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정확히는 조작 범위가 커졌다. 첫 오디션부터 조작이 시작됐다. 오디션 전체가 조작으로 점철되었다. 방송 전, 사전 녹화 대결부터 데이터가 잘못되었다.
인터넷 게시판도 난리가 났다.
ㄴ다 주작이었네.
ㄴ역시 애드리아나 언니가 떨어졌을 리가 없잖음.
ㄴㄴ 근거 없는 추측 ㄴㄴ
ㄴㄴㄴ지랄. 니는 무대 안봤냐?
ㄴ이제 오디션 프로 안 봐줘야 할 거 같음
ㄴㄴㅇㅇ 리얼하다더니 드라마보다 구라였네.
제작진이 누구를 띄웠는지, 또 누구를 떨어뜨렸는지는 기사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의견 또한 네티즌 수사대와 같았다. 어제 내가 본 무대 반응으로 봤을 때, 애드리아나의 득표수가 틀렸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기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혜택은 아마 오민수가 봤을 터였다. 오민수의 소속사 임원이 함께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근거였다.
‘어제 득표수를 확인해보면 되겠군.’
‘득표수 확인’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노경진 PD와 윤결 작가였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기존 시즌에서 표 조작이 없었는지 확인해달라고 제안했었다. 알아볼 시간은 충분히 줬다.
핸드폰이 없으니, 연락이 어렵다는 게 딱 하나 문제일 따름이었다.
다행히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 * *
오전이 채 끝나지 않을 무렵, 노PD가 숙소에 찾아왔다. 바로 독방에서 독대했다.
노PD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 안부 인사를 했다.
“1차 관문 통과 축하드립니다.”
답례를 했다.
“고맙습니다.”
“저도 편집하면서 참가자님 노래 봤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본론이 궁금했다.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나요?”
노 PD가 주섬주섬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노트북이었다.
“미리 말씀드렸죠? 가족 인터뷰 날이 오늘입니다.”
그런 말을 들었던 것도 같았다. 숙소 생활을 하다 보니 날짜 감각이 사라졌다.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죄송하지만 가족 인터뷰 참관은 규칙상 하기 어려웠고요. 대신 인터뷰를 보실 수 있게 영상 통화를 켜 놓겠습니다. 동생분은 노을 참가자가 보고 있는 건 모르구요.”
“인터뷰는 누가 진행하나요?”
“윤결 작가 혼자, 독방에서 진행합니다.”
역시 일 처리가 깔끔했다. 윤 작가가 진행하고 노 PD가 편집하는 가족 인터뷰라면 믿을 수 있었다.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컴퓨터 화면을 봤다. 영상에는 윤 작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앞에는 동생이 앉아 있었다.
윤결 작가가 먼저 물었다.
<준비되셨어요?>
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얼굴 표정만 봐도 긴장한 티가 났다. 너무 큰 문제 발언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기 새를 내놓은 엄마 새의 기분이 들었다.
윤결 작가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빠분 인터뷰는 잘 보셨나요?>
<네!>
<어떠셨어요?>
<너무 멋졌어요.>
<노래가요?>
<아니요! 얼굴이요.>
윤결 작가와 동생이 모두 파하하 웃었다. 웃음이 진정된 후 동생이 덧붙였다.
<평생 오빠를 봐 왔는데, 그렇게 잘생긴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너무 기뻤어요. 너무 기뻐서…>
동생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왜 눈물이 고였는지 알 거 같았다. 동생은 내 과거를 알고 있었다. 모두가 내 노래를 무시했었다. 내 노래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내 외형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모두가 환호하는 가수 지망생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동생이 말을 이어갔다.
<오빠 노래는 언제나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은 잘 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어요.>
윤결 작가가 맞장구쳤다.
