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8화 (28/280)

제28화

이윤강 PD는 그러고 보면 오민수의 뒤를 너무 봐줬다. 무엇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미 탈락했던 녀석이 룰까지 바뀌어 가며 보결로 합격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아마 촬영분으로 설득력을 만들려 하는 속셈이겠지. 하지만 왜 굳이 그렇게까지?’

그 녀석 행실도 수상했다. 설거지를 하다 슬쩍 빠져나와서 잠을 처 잔다? 딱 욕먹기 좋았다. 이 녀석은 마치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듯 마음껏 지 맘대로 살았다. 그전에도 카메라가 가득한 곳에서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는 등 이상 행동을 했다. 그럼에도 오민수를 욕하는 기사는 딱히 찾지 못했었다. 미래에도 그런 기사는 없었다.

그럼 오민수와 이윤강 PD가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오민수는 그래 봐야 연예계 지망생이었다. 나이도 나랑 동갑내기 정도였다. 이 나이와 경력에, 친척이라도 아닌 이상 CP급 경력의 중년 남성인 이윤강 PD와 접점이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렇다면 연결고리는 다른 곳에 숨겨져 있다 보는 게 맞았다.

Mp3로 과거 기사를 찾다 찾다 보니 결국 단서가 나왔다.

제목: 충격! 이윤강 PD의 실체. 룸살롱과 편집에 미친 자

본문: 이윤강 PD가 슈퍼스타 시즌 1, 2, 3, 4 모두 순위 조작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앞서 이윤강 PD는 ‘슈퍼스타 T 등 기존 오디션은 조작이 없다’고 부인해 왔었다.

이윤강 PD의 행실도 문제가 되었다. 그는 한창 방송이 진행하던 때에도 유흥업소에 기획사 관계자들과 자주 출입했다. 심지어 녹화 당일 새벽까지 매니저들과 술을 마시다, 날을 새고 출근한 적도 있는 거로 전해졌다.

이윤강 PD와 관계가 인정되어 구속이 확정된 이들 중에는 중대형 기획사 ‘레드 서브마린’의 이사도 있는 거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이날 이윤강 PD를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드디어 연결고리를 찾았군.’

‘레드 서브마린’은 오민수의 소속사였다.

드디어, 이윤강 PD를 처리할 실마리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연결고리를 찾은 이상, 이제는 기다리면 됐다. 언젠가는 이윤강 PD와 오민수가 무리수를 둘 터였다. 그때, 내부인을 통해 증거를 잡으면 됐다.

그리고 약점을 찌를 기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 * *

다음 날도, 무대 연습은 계속됐다. 개인 무대 외에도 준비해야 할 무대가 또 있었다. 마지막 피날레 단체 무대였다. 마이크 넬슨이 작사, 작곡을 담당한 유명한 단체 곡인 ‘Let's Go Together’ 공연이었다. 탑 11이 함께 공연했다.

여기까지는 내 기억과 같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윤강 PD가 별 것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변경사항을 내뱉었다.

“이번 첫 방송은 녹화방송으로 합니다. 참가자분들이 라이브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부담 없이 하세요.”

핑계는 좋았다. 라이브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주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핑계일 뿐이었다. 라이브에 익숙해지려면 라이브를 한 번이라도 해야 했다. 기회가 없으면 익숙해지지 않는 게 당연했다.

자꾸 자잘한 조작이 보였다. 내가 바꿨던 미래가 어떤 세계선을 파괴시킨 듯했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기회였다. 무리수가 많아진 만큼, 내가 물고 늘어질 증거도 더 많이 남길 게 분명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상황을 확인했다.

“이번 공연은 팬들의 온라인 선 투표 결과, 라이브 현장 투표 결과, 그리고 심사위원 투표 결과가 합산되어 점수가 주어집니다. 하위 3명은 탈락합니다. 현장 투표를 위해서, 추첨을 통해 팬들 천 명을 뽑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1천 명의 팬들과 심사위원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번부터 공연을 담당하실 음악 감독분이 있슴다. 들어오세요.”

TYB 소속 작곡가 ‘키미’가 소리 없이 바람처럼 들어왔다. 하늘하늘 조용한 발걸음이었다. 머리는 질끈 묶었다. 붉은 안경테가 반짝였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의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바로 시작하죠.”

