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4화 (24/280)

제24화

‘왜 오늘이야?’

재호가 마약 사건으로 잡혀 들어간 건 2008년이었다. 분명 아직 3년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으로 살펴본 미래의 기사에서 재호는 바로 오늘, 10월 5일 마약 사건으로 잡혀간다 변했다.

지금껏 이 mp3에서 예견한 모든 게 맞았다. 무엇보다 내가 회귀했다. 그리고 몸무게를 뺐다. 지금 이 정보도 정확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왜 이렇게 됐지? 내가 뭔가 세계선을 건드린 건가? 내가 바꿨던 역사들 중 무언가 하나가 나비 효과를 일으켜서 내가 알던 미래에 균열을 일으켰나?’

사실, 내가 바꾼 역사가 너무 많았다. 뭐가 역사를 변화시켰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바뀐 역사를 미리 알았다는 사실이었다. Mp3의 뜻밖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미리 결과를 알고만 있다면, 바꿀 수도 있을 터였다.

‘왜’는 지금 굳이 물을 여유가 없었다. 우선 이 미래를 바로 잡아야 했다. 머리를 잠깐 식히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 * *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끝낸 후 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뭐하냐?”

-짐 다 싸서, 어디 좀 갈까 했지.

“어딜?”

-아는 형이 보자고 해서.

mp3가 증명했다. 그 약속은 저주로 가는 구렁텅이였다.

“그 약속 취소해.”

-왜?

“더 중요한 스케쥴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뭐냐구. 나도 바쁘거덩~. 그 형, 오랜만에 보는 거기도 하구.

“주환희랑 루아 님, 애드리아나 씨랑 특훈하기로 했다. 장소는 루아 님이 구해주기로 했어.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개선점도 찾아보고 말이야. 꼭 와야겠지?”

-…

핸드폰이 침묵했다. 뭔가 갈등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회를 포기할 수 있겠어?”

-되게 큰 기회일 거 같았는데.

“설마 아시아 스타의 음악 작업실 가보는 것만 하겠냐.”

-작업실?

“그래, 자기 곡 녹음하는 작업실에서 보자시는데?”

-끙…

이미 알고 있었다. 재호는 이 제안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음악에 투자가 엄청나기로 유명한 TYB였다. 그중에서도 한창 3년 전까지 아시아 스타였던 문루아의 작업실에 갈 기회였다. 말 그대로 월드 클래스의 음악가들을 볼 수 있었다. 놓칠래야 놓칠 리가 없었다.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냐?

‘됐다!’

바로 재호에게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려 주고 통화를 끊었다. 바로 주머니에서 mp3 플레이어를 켜서 기프트 모드를 발동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없음]

오늘부터 내일까지 재호에 대한 기사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그랬어야 했던 것처럼, 공백으로 바뀌었다.

긴장이 쑥 풀렸다.

‘앞으로도 언제 알림이 뜰지 몰라.’

Mp3를 좀 더 자주 살펴봐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 * *

문루아의 작업실은 합정에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주상복합 아파트로 보였다. 비정상적으로 깔끔한 외형을 제외하면 그랬다.

쇼핑몰에서 멤버들이 모였다. 비원더와 애드리아나, 이렇게 4명에 문루아까지 5명이 합숙 멤버였다. 다행히 불편한 놈(오민수)는 문루아와 대면대면 한지 초대받지 않았다.

문루아가 카드키를 열고 우리를 맞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쇼핑몰 옥상이자 아파트 입구인 공간이 나왔다. 잔디가 깔려 있는 고급 공원이었다. 대리석이나 상아 등으로 장식되어 번쩍거렸다. 그야말로 호화 아파트였다.

‘아시아 스타가 되면 이 정도 아파트에 사는 건가?’

나도 성공하면 이 정도 아파트에 살면 동생 볼 낯이 생길 거 같았다. 그렇게 상상하는 사이에 어느새 입구에 도착했다. 문루아는 입구에서, 엘리베이터, 그리고 물론 본인 방문 앞에서도 카드키로 문을 열어야 했다. 그렇게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비로소 문루아의 방에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들어와야 했다. 꼭 영화에서 본 미국 같았다. 아파트에서 한강과 여의도가 어렴풋이 보였다.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고급 아파트’였다.

