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팀 단위 미션.’
이게 다음 미션이었다. 원래 ‘슈퍼스타’ 오디션은 철저히 개인 단위였다. 하지만 아이돌 중심의 대형 기획사 TYB가 진행하는 이번 시즌은 좀 달랐다. ‘슈퍼 캠프’를 진행하는 5일간, 팀 단위로 참가자를 모아 관리했다. 그리고 그 팀 단위로 평가했다.
이전 생에 나는 사실 팀워크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다. 살찐 내 못생긴 모습을 악의적으로 편집하거나 분량을 삭제하는 제작진에 받는 스트레스와 싸우느라 바빴다. 나를 증명하느라 바빴다. 팀워크는 엉망이었다.
다행히 간신히 통과했지만, 내 강점이나, 다른 사람과의 시너지를 보여주는 무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사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연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결승까지 내가 갔을 리가 없었겠지.’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 했다. 팀 미션의 본연에 의도에 맞게, 팀워크와 그 속에서 내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우승은 물론, 이후 커리어에도 더 도움이 될 거란 걸 이제는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원재호는 나와 최고의 조합이었다. 단순히 잘생겼다, 노래를 잘한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원재호는 나와 상호 보완적이었다.
나는 보컬이 특기였다. 특히 고음 위주의, 소위 흉성과 벨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스타일이었다. 강력한 존재감이 있었다. 하지만 편곡 능력이나, 팀을 이끌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섞는 능력은 부족했다.
원재호는 반대였다. 그의 특기는 음악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이해도였다. 능히 서로 다른 사람들을 모아, 더 좋은 성과로 낼 수 있었다. 그의 약점인 고음은 내가 완벽하게 채워줄 수도 있었다.
이전 생에도 원재호의 팀은 그의 리딩으로 최고점을 받았고, 분량을 독식했었다.
그 분량, 탐났다.
이기지 못할 거라면 합류하는 게 나았다. 두 번 살면서 얻은 지혜였다.
* * *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기습 미션이 끝났다. 300명의 참가자가 30명으로 줄었다. 무려 90프로가 탈락했다. 가차 없었다. 그만큼 남은 합격자들에게 많은 분량을 약속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전 생에 나는 분량과는 관련 없었지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버스에 탔다. 제작진이 대절한 40인승 버스였다. 여기에 30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탔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떠들면서 분량을 챙겨 먹으라는 제작진의 의도였다. 그 소중한 시간을 꾸벅꾸벅 자면서 허비했었다.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빨개질 정도로 어이없는 실책이었다.
‘나란 놈, 진짜 눈치 없었네. 그래서 조작이 터진 건가? 아니 그건 좀 아니고.’
이번 생에는 좀 다르게 해볼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원재호 옆자리에 앉았다.
“자리 없지?”
“오 권노을. 노래 잘하던데?”
“당연하지.”
“그건 그대로네.”
“다른 건 그대로가 아니고?”
“니가 더 잘 알잖아. ㄸ…”
급히 원재호 입을 막았다. 원재호 녀석, 내 학창 시절 별명이던 ‘뚱돼지’라는 말을 하려 했었다. 학창 시절부터 편견 없이 나랑 친했던 원재호야 나한테 충분히 써도 될 말이지만 시청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치밀한 녀석이지만 아직 연예인답진 못하군.’
조용히 카메라에 안 보이는 각도로 쪽지를 건넸다. ‘카메라! 말조심!’ 이라 적었다.
원재호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이내 눈이 가늘어졌다. 다시 사람 좋은 쿨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딴판인 사람이 돼서 왔으니까.”
역시나 감탄이 나오는 임기응변이었다.
슬쩍 카메라가 안 보이는 각도로 원재호가 엄지 척! 을 건넸다. 짜식.
그때, 버스 맨 앞에 있던 이윤강 PD가 마이크를 잡았다.
‘캠프에서는 핸드폰이 잘 안 터질 수 있습니다. 공중전화는 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개뿔.’