<결의가 놀라웠던 거 같아요. 단기간에 그렇게 격한 체중 감량을 하다니요. 지금도 그 체중을 유지하고 있어요. 잘 먹지도 않아요.>
<오빠가요?>
동생의 눈이 동그래졌다. 동생은 먹는 낙으로 살던 과거에 나를 생각했을 터였다. 희한하게도 mp3로 살이 쭉 빠진 뒤로는 식욕이 생기질 않았다. 오히려 mp3가 내 스탯을 위해 단백질을 억지로라도 먹으라며 경고 알림을 보낼 정도였다.
동생이 말을 이었다.
<엄마 때문일 거예요.>
엄마, 라는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일찍 교통사고로 잃었다. 이후 엄마는 온갖 일을 하면서 우리를 키웠다. 청소부터 식당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잠을 자던 중 돌아가셨다. 심장마비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와 같은 사인이었지.’
<엄마가… 하늘로 가시고. 오빠가 바뀌었어요.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았어요. 엄마를 대신해서요.>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동생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서 노력했다.
<오빠에게 성공을 위한 간절함이 특별하게 있다면. 아마 엄마 때문일 거예요.>
그렇게 인터뷰가 끝났다.
노 PD가 내게 물었다.
“잘 보셨죠? 어떻게, 편집해야 할 내용이 있을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코끝이 시큰했다. 동생의 생각을 듣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다시 처음에 내가 왜 가수를 시작했는지, 왜 회귀했는지, 왜 성공하려 노력하는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해진 게 있었다.
역시나 이윤강 PD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일은 이윤강 PD를 파멸시킬 터였다. 그의 평생에 걸친 커리어와 명성은 산산조각 날 것이었다. 어쩌면 불쌍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단호해졌다. 나의 꿈은 동생의 꿈, 또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 그 꿈은 그리고 내 것이었다. 사실은 내가 ‘슈퍼스타 T’의 우승자였으니까.
그 꿈을 빼앗고, 우리 가족의 꿈을 망가뜨린 사람이 이윤강 PD였다. 이전 생에서 나는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를 갈며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그의 주작의 칼날이 나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당해줄 수 없었다. 이건 동생, 그리고 엄마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더 물어볼 말이 있지 않아요?”
노 PD의 목소리가 푹 들어왔다. 갑자기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네?”
노경진 PD가 방문을 슬쩍 잠갔다. 갑자기 목소리도 조용해졌다. 누가 훔쳐 들으면 안 되는 비밀을 말하겠다는 뜻이었다.
“저한테 진짜 궁금한 이야기가 하나 있죠?”
역시나, 노 PD는 득표수를 확인해 본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득표수, 확인해보셨나요?”
노경진 PD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갑자기 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말이 안 돼요. 득표수가 소수점이 없어요. 한 번이 아니라 시즌 당 세 번 이상 그래요. 게다가 시즌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그런 투표 결과가 많아져요. 수학은 잘 모르지만, 거의 이럴 확률은 없죠.”
노 PD가 고개를 떨궜다.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권노을 참가자는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처리했으면 해요?”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다.
지금껏 ‘슈퍼스타’ 시리즈는 상습적으로 조작이었다는 사실이 공표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뮤직넷은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함께 진행했단 TYB 엔터테인먼트도 책임을 면키는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도 문제였다. 오디션이 완전 중지되면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참가자 입장에서는 ‘기왕 TOP 8이라는 높은 곳까지 왔는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묻는 것도 방법인가?’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동생의 인터뷰를 보고, 확신을 얻은 뒤였다. 게다가, 나의 미래를 지키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식도 고민해 두었다.
“이윤강 PD를 이제는 믿을 수 없습니다.”
노경진 PD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한숨 쉬듯 말했다.
“그건 그렇네요. 저도 그래요. 이제는 이 선배, 못 믿겠어요.”
