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딱 한 명의 악플러였다.
딱 한 놈이, 어마무시한 성실함과 속도로 댓글을 달고 있었다. 죄다 내 욕이었다. 유동닉부터 고정닉까지 모두 동원했다. 하지만 ip 주소가 같아서 금방 눈에 띄었다.
‘음악은 좀 아나 본데. IT를 잘 아는 편은 아닌 모양이군.’
악플러의 행동은 점점 고조되었다. 이제는 내 무대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장문의 분석 글을 올렸다.
제목: 권노을 무대가 개구린 이유
본문: 무슨 권노을 글이 원곡보다 괜찮다는 둥. 별 소리를 다 하고 있는데. 개소리임.
왜냐?
첫 번째. 리듬감이 떨어짐. 마이크 넬슨 원곡은 노래만 들어도 춤출수 있을 거 같다. 권노을 노래 듣고 춤 추고 싶냐? 싱코페이션이 좀 특이하긴 하다만 그 뿐이다.
두 번째. 개성이 약하다. 권노을 같은 느낌으로 노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있다. 실력이 나쁘지 않은 거지 특이하진 않다. 마이크 넬슨하고 비슷한 가수가 한 명이라도 있냐?
제발 마잭이랑 비교하고 깝치지 마라. 권노을이 마잭 급이면 파리가 새다.
“하하.”
신랄했다.
사실 기분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음악을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들은 거 같기도 했다. 싱코페이션, 그러니까, 엇박자로 리듬을 가지고 노는 테크닉에 신경을 쓰는 네티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안티 팬이야말로 진정한 광적인 팬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래도, 악플은 악플이었다. 누군가는 화를 낼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15년 간 무명가수의 설움을 견뎠던 내게는 달랐다. 관심이라면 악플조차 고마웠다.
하지만 인정은 받고 싶었다. 이렇게 음악에 대한 지식이 있고, 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그것도 가치가 있을 거 같았다.
‘다음 무대에 목표가 하나 더 생겼군.’
* * *
다음 날,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이제 바로 다음 주에 있을 생방송을 준비해야 했다.
처음에는 감옥 같던 곳이 다시 오니까 푸근한 집 같았다. 역시나 햄릿이 말했듯, 좋고 나쁜 건 없고,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다.
들어오니 역시나, 재호가 미리 와 있었다.
“왔어?”
아베 마리아 첼로 연주가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알싸한 커피 향도 퍼졌다. 그사이 짐을 다 싸고 커피까지 내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벌써 왔냐?”
“올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오는 게 좋은 거라구.”
그런가 보다 하고 탁자 앞에 앉았다. 이미 재호랑도 며칠 같이 살았다고, 금방 익숙해졌다.
재호가 준 커피를 마시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했다.
인덱스 카드 가득 적어 둔 이전 오디션의 기억은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다. 이윤강 PD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모든 미래는 낯설어질 터였다.
[이윤강 PD, 검찰 조사받아… 기자 질문에는 묵묵부답.]
검찰 포토 라인에 선 이윤강 PD의 모습을 봤다. 최고의 스타 PD가 되겠다는 사람의 끝이라기엔 상당히 허무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내 비참한 결승의 미래는 사라졌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미래를 mp3로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해야 했다.
뭐, 그건 그것대로 나쁠 건 없었다. 내가 원하는 미래를, 내가 주도해서 바꿨다. 드디어 그 꿈이 이루어졌다. 이제 또 다른 목표가 생겼을 따름이었다.
깊게 고민을 하다 보니 목이 탔다. 살짝 커피로 목을 축였다. 케냐AA의 진한 커피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커피콩을 고르는 방식부터, 온도까지, 모조리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재호의 솜씨였다.
‘역시나, 참 세심한 배려가 몸에 밴 놈이야.”
맛있는 커피를 마셨지만, 입이 썼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꾸고 싶어서 기어코 바꿔낸 미래를 떠올리니, 바꾸고 싶은 미래가 또 하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재호의 미래였다.
‘지금껏 본 재호는, 절대로 마약 사용자가 아니야. 절대.’
재호와 함께 살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저 녀석은 술 한 모금, 튀김 한 조각 입에 안 대는 녀석이었다. 마약은커녕 담배 한 모금 할 리 없었다. 머릿속에 0.1%의 의혹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은 mp3에 어떤 경고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 재호의 마약 스캔들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재호를 쳐다봐야 했다.
