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모든 일정이 끝나고, 숙소에 왔다. 재호는 물론, 항상 수다스러웠던 주환희까지 피곤한지 조용했다.
나를 맞이하는 소리는 mp3의 축하 메시지 알람뿐이었다.
[축하드립니다! 감정 표현이 A-로 레벨 업 했습니다.]
주환희의 충고대로 노래를 연습하고, 실전에서 부른 덕분으로 보였다. 이렇게 되고 나니 성량은 그렇다 치고, A+급인 톤조차 올리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능형보다는 강점이 강한 색깔 있는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다.
‘뭐 천천히 해야겠지.’
제아무리 mp3라도 시간은 필요했다.
재호와 주환희가 각기 자기 화장실에서 샤워를 시작했다. 나만 덩그러니 거실에 남았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동생이었다.
“여보세요.”
-와~~ 권노을! 너 어케 살 뺐어! 병은 나은 거야? 뭐야 이게. 미쳤다. 지금 애들이 오빠 소개해달라고 난리야!
“뭔 소리야. 니가 지금 내 모습을 어케 알…”
아차.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오늘이 바로, 슈퍼스타 T에서 내 1차 예선 촬영분이 나오는 날이었다.
미리 계산해두긴 했었다. 하지만 막상 슈퍼 캠프가 시작되니 일정이 정신이 없어 잊어버리고 있었다.
-말해! 오빠, 대체 뭔 짓 한 거야?
“자고 일어나보니 나았어.”
-자고 일어나보니 나았다고오~~~?? 말이 돼? 하긴 보이는 게 다르네?
동생은 혀를 차며 ‘기적이네, 기적이야’라고 중얼거렸다. 하긴 뭐, 실제로도 기적은 맞았다.
-근데! 병이 나았다고 살이 빠지는 건 아니잖아.
“치료된 걸 확인하고 죽어라 뺐지.”
‘사실 진짜 죽다 살아난 거지만.’
-아휴~! 그게 죽어라 뺀다고 빠져? 오빠 어케 한 거야? 나도 좀 알자고! 나보다 턱선 더 날카로운 거 같애. 짜증 나!
“야 야. 신경 꺼. 고3이 무슨 다이어트야. 입시 준비나 해.”
-부모님 같은 소리 하네.
“나라도 해야지. 그리고 니 친구들도 정신 차리라 그래. 미성년자가 성인 남자 관심 갖지 말고 말이야. 벌써부터 그래? 걱정된다 정말.”
-치. 그래 봐야 지도 스무 살이면서. 웃겨 진짜.
동생과 틱틱대면서 방송을 무음으로 켰다. 내 모습이 나왔다. 화면으로 보니 얼마나 내가 살을 뺐는지 생생하게 보였다. 베이비 심사위원의 미모에 뒤지지 않았다. 좀 돋는 말이지만, 내가 봐도 나, 좀 예뻤다.
좀 역겹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권노을. 야! 야! 듣고 있어~?
* * *
방송은 예상보다 더 잘 나왔다. 마지막에 결과는 악마의 편집으로 다음 주로 미뤘다. 물론 눈치 빠른 시청자라면 모두 내가 붙으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노트북을 켜서 확인해본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은 더욱 열광적이었다.
제목: 권노을 진짜 목소리 완소지 않냐?
본문: 목소리 진짜 개쩔던데 얼굴은 더 쩔더라. 오늘부터 내 꿈에서 나타날 듯.
ㄴ KIN~ 꿈 깨
ㄴㄴ 22222 꿈 깨긔
ㄴ 저렇게 노래 잘하고 잘생긴 애가 많은데 왜 나는…
ㄴㄴ 뭥미? 꿈 깨.
유치찬란한 댓글들이었다. 왠지 모두 나를 찬양하고, 부러워하는 댓글이라 날을 세워서라도 볼 거 같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기라 컴퓨터로 봐야 한다는 게 좀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 덕에 오히려 기사 보고, 커뮤니티 게시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인터넷 기사들도 쏟아졌다. 슈퍼스타 T 관련 기사 대부분이 나에 대한 기사였다.
[충격! 천재 보컬리스트 등장. 꽃미남 권노을은 누구인가?]
[슈퍼스타 T, 슈퍼 루키 권노을 등장에 힘입어 케이블 최고 시청률 8% 경신]
[슈퍼스타 T가 뻔하다고요? 보면 다르실걸요. 신선한 신인 등장으로 달라진 슈퍼스타 T]
홍보 기사마냥 칭찬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지분의 80%는 나였다. 지금이 이 정도면, 슈퍼 캠프에서의 활약상이 나오면 반향이 훨씬 커질 듯했다.
