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3화 (13/280)

제13화

“안녕하세요 저희는…”

“달의 바다입니다!”

6명의 남녀 혼성 그룹이 무대에서 인사했다. 멤버들 이름과 팀명, 그리고 곡을 소개했다.

나에게 손가락으로 엿을 먹인 녀석의 이름은 오민수였다. 긴 머리에 그리스 조각상처럼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뭔가 미소가 어색했다. 일단 태닝한 듯한 검은 근육질 피부와 눈처럼 새하얗게 염색한 머리도 뭔가 안 어울렸다.

오민수의 그룹의 팀명은 ‘달의 바다’였다. ‘아시아의 달’ 문루아가 있어서 만든 이름이었다. 대놓고 무임승차를 노린 팀명이었다. 내로남불이었다. 문루아는 그야말로 이번 오디션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였으니까.

문루아. 아시아의 달. 초등학생 때 데뷔해, 중학생 때부터 오리콘 차트를 정복한 센세이션한 댄스 가수였다. TYB 엔터테인먼트가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기획사가 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그런 그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2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그리고 이후 그녀는 ‘슈퍼스타 T’에 신인의 마음으로 도전하며 가요계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슈퍼스타 T에서 나를 꺾고 우승했다. (물론 조작이었지만. 그녀는 조작에 관여되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가창력이 강조되는 알앤비 발라드 가수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꾸준히 정상급 가수로 활동했다.

아시아 최고의 댄스 가수가, 2년 간 가창력을 닦고 왔다. 그리고 신선하게 알앤비 발라드를 부른다. 당연히 그녀는 우승 후보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잘하자 보자. 특히 내로남불 오민수.’

무대는 뭐랄까… 굉장했다. 솔직히 문루아는 좋았다. 전형적인 남녀 듀엣 펑키 곡을 함께 불렀는데, 최고 음과 마지막 현란한 애드립을 모두 도맡아 했다. ‘댄스 가수 문루아가 이 정도였나?’ 싶은 부분도 있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에요.”

베이비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심사가 시작됐다.

“팀 미션이지. ‘유명 가수와 친구들’의 무대가 아니잖습니까? 어째서 이렇게 다른 팀원들이 비중이 적은 걸까요?”

오민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베이비는 날카로운 심사평을 이어갔다.

“다른 팀원들은 마치 도구 같았습니다. 간신히 한두 마디만 부르고, 다 같이 부를 때는 함께 멜로디만 불러서 ‘떼창’이 돼버려요. 그마저도 서로 볼륨이 들쭉날쭉하고요. 조화가 없다는 뜻이지요. 이러면 다른 팀원들은 물론, 문루아 씨에게도 안 좋아요.”

항상 상냥해 보이기만 했던 베이비 심사위원이 매섭게 비판을 이어갔다. 다른 멤버들은 모두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문루아 또한 어두운 표정이었다.

“문루아 양. 어때요? 솔로 가수니까. 루아 양이 누군가와 무대에서 협업할 일은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 기회를 좀 잘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루아는 마이크를 잡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제가 생각이 좀 짧았던 것 같습니다. 명심하고 앞으로는 멤버들도 배려하겠습니다.”

“사실 다른 멤버들이 더 문제에요. 방송분을 봐야 알겠지만, 문루아 양이 강제로 분량을 뺏은 건 아닐 거잖아요? 멤버들이 알아서 분량을 찾아야죠. 이건 서바이벌입니다. 여러분은 프로구요. 본인 생존은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합니다. 좀 더 균형이 맞는 다음 무대 기대하겠습니다.”

날 선 독설이 끝나고, 베이비는 바로 천채왕 심사위원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천채왕 심사위원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저도 큰 의견 차이는 없고요. 다만, 바로 다음 팀이 ‘팀’이 뭔지 보여줄 거 같다는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바로 다음 팀 모셔도 될까요?”

심사위원장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권노을, 원재호, 주환희 참가자. 나오세요.”

* * *

셋이 무대에 섰다. 제작진이 갑자기 더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우승 후보란 느낌인가 싶었다. 셋이 함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B1The’입니다.”

“비원더? 무슨 뜻인가요?”

천채왕 심사위원이 되물었다. 바로 내가 대답했다.

“팀이 결성되고. 저희끼리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 봤습니다. 그 결과 ‘스티비 원더’가 우리의 공통분모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스티비 원더가 되자는 의미로 ‘비원더’라 이름을 지어봤습니다.”

“너무 대단한 분을 목표로 삼은 거 아닌가요?”

베이비 심사위원이 질문했다. 입과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불러 보겠습니다.”

“그래요 근데… 왜 세 분 다 옷을 정장에서 연미복으로 갈아입으셨나요? 무슨 중세처럼?”

