
지금 시간은 저녁 8시 30분, 이미 스케쥴은 확인해 두었다. 마지막 밴드 합주가 끝날 시점이었다.
문이 열리고, 주환희가 나왔다.
“횽 여기서 모해요? 자유시간 아녜요?”
“볼일이 있어서.”
“그래요 횽.”
주환희가 열어놓은 문을 슬쩍 열었다. 밴드 멤버들이 하나하나 빠져나오고 있었다.
지난번 합주 때, 밴드 멤버들의 버릇을 확인했다. 박찬용 드러머는 항상 버릇처럼 가장 먼저 합주에 출발하고, 가장 나중에 나오곤 했다.
다른 밴드 멤버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박찬용 드러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왔는가?”
박찬용 드러머가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아직도 눈빛에는 나에 대한 짜증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황이라는 감정이 더 커 보였다. 내가 합주 후에 다시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테니까.
“음료 한 잔 드시죠.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준비해 놓은 캔 음료를 꺼냈다.
“이건? 데자와잖나!”
당황해하던 박찬용 드러머가 넙죽 캔 음료를 받았다. 바로 꿀꺽꿀꺽 들이켰다.
싱긋, 웃음이 나왔다.
이전에 레전드 가수 코러스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박찬용 드러머는 데자와라면 사족을 못 썼다. 특히 연습 후에 한 캔 마시는 게 그의 루틴이었다.
물론 이 정도 가지고 그의 마음을 돌릴 수야 없었다. 하지만 내 준비도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