‘내일부터 열심히 달려 봐야지.’
그때였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주환희… 목소리로 들렸다. 팝송을 부르고 있었다.
익숙한 노래였다. 아직 신인인 트레이 심즈의 알앤비 곡이였다. 다만 주환희 특유의 섬세한 창법이 아니라, 선 굵은 트레이 송즈의 창법으로 성대모사를 하며 부르고 있었다. 이렇게 피곤한 날에도 자기 직전까지 노래 연구를 하는 모양이었다. 노래를 잘하는 이유가 있었다. 평소 건들거리던 주환희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졌다.
“응?”
뭔가 독특한 향이 내 코를 찔렀다. 향초 냄새였다.
‘주환희가 향초 같은 걸 피울 성격 같지는 않은데, 뭘까?’
일단은 신경을 껐다. 나도 자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노래 연습은 아니었다. 자기 계발은 아침에 하는 타입이었다. 그보다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대체 문루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도저히 그 얼굴은 탈락과 관계없는 오디션 몸풀기 미션에서 졌던 표정이 아니었다. 차라리 나라 잃은 표정에 가까웠다.
Mp3를 키고 문루아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중학생 때부터 톱스타였다 보니 공식 기사만 해도 너무 많았다. 우선 05년 기사로 제한했다.
흠칫, 하고 놀랐다. 2005년에는… 문루아의 부친상 기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억났다. 오디션에서 우승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루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오디션에서 부상으로 줬던 리얼리티 예능 및 뮤직비디오 촬영도 흐지부지되었다.
‘조작으로 문루아에게 표 몰아준 이윤강 PD에게는 쌤통이었지만. 가수 문루아에게는 안됐다고 생각했지.’
아시아 최고 여가수의 아버지가 왜 요절했나 확인해봤다. 문루아의 아버지는 급성 고열로 실려 갔다. 결국 원인을 알지 못하다 보니 엉뚱한 치료만 계속하다 죽었다. 원인은 진드기의 일종인 ‘쯔쯔가무시’. 원래 몸이 건강해, 병명만 알았으면 살 수 있었다.
병.명.만. 알.았.다.면. 말이다.
* * *
다음 날 새벽 5시.
“젠장, 벌써 깼네.”
밤새 잠을 자다 깨다 했다. 사람 목숨이 달린 무거운 정보라 그런가, 부담스러웠다.
일단, 이건 알려야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오디션에서 유리하고 말고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였다. 게다가 부모님이 일찍 죽는 기분은, 내가 가장 지겹도록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문루아의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정보는 극소수에게만 공개되었다. 내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그 병이 무엇인지, 의사도 아닌 내가 안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믿게 만든다는 말인가?
‘내가 무슨 무당도 아니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잠이 홀라당 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빈 서판의 잠재력’을 키우는 매일 매일의 루틴을 시작했다.
빈 서판의 잠재력. 본인이 선택한 한 분야의 성장 속도를 비약적으로 빠르게 하고,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는 특성이었다.
이 특성을 활용해, 매일 훈련을 조금씩 한 덕에 체력부터 영어 실력까지, 가수에 필요한 다양한 스탯이 쑥쑥 늘었다. 신기하게도 감정 표현과 테크닉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뭔가 스탯마다 잠재력이나 성장 속도가 다른 모양이었다.
그중 가장 정직한 스탯은 체력이었다. 워낙 체력이 안 좋았어서 그랬는지, 운동을 하면 할수록 쑥쑥 체력이 올랐다.
일단은 가장 확실하게 스탯을 올릴 수 있는, 체력단련부터 시작했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달렸다. 귀에는 mp3에 넣어둔, 바로 이번 달에 나온 따끈따끈한 알앤비 앨범을 틀어 둔 채였다. 팝 가수 에릭 브라운이 때로는 감미롭게, 때로는 구슬프게 노래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주환희 녀석, 트레이 송즈의 노래를 듣고 카피하고 있던데.’
항상 여자들과 데이트 궁리만 하는 거 같은 희한한 놈이었지만, 역시나 가까이서 보니 달랐다. 백조처럼 물속에서는 미친 듯이 발을 젓고 있었다. 매일 밤, 팝가수의 음악을 꼼꼼하게 카피했다.
