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주환희.
TYB 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슈퍼스타 T에서 딱 두 명을 내보냈다. 한 명은 아시아의 달, 최정상급 여가수 문루아. 또 한 명이 주환희였다.
주환희는 방송 처음부터 화제가 됐다. 데뷔하지 않았음에도 팬클럽을 이끌고 다녔다. 그럴 만했다. 초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인데 스펙이 말도 안 됐다. 외모 되고, 춤 되고, 노래 되고, 곡 작사 작곡 되고, 노래까지 잘했다.
그렇지만 그는 모종의 이유로, 19살까지 데뷔를 하지 못했다. 그보다 훨씬 인기가 적었던 연습생들도 모두 데뷔했고 슈퍼스타가 되기도 했다.
장기 수납 연습생이던 그를 이번 ‘슈퍼스타 T’에서 꺼냈다. 무려 7년의 연습생 기간을 뚫고 대중에게 공개했다. 당연히 1화부터 그에게 분량이 집중되었다. 대놓고 주인공 포지션이었다.
그래서인지, 누구도 주환희를 데려가지 않았다. 실력도 출중하고, 인기도 많고, 분량을 독식하는 참가자니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리더가 되서 사람을 고를 수도 없었다. 주환희는 갑자기 두 시간 만에 악기를 골라 무대를 준비하라는 기습 미션에서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80점대의 평범한 점수를 받았다. 선택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그 녀석, 제아무리 특급 연습생이라도 결국 온실 속의 꽃이었으니까.’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거르자니, 실력이 너무 출중한 멤버다. 뽑자니, 자기 팀의 방송 분량은 물론 노래 분량, 프로듀싱 분량까지 싹 다 가져갈 녀석이었다. 그래서 다른 팀은 걸렀다.
재호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내가 주환희를 팀원으로 거론하자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굳이 데려와야 하나?”
“왜. 실력 좋잖아?”
재호는 카메라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슬쩍슬쩍 확인하면서 예민한 대화를 이어갔다. 나한테 배운 버릇이었다. 역시 배움이 빨랐다.
“실력 좋지. 근데 좀 부담스럽지 않아? 팬도 너무 많구.”
“팬 많은 건 좋은 거지.”
“만약에 내부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그럼 팬 많고, 인지도가 높은 게 부담이 되지. 리스크야.”
원재호는 팔짱을 끼고 말을 이어갔다.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이었다.
“처음부터 싸울 생각을 하냐.”
원재호의 우려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지난 시즌의 ‘경험’이 있었다.
나도 정확하게 원재호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환희 같은 실력자를 거르고, 내가 압도할 수 있고 조정할 수 있는, 무던하고 조금은 약체인 참가자들과 팀을 이뤘다.
하지만 그게 더 골치였다.
[아 형~ 벌써 한신데.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이만하면 된 거 같은데? 뭘 또 맞춰봐.]
…실력 없는 녀석들은 다 이유가 있었다. 전혀 프로답지 않았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놈들을 데리고 팀을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때야 알았다. 우리 팀은 꼴찌였고 나만 간신히 구제됐다. 방송 분량은 실종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원재호는 지난 생에서 어쩌다 보니 주환희와 팀이 되었다. 재호의 우려대로 둘은 미친 듯이 부딪쳤다. 하지만 그 덕에 분량은 폭발했다. 팀 전 이후로 원재호와 주환희 팬은 몇 배로 불어났다.
‘이번에는 그 팬덤 뻥튀기, 나도 한 번 당해보자.’
다시 돌아와서, 원재호를 설득할 차례였다.
“원재호. 우리가 스타냐?”
“스타? 아니지?”
“우리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 방송에 한 번이라도 더 나와야지.”
원재호 눈이 순간 깊어졌다. 아니, 차가워졌다 해야 할까? 항상 냉정 침착한 녀석이라, 자기 예상과 다른 말이 나오는 몇 안 되는 순간에는 날카로움이 살짝 나왔다.
“그럴 수도 있겠네.”
