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34화 (34/280)

제34화

2주 후에 엄청난 식욕이 습격할 예정이었다.

사실, 조금 이상하긴 했다. 살이 이렇게 급격히 빠지면 요요 현상이라도 있어야 했다. 불치병이 없다고 요요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몸은 항상 원래 자기의 컨디션으로 되돌아가려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내 몸에는 이상하게 관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원래 날씬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알고 보니 몰아서 오는 모양이었다.

Mp3에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3주 후 금요일, 그러니까 딱 방송을 재개하는 날에 요요가 올 예정이었다. 그때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쉽지는 않지만, 일단 준비할 수 있는 건 모두 준비해봐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mp3를 통해 나에 대해 이야기했던 미래 기사들을 읽었다.

그때였다.

“뭐해?”

“응?”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재호였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재호와 식사를 하던 자리였다.

“뭐 하냐구. 너 지금 16분 40초째 화장실에 있어.”

화장실에 간 후 연락이 없자 걱정이 된 재호가 화장실 앞까지 와본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mp3를 뒤로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재호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걸었다.

“좀 피곤했나 봐. 잠깐 졸았어.”

“뭐야. 놀랐다구.”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샌드위치가 왠지 작아 보였다. 벌써 요요 현상이 오는 기분이었다.

몸무게를 관리할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재호가 부러워졌다. 쥐톨만 한 샐러드만 먹고, 자기를 관리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모습이 놀랍게 느껴졌다.

잠깐, 그렇다면…

“재호 너는 그러고 보니 진짜 적게 먹네.”

“뭐 그렇지. 근데 또 아예 안 먹지는 않아. 단백질을 잘 먹어야 근육이 유지가 된다구.”

그래, 내가 궁금한 게 바로 그거였다. 나도 나름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준비했지만, 재호는 훨씬 더 체계적인 비결이 있을 터였다.

“뭔가 배가 안 고프면서, 살은 안 찌게 먹는 방법은 없어?”

재호가 갑자기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갑자기 그게 궁금하다구?”

“그래!”

“예전에는 그렇게 알려줘도 안 듣더니만. 지금은 이미 날씬하잖아? 이제 와서 왜.”

그러고 보니 재호는 내가 살쪘을 때, 항상 음식에 대해서 뭐라 뭐라 잔소리를 했었다. 내가 깨끗이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관리가 더 중요하잖아.”

다행히 재호는 납득한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지. 좋은 걸 깨달았네. 습관이 돼야 하그덩~. 매일 잔소리했던 보람이 있네.”

그런 보람은 좀 안 찾았으면 좋겠지만, 여튼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좀 알려줘 봐.”

“알겠어. 자. 룰 넘버 원. 적어.”

“그래, 뭔데?”

“적당히 그렇게 듣지 말고 적으라구. 자.”

재호는 주머니에서 펜과 메모장을 꺼냈다. 종이를 하나 찢어서 펜과 함께 내게 건넸다. 항상 필기구를 휴대하고 다니다니, 재호다웠다.

“그래. 뭔데?”

“자. 룰 넘버 원. 내 입으로 들어간 모든 걸 기록한다.”

시작부터 참, 나랑 안 맞을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그날은, TYB에서 집까지 굳이 걸어왔다.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오늘 오래 걷는다고 미래의 요요 현상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리 없었다. 미래의 칼로리를 태워주는 운동은 없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집이었다. 숙소 생활을 부쩍 많이 한 탓일까? 집이 낯설어 보였다.

집에 들어와 눕자마자 ‘에구구’ 소리가 나왔다. 누워서 바로 ‘위버멘쉬의 회복력’을 발동했다.

-위버멘쉬의 회복력

등급: S

설명

: 체력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하루 1회, 낮잠 후 체력과 의지력이 완전히 최상위로 회복된다.

: 회복을 위한 최소 수면시간은 30분이다.

: 고통은 현실의 시금석 노릇을 하게 되는 법이다.

처음에는 별 게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효자인 특성도 없었다. 덕분에 강행군으로 연습하면서도 체력 문제가 없었다.

