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삼성역은 우연히 동네 친구를 만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어?”
“응?”
누군가 나를 아는 티 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백옥 같은 흰 얼굴이 반짝였다. 엔간하면 소화할 수 없는 바가지 머리와 안경이 잘 어울리는 왕자 같은 외모의 소유자, 원재호였다.
“너… 노을이냐? 야 대체 몇 키로를 뺀 거야? 못 알아보겠네. 그냥 지나칠 뻔했어!”
“그러게 이런 데서 보네?”
“가끔 연락은 했지만, 학교에서 매일 본지는 딱 3년 만인가?”
“중학교 졸업하고 내가 바로 전학 갔었으니. 3년 맞네.”
3년 전, 아버지가 산재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나도 괜찮은 동네에 살았었다.
‘그러니까 원재호 같은 왕자님이 동네 친구였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이후에 어떻게든 나와 동생의 대학 학비를 버시려 무리하던 어머니까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내 날씬한 모습, 어머니도 봤다면 좋았을 텐데.’
어린 시절 친구를 보니 살짝 센치해졌다.
“다이어트 안 힘들었어?”
가족 외에는 누구도 내가 아마도 원인 모를 희귀병에 걸려서 생긴 비만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의사도 인정하지 않았으니 말한들 소용없으리라 생각했다.
재호의 저 말은 칭찬이었다. 그래서 밝게 대답해주었다.
“그야 힘들었지. 너도 여전하네.”
“나야 뭐 익숙하니까.”
원재호가 들고 있는 봉지에는 샐러드와 맹물만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저게 아침이었다. 원재호다웠다. 탄산음료나 튀긴 음식, 심지어 커피도 먹지 않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마약이라니. 말이 되나? 참… 사람 속은 모른다니까.’
“너무 보기 좋다. 왜 그렇게 뺀 거야?”
“가수 하려고.”
“하, 진짜? 여전히 가수가 꿈이구나. 내가 차마 말은 못 했는데. 살 빼면 진짜 너 연예인 느낌이라 생각 했그든.”
‘으… 저 진정성 느껴지지 않는 느끼한 말투.’
처음에는 저런 말투 때문에 원재호를 불신했다. 그러다가 무명 가수이자 코러스로 먹고사는 내게 끝까지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었다.
‘알고 보니 진국이었구나 생각했지. 마약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원재호가 갑자기 내 팔을 꼭 붙잡았다.
“너 가수 아직 하고 싶으면 꼭 슈퍼스타 T 참가해봐.”
“슈퍼스타 T?”
“나도 참여했는데. 붙었어. 내가 아는 니 노래 실력이라면 충분할걸? 니 노래 한번 들으면 끊지 못하는 마약 같잖아.”
“윽 마약이란 말은 좀 안 쓰는 게…”
‘내 노래 실력을 알면, 나도 참여하면 어찌 보면 경쟁자가 한 사람 느는 걸 텐데.’
정말 짜증 날 정도로 좋은 녀석이었다. 자기 안위보다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봤을 따름인데도. 원재호의 반짝반짝한 눈에 진심이 뚝뚝 묻어나왔다.
‘내가 미래를 알았던 것만 아니라면 이미 감동해서 이 녀석에게 몸도 마음도 다 내줬을지도. 아, 몸은 아니고.’
미래 때문에 현재의 좋은 놈을 차별하면, 그것도 하나의 차별인가? 어차피 나는 미래를 알고 있는데? 나도 헷갈렸다.
“나도 붙었다.”
“뭐?”
“나도 이미 참가했고, 붙었다고. 슈퍼 캠프 갈 거야.”
“역시! 내 안목이 맞다니까. 그럼 곧 촬영 때 보겠네?”
“그래.”
경쟁자가 됐다. 그래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진짜… 좋은 놈이었다.
막상 직접 원재호를 보니, 예정된 미래가 자꾸 생각나 기분이 암담해졌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
“아침부터 바쁘네?”