“뭐 너무 나쁜 걸로 나오면 안 되겠지만. 편집으로 나쁘게 할 수 없게 조심해서 말하면 되잖아? 그런 적당한 갈등 구조는 오히려 좋아.”
원재호는 어느새 마이 페이스를 되찾았다.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누가 봐도 방송국이 만든 주인공인 주환희. 스스로 나서서 그 녀석의 발목을 붙잡는 빌런을 자처하겠다?”
“아니 뭐, 우리가 그 녀석을 어디 계단이나 절벽에서 밀어버리겠다는 건 아니잖아? 같이 음악 좀 해보자는 거지. 동료이자 라이벌이 되는 거야.
“어차피 주인공이 못 될 바에야 빌런이 된다…”
“아니 빌런이 아니라 동료이자 라이벌…”
“좋은데? 그거, 나 해보고 싶어졌어. 내가 원래 빌런을 좋아 하그덩~”
차마 그 녀석에게 ‘축하한다 너 곧 빌런 된다. 마.약.빌.런’ 이라고 말은 해줄 수 없었다.
이제는 오히려 재호가 더 신나서 나를 재촉했다.
“누가 뺏기 전에 빨리 뽑자! 주환희!”
내 말이 재호 녀석 마음속에 뭔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네! 권노을 참가자! 다음 참가자를 뽑아주세요.”
마침 내 차례가 왔다. 재호가 나 대신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주환희 참가자로 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물론 제작진, 심지어 심사위원까지 술렁댔다.
“저거, 최상위권 3명이 한 팀 하는 거야?”
“완전 올스탄데? 분량 다 처먹는 거 아냐?”
“잘난 놈들끼리 팀 해봐야 터지기만 할 텐데?”
참 고~마운 걱정들과 눈총 사이를 뚫고, 주환희 참가자가 다가왔다. 올백으로 넘긴 머리, 선글라스, 잔근육이 다 드러나는 쫙 붙는 나이키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주환희가 서툰 한글로 인사했다.
“안뇽하세요. 예에에이~”
“안녕하세... 아이쿠!”
주환희는 확 하고 나와 재호를 껴안았다.
‘교포인가?’
그러고 보니 지난 시즌에서도 주환희는 계속 어쩐지 한글 발음이 어눌했었다. 분량이 많음에도 가족도 공개됐던 적이 없었다.
“예에이~ 뽑아줘서 코마워요. 저, 안 뽑히는 줄 알았어요. 안 뽑히면 탈락인가 생각까지 했대니까요?”
“반갑습니다. 권노을입니다.”
“원재호라고 합니다.”
“주환희입니다. 저 19살이에요. 횽들 맞죠? 횽이라고 부를게요.”
뭐, 20살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형이 맞긴 했다. 그래 봐야 1살 차이였다. 굳이 호형호제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 넘어갔다.
“멤버 더 뽑으실 건가요? 한 명 더 뽑으실 수 있습니다.”
사회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니요. 이걸로 됐습니다.”
심사위원이 더 할 말이 있는지 제작진이 급히 준 대본을 확인하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노을 군 팀이 화제가 되고 있어요. 우주 방위대라고.”
‘우주 방위대가 뭡니까 촌스럽게. 어벤저스라고 해야지. 아, 아직 영화 개봉 한참 전이겠구나.’
여튼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무대를 보고 제가 100% 신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분들을 뽑았습니다.”
“안 뽑은 사람들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사회자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물론 진짜 빈정대려 하는 건 아니었다. 방송 분량을 위한 공격이었다. 한 번 겪어 본 회귀자인 덕에 냉정하게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감정은 불쑥 튀어나왔다. 꾹 참고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 팀의 무대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사회자가 아닌 전혀 다른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노을 참가자.”
고개를 돌렸다. 천채왕 심사위원장이었다.
“매우 기대되는 팀을 짜셨네요.”
“감사합니다!”
잽싸게 답례했다. 빠른 인사, 빠른 감사, 분량과 호감의 법칙을 충실히 지켰다. 천채왕은 말을 마무리했다.