이전 생에는 나도 속았었다. 사실 숙소에서 통화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강원도라고 해도 통화가 잘 안 되는 곳은 드물다. 대놓고 가족에게 전화해서 감성팔이로 시청률을 땡겨 보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알고도 속아 줄 지혜가 내게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PD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게 분량 확보에 정답이었다. 제작진의 예상대로 움직이면 제작진은 이미 준비한 반응이기에 편집점을 잡기 쉬웠다. 분량이 당연히 늘어났다. 100명도 넘는 제작진, 그중에 편집 직원만 해도 수십 명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기에 ‘예상 가능한 반응’은 중요했다.
다행히 오늘은 토요일,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뭐야?
“권예슬. 말조심해라.”
-뭐야. 왜 풀네임으로 처 부르고 지ㄹ…
동생 쌍욕이 전국에 중계될 판이었다. 급하게 말을 끊었다.
“어이! 나 지금 오디션 슈퍼캠프 가는 중이야. TV에 나오는 중.”
-어머!
그리고, 아마도 나만 느낄 수 있었을 듯한 찰나의 망설임이 지났다.
-오.라.버.니. 잘 다녀오시와요. 오호호. 뭐 필요한 건 없으신지요?
“평소처럼 말해 괜찮으니까.”
-어.머.나. 이게 평소 말투인데 무슨 말이신지요?
‘…말투가 역겹…’
적당히 서로 디스와 잔소리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부모님 없이 힘들었던 시절 추억부터 소소한 학교 이야기까지, 웃음과 감동이 소소하게 들어있었다. 분량 챙기기 딱 좋았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원재호가 젠틀하게 웃었다.
“재미있네. 동생?”
“그래. 너는 전화 안 해?”
“이 정도 가지고 부모님에게 전화할 건 아니라.”
‘자식이 방송에 나오는데 전화할 게 아니라고?’
뭔가 가족 사이가 복잡해 보였다. 혹시 저게 원재호의 문제의 이유가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다시금, mp3 화면의 기억이 떠올랐다.
* * *
2주 전.
원재호를 믿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그 순간, mp3가 빛났다. 새로운 특성을 받았다는 표시였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등급: B
설명
: 과거부터 미래까지, 특정 키워드를 검색할 수 있다.
: 검증된 기성 언론의 기사부터, 가십까지 모두 검색 가능하다.
: 정보의 신빙성은 등급으로 표시된다.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빙성이 등급으로 나올 뿐, 뭔가를 믿는 선택은 나의 몫’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게 맞다 틀리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는, 내가 차분하게 사실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었다.
그래서 바로 원재호의 기사부터, 인터넷 썰까지 죄다 찾아봤다. 그중에 재미있는 내용이 하나 있었다.
-그 날 클럽에 분명 대록그룹 3세놈이 놀러왔는데. 걔는 슬쩍 사라졌더라? [신용등급 A-]
옳거니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록그룹 3세의 이름으로 기사를 검색해봤다. 월척이 걸렸다.
-충격! 대록그룹 3세, 필로폰 밀수 및 상습복용… 집행유예행. [신용등급 S]
필로폰 밀수가 집행유예라니, 말도 안 되게 자비로운 법에 황당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녀석이 걸린 정황이었다. 누군가를 덮어씌우다가 재수 없게 다른 차 블랙박스에 걸렸다. 원재호 마약 사건 후 불과 5개월 후 있던 일이었다.
‘한번 이랬던 녀석이 과연 한 번만 그랬을까? 원재호가 이 녀석과 같은 날 클럽에 있다가 마약에 걸렸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뭔가 신뢰가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원재호의 몰락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이 정도 정보면 충분했다.
* * *
그리고 다시 2주가 지나 슈퍼 캠프.
원재호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제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생활과, 요새 듣고 있는 음악을 거쳐 (원재호는 요새 어셔와 카녜 웨스트를 즐겨 듣는다고 한다. 힙합이라니 조금 뜻밖이었다.), 결국 지금 오디션으로 넘어왔다.
“노을이 넌 여전하더라. 노래 너무 잘하구. 성량이 어떻게 그래?
“뭐 그 정도 가지고. 넌 엄청 늘었던데?”
“뭐가?”
“다. 노래도. 편곡도. 연주도.”
이미 알고 다시 봤는데도 감탄이 나왔다. 짧은 시간에 편곡하고 연주하고 녹음했다. 심지어 코러스 라인까지 짜고, 직접 불렀다. 음악계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법한 인재였다.