“옷 좀 사려고.”
“옷?”
“내가 이렇게 날씬해져 본 게 처음이라. 한번 마음대로 사보려고. 백화점 간다.”
“아~ 방송 의상 사는 거구나?”
원래 오늘의 계획은 이랬다. 이윤강 PD의 지적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슈퍼 캠프 때는 더 매력적인 차림으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슈퍼 캠프에서는 의상도 신경을 써야 할 듯했다. 해서 백화점에서 슈퍼 캠프 때 입고 갈 옷을 사보려 했다.
‘여태껏 이태원에서 큰 옷만 사 왔는데. 기성복을 입으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노을이 너, 기성복 한 번도 안 사봤지? 같이 가줄까?”
‘얼씨구, 아주 그냥 성자 나셨어.’
“야 너 안 바쁘냐?”
“아니. 아직 아침 식사 시간까지 6분 정도 남았는데?”
‘윽… 변태 같은 놈. 스케쥴을 분 단위로 계획하는 건 여전하군.’
항상 원재호는 손목시계를 차고, 다이어리로 5분 단위로 자기 일정을 계획했다. 더 무서운 건 그 모든 계획을 지켰고, 수정사항을 매번 반성했다. 덕분에 같은 가수 지망생이었지만, 나와 달리 재호는 항상 우등생이었다.
‘슈퍼스타 T 이후에도 Y공대 꽃미남 가수라고 바이럴이 많이 됐었지.’
거기다가 마음씨까지 좋았고, 아주 여러모로 짜증 날 정도로 완벽한 놈이었다.
“그래, 시간 없잖아? 근데 어딜 따라와?”
“노을이 너 모르는구나? 스케쥴링에 핵심이 뭔지 알아?”
‘내가 알 턱이 있냐. 오늘 점심 메뉴 계획도 안 짜는데.’
“뭔데?”
“비상시에 대비할 여분 시간을 항상 만드는 거야. 이번 주에 내게는… 어디 보자. 3시간 40분이나 여유 시간이 있그든!”
‘…변태 새끼.’
말만 들어도 두통이었다.
“같이 가줄게.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뭐…’
슬쩍 재호의 옷을 살펴봤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었다. 산뜻한 화이트 팬츠와 화이트 나이키 운동화. 거기에 윗옷은 흰 배경에 자신이 직접 염색해서 리폼한 듯한 화사한 맨투맨 셔츠를 입고 있었다. 수채화처럼 자연스럽게 오색이 섞이고 번져 몽환적인 느낌을 냈다. 밀가루 인형 같은 하얀 얼굴과 너무 잘 어울리는 멋스러운 차림이었다.
그리고 덜렁 검정 티셔츠에 검정 반바지, 검은 쪼리 차림의 나.
‘…저놈이 나보다는 낫긴 하겠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빨리 가자. 여기 S 백화점 있지?”
“맞아.”
“가보자. 너도 바쁜데 빨리 끝내야지.”
“야 근데 너 돈 얼마 가져왔어?”
“20만 원.”
“뭐어어어?”
저렇게 크게 입 벌린 원재호는 또 처음 봤다.
“20만 원이면 되는 거 아니야?”
“야, 운동복 사냐? 방송 의상이라구. 택~도 없지!”
젠장할. 내가 니처럼 부잣집 아들인 줄 아냐. 그냥 온라인 커머스 가면 깔끔하니 한 5만 원 주면 적당한 옷 살 수 있겠구만. 아 지금은 그런 데가 없나?
“너 안 되겠다.”
“뭐가 안돼?”
“그냥 너는! 뭐 하려고 하지 말구! 나 따라와.”
* * *
원재호가 데려온 곳은 용산구에 한 가게였다. 익숙한 동네였다. 나도 이태원에 큰 옷 사러 매번 왔었으니까.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생긴, 뭔가 빈티지한 느낌의 가게에 왔다.
“헌 옷… 가게냐?”