‘그야, 심사위원장님. 우리 노래 컨셉이 마법 소녀… 아니 마법 소년이니까요.’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연미복이 우리 무대 의상이었다. 유럽 궁정 같은 중앙 공원에서 우리 셋이 서 있으니 마치 기사들의 모임 같았다.

물론 모두 계획대로였다.

“무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기대하겠습니다.”

바로, 재호가 편곡한 비트가 흘러나왔다. 잔잔한 피아노로 익숙한 멜로디가 들리자, 우선 제작진부터 출연진까지 할 것 없이 여성들부터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설마 저건? 그 노래 맞지?”

“추억 돋는다.”

“오디션에서 만화 주제가를? 오만 픽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재호가 호소력 있는 저음으로 툭 툭 가사를 뱉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내 곁에 있어. 내 곁에 없으면 내 마음은 겨울인걸>

듣고 있는 나도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만화 주제가가 재호의 목소리와 감정을 만나니 호소력 있는 발라드로 변했다.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살짝 경쾌해졌다. 다음 차례는 주환희였다.

<네 마음에 숨겨진 열쇠 단 하나. 그건 바로, 네 마음을 열게 해줄 비밀.>

이미 주환희를 잘 알고 있을 심사위원들도 들으며 눈이 커졌다. 놀랍도록 섬세하고 변화무쌍한 테크닉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바로 후렴에는 내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발음이나 고음 같은 건 생각하지 말자.’

주환희 말대로, 노래를 잘 하려 하지 말고, 어떤 감정을 떠올리려 했다. 내가 붙잡으려 했던 꿈을. 놓쳤지만 다시 내게 다가온 가수라는 꿈을 상상하며 노래했다.

<네 마음의 열쇠. 이제는 더 이상 혼자 두지 않겠어.>

원래도 제법 높았지만, 재호의 절묘한 편곡으로 딱, 내 목소리를 듣기 좋은 음역대로 만들었다. 시원한 고음이 중앙 공원에 울려 퍼졌다. 이미 공원 내의 모든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2절은 더욱 화려했다.

<네 마음에 온기를 나누려 한다면, 지하실에 파묻혀야겠지.>

2절은 주환희가 멜로디를, 원재호가 가성으로 화음을 넣었다. 강세가 들어가는 발음에만 툭, 툭, 뜻밖의 화성으로 화음을 던졌다. 재호의 센스였다. 뜻밖에 화음으로 더욱 고급스러워진 음악에 일부 관객은 이윽고 눈을 감았다.

3명의 힘을 합쳐 부른 고음 피날레에서는,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가 눈을 감고 만족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진정된 후, 베이비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역시나 세 사람 모두 보컬 훌륭하구요. 노래도 새롭네요. 허를 찔렸어요.”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편곡은 재호가 했습니다.”

“재호군. 지난번 기습 미션에서도 편곡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놀랍네요. 첫 미션에서는 심플한 밴드 구성의 편곡을 했죠? 이번에는 가상 악기, 전자음악을 했어요. 제가 사운드에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이거 대단한 일 아닌가요?”

베이비 심사위원의 시선이 천채왕 심사위원장을 향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천채왕 심사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굉장히 어려운 거죠. 시청자분들을 위해 설명해 드릴게요. 다들 이 노래, 알고 계실 텐데요. 원곡은 베이스 기타가 주도하는 어쿠스틱 밴드 구성입니다.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드럼. 끝이죠. 이걸 재호군은 전자음악으로 바꿨어요. 이전 미션에서는 짧은 시간에 밴드 편곡 및 연주를 보여줬는데요. 또 이번에는 전혀 다른 전자음악 구성을 했다는 거죠. 프로도 아니고, 스무 살의 ‘가수’ 지망생이 이 짧은 준비 기간에 이 정도로 다양한 편곡 능력을 보여 준다? 놀랍죠.”

베이비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심사평을 이어갔다.

“저는 편곡자가 아닙니다. 잘 모르는데요. 그런 저도 밴드 구성과 전자음악 구성을 다 잘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구요. 더 놀라운 건 느낌이었어요. 이 곡, 전자음악으로 바꿨는데 대충 들으면 원곡이랑 비슷하게 들리더라구요.”

천채왕 심사위원이 말을 이었다. 베이비와 천채왕, 두 심사위원의 티키타카가 마치 최고의 축구선수들 같았다.

“그렇죠. 완전히 다른 악기를 썼는데, 아마 시청자분들은 다르다고 느끼지 못하셨을 거예요. 그냥 ‘어? 뭔가 새롭네?’ 정도셨을 거 같네요. 놀랍네요. 특히 원곡에서 곡을 끌고 가던 베이스 기타를 무그 베이스… 그러니까 신시사이저로 바꾼 게 정말 좋았어요.”

재호가 뭔가 말을 하려 했다.

“아 저 그거는…”

내가 재호 입을 막았다.