애드리아나가 감탄하며 말했다.

“너무 좋아요. 여기서 사시는 거네요?”

문루아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가족과 사는 집은 따로 있구… 여기는 작업실이에요. 음악 작업을 할 때 여기서 곡을 써요. 그래서 방 전체를 방음효과를 걸어서 웬만한 연주는 거뜬할 거예요.”

작업실이 내 아파트 3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한강이 보이는 초고급 아파트였다. 역시나 아시아 최대 댄스 가수, 문루아는 스케일이 달랐다.

“오늘은 연습을 위해서, 특별히 제 투어 밴드에게 부탁했어요.”

심지어 쿨한 원재호마저,

“와 정말요!! 대박~~ 너무 감사합니다.”

이라고 소리 높여 놀랄 정도의 영예였다. (사실 재호가 ‘대박’이라고 말을 하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문루아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에요. 저 말고는 프로 밴드와 노래해 본 적이 별로 없으시죠? 큰 도움이 되실 거에요. 다른 분들이 제 밴드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거 보면 저도 도움 많이 될 거고요. 상부상조죠.”

그게 이전 무대와 생방송의 가장 큰 차이였다. ‘밴드’의 존재였다. 슈퍼스타 T의 밴드는 최정예 연주자들이 모여 만들었다. 당연히 실력이 있었다. 문제는 그만큼 에고도 강하다는 점이었다. 편곡 등에서 참가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가 썩 쉽지 않았다. 특히 재호처럼 편곡에 치중하는 참가자는 상당히 피곤한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그 밴드 마스터는 그래도 좀 이야기가 되는 편이었는데 드럼이 좀 골치였지.’

8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하시는 어르신이었는데, 고집이 좀 있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밴드를 얼마나 잘 설득하고 이끌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가도 실력의 일부였다.

말하는 사이에 문루아의 밴드 멤버들이 모였다. 다 같이 밴드실에 모여서 합주를 하면 노래를 불렀다. 보통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는 노래들이었다.

“’세월이 가면’ 연주해주세요!”

“횽, 저는 ‘손에 손잡고’로요!”

“야 니 대체 몇 살이냐구. 손에 손잡고는 또 뭐야. 저는 ‘매일 그대와’ 부르고 싶어요.”

“횽 횽도 충분히 아저씨같아요.”

“야 무슨 노래가 선곡으로 나올지 모른다구. 안 그래 노을아?”

재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치. 잘 모르겠어. 지금 니들이 말하는 80년대 히트곡 리메이크 정도면 충분히 그럴듯한 주제 같은데? 한 번은 나오지 않을까?”

실제로 80년대 가요는 한 번 나올 미션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첫 미션이 뭔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참가자들이 밴드와 연습 중인 가요랑은 전혀 다른 미션이었다.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잡았다.

첫 미션은 팝, 그것도 마이클 잭슨의 명곡 대결이었으니까.

다른 이들이 신나서 이런저런 가요를 밴드와 합주해보는 동안, 나는 분위기를 봐서 슬쩍 방을 나와 베란다에 터를 잡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사실, 밴드와의 적응을 위해서 굳이 문루아의 밴드와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밴드와 합주 경험이 아예 없던 1회차 인생이라면 몰랐다. 하지만 나는 오디션을 거치면서, 또 코러스 활동을 하면서, 밴드와 합주 경험은 충분했다. 굳이 추가 연습은 필요 없었다.

굳이 밴드 합주를 만든 건, 그래야 재호를 내 앞에서 묶어둘 수 있어서였다. 그리고 문루아의 밴드와의 합주 기회라니, 편곡 빌런 재호가 그런 찬스를 놓칠 리가 없었다.

개복치같이 쉽게 죽을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놈이었다. 앞으로 계속 저렇게 마약으로 잡혀갈까 조심해야 하나 싶었다.