“하~ 헌 옷이라니, 구제샵이라구. 구제샵.”
“구제샵이나 헌 옷 가게나.”
가게에는 다양한 옷이 잔뜩 깔려 있었다. 어르신들 골프웨어부터 아이들 멜빵 가지까지 온갖 종류의 의상이 보였다.
“어차피 니 돈으로는 이 정도밖에 안 되겠다. 근데 그게 오히려 좋을 수 있어. 구제가 좋은 게 많그든.”
과연 돌이켜보니 좀 스타일리쉬해 보이기도 했다.
“노을이 너 키 크네? 건강해지니까 훤칠하다 야.”
“니가 더 크잖아 인마.”
“너 180은 넘지?”
“183.”
“그래. 그래서 여기 온 거야. 강남 가면 니 사이즈 옷은 별로 없어. 자. 이거 이거 이거 입어보구 와.”
죄다 정장이었다.
이후에는 내가 모르는 말의 연속이었다.
“보기만 해도 덥네. 캐시미어는 안 되겠구. 여름 소재만 찾아보자.”
그리고 옷 갈아입은 후.
“음 이건 니 피부랑 톤이 좀 안 맞네. 네 얼굴 톤과 눈동자 색에는 좀 더 밝은 팔레트 톤으로 해야겠어. 다음!”
그리고 옷 교체.
“이건 핏이 안 맞네. 노을이 너, 동양인 치구 팔다리가 길고 몸통이 짧구나? 더블 버튼도 소화 가능하겠는데? 여튼, 다음!”
그리고 다시 탈의.
‘…무슨 외계인 같은 말만 하고 있어.’
내가 보기엔 다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슬슬 지쳐 갈 때쯤.
“…오케이. 이거다.”
거울을 슬쩍 봤다.
베이지색 양복에 밝은 연두색 단색 티셔츠, 거기다 살몬색 로퍼까지. 나라면 절대 안 골랐을 밝은색이었다.
‘일단 밝은색은 뚱뚱해 보였으니까. 피했지.’
지금의 내게는 밝은색이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츄파츕스처럼 톡톡 튀는 밝은 컬러가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좋네. 표정까지 밝아 보이구.”
“발라드 부를 건데 표정이 밝으면 되냐?”
“분위기를 바꾸고 싶으면 이걸 입어.”
원재호가 단색 티셔츠를 서너 개 더 가져왔다. 옅은 보라색부터 토마토처럼 밝은 붉은색, 터키옥색까지 다양한 색깔의 티셔츠였다. 신기하게 모두 내 베이지 양복과 잘 어울렸다.
“다 같은 배색 팔레트의 색이라 그래.”
‘…또 외계어를 쓰는군.’
항상 멋진 패션 하면 흰검만 생각하던 내겐 충격적인 컬러였다.
“자 이걸로 곡 분위기에 따라 다른 티셔츠 입으면 급한 대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거야.”
가격은 총 합쳐 15만 원도 채 나오지 않았다.
“와… 이게 겨우 이 가격이야?”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니까. 어이쿠, 나 이제 가봐야겠다. 내 예상보다 17분이나 더 써버렸네.”
‘아이고 지겨운 놈. 그래 가라. 가라.’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고맙다.”
사실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이 녀석을 안 만났으면 어땠을까? 나 혼자서는 절대로 이렇게 멋지게 옷을 고르지 못했을 것이다.
“뭘 이 정도 가지구. 친구잖아.”
‘…!’
그리고 그 녀석은 바쁜 걸음으로 어딘가로 가 버렸다.
들어 본 적 있는 말이었다.
[야, 뭘 이 정도 가지구. 친구잖아.]
내가 가장 힘들 때, ‘노래는 권노을이 제일 잘해요’라고 레전드 가수에게 코러스를 추천해줬던 그때 했던 말이었다.