키미, 알앤비와 힙합을 기본으로 흑인음악 위주의 TYB의 히트곡을 도맡아온 작곡가였다. 소속사 작곡 선배 지영우와 함께 투톱으로 불렸다. 특히 후반기 베이비, 문루아 등 여가수의 타이틀곡은 대개 키미의 작품이었다.

그 키미가 슈퍼스타 T에서 음악 감독을 맡았다. TYB의 오디션다운 제작이었다.

“한 분씩 전 곡 완창으로 불러보세요. 권노을 군부터 가나다순으로.”

“네넵!”

키미가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11명이 모두 곡 전체를 완창했다. 키미는 바로 거침없이 모두의 순서를 지정해줬다.

“권노을 군은 시작하고 첫 싸비 두 마디. 마지막 라이언 캠벨이 부른 애드립 하세요. 다음. 문루아 양은…”

벼락처럼 지시사항이 지나갔다. 나는 가장 눈에 띄는 분량을 받았다. 모르긴 몰라도 메인 보컬로 인정받은 모양이었다.

“오민수 군은 두 번째 버스 세 번째 네 번째 마디 하세요. 원재호 군은 첫 번째 버스 권노을 군 다음에 4마디 하시고, 두 번째 싸비 모두, 그리고 마지막 부분 화음 맞춰주세요.”

오민수 얼굴이 썩었다. 그도 그럴 만 했다. 분량이 실종되었으니까. ‘수납’된 셈이었다.

하지만 TYB 최고의 작곡가 키미인 만큼 뭐라 말하지는 못했다. 얼굴만 구겼을 뿐이었다.

키미는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의 분량을 정해주고는 말했다.

“이렇게 내일까지 연습해오세요. 이상.”

그때였다.

“잠시만요.”

이윤강 PD가 갑자기 키미에게 다가가더니 말을 시작했다. 속닥속닥, 우리에게 들리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대충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싫어요!”

키미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윤강 PD는 당황하더니 뭐라 또 중얼거렸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키미가 울그락불그락 한 얼굴로 말했다.

“순서 지금 다시 통보하겠습니다.”

새로운 파트가 배분됐다. 전 멤버가 똑같이 배분된 분량이었다. 마지막 애드립은 심지어 오민수에게로 넘어갔다.

‘이 새끼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게다가, 이런 불공정은 편집이 될 리 만무했다. 편집권을 가진 이윤강 PD가 편집권자인데, 이게 방송에 탈 리 없었다.

재호가 열 받아서 내게 말했다.

“이거 뭐 하는 짓이냐? 해도 해도 너무하다구. 한마디 해야겠는데?”

내가 되물었다.

“니가 봐도 과하지?”

“뭐?”

“니가 봐도 과하냐고.”

“그지?”

“그거면 된 거야.”

그리고 나는 씨익 웃었다. 재호는 뭔 미친 소리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과한 조작을 하면 할수록 좋았다. 그럴수록 제작진에게 죽창을 찌를 혁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은 건 딱 하나, 증거만 잡으면 된다.’

이윤강 PD가 오민수를 얼마나 싸고도는지는 확인했다. 이윤강 PD와 오민수의 기획사 이사와의 관계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증거만 알고 있다면 한 방에 이윤강 PD에 대한 신뢰를 붕괴시킬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할지 몰랐다. 하지만 여기에 이윤강 PD의 ‘득표수 조작’까지 더해진다면,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딱 하나 더. 그동안 아껴두었던 소원 하나. 이것까지 더해진다면?’

드디어 이윤강 PD와의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어버릴 수 있을 터였다.

화가 난 건 주환희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저건 뭐예요 횽! 키미쌤 파트 배분을 왜 바꿔요! 그건 천채왕 선생님도 안 하는 그에요. 지네들이 뭔데?”

기획사에 관심 없는 척하더니만, 막상 TYB가 무시당하는 것 같으니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파트를 빼앗긴 나를 걱정해주는 거 같기도 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뭔 소리예요 횽. 당연한 거지. 이건 선생님한테 알려야 되겠어요.”

“누구?”

“천채왕 선생님이요.”

“너 연락처 알아?”

데뷔도 안 한 연습생이 대표 연락처를 가질 정도로 가족 같은 회사는 아닌 거로 알고 있었다.

“이번 오디션 전까진 몰랐는데 TV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출연 관련 이야기도 문자로 해야 해써요. 핸드폰은 없지만요.”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쭈.”

“왜요 횽?”

“지금은 넣어 둬.”

“아 왜요!”