“쉿”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재호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알고 있었다. 무그 베이스, 그러니까 신시사이저 음으로 만든 베이스를 기반으로 전자음악으로 편곡하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전자음악 사운드는 미래의 재호의 특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굳이 내 제안으로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수가 되고 싶지, 제작자나 리더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이미지는 대형 가수, 하나면 충분하니까. 다른 이미지가 섞이면 탁해져.’

천재 편곡자 원재호, 라고 띄워 주는 게 훨씬 나았다. ‘가수 이미지는 좁고 명확할수록 좋다.’ 내가 코러스를 하며 만났던 레전드 가수의 가르침이었다.

베이비 심사위원의 심사평이 계속됐다.

“세 분의 보컬도 모두 특출나네요. 우선 권노을 님. 정말 신이 내린 목소리에요. 부모님에게 감사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성량은 처음이구요. 톤도 너무 좋아요. 부드러움과 거침이 같이 있어요.”

냉큼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원재호 님의 저음도 너무 멋있습니다. 사실 이런 목소리를 여성들이 좋아해요. 키가 높지 않지만, 목소리에 버터가 녹아들어 간 윤기 있는 목소리랄까요. 환희 군의 정확한 테크닉과 섬세한 감정도 굉장합니다. 저희 회사 출신이라 조심스럽지만, 시청자분들도 환희 군의 목소리에 감동받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정말 세분들 목소리의 조화가 좋네요. 누가 팀을 짰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기획이었습니다. 저희 회사가 배워야겠네요.”

뭐 반쯤 농담이었겠지만, 그만큼 우리 팀에 무대가 흡족했다고 이해했다.

천채왕이 베이비의 심사평을 받아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노을 군은 더 크게 부를 수 있었는데 클라이맥스 외에는 볼륨을 줄였어요. 그래서 조화가 되었던 거에요. 다른 멤버들도 절묘한 구성과 리듬으로 화음을 넣고, 적절한 볼륨으로 불러주면서 노을 군의 주 멜로디를 보좌했고요. 이게 팀이죠. 개개인보다 더 큰 총합. 이걸 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팀들이 참고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정말, 마법 같은 무대였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어째 앞으로 더 다른 사람들에 눈총을 받을 것만 같았다. 뭐, 잘해서 얻은 칭찬이니 어쩌겠어.

천채왕과 베이비의 심사평이 끝나고, 그간 내가 들어본 적 없던 3번째 심사위원의 심사평이 시작됐다.

넵튠 한, TYB 엔터테인먼트 최고의 히트 아이돌 팀 ‘천신군단’의 메인보컬이자, 아시아를 지배하는 솔로 발라드 가수였다.

“다른 심사위원분들이 말씀하셨던 부분 빼고 말할게요. 같이 부를 때 서로가 양보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권노을 참가자님이 그랬다고 했는데, 나머지 두 분도 좋았어요.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랄까? 자기 특기보다는, ‘비원더’의 색깔을 내려고 노력하신다는 느낌이 드네요. 팀 생활 경험자로서 그냥, 좋은 팀 같습니다.”

넵튠 한은 말하면서 계속 뚫어지게 주환희를 쳐다봤다. 심사평은 계속됐다.

“주환희 참가자와 함께 연습했었던 사람으로서. 응원합니다. 이번 방송을 통해서, 그간 숨어있던 잠재력을 보여주길 바랄게요.”

‘그래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봤던 거였나.’

주환희가 심사위원에게서 얼굴을 피했다. 덕분에 내게는 그의 얼굴이 살짝 보였다. 흠짓, 놀랐다. 얼굴 표정에 원망과 슬픔이 잔뜩 서려 있었다. 평소에 쿨하고 태평한 주환희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주환희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았다.

순식간에 주환희 얼굴이 평소 태평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넵튠 한 심사위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코마워요 횽.”

뭔가 쎄한 느낌이 가슴을 스쳤다.

* * *

이후, 내 기억대로 오디션이 진행됐다. 내일 2일 차부터 마지막 4일 차까지, 3일간 경쟁하는 라이벌 팀을 정했다.

우리의 상대는, ‘달의 바다’였다. 이번 무대는 형편없었지만, 내 기억에 슈퍼 캠프 마지막 무대는 괜찮았던 편이었다.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상대 팀과 형식적인 인사를 하던 그 순간, 슬쩍 문루아의 얼굴을 봤다.

…그녀의 얼굴이 정말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옥 불구덩이 한가운데에서 세상 모든 고통을 짊어진 듯한 얼굴이었다.

‘주환희도 그렇고, 문루아도 그렇고 다들 뭐 이리 표정이 안 좋아. 무슨 일 있나?’

그리고 그날 밤에, mp3로 문루아의 정보를 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문루아의 아버지가 바로 오늘 쓰러져서 중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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