“매우 우려되기도 합니다. 사공이 많으면… 아시죠? 멋진 무대 기대하겠습니다.”
뭔가 불길한 예언 같은 마무리 코멘트였다.
그렇게 팀 구성이 끝났다. 사회자 멘트가 이어졌다.
“팀 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팀마다 배정된 숙소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캠핑장에는 다양한 숙소가 있었다. 혼성팀을 위한 빌라와 같은 숙소부터, 우리처럼 단일 성별에, 소규모 팀을 위한 작은 숙소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느 숙소를 골라야 할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미 슈퍼 캠프를 진행해봤던 나는 내가 원하는 숙소를 알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자, 그럼 이제 숙소에 가볼까?”
주환희가 토를 달았다.
“아 횽들 저는 좀 볼일이 이써서. 먼저 가세요.”
원재호가 대답했다.
“그러세요.”
주환희가 가려다 말고 한 마디 덧붙였다.
“아 횽들, 그리고. 숙소에 가시면 노래 한 곡씩만 연습해주세요.”
내가 대답했다.
“왜요?”
“횽들 노래 취향, 톤, 레인지를 알아야 횽들을 제가 리딩하죠.”
원재호 얼굴이 아주 살짝 일그러졌다. 너무 섬세해서 나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재호가 되물었다.
“지금 환희 씨한테 오디션을 보라는 건가요? 우리 모두 같은 팀원인데요?”
“오우 노우~ 돈 테잌 잇 퍼스널!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여) 횽들 실력을 알아야지 이끌어 갈 수 있잖아요. 그럼 쫌 따 뵈여~”
주환희 녀석,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캠핑장 속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이미 저 녀석 마음속에서는, 본인이 리더인 모양이었다.
“……”
원재호가 말없이 날 노려봤다. ‘거 봐라’라는 표정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아시죠?]
천채왕 심사위원의 말이 어째 불길한 예언처럼 귓속을 울렸다.
* * *
제작진이 준 도시락을 먹고 원재호와 함께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전 생에서 내가 슈퍼캠프 때 머물던, 바로 그 숙소를 뽑은 덕분이었다.
숙소 입구로 들어가려는 순간, 뭔가 신음 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재호와 나는 신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구 옆 풀숲이었다.
“헉!”
갈색 머리의 외국인 여성과 한국인 남자가 풀숲에서 찐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Honey, 누가 봐요.”
“댓츠 오케이. 댓츠 오케이.”
“노~ 부끄러워.”
“올라잇. 아이 언더스탠드. 씨유 순.”
외국인 여성이 후닥닥 우리 쪽으로 얼굴을 보이지도 않고 뛰쳐나갔다. 풀숲에서 천천히 한국인 남성이 걸어왔다. …주환희였다.
“너였냐???!”
아이쿠. 하도 어이가 없어서 꽥 소리를 질러버렸다.
“……”
항상 쿨한 표정을 유지하는 원재호 또한 얼빠진 표정이었다. 그럴 법했다.
‘사방에 카메라가 깔린 오디션 숙소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다니. 그것도 일반 참가자도 아닌 아이돌 기획사 연습생이란 녀석이! 저 외국인 여성분은 또 어디서 나온 거야? 버스에서 못 봤는데 참가자가 아니라면 일반인 아니야? 어이가 가출할 만하지.’
부처님이 오셔도 평정심 잃을 만한 황당한 상황이긴 했다.
그래도 회귀한 내가 회복이 빨랐다.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주환희에게 물어봤다.
“너 뭐하냐?”
“아 에이미예요.”
당연히 이름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놈이었다.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건가?’
“아니, 이름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 에이미란 분이랑 뭐 했냐고.”
“우연히 말을 걸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말이 잘 통해서요.”
원재호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말이 잘 통하면 혀도 통하냐?”
훌륭한 드립이긴 했지만 생산적인 말은 아니었다. 내가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지금 우리 점심 먹고, 바로 숙소로 왔는데 그사이에 키스를… 했다고?”
“뭐 문제가 되나요? 성인끼린데?”