“곧 쓸 때가 온다… 곧이야. 영어로는 쑤운~(soon). 때가 되면 내가 바로 말해줄게.”

주환희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제작진을 엿 먹일 순간이 곧 찾아왔다.

* * *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다. 그렇게 마지막 녹화 대결 날이 밝았다.

무대에는 추첨을 통해 가려 뽑는 몇백여 명의 관객들만 있었다. 규모가 작아지긴 했지만 실제 공연과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대기실에서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작진이 정신없이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온갖 소품을 들고 동분서주했다.

내 소품들을 직접 체크했다. 제작진이 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이윤강 PD가 어떤 함정을 파놓았을지 몰랐다. 모든 걸 직접 챙겨야 했다.

사실 소품이랄 것도 없었다. 이번 무대는 평상복이면 충분했다. 문제는 마이크였다.

‘음향 엔지니어는 분명히 TYB의 사람들이었지. 이윤강 쪽이 아니었어.’

음향 쪽을 건드리지는 못할 거 같았다. 혹시나 싶어 의상도 대체가 쉬운 일상적인 생활복으로 준비했다.

대기실에 배치된 모니터로 무대 상황을 확인했다. 사회자가 한창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이번 공연은 생방송 전 상태를 점검하는 마지막 녹화 공연입니다. 여러분은 참가자들의 라이브를 보시는 첫 번째 분들이 됩니다.>

와아~ 하고 관객들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슬슬 나가봐야 할 때였다.

나가려 하는데 오민수가 보였다. 내 바로 다음 차례다 보니 스탠바이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모른 척 지나치려 했다. 갑자기 오민수가 내 팔을 턱 잡았다. 그리고 씨익 썩소를 날렸다.

“잘 해봐요 보컬천재님. 나보다는 못 하겠지만. 나는 보컬 만재니까.”

‘만재? …초딩이냐?’

그냥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온갖 진상과 술수로 내 선곡까지 빼앗은 녀석이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에 빠져서는 안 되는 타이밍이었다. 곧바로 무대를 해야 했다.

재빠르게 곡에 몰입하려 했다. 이번 곡은 내가 가졌다고 자만했다가 사라진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몰입하기는 쉬웠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어머니에 대한 내 마음이 꼭 그랬으니까.

찰나의 순간에 감정을 잡고 무대 바깥으로 나갔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권노을! 권노을! 권노을!”

“잘생겼다!”

“멋지세요~~ 휘이이익~”

레전드 가수의 코러스로 활동하며 더 큰 공연도 가봤다. 하지만 나를 환호하는 공연은 처음이었다.

이것만은, 이전 생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조명이 너무 밝아서 눈이 멀 것만 같았다. 환호성으로 귀가 아팠다. 기분 좋은 고통들이었다.

무대 지정된 자리에 섰다. 사회자가 바로 인터뷰를 개시했다.

“권노을 군! 지금 생방송 투표 인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하하 몰랐습니다.”

의외였다. 내 투표수는 조작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번 특집은 팝의 황제, 마이크 넬슨 특집입니다. 마이크 넬슨 좋아하셨나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이크 넬슨은 모두 좋아할 거 같습니다. 특히 저는 슬로우 템포 알앤비나… 모타운 알앤비 같은 찐한 흑인음악을 좋아해서 자주 들었습니다.”

“오…. 멋지네요. 이번에 부르시는 곡이 제일 좋아하시는 곡인가요?”

약간 멈칫했다. 솔직히 제일 좋아하는 곡은 아니었다. 내가 제일 먼저 떠올렸던 선곡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모두에게 들려드리기에 최선의 곡을 골랐습니다.”

이제는 연습하면서 확신이 생겼다. 이 선곡이 최선이었다. 후회는 없었다.

사회자 인터뷰는 계속됐다.

“방청객들 중에서는 ‘방송에서 본 권노을의 미친 성량을 듣고 싶다. 뻥 아닌가 싶다.’라는 식의 말씀이 많았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한 말씀!”

뭐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냥 직접 들려드리겠습니다.”

몇 초 뒤면 다들 알게 될 것이었다.

“역시 자신감 좋습니다. 권노을 군이 부릅니다! Out Of Mind~”

조명이 꺼졌다. 무대는 암흑으로 변했다. 핀라이트 조명 하나가 툭 켜졌다. 바로 나를 비추고 있었다.

잔잔한 스트링 전주가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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