“믿을 수 없는 권력자를 그대로 두는 일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생각합니다. 만약에 제가 슈퍼스타 T를 우승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이 오디션이 조작과 반칙으로 점철되었다는 사실을 대중이 알게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노경진 PD 또한 인정하는 눈치였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프로에 참여했다 하면, 아무리 실제 행동에 제가 관여하지 않았다 해도 두고두고 문제가 되거든요. 극복하기도 쉽지 않고요. 제가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알았잖아요? 정당하게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조연출로서 제 책무이기도 합니다.”
무겁게 노경진 PD가 말했다. 역시나, 그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다만 출연자들에게 미칠 파장이 염려되는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풀어줄 차례였다.
“PD님은 제가 알려드려서 사실을 알게 되신 거잖아요? 폭로 방식은 제가 원하는 대로 하면 안 될까요? 당연히 노 PD님에게는 문제가 안 되도록 하겠습니다.”
노경진 PD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방식이죠?”
내 계획을 알려 줄 차례였다.
* * *
그날 저녁,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마친 내게 한 손님이 찾아왔다. 아무도 내가 그 손님과 만난 사실을 알지 못하게, 조심조심 숙소를 벗어나 손님의 차에 탔다.
“권노을 군, 잘 지냈어요?”
그 손님의 정체는 천채왕 심사위원장이었다.
“네넵 심사위원장님. 덕분에 오늘 하루 감사하게 보냈습니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한테 감사할 건 없죠. 권노을 군이 노래 열심히 연습해서 노래를 잘한 건데요 뭐. 그래서, 소원이란 게 뭐에요?”
“말씀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얘기하세요.”
“여기서는 조금… 좀 더 은밀한 데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네… 그러죠.”
천채왕 심사위원은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선선히 내 말을 따랐다. 곧바로 차를 몰아 어딘가 으슥한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화를 하자마자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이야.’
노경진 PD와 계획을 짠 이후, 나는 바로 천채왕 심사위원에게 전화했다. 슈퍼 캠프에서 내가 그에게 받았던 소원 한 가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단둘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천채왕 심사위원장은 의외로 선선히 스케쥴을 내주었다. 게다가 내 부탁대로, 운전수조차 대동하지 않고 혼자 와주었다. 그래도 기업 총수인데, 대단한 소탈함이었다. 자동차도 고급 외제차를 탈법한 데, 평범한 국산 SUV를 몰았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콧노래를 부르더니 슬쩍 말했다.
“노을 군은 보통 노래 뭐 들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하는 아이스 브레이킹 질문이었다.
“저는 보통 빌보드 전체 차트 말고, 알앤비 차트에 올라오는 노래를 듣습니다. 옛날 알앤비도 듣고요.”
“그래서 그렇게 노래에 그루브가 있구나! 가수는~ 듣는 대로 부르거든요.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 알아요?”
“처음 들어 봅니다.”
“내가 먹는 대로 그 사람이 된다는 뜻이에요. 음악을 자기가 듣는 대로 부르게 되고. 자기가 먹는 음식이 자기 몸 상태가 돼요. 의외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곰팡이가 많이 있는 거 알아요?”
이후 기나긴 건강 정보 tmi가 이어졌다. 베이비 심사위원님 말이 맞았다. 천채왕 심사위원은 건강 이야기만 시작되면 말에 브레이크가 없었다. 덕분에 오디오가 비는 일 없이 으슥한 곳으로 순식간에 도착했다.
인적 없는 한 주차장에 천채왕 심사위원이 차를 세웠다.
“자! 노을 군. 여기라면 조용히 우리끼리 이야기할 수 있겠죠? 무슨 일이에요?”
“네… 네… 에헴.”
헛기침을 했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할 말은 오디션 판도를 뒤집을 폭탄 발언이었다. 입술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윤강 PD가… 사실…”
똑똑.
그때 바깥에서 뭔가 소리가 났다.
똑똑.
누군가가 차 창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인가 보려고 천채왕 심사위원이 창문을 살짝 열었다.
이윤강 PD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