미래지만 과거인 당시의 도움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또. 이 녀석이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설마 이런 녀석이 마약 같은 짓을 했을까? 초 단위로 스케쥴을 관리하는 녀석이? 술과 탄산음료, 튀김도 몸에 안 좋다고 마다하는 놈이? 다른 것도 아니고 몸과 정신을 파멸시키는 마약을 했다고?’
뭔가 잘못된 건 아니었을까? 나라도 믿어줘야 하는 건 아닐까? 마치 원재호가 인생 벼랑 끝에 있던 내 노래 실력을 믿어주고 나를 코러스와 가이드 보컬로 추천해줬듯이 말이다.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을 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이 소리는…설마?’
Mp3가 다시 반짝이고 있었다.
* * *
슈퍼 캠프 첫날.
한강 부근의 한 공연장. 바로 이번 달에 개관한 따끈따끈한 공연장이었다. 1천 명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규모였다.
그곳에, 300명에 가까운 참가자와 100명이 넘는 스태프가 모였다. 어찌 보면 장관이었다.
‘익숙한 광경이군.’
권노을이 주변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당연했다. 과거에 경험했던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이후 상황은 권노을의 기억과는 좀 달랐다.
“권노을 참가자! 잠깐 사진 찍겠습니다. 의상은 준비해 오셨… 훌륭하네요.”
“하하.”
“아니 정말로요. 방송국 코디보다 나으신데요? 꼭 화보 같아요. 이렇게 옷 잘 입으시는데 이전에는 잠옷처럼 입으시고.”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나 원재호, 패션 센스가 탁월하다 싶었다.
‘나는 이게 뭐 잘 입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토마토 같은 색 티셔츠랑 베이지가 잘 어울리나? 참 나~ 내 오천 원짜리 반바지랑 티셔츠도 좋기만 하구만!’
금방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는 사라졌다. 느닷없이 작가진과 PD가 데려와서 사진과 인터뷰를 잔뜩 찍기 시작했다. 당연히 과거에는 없던 배려였다.
‘내가 상품성이 있다고 이 PD가 인정해줬다 이건가? 돈도 안 줬는데?’
주작 PD의 원픽에 들어갔다니,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애매했다.
“오디션 합격했다 하니까 가족들 반응은 어때요? 부모님은 걱정 안 하세요?”
“부모님은 안 계십니다.”
작가의 눈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약간의 반짝임이 보였다. ‘방송 각이다’라는 느낌이었다.
‘…시청률 올리는 소재로 딱이라 이건가.’
내 비극이 남의 커리어 튀기는 소재로 쓰이는 게 썩 달갑진 않았지만 별수 없었다. 튀기 위해 모든 걸 팔아넘기는 직업이니까.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일찍 병으로 그만…”
“아이고. 쓸데없는 질문 죄송해요.”
‘그러기에는 너무 흥미로워하는 표정이시네요 작가님.’
위선에 좀 짜증이 났지만, 말은 이쁘게 해야 했다.
“…피붙이라고는 동생 하나 있는데, 동생은 정말 기뻐하더라고요.”
“아 가족은 있으시군요.”
“네, 지금은 국악 전문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 중이라, 사실상 저 혼자 생활 중입니다.”
“동생을 위해서라도 힘내야겠네요.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
씨익, 하고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 질문이 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승하면 뭘 하고 싶으세요?”
“우승 상금으로 동생 학비에 보탤 겁니다.”
작가와 PD 눈빛이 떨리는 게 보였다. 진심으로 감동 받은 모양이었다. 방송 비중이 높아지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렸다.
‘뭐 거짓말한 거도 아니니까.’
원래 그렇게 쓸 예정이었다.
“너무 멋지네요. 권노을 참가자님의 여정을 저희도 응원하겠습니다. 사진 조금만 더 찍을게요. 그리고 동생 인터뷰 혹시 가능할까요?”
‘가족 인터뷰 요청이라니, 이전 생에는 전혀 없던 일이네.’
방송 분량이 풍선처럼 커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