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악기라면 여기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나는 준비한 악기를 꺼냈다. 카메라도 내 악기를 찍기 위해 가까이 다가왔다.
“이건…”
천채왕은 물론, 제작진 또한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야 당연했다. 내 손에는 달랑 리코더 하나가 들려 있었으니까.
“리코더를 불면서 노래를 하겠다는 건가요?”
천채왕이 피식하고 웃었다.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눈빛이었다.
“이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일단 들어보죠.”
천채왕은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정 자세를 취했다. ‘한번 네놈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들어나 보자’라는 자세였다.
‘바라던 바입니다.’
내 계획은 이랬다. 어차피 나는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없었다. 노래 몰빵이었다. 이전 회차에서는 어설프게 독수리 타법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다. 역효과였다. 그럴 바엔 무반주로 노래 부르는 게 낫겠다는 핀잔을 들었다. 보컬 빨로 간신히 80점대 점수로 합격했다.
연주가 애매하다면 차라리 무반주로 불러버리면 어떨까? 막상 악기 하나를 준다면 그 악기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설사 내가 악기를 잘 못 다루더라도.
‘내가 잘 못 다루는 악기는 차라리 없는 게 나아.’
이게 제작진이 던진 함정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어차피 노래 오디션이다. 노래에 자신이 있다면, 노래만으로 승부한다면 그게 진짜 최고의 답 아닐까?
하지만 리코더 하나는 챙겼다. 내게 절대음감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기억을 더듬어, 첫 음을 리코더로 불었다.
부~
가벼운 리코더 음이 울려 퍼졌다. 천채왕이 피식 웃었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헛웃음에 가까웠다.
저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첫 파트에서 휘어잡아야 했다. 무반주일수록 처음에 몰입하지 않으면 그대로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생각나요 그대와 함께 걷던 꽃길이>
뜻밖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리 없는 트로트 명곡, ‘무궁화 빛 우리 사랑’이었다. 여자 트로트 가수가 간드러지게 부르던 익숙한 멜로디가 권노을의 거칠면서 부드러운 알앤비 보컬을 만나 세련된 느낌으로 바뀌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해서 이런 길을 같이 걸을 수 있다면>
천채왕은 소리 내지 않게 신음했다. 너무나 완벽한 리듬감이었다. 권노을의 손은 자연스럽게 허벅지를 두드리며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마치 드럼처럼 그 리듬에 맞추어 정확한 박자로 음이 들어왔다. 운율에 맞게 쓰여진 단어들이 콕콕 귀에 박혔다.
노래는 어느새 후렴으로 돌아왔다.
<생각나요 그대와 함께 걷던 꽃길이
무궁화 한껏 피어있던 그 길이>
이번에는 보컬에 훨씬 힘이 실려 있었다.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상당히 긴 길이의 멜로디를 한 호흡으로 불렀다. 언제 숨을 쉬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노래가 이어졌다.
천채왕이 눈을 꼭 감았다. 머리를 권노을의 박자에 맞춰 흔들고 있었다. 완전히 노래를 느끼는 표정이었다.
<당신과 한 번 다시 한번 걷고 싶어요.
당신만이 내게 필요해요>
마지막 후렴은 거친 샤우팅과, 부드러운 가성이 정신없이 조합됐다. 미묘한 음을 섬세하게 살리면서도 강렬한 악센트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강하게 부를 법한 부분은 부드럽게, 약하게 부를 법한 노래는 거친 절규에 가깝게, 그야말로 혼을 빼놓았다.
< 당신… 만이. 내게… 필요… 해요.>
노래의 마지막은 잔잔한 가성으로 마무리했다.
노래가 끝났다. 권노을은 비로소 눈을 떴다. 노래에 몰입이 풀리자 비로소 천채왕의 모습이 보였다. 천채왕은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천채왕이 불쑥 말을 시작했다.
“알고 있네요.”
불쑥 대답이 튀어나왔다.
“네?”
“알고 있네요. 자기가 노래 잘하는 줄. 그래서 좀 재수 없는데, 그럴 만해요. 웬만한 자신감으로는 무반주로 노래를 할 수가 없지.”
천채왕은 공격적인 말투와는 대조적으로 활짝 웃었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신형 장난감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60대는 넘었을 텐데, 거의 40대로 보였다.