내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재호 문제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남의 일이라고 너무 수동적인 건 아니었나 하는 죄책감도 조금 생겼다. 그간 재호 덕에 만들 수 있던 풍성한 무대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때, 재호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둘은 늦네?”
“아, 그러게.”
2시부터 숙소 입성이 가능했다. 30분이 넘었음에도 아무도 오지 않고 있었다.
“뭐, 연예인들은 연예인들의 사정이 있겠지.”
재호가 약간 씁쓸하게 말했다.
“우리도 뭐 동등하잖아?”
재호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말이야?”
“루아 선배든, 환희든. 우리랑 같은 처지잖아? 오디션 참가자.”
재호가 푸핫 웃었다. 마시던 밀크티도 내려놓았다.
“그건 새롭네. 야, 문루아 님은 아시아의 달이야. 아시아의 달. 오리콘 차트 1위를 밥 먹듯 한 사람이라구.”
그건 그랬다.
“환희는?”
“주환희도 그래 보여두. 대단한 거지. 얼마나 자신 있으면 TYB가 연습생을 방송에 내보내겠어.”
…사실 그보다 훨씬 사정이 복잡해 보였지만 일단 넘어갔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랑 우리 둘이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잖아? 대단한 거야 우리 둘도.”
“너만 그런 거지.”
“뭐?”
“나는 여지껏 니들 셋을 이겨본 적이 없어. 득표율이든 화제성이든. 꼴찌 확정이나 마찬가지라구.”
항상 젠틀하기만 해서 몰랐는데, 재호는 상당히 자신에게 엄격한 타입이었다. 자신감이 너무 없었다. 조급함마저 느껴졌다.
…어쩌면 그런 태도 때문에 마약에 얽혔는지도 몰랐다. 지금 뭔진 몰라도, 재호가 아는 어떤 ‘형’이란 사람과 만나면, 마약 관련 건에 얽힐 운명이었다. 사실 그냥 그깟 형, 안 만나면 됐다. 하지만 꼭 만나야 된다 말했다. 재호의 낮은 자존감과 뭔가 연관이 있어 보였다.
문제는 저 녀석에게 자신감을 어떻게 심어 주느냐, 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다행히 숙소에는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는 없었다. 제작진이 양해를 구하고 카메라를 들고 방에 올 때를 제외하면 프라이버시는 유지됐다.
환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부터 숙소 생활은 인터넷과 전화기 사용 모두 자유였다. TYB는 이윤강과는 달리, 무엇도 숨기지 않았다.
-예 횽.
“쭈. 너 언제 오냐?”
-글쎄요. 제가 아니라 누나가… 일부러 늦는 건 아닐끄에요. 이전 스케쥴이 늦어지고 있나 봐요.
대충 알만했다. 문루아쯤 되면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대기업 행사라도 한 번 가면 몇천만 원이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토요일 오전부터 바쁘다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그럼 출발하면 문자라도 하나 해줘. 기다리지 않게.”
-알겠어요 횽.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들었지? 이제 안 기다려도 된다. 루아 선배랑 환희가 오면, 방송도 그때 시작하겠지.”
“그래.”
재호는 여전히 멍하니 밀크티를 마셨다. 사실 재호는 항상 최상위권이었다. 나랑 주환희, 문루아를 제외하면 누구도 재호보다 인기가 많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늘 준비했던 계획이 연속된 돌발상황으로 모두 무산됐다. 갑자기 재호는 계획에 없던 TOP 4 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본인이 가장 인기가 부족했다.
골똘히 생각해봤다. 그러니 재호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녀석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조급해질 만 했다.