정확하게 30분으로 시간을 맞춰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알람 소리 말고 다른 알람음이 함께 울렸다.

‘오… 이, 어딘가 그립기까지 한 짜증 나는 알람음은!’

Mp3였다. 서둘러 mp3를 확인해봤다. 화면이 반짝이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체력이 A로 레벨 업 했습니다.]

C로 시작했던 체력이 벌써 A가 되다니, 감개무량했다. 아마추어 운동선수 정도는 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 이후는 재능의 영역이라 노력으로 올릴 수 없다는 코멘트까지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아직 내 미래가 바뀌지 않았다. 지금 내 체력과는 별개로, 내 몸무게는 다시 100kg대로 돌아간다 적혀 있었다. 별짓을 다 해봐도 소용없었다. 재호의 노하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역시나 재호의 말이 맞았다. 나와 재호는 참 달랐다. 재호는 천채왕 심사위원을 통화하기 어려워하고, 나는 음식을 끊기를 어려워했다. 재호의 다이어트 비법도 딱 봐도 나랑 안 맞을 거 같았다.

‘잠깐?’

천채왕 심사위원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건강이었다. 그 또한 가수였다. 현재는 사업가니 몸을 관리할 필요는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식스팩이 있을 법한 탄탄한 몸을 유지했다. 60대임을 감안 하면 엄청난 컨디션이었다.

사실, 그동안 아무리 친해졌다고 해도 고작 몸무게를 빼고 싶다고 천채왕 심사위원에게 전화를 하는게 맞나 싶긴 했다.

하지만 mp3로 바뀌지 않은 미래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목: 충격! 슈퍼스타 T 권노을, 요요 현상으로 다시 130kg으로 복귀.

130kg으로 복귀라니… 예전보다 무려 20kg이 더 나가는 몸이었다. 사진만 봐도 비대해 보였다.

…이렇게 되긴 싫었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바로 천채왕 심사위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천채왕 심사위원님. 체중 관리에 대해 여쭤볼 게 있습니다. 시간 되실 때 통화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문자 메시지를 작성해 보냈다.

우웅 우웅~

5초나 지났을까? 바로 전화 통화가 왔다. 전 세계에서 가수를 제작하는 사람인데, 이리 답변이 빠를 수가 있나 싶었다.

-아~ 권노을 군. 잘 지냈어요?

“네넵 안녕하세요.”

-아이~ 또. 체중 관리라고 하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빨리 전화했어요.

“하하 그러셨군요.”

-제가 한국에만 있어도 바로 오라고 할 텐데. 지금 제가 천신군단 스케쥴 때문에 구룡도에 있거든요?

심지어 국제전화였다.

“아니… 그러시면 나중에 하셔도…”

-아아 괜찮아요. 노을 군 전화라면 받아야지. 지금 딱 10분 정도 시간 있네요. 바로 이야기하죠. 요요가 두려운 거죠?”

역시나, 내 고민은 천채왕 심사위원의 손바닥 안이었다.

“맞습니다.”

-급격하게 감량했는데, 다시 막 식욕이 솟구치는 거예요?

“이대로면 다시 원상 복귀될까 무섭습니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이 몸무게를 유지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제가 자료를 좀 줄게요.

천채왕 심사위원에게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다이어트에 대한 자료를 잔뜩 모아 둔 모양이었다.

-사실 잘 먹는 거보다 몸에 나쁜 걸 안 먹는 게 중요합니다. 먹으면 안 되는 리스트를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 이후 엄청난 TMI가 쏟아졌다. 다만 밀도가 달랐다. 여지까지는 좀 유희에 가까운 수다였다면 이번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바흐의 푸가처럼 구조화되어 있었다. 듣기만 해도 ‘아 이러면 진짜 살이 안 찌겠다’ 싶을 정도였다.

“이럴 때는 차전자피를 한 스푼 물에 타서 드시고요… (중략) 이때는 올리브유를 한 스푼 떠서…”

천채왕 심사위원은 최고급 영양사마냥 체중 감량 정보를 때려 넣었다. 10분 안에 모든 이야기를 정확하게 끝냈다.