언제까지나 재호 뒤치다꺼리를 할 수는 없고, 앞으로 시간을 두고 문제의 근원인 재벌가 자제 놈을 어떻게든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 한 가지 의심은 풀렸다. 재호는 결백했다. 문제는 재벌가 자제였다. 그 녀석이 누명을 씌웠다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5일 밤낮으로 슈퍼 캠프에서 재호와 함께 지냈었다. 재호는 이상한 약을 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결국 문제는 그 자제 놈이었다.

재벌가 자제나 되는 놈이 왜 마약을 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누명을 씌워서 이렇게 골치 아프게 하는 걸까 싶었다. 그때 문득 오늘 아침에 들었던 천채왕 심사위원의 말이 떠올랐다.

[강해진다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외로워지죠.]

뭐 그렇다고 정당화할 수는 없었지만, 여튼 돌발상황 덕분에 이제는 확신을 갖고 재호를 도와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은, 당장 생방송 무대 첫 미션이 먼저였다.

첫 생방송 미션이 무엇인지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다음 미션은 방금 말했다시피 ‘마이클 잭슨 명곡 대결’이었다. 최고의 퍼포머, 마이클 잭슨의 수많은 명곡 중에 하나를 뽑아서 하는 대결이었다. 마지막에는 전체 참가자들이 함께 부르는 단체 곡도 있었다. 단체 곡이 심사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표에는 영향을 미쳐서 대충할 수는 없었다.

어떤 곡을 선곡해야 할지 생각해봤다. 마이클 잭슨은 40년이 넘게 팝 시장 정상에 있던 가수였다. 너무 곡이 많아서 오히려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발라드를 부를까?’

이미 시청자는 나를 알앤비 발라더로 생각할 터였다. 내 이미지에 슬로우 발라드를 부르면 너무 뻔했다. 그렇다고 ‘Billie Jean’이나 ‘Beat It’같은 유명한 댄스곡을 내가 불러봤자, 제아무리 노래로 용을 쓴들 원곡에 묻힐 거 같았다.

이전에는 그냥 뻔하게 어린 시절 마이클 잭슨이 불렀던 발라드(Ben)를 불러 평범한 점수를 얻었다. 무지가 오히려 축복이었다. 70점짜리 선곡도 좋다고 부를 수 있었으니까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선곡으로는 고득점이 불가능하다는 게 뻔히 보이는데 그대로 갈 순 없었다. 더 좋은 계획을 짜야 했다.

더 골치 아픈 일도 있었다. 다른 녀석에게 선곡을 빼앗기면 안 됐다. 일종의 심리전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문루아가 서 있었다. 창문을 열고는 내게 핸드폰을 넘겨줬다.

“전화 받아요.”

나는 당연한 질문을 문루아에게 물었다.

“누구죠?”

“일단 받아요 그냥.”

문루아는 쿨하게 핸드폰을 주더니, 창문을 닫아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탑 아이돌인데 이렇게 핸드폰을 허술하게 줘도 되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내 핸드폰이었다. 통화한 사람은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노을 군. 잘 쉬고 있어요?

헉 소리가 났다. 이 장난스러우면서 에너지가 뚝뚝 떨어지는 특유의 말투는… 분명 천채왕 프로듀서였다.

“아 네넵. 선생님. 덕분에 잘 쉬고 있습니다.”

-뭐 제 덕분입니까? 루아랑 연습하기로 했다면서요?

아하, 이제 이해가 되었다. 문루아는 천채왕에게 없는 하나뿐인 딸 같았다. 자주 연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늘 내가 문루아 연습실에 있다는 사실이 천채왕 심사위원에게 들어온 모양이었다.

“네. 영광스럽게도 밴드 분들이 와주셔서.”

하지만 여전히 ‘왜 내게 전화했는가’는 이유가 아예 떠오르지 않았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마침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내기 하나 하자고 한 거?”

그때서야 기억의 조각 하나가 떠올랐다.

[노을 군이 이번 대결에서 이긴다면, 소원을 하나 들어드릴게요. 무엇이든지.]

그렇다. 무.엇.이.든.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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