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9화 (29/280)

제29화

스트링에 이어 감성적인 키보드 연주가 이어졌다. 원곡과 똑같은 구성이었다. 그 어떤 가공도 없었다.

노래를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

눈물도 나지 않아.

그저 마음에 구멍이 느껴질 뿐이야.>

노래에도 아무런 조정을 가하지 않았다. 키조차 바꾸지 않았다. 그대로 원곡과 같은 멜로디와 템포와 감정으로 불렀다.

<누가 이 공허를 메울 수 있는지 알아.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알아.

지금은 이미 늦어 버렸지만.>

고음으로 치닫는 클라이맥스도 원곡과 같았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낭비했던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가져가서 불렀다.

<그녀의 마음에…

나는 더는 없으니까.>

그렇게 노래가 끝났다.

“와아아아아아아!!!”

이제껏 처음으로 느끼는 관객들의 함성이었다. 내 노래에 감동받는 모습은 처음 봤다.

함성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사회자가 무대를 진행했다.

“네! 엄청난 무대였습니다.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강렬한 록 스피릿! 오, 민, 수!”

나는 뒤에서 물러나서 오민수의 무대를 지켜봤다. 내가 하고 싶던 선곡이었다. 오민수는 곡에 전조를 잔뜩 넣고, 록기타까지 넣었다. 원곡보다 훨씬 자극적이었다. 그런데 어째 그게 잘 어울려 보이진 않았다. 관객들의 함성도 거의 없었다.

슈퍼스타 T의 초반에는 두 참가자의 무대를 보고 난 후, 둘을 한꺼번에 심사했다.

무대가 끝나자 사회자가 나와 오민수 둘을 함께 세웠다. 그리고 심사위원에게 말을 걸었다.

“두 참가자의 무대가 모두 끝났습니다. 심사위원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넵튠 한이 마이크를 잡았다.

“놀라운 무대였습니다. 권노을 참가자. 진짜 아무런 변화를 안 줬네요? 그냥 담백~하게. 그냥 원곡을 부르셨네요. 원래 이러면 좋은 평 못 받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새롭네요?”

듣고 있던 천채왕 심사위원장이 말을 보탰다.

“넬슨의 원곡이 너무 특별해서 아닐까요? 가녀린 목소리와 특유의 감성으로 너무 독특하게 불렀으니까. 권노을 군은 뛰어난 정통 알앤비 보컬이죠. 워낙 원곡 가수가 독특한 가수라, 이걸 정석으로 부르면 오히려 전혀 다르게 들리네요.”

베이비도 거들었다.

“구성도 너무 심플하고 좋지 않았나요 선생님? AABA라니 언제적 송폼입니까. 근데 권노을 군의 명품 목소리로 이런 노래 들으니까 오히려 새롭고 좋네요. 굳이 원곡을 안 건드려서 더 신선했어요. 그에 비해…”

씨익, 웃음이 나왔다.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알 거 같아서였다.

“오민수 군은 편곡을 너무 과하게 하신 거 같습니다. 원곡에 기타 넣고, 록 느낌을 준다. 좋은데요. 멜로디랑 썩 잘 맞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천채왕 심사위원이 거들었다.

“애초에 원곡이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재해석을 한다고 했는데… 원곡이 너무 좋은 곡이잖아요? 이상하게, 비교적 최근 곡이라 그런가, 자꾸 원곡과 비교를 하게 되더라고요. 원곡이 음악적으로도, 보컬적으로도 너무 잘해버렸으니까요. 아쉽게도 이번 오민수 군 무대는 원곡이 자꾸 생각났어요.”

오민수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당혹스럽다는 눈치였다.

그러는 사이에 넵튠 한이 심사를 마무리했다.

“오민수 참가자가 불렀던 곡은… 뭐랄까요… 너무 요즘 느낌이에요. 지금 가수가 타이틀곡으로 들고 와도 어색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래서 지금 시대에 새롭게 해석하기가 쉽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록 음악을 섞어서 극복해보시려 한 거 같은데.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바로 그거죠.’