“나야 좀 노래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노력을 해야지. 누구나 너처럼 축복받은 건 아니그덩~”
여전히 말투는 느끼했지만, 꾹 참고 들으면 내게 좋은 말을 해주려는 의도였다.
본심을 슬쩍 드러낼 차례였다.
“만약에 말야. 듀엣곡을 누군가와 부르게 되거나. 단체곡을 부르게 되면 재호 너랑 꼭 부르고 싶네.”
“나랑? 왜? 나 떨어뜨리구 싶냐?”
“아니, 무대가 좋을 거 같아서.”
“야, 듀엣이면 보통 둘 중 하나가 떨어지는 거 아냐?”
“100점 만점에 천 점을 맞으면 설마 떨어지겠냐? 좋은 무대가 중요하지.”
“니가 고음 쫙 올리면 사람들이 너만 기억나는 거 아니구?”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원재호 얼굴 표정은 웃고 있었다. 뭔가 떠보는 표정이었다.
“제작진들, 심사위원들이랑 시청자들이 어련히 그거 배려 안 해줄까 봐.”
적어도 제작진은 배려 안 해준단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로는 이렇게 해야 제작진에 이쁨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계산 정도는 끝낸 상태였다. 일부러 편집하는 PD 들으라고 한 말이었으니까.
원재호는 피식 웃더니, 생각해보겠다 말했다.
‘아니, 생각은 해볼 게 없어. 넌 내가 뽑을 거니까.’
* * *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숙소 배정을 겸한 팀 배정이 시작되었다. 대왕 기수 작가가 룰을 설명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점수로 가장 높은 사람부터 한 명씩 팀원을 고른다. 그렇게 해서 30명이 3~5명으로 이루어진 8팀으로 나눌 참이었다.
그리고 가장 점수가 높은 사람은….
“권노을 참가자. 팀원 골라주세요. 충분히 시간 쓰셔도 됩니…”
고민할 게 없었다.
“네. 원재호 참가자로 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이 웅성웅성댔다. 보통 팀에서는 자기만 돋보이려 하는 법이었다. 최고 득점자가 굳이 또 고득점자를 고르는 건 상당히 의외의 수였다.
물론 다 생각은 있었다. 중저음과 가성의 원재호와 강한 고음의 나는 전혀 상반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보컬 올인인 나와 만능형 프로듀서형인 원재호는 또한 매력이 전혀 겹치지 않았다. 서로 시너지가 날 터였다.
‘또 하나는 방송 분량.’
같은 팀원끼리 친할수록 방송 분량을 챙기기 쉬웠다. 할 이야기가 많을수록 아무래도 떡밥을 만들기 쉬웠으니 당연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원재호가 제격이었다.
원재호도 내 의도를 눈치챈 듯, 웃으며 내 옆에 섰다.
“노을이 너 꼭 미래를 알고 있던 거 같다?”
원재호야 장난으로 한 말이겠지만 ‘뜨끔’했다. 서둘러 주제를 바꿨다.
“나는 리더 못해서 너 고른 거야. 우리 팀 프로듀서는 너가 맡아라.”
원재호는 부끄럽다는 듯 피식 웃었다.
“부담인데?”
“우리 조는 한 명도 탈락하지 말아야지.”
“팀 내부 경쟁이면 어쩌려구?”
“TYB 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 기획사잖아? 거기 스태프가 심사할 텐데? 팀웍을 중시할 거야.”
“그러려나?”
‘내 말을 믿어라. 내 말을 믿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떡은 복합 탄수화물이라 안 처먹으려나. 뭐 여튼.’
그 사이 다양한 그룹이 생기고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하나의 팀으로 인정된 밴드부터, 현역 솔로 댄스 여가수가 본인 중심으로 꾸린 팀까지. 다양한 구성의 팀이 만들어졌다.
항상 냉정한 원재호도 뭔가 초조한 듯, 내게 물었다.
“우리도 팀 멤버 더 뽑아야 하는데. 혹시 생각한 거 있어?”
“하나 있지.”
미친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일단 화내지 말고 내 이야기 잘 들어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