“너 우리보다 동생이라며. 우리 스무 살인데?”
“헤헤. 저 사실 빠른이에여.”
사공이 많아서일까? 대화가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근데 뭐하러 우리한테 형이라 그래. 그냥 친구 먹지.”
“에이. 그래도 아이돌 연생인데~ 19살이라고 하는 게 좋잖아여.”
‘…그보다는 숙소 앞에서 누구랑 혀를 안 섞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실제로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꾹 참고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이야기를 생산성 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뭐 누구랑 키스를 하든 껴안든 니 마음인데, 숙소 근처에서는 하지 마라. 우리도 시간 보내는 장소인데 깜짝 놀라잖아.”
“그건 그러네요. 먄해여.”
주환희의 얼굴 표정은 전혀 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말다툼할 시간이 아까웠다. 여전히 멘붕 상태인 재호를 데리고 얼른 숙소로 올라갔다. 속으로는 재호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따위 녀석을 데리고 어떻게 매끄럽게 팀 미션을 소화했냐? 대단하다 이전 생의 원재호!”
* * *
숙소는 깔끔한 투룸이었다. 작은 독방 하나와 2인실이 있었다. 부엌 겸 거실에는 소파와 탁자가 있어 간단한 연습은 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연습은 연습실에서 해야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방을 보자마자 주환희가 촐랑거렸다.
“저는 독방 찜!”
원재호가 보기 드물게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누구 맘대로? 공정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원재호가 모르는 사람한테 반말을 썼어!’
재호는 동네 유치원생에게도 초면에는 존대하는 녀석이었다. 아마 주환희가 원재호 인생 가장 빠르게 반말 깐 녀석일 터였다.
“에이 저 진짜 진짜 지이이인짜 꼭 독방 써야 하는 데에~~”
“그럼 니가 이기라구!”
재호가… 쏘아붙이고 있었다.
한국 국룰로 바로 숙소 쟁탈 가위바위보가 진행됐다.
“안 내면 진 거”
“가위 바위 보!”
“아!”
주환희와 원재호는 가위, 그리고 나는 주먹. 나의 승리였다.
“노오오오오우~ 암언 언럭키 가이! 독방 쓸래여! 꼭 필요하단 마례요.”
“야! 독방 쓰고 싶은 니 마음 알겠지만, 나 저놈이랑은 방 같이 못 써! 내가 설거지 요리 다 할게. 제발. 노을아! 형님!”
…재호가 저러는 모습은 나도 처음 봤다. 같이 숙소 생활하니 나도 모르는 모습이 자꾸 튀어나왔다.
“환희 니가 독방 써.”
“뭐.”
“리얼리?”
재호도, 주환희도, 모두 당황한 눈치였다. 설마 정말 니들 말 들어줄 줄 몰랐다는 눈치였다.
주환희가 먼저 자기 짐을 들고 냉큼 독방으로 뛰어갔다.
“예에에에에이~~ 암어 럭키 가이! 쫌 따 봐여 형!”
원재호가 뭔가 한소리를 하려 했다. 내가 재호 입을 막았다.
“짐이나 옮기자.”
“아 잠깐만. 뭔가 쫌!”
“니도 쟤랑 있기 싫다며.”
“아 근데 왠지 싫다구. 저놈이 독방이라니.”
“야 됐어. 우리도 짐이나 옮기자. 저기가 우리 방이야.”
재호는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했다.
재호는 몰랐다. 내가 앞으로 남은 5일간의 아침을 구원해줬다는 사실을.
‘저 독방 옆 양지바른 풀밭이 아침마다 고양이 발정 스팟인 줄 누가 알았겠어. 매일 새벽부터 고양이들이 울부짖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니까? 그에 반해 우리 방은 쾌적하고. 넓고. 햇빛 잘 들고. 무엇보다 조.용.하.고. 평생 살라 그래도 살 곳이지.’
…앞으로 5일간, 매일 아침 고통받을 주환희가 머릿속에 훤하게 보였다.
‘쌤통이다 이놈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