카피라면, 나도 했다. 하지만 주환희의 카피는 뭔가 나와 달라 보였다. 뭔가 좀 더 디테일해 보였달까? 그리고 그 비결을 깨달았다.
바로 ‘발음’.
솔직히 나는, 그냥 아나운서처럼 정확하게 잘 들리면 된다 생각했다. 아니었다. 노래는 결국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다. 발음이 그 소리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쳤다.
주환희는 노래를 부를 때, 발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주환희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순간, 한 가지를 느꼈다.
‘이놈, 가수의 발음까지 카피하는구나.’
단순히 영어 발음이 좋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 가수의 ‘발음’을 정확하게 카피했다.
[I don’t want to go~~ 노오오~]
평소 주환희와 미묘하게 다른 발음이었다. 이렇게 발음까지 카피하니, 뭔가 내가 했던 카피보다 더 정교한 카피본이 되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기성 가수와는 전혀 다른, 자기만의 발음으로 노래했다. 다양한 가수의 발음들을 익히고, 자신은 이를 조합하고, 거기다가 자기만의 느낌을 가미해서 자신의 개성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지까지 무기를 하나 안 쓰고 있던 셈이다. 음정, 박자, 강세까지는 활용했다. 하지만 ‘발음’이라는 요소를 음악적으로 쓰지 못했다. 당연히 다른 가수들보다 감정표현이나 기교가 부족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달리면서 음악을 들었다. ‘발음’에 신경을 쓰면 어떻게 남의 노래가 다르게 들리는지 알고 싶어서 그랬다. 처음으로 노래를 들을 때, 음정, 박자, 연주뿐 아니라 발음에까지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다. 지금껏 내가 들었던 모든 음악을 발음에 집중해서 다시 들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발음까지 카피한다면 좀 더 확실하게 노래 카피가 가능하겠군.’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발음법을 익히다 보면, 나만의 발음법을 익힐 수 있을 터였다. 또 하나 배움을 시작해야 할 분야가 생겼다. 아직까지 더 올라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또 하나,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집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한 번도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나름 독학으로 노래로는 끝까지 같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한 번씩 큰 팩터를 놓치곤 했다.
그에 반해, 주환희는 장기 연습생이었다. 5년 차라고 했다. 그러니 5년간, 최고의 전문가들의 가르침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었고, 또 흡수했을 터였다.
젠장.
부러웠다. 혼자서 자습만 하던 나로서는, 주환희의 그런 환경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면서 주환희의 배움을 최대한 찾아보면 되었다. 오히려 지금, 이렇게 빨리 대형 기획사와 함께해서 그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주환희를 팀원으로 얻은 건 정답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낯익은 장소가 보였다. 어젯밤, 무대를 했던 중앙 공원이었다.
잠깐 공원에 앉아서 방금 들었던 노래를 흥얼거려봤다. 이번에는 음정, 박자보다 발음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오늘 같은 날이면 네 생각이 나
이 작은 마음 한 켠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어>
아무도 없이 고요한 공간에 내 목소리만 퍼졌다. 안개 낀 새벽이었으니 당연했다.
<조금만 천천히 가주겠어?
내가 달려갈 테니.
저 우주 끝까지라도.>
꼭꼭, 원곡 가수의 발음을 체화해서 표현해 한 곡이 끝났다.
짝짝짝짝짝짝
?
어딘가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편안한 옷차림의 천채왕 프로듀서였다.
“이 새벽부터 바깥에 계시나요?”
말을 걸며 슬쩍 천채왕 프로듀서의 차림을 살폈다. 영자신문과 노트와 펜을 든 채였다. 탁자에는 견과류, 올리브 등 각종 몸에 좋아 보이는 간식들이 보였다.
“아침에 일정 정리하는 걸 좋아해서요. 저야말로 놀랍네요. 노을 군, 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요?
“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매일 일어나서 운동과 노래 연습을 합니다.”
“점점 더 마음에 드네. 저도 그래요. 완전! 아침에 트레이닝을 끝내야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심사위원장이 좋게 봤다니, 좋은 소식이라 여기기로 했다.
“발음의 중요성을 이해했네요?”
신기했다. 내 노래만 듣고 내 생각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네. 어젯밤, 환희가 연습하는 걸 보고 힌트를 얻었습니다.”
“놀라운 발전 속도네요. 발음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는데. 이 속도라면 곧…”
잠시 천채왕 심사위원이 침묵을 지켰다. 나도 일부러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추가로 심사를 또 받고 있는 기분이군.’
그러다 천채왕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졌다.
“노을 군. 내기 하나 할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