나도 뒤늦게 깨달았었다. 오만수가 빼앗아간 선곡인 Be With You. 그 곡이 Out Of Mind보다 훨씬 세련되고 좋은 곡이었다. ‘너무’ 좋은 곡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97년에 발표했던 곡이지만 2010년대 곡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앞서가는 곡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오디션에서 부르기는 까다로운 선곡이었다. 너무 원곡이 좋으니까 말이다.

Out Of Mind는 달랐다. 마이크 넬슨의 보컬은 이 곡에서도 천하무적이었다. 하지만 이 곡은 80년대 노래였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정석으로 부르면 되레 신선했다.

내가 듣기에 좋은 곡이, 오디션에서 부르기 좋은 곡은 아니다. 마이크 넬슨처럼 유명한 가수의 명곡이면 더더욱 그랬다. 오히려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 빈틈이 좀 있는 노래가 더 좋은 선곡이었다.

오민수 덕에, 오히려 내가 저질렀던 선곡 실수가 만회된 셈이었다.

“점수를… 공개합니다!”

내 심사위원 점수는 300점 만점에 295점, 오민수의 점수는 250점이었다. 내 완승이었다.

오민수와 눈이 어쩌다 마주쳤다. 오민수에 눈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 들어있었다.

씨익 웃어주었다. 눈으로 말했다.

‘고오~맙다 오민수. 내 선곡 뺏어 줘서.’

오민수의 눈이 분노로 떨렸다. 내 승리였다.

* * *

승자 인터뷰를 마치고 대기실에 돌아오자마자 모니터를 켰다. 재호의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드러머와의 갈등을 해결했는지 궁금했다.

<그럼 말이야, 니가 지휘자가 되면 되잖아??>

이전 밴드 리허설 때, 내가 재호에게 줬던 힌트를 재호가 눈치챘을지도 보고 싶었다.

재호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퓨전 재즈에 가까운 구성이었다.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재호가 내 힌트를 알아채 주었기 때문이었다.

드러머의 고집이 문제라면, 굳이 드러머에게 맡기지 않는 길도 있었다. 나는 무리였지만, 재호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프로그래밍으로 재호가 원하는 박자의 드럼을 완벽하게 녹음해서 틀면 됐다. 그 리듬에 맞춰 밴드의 다른 악기들이 움직이면 그게 재호의 밴드다.

보통 이러면 티가 난다. 하지만 워낙 재호의 드럼 구성과 편곡, 톤이 좋아서, 대중은 눈치채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박찬용 드러머도 재호의 리듬에 맞춰 심벌즈를 치는 등, 타악기를 채웠다. 패배 선언이었다.

컨트롤하기 어렵다면 아예 내가 주도해버리면 됐다. 역시 재호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았다.

재호는 자신의 특기를 살린 편곡으로 무난하게 고득점을 받았다. 심사위원도 호평 일색이었다. 천채왕 심사위원의 심사평이 이를 증명했다.

<어떻게 이런 드럼 프로그래밍을 했어요? 너무 좋은데요? 재호 군은 혹시 이번 무대 떨어져도 꼭 나 좀 봐요.>

내가 다 뿌듯했다.

* * *

모두의 무대가 끝났다. 11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무대 위에 섰다. 탈락자 발표 시간이었다.

비원더 멤버들, 나와 주환희 그리고 재호가 떨어질 리는 없었다. 오민수가 떨어질 거 같긴 했는데 긴가민가했다.

“아쉽게도 무대를 떠나야 하는 참가자는…. 바로…. 애드리아나입니다!”

오민수는 살아남았다. 탈락하는 하위 3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문루아와 함께 했었던 한국계 흑인 가수 애드리아나가 탈락했다.

애드리아나는 주르륵,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침착하게 인터뷰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this.”

뭔가 석연치 않았다.

* * *

무대를 끝나 숙소에 돌아왔다. 탈락자들이 퇴실할 차례였다. 다시 숙소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문루아는 훌쩍거리며 애드리아나를 꼭 껴안았다. 같이 팀을 짜고, 연습하는 사이에 정이 든 모양이었다.

애드리아나는 내게도 악수를 청했다.

“고마워.”

“뭐가?”