문루아. 말할 필요 없는 우승 후보였다. 일단 10년간 아시아 최정상 가수로 군림했다. 그런 가수가 공백 기간을 거쳐서, 보컬 실력과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춰서 컴백했다. 그 컴백 스테이지로 택한 무대가 바로 ‘슈퍼스타 T’였다. 화제성이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
주환희. 그 화려하다는 TYB의 연습생 중에도 이례적일 정도로 인기 있는 연습생이었다. 스무 살이 다 되어 가도록 데뷔하지 못했다는 서사가 오히려 사람들 주목을 끌었다. 연습생 신분에 엔간한 아이돌보다 큰 팬클럽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슈퍼스타 T에 참전한 후 팬덤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나 권노을. 좀 잘난 척 같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여지까지 총 평균 점수를 살펴보니 내가 제일 점수가 좋았다. 거기다가 갑자기 살이 빠졌다는 서사가 붙으면서 더욱 관심을 받았다. 일단 오디션 프로니까, 노래 잘하는 후보가 가장 관심을 받기 쉬웠다. 나 또한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에 비해, 재호는 확실히 서사나 화제성이 떨어졌다. 편곡이 특기라니, 오디션 프로에서 일단 좀 아쉬웠다. Y대 공대 출신이라는 스펙으로 받는 주목 정도였다. 보컬의 레인지도 아주 넓지는 않았다.
정말 그러고 보니, 재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주눅이 들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잘해, 얼굴 잘생겼어, 집안 좋아, 요리 잘해, 심지어 성격도 좋아. 저런 녀석이 무슨 쫄리는 게 있나 싶더니만.’
학창 시절 재호가 너무나 엄친아였기에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가수 세계, 정확히는 ‘오디션 세계’라는 특수한 세계에서, TOP 4까지 올라온 지금, 충분히 재호는 언더독이었다. 자존감이 부족해질 만했다.
하지만 이대로 재호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걸 방관할 수는 없었다. 저렇게 방관하다가는 언젠가는 마약을 하는 재벌과 엮이게 되고, 누명을 쓰게 될 터였다. 언제까지 내가 mp3 알람을 보고, 꽁무니를 쫓으며 지켜 주겠는가?
지금 노래하고 편곡하는 원재호, 그 자신으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라는 확신을 줘야 했다.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너는 지금 이대로도 멋져’ 뭐 이렇게 닭살 돋는 말을 한다고 바뀔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우승을 시켜주거나 할 수는 없었다. 적당히 크고, 또 적당히 작은 건수여야 했다.
다행히, 이제 의미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 속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이거면 되겠네.’
* * *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문루아와 주환희가 숙소로 들어왔다.
“늦어서 미안해요.”
“오랜만이에요 횽들! 다들 보고 싶었어요.”
역시나 둘이 오니까 금방 숙소가 시끌벅적해졌다. 문루아는 2층, 나머지 우리 셋은 1층 방들을 쓰기로 했다. 넉넉하게 각방을 쓰고도 남았다. 조작에 연관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모두 나간 덕에, 갑자기 숙소 생활이 쾌적해졌다.
숙소 생활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럼 집안일은 어떻게 할까?”
문루아가 대답했다.
“다들 자기가 잘하는 거 하면 되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깔끔한 문루아는 청소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힘이 센 주환희는 쓰레기를 버리거나 화장실 청소를 한다거나 하는 힘이 드는 일을 잘했다. 재호는 요리를 워낙 잘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설거지 체질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설거지를 하면 뭐랄까, 어떤 종교적인 몰입감에 내 몸을 맡기는 기분마저 들었다.
“뭐 그럼 그거면 됐네.”
주환희가 노트북을 꺼내며 물었다.
“횽, 뭐해요?”
“인터넷. 이제 와이파이 되잖아.”
“댕~. 나도 할래여. 와이파이 비번 뭐예요?”
“TYB1101”
“코마워요. 횽. 인터넷 되니 살 거 같네요.”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거나 하던 때는 아니지만, 인터넷은 이미 우리 삶에 깊게 박힌 2005년이었다. 인터넷과 핸드폰을 쓰게 해주니, 숙소 생활이 한결 편안해졌다.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세상 소식에 동떨어져 고립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포털에 다양한 뉴스 기사가 쭉 떴다.
뉴스를 확인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내가 직접 뉴스를 만들 수도 있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게 바로 그거였다.
“재호야.”
“왜?”
“이거 좀 봐라.”
노트북을 열어 재호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브리토 새턴? 요새 제일 잘 나가는 미국 가수잖아. 얘가 왜?”
“신곡 소개 기사지?”
“그러네?”
“신곡 한번 틀어봐. 어떤 곡인지.”
재호 부탁대로 곡을 틀었다. 살짝 웃음이 나왔다.
‘이 곡이 네놈 자신감을 부활시킬 보약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