-자. 이 정도면 일단 요요 현상은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질문 있나요?

사실, 큰 질문은 없었다. 기술적으로는 솔직히, 이보다 더 많은 정보를 모을 수는 없을 거 같았다.

문제는 나의 의지력이었다.

-질문 없나요?

이대로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내 의심을 말하는 건 불편했다.

하지만 이대로 도저히 천채왕 심사위원의 복잡한 체중 관리 매뉴얼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입을 뗐다.

“…이대로만 하면 체중 유지가 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의지력을 가지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게 천채왕 심사위원에게 내 고민을 말했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잠시 침묵했다. 1초인지 1분인지 모를 침묵이었다.

‘내게 실망했나?’

그때 천채왕 심사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권노을 참가자만 같으면 참 제작하기 편할 텐데요.

“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면 오히려 고맙죠. 문제를 숨기면 일이 커져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천채왕 심사위원이 좋아하니 뭔가 좋은 뜻으로 보였다.

-자,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에요. 정체성의 문제에요.

“정체성이요?”

-먹고 싶은 욕망, 그 욕구는 권노을 군 본체가 아니에요. 그 식욕을 억제하고, 더 나은 모습이 되고 싶은 권노을 군이 본인이에요. 알겠어요?

내 욕망은 내가 아니다… 란 뜻인 거 같았다.

“알 거 같기도 합니다.”

-차라리 식욕을 무슨, 악령에 씌였다던가 귀신이라던가, 여튼 내 식욕을 남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하면 훨씬 쉬워요. ‘나는 원래 막 먹고 그런 사람 아니다’라는 정체성만 있으면 요요 현상은 이겨낼 수 있어요. 알겠죠?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나는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다’라… 아예 내 정체성을 바꾸라는 뜻이었다. 사실상 다시 태어나야 했다.

3주 만에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 * *

그렇게 3주가 지났다. 노래 연습을 하고, 방송 분량을 위해 다양한 소규모 촬영을 하며 바쁘게 보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요요 현상을 이겨내기 위한 수많은 준비를 해뒀다.

요요 현상이 이후에 또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일단은 괜찮아 보였다. 바로 다음 날부터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라이브 방송 준비와 방송 분량을 위해서, TYB에서도 숙소 생활을 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 말인즉슨, 일단 오늘만 버티면 이후에는 누군가가 식단 관리를 해줄 거란 뜻이었다.

문제는 지금이었다.

‘철저하게 준비를 해뒀으니, 괜찮아. 괜찮아.’

내 마음을 다독였다. 어디까지가 내 마음이고, 어디까지가 내 본체가 아닌 내 욕망인지는 헷갈렸지만 여튼 일단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방송 재개 후 첫 방송이 시작되었다. 나는 눈으로는 TV를 켜서 확인했다. 그리고 손으로는 노트북을 켜서, 각종 커뮤니티에서 방송 반응을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커뮤니티는 방송 시작 전부터 난리가 났다.

-방송 곧 시작함.

ㄴ 대체 뭔 짓을 했길래 3주를 쉰거임? 산통 다 깨짐

ㄴㄴ 그거 주작 때문이라는 말 있던데.

-이제는 누가 나왔는지 기억도 안남.ㅋㅋㅋ 방송국 놈들 대체 무슨 생각이지.

ㄴ 응 그래도 보고 있는 니가 호구야.

3주가 지나서 인기가 식을 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관심이 커졌다. 갑자기 방송을 중단하고, 모든 언론 보도에 엠바고를 걸어 버렸다. 정보가 너무 없자, 되려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폭발했다.

온갖 추측과 짐작, 뇌피셜이 난무했다. TYB가 돈이 안 돼서 슈퍼스타 시리즈를 버렸다는 둥, 문루아가 탈락하니까 화가 나서 오디션을 멈췄다는 둥, 등등이었다. 모두 진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드디어, 길고 길었던 광고 타임이 끝나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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