“사실 지현이… 아니, 베이비 심사위원님에게 권노을 참가자 이야기를 미리 들었어요. 성량은 천하무적이라고. 정말 그렇네요. 어찌나 목청이 큰지, 마이크 차고 부르는 줄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칭찬 때마다 90도 인사는 국룰이었다. 리액션이 많아야 PD가 편집하기도 편할 터였다.
“더 놀라운 건 호흡인데. 사실 이 곡, 원곡 가수도 이렇게 한 호흡으로 길게 부르진 못 했거든요? 권노을 참가자는 알겠지만 시청자를 위해서 설명 드리면…”
천채왕은 심사위원석 옆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무궁화 빛 우리 사랑’ 후렴 가사를 적었다.
“원곡은 ‘생각나요 그대와 함께 걷던 꽃길이’ 이 부분을 한 호흡에 못 불렀어요. 단점은 아니죠. 보통 그렇게 못 하니까. 눈치 못 채게 살짝 숨 쉬면 돼요. 권노을 참가자는 그걸 한 호흡에 해냈어요. 게다가 아슬아슬하게 부른 게 아니라, 끝까지 호흡이 남아서 끝 음 처리와 감정까지 완벽했고요, 끝까지 부르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그걸 한 호흡에 쉬죠?”
대답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가사요?”
“네. ‘생각나요’와 ‘그대와 함께 걷던 꽃길이’는 의미상 이어지는, 하나의 문장이라 조금 길더라도 한 호흡으로 부르는 게 맞다 생각했습니다.”
천채왕은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날리며 내게 물었다.
“아니, 그렇게 부르면 안 힘들어요?”
“그렇게 불러야 감정이 산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훌륭하네요.”
천채왕은 뭔가 생각할 게 있는지 말을 잠시 멈추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마이크를 다시 잡고 말을 이어갔다.
“이번 노래는 약점이 없었습니다. 발성도 완벽했고요. 감정도 좋았고요. 누구를 모창하지도 않았고요. 심지어 트로트 원곡을 알앤비로 재해석해 새로웠고요. 리듬감도 최고였습니다. 특히 박자감.”
천채왕은 손가락을 들어 내 손을 가리켰다.
“허벅지로 리듬을 맞추면서 노래를 불렀죠?”
역시나 천채왕 대표. 최고의 제작자답게 내 버릇까지 한 번에 꿰뚫어 봤다.
“맞습니다.”
“저도 같이 세어 봤습니다. 다만 저는 몰래 제가 갖고 있던 초시계과 비교해봤습니다.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권노을 참가자의 리듬감은 일정하더군요. 완벽한 박자란 뜻이에요.”
“감사합니다!”
다시 90도로 숙이고 인사했다.
“하지만 그게 곡 좋은 건 아니에요.”
‘음?’
천채왕은 내게 말을 이어갔다.
“권노을 군은 꼭 노래하는 기계 같아요. 감정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감정조차도 완벽하게 정제돼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넣었어요. 완벽한 테크닉이에요. 근데 그게 조금 아쉬워요.”
참가자들은 물론, 제작들까지 술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100점 맞으니 인간미가 없다는 거 아냐. 그럼 80점 맞으라는 거야?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돼?”
“선생님이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순수하게 호기심이 일었다. 천채왕이 내게 준다는 가르침이 무엇일지 말이다.
‘어쩌면 거기에 내가 스탯을 올릴 비밀이 담겨 있을지도.’
내 테크닉과 감정 표현은 C에 머물러 있었다. 천채왕의 피드백에 이를 올릴 비결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예술 작품을 볼 때, 약간의 결함, 약간의 균열, 약간의 불안정성이 있어야 매력을 느낍니다. 그게 사람이에요. 다음에는 노을 군이 조금 박자를 틀렸으면 좋겠어요. 아니, 노래 부르다 울어버려서 가사를 잊어버리면 더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진짜 울지는 말고! 말이 그렇단 거에요. 노래 기계는 되지 맙시다! 알았죠?”
천채왕은 다시 웃으며 심사평을 마무리했다. 나도 밝게 대답해줬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점수 공개하겠습니다.”
이제 점수 공개 차례였다. 참가자들은 아직 내 점수가 어느 정도일지 감을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내 점수가 높다고 하기엔 마지막에 천채왕은 내 노래 비판만 한 거 같았다.