“노을 오빠. 노래 너무 진지해서. 나 반성했어. 앞으로 더 try hard 할 거야!”

“그 그래, 잘 됐다.”

너무 씩씩한 태도라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탈락자를 배웅한 후,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었다. MP3가 신경이 쓰였다.

MP3가 자꾸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또 뭔가 레벨업을 한 모양이었다. 지금 슬쩍 애들이 잘 때까지 기다릴지, 아니면 내일 일찍 일어나 새벽에 안전하게 확인할지 고민했다.

그때, 주환희 자리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환희는 여전히 방 안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유난 떤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본인이 워낙 원하기에 내버려 두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잠잠해졌다. 그러더니만 텐트에서 주환희 목소리가 들렸다.

“횽, 자요?”

“잘라 그런다.”

“왜 안 자요.”

“니는?”

“……”

주환희가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항상 떠벌리던 놈치고 희한했다. 뭔가 굉장히 불편한 말을 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횽… 오늘 결과 이상하지 않아요?”

나는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이상하잖아요 횽. 애드리아나 무대 반응 너무 좋았는데 탈락이라니.”

오늘 애드리아나 무대를 떠올렸다. 가스펠 구성으로 흥겹게 Let's Talk를 불렀다. 막판에는 화려한 애드립으로 말 그대로 ‘무대를 부쉈다.’ 영화 '시스터 액트' 못지않았다. 나를 제외하면 심사위원 점수도 가장 높았다. 관객들도 신나서 죽을 거 같은 표정이었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언니~ 나죽어~~~>

<최고야 애드리아나!>

머릿속에서 오늘 관중의 감탄사가 들렸다. 애드리아나가 떨어졌다고 했을 때, 관중들이 경악하는 표정도 떠올랐다.

나는 일부러 태연한 목소리로 주환희에게 대답했다.

“글쎄 뭐, 사전 투표 차이가 많이 났다고 하잖아?”

“머 1위는 못할 수도 있겠죠. 근데 탈락이라고요? 그 정도라고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표를 세보진 않았지만 뭔가 좀 이상해요.”

주환희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결과 발표 때 막연하게 느꼈던 애매한 의심의 정체가 이거였던 거 같았다.

그리고 오민수도 의심스러웠다. 누가 봐도 심사위원 점수 꼴찌였다. 관객 호응도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 선 투표 점수를 휩쓸어서 살아남았다고 했다. 뭔가 수상했다.

주환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감정이 격양돼서 그런지 발음도 한층 어눌해졌다.

“제작진이 신뢰가 가는 멤버면 모르게써요. 근데 지금껏 해오는 걸 보면 자꾸 룰을 바꾸고. 다 제멋대로자나요? 좀 수상해댈까… 그래서 이번 투표 결과도 솔찌기, 못 믿게써요.”

일리가 있었다. 아니, 사실 주환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분명히 뭔가 ‘작업’이 들어간 게 분명했다.

재호 침대 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주환희의 말에 재호도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었다. 내 심장도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재호에게 의견을 물었다.

“재호 너는 어떻게 생각해?”

“……”

재호는 침착하게 말을 골랐다. 신중한 녀석이었다.

“이상하긴 하네.”

그 녀석 입에서 이 정도 말이 나온 거는, 상당한 의심이었다.

주환희가 살짝 쏘아붙였다.

“노을횽. 횽이 제일 피해자였잖아요. 횽은 어떻게 생각해요? 진짜 문제없다 생각해요?”

내가 의견을 드러내지 않아서 답답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이야기하기는 곤란했다. 적을 속이려면 우리 편도 속이는 편이 좋았다. 칼을 뽑기 전에는, 최소한의 사람만 아는 편이 안전했다.

“글쎄. 흥미롭긴 한데. 내일부터는 나도 자세하게 살펴볼게.”

* * *

다음날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Mp3를 마음껏 보기 위해서였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mp3 화면을 켰다. 보컬과 표현력이 하나씩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능력치 상승은 기뻤다.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급한 볼일이 있었다. 휘리릭 능력치 상승을 확인하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미래에 이윤강 PD 조작 사건의 판결문을 읽어보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에 이윤강 PD의 미래가 바뀌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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