‘그게 방송 기술이란 거지. 천채왕은 연예계 기술자야.’
나는 이미 지난 생에 천채왕의 피드백을 결승까지 받았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천채왕은 절대 칭찬만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참가자는 기준을 올려서라도 그에게 도움이 될 개선점을 반드시 알려줬다. 참가자를 위한 일이기도 했고, 방송에 반전으로 재미를 주기 위한 계책이기도 했다.
오늘, 내가 받은 방식의 피드백은 최고 수준의 점수를 줄 때만 하는 피드백이었다.
“최종 점수는… 97점입니다!”
참가자들은 물론 제작자까지 떡! 하고 입이 벌어졌다. 슈퍼스타 T의 심사위원은 관용적으로 절대 100점을 주지 않았다. 97점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였다.
“와~ 미쳤다.”
“욕 잔뜩 하더니 점수는 잘 주네.”
“벌써 저런 점수가 나오면 어떻게 해?”
참가자들이 술렁댔다. 제작진은 더 바빠졌다. 수많은 카메라가 온갖 각도로 나를 쉴 새 없이 잡았다. 심지어 일부러 천채왕 심사위원장이 비판적인 코멘트를 남기며 ‘편집 각’까지 잡았으니 더욱 방송에는 좋았다. 제작진 중 한 명이 내게 손짓하며 말했다.
“권노을 참가자님은 합격자석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뒤통수로 느껴졌다. 참가자들의 질투, 부러움, 그리고 경외감까지 말이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거도 아닌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만끽하며 합격자석으로 걸어갔다.
* * *
이후 오디션은 지루했다. 나를 괴롭혔던 운동부 녀석들은 모두 무난하게 탈락했다. 그 녀석들 외에도 모두 모든 스탯이 B급도 안되는 참가자들이었다.
드디어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눈처럼 흰 피부에 왕자님 같은 얼굴을 뽐내는 참가자, 원재호가 등장했다.
“꺄~”
“나왔어 나왔어.”
조금 높은 참가자 석에서 보이니 사람들의 리액션이 잘 보였다. 제작진은 물론, 참가자 중에도 여성들이 입을 모아 감탄하고 있었다. 이미 제작진은 팬클럽까지 만들 기세였다.
원재호의 손에도 악기는 없었다. 대신 기계가 하나 덜렁 놓여 있었다. 천채왕 심사위원이 물어봤다.
“247번… 원재호 참가자? 왜 또 빈손이지요?”
‘또’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원재호는 무반주로 노래를 부를 예정은 아니었다.
“루프 스테이션입니다.”
루프 스테이션. 악기의 소리를 녹음하는 악기였다. 이전 생에서도 원재호는 이걸 통해서, 공원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악기들의 소리를 녹음했었다.
원재호가 천채왕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천채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원재호를 쳐다봤다. 3시간 만에 편곡하고, 연주해서 한 곡을 뚝딱 만들어 왔다니, 나라도 믿기 어려웠을 거 같았다. 하지만 원재호의 모든 과정은 카메라에 이미 기록되었다. 곧 편집되어 시청자들을 만나게 될 터였다. 원재호 팬들에게 전설의 ‘출구 없는 입덕 영상’으로 활용될 자료였다.
‘뭐 그것도 다 마약 논란 이전 이야기지만.’
원재호는 깔끔하게 노래를 마무리했다. 선곡은 성시경의 ‘좋을 텐데’였다. 기타, 베이스, 드럼의 단출한 구성이었다. 팝에 가깝던 원곡에 미묘하게 알앤비스러운 색채를 가미했다. 기본기가 탄탄한 좋은 편곡이고 또 연주였다.
더욱 놀라운 건 코러스였다. 원재호의 목소리는 중저음에서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고음에도 색깔 있는 가성을 활용했지만 고음이 좋지는 않았다. 그 약점을 가성을 겹겹이 쌓은 화음으로 커버했다. ‘고음이 터졌으면…’ 싶을 때마다 풍성한 화음의 코러스가 귀를 만족시켰다.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합격. 점수는 95점. 그게 내 기억 속 원재호의 성적이었다.
“247번 참가자 점수는… 95점!”
그대로 되었다.
그 녀석 무대를 실제로 다시 보자 다시금 확신이 들었다.
‘역시나 저놈이 필요해. 다음 미션을 수월하게 진행하려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