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넘버원?”
천채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와닿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승 후보란 거야?”
“우승은 못 할 수도 있죠, 그보다는, 이번 시즌 참가자 중 최고의 가수가 될 거 같습니다.”
“더 대단하게 보는 거네?”
천채왕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커피보다 더 흥미로운 관심거리를 발견한 표정이었다.
“일단 스케일이 남다르지 않습니까? ‘세계제패’라니요.”
“그러게!”
“꼭 예전에 선생님 보는 거 같았는데요.”
“나?”
“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세요? ‘아시아 제일의 여가수로 만들어줄게’라고 하셨죠.”
“아 아~ 그랬지.”
“좋아하는 척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비웃었어요. 말도 안 되는 사기꾼이라고. 정말로 잠시나마 그렇게 만들어주시더라고요. 그때, 말도 안 되는 꿈을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의 무서움을 알게 됐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기억만 떠올려도 헤벌쭉해질 거대한 성공이건만, 천채왕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과거의 성공에 대한 냉담함, 그게 그가 지금껏 최고인 이유 중 하나였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현재에 있었다.
“한국 가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을까? 너무 맹랑한 꿈 아니야?”
“아시아 스타가 나올 거라곤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90년대에는 무조건 홍콩 가수 아니면 일본 가수였는걸요.”
하지만 천채왕은 집요한 기획으로 결국 베이비를 90년대 아시아 최고 스타로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권노을 군이라고 최고의 가수가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지 않을까요?”
“그 참가자 실력은 어때? 그런 말을 하려면 걸맞은 능력이 있어야지.”
“Just Come를 불렀어요.”
“그렇게 옛날 노래를?”
“요즘 애들답지 않죠.”
“그런 옛날 노래를 연습생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분명 노래에 흠이 없진 않았습니다.”
“그렇지?”
“발음이 조금 기성 가수를 떠올리게 했고. 호흡이 고르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어요.”
“너무 단점이 치명적인 거 아니니? 목소리 톤이 좋아??
“자잘한 단점들을 성량으로 다 극복하더라고요.”
천채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량으로 표현력이 극복이 될까?”
“귀가 아니라 피부로 성량이 느껴졌어요.”
아주 잠깐, 베이비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순간에 천채왕의 눈동자가 커졌다. 바로 천채왕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평소 모습을 회복했다.
“무슨 기인열전이야?”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천채왕의 입꼬리에는 미소가 번졌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성량이 좋으면 그게 개성이 되더군요.”
“한번 그 친구 노래 꼭 들어봐야겠네?”
“선생님도 슈퍼 캠프 때는 심사위원으로 오시죠?”
“그럼. 1차 예선도 좀 봤지.”
TYB 엔터테인먼트는 10년 넘게 정상인 최고의 기획사였다. 자체 연습생이 워낙 많아 오디션 프로와는 아예 관련이 없었다.
‘슈퍼스타 T’는 예외였다. 아예 기획단계부터 TYB 엔터테인먼트에서 우승자 1명은 자신이 데뷔시키겠다는, 역대급 공약을 걸고 제작한 오디션이었다.
그런 기획이니만큼, TYB 엔터테인먼트 기획의 핵심인 천채왕 프로듀서가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다.
“나도 재미있는 참가자 한 명 봤어.”
“오, 그러신가요?”
이번에는 베이비가 놀랐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제작자인 천채왕이 놀랄 만한 참가자는 정말 드물었다. 그의 마음에 차는 연습생이 없어 그룹 데뷔가 2년씩 미뤄지곤 했다.
“원재호 참가자. 외모부터 보컬, 음악 지식, 기획, 매력까지. 흠이 없더라고. 당장 우리 회사 와도 바로 데뷔조일 거 같던데?”
* * *
새벽의 한강 근방 공원. 권노을은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한강을 달렸다. 아직 해뜨기 전 어둑어둑한 시기였다.
“헉헉. 헉헉.”
금방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우선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살 빠지면 저절로 체력도 좋아질 줄 알았더니만.’
지난 미션에서 노래를 부른 후, 권노을은 바로 자기 노래의 약점을 알아차렸다. ‘폐활량’이었다.
성량은 여전히 좋았다. 하지만 큰 성량으로 노래를 부르는 고음 파트에서 호흡이 딸렸다. 그래서 노래 부르는 동안 마디마다 숨을 쉬었다. 그러다 보니 흐름이 자꾸 끊겼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노래지만. 좀 더 완벽을 가하고 싶어.’
그래서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유산소 운동으로 폐활량을 늘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든다. 지금 시작한다고 오디션 프로에서 도움이 되긴 어려울지 몰랐다.
‘하지만 이게 있지.’
권노을은 주머니 속 mp3 플레이어를 소중하게 감쌌다.
‘왜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성을 하나 더 줬단 말이야.’
지금 갖고 있는 특성인 ‘이데아의 육체’는 처음부터 주어졌으니 이번이 첫 선택이었다. 권노을이 처음으로 ‘선택’한 특성은 ‘빈 서판의 잠재력’이었다.
-빈 서판의 잠재력-
등급: A+
설명
: 본인이 선택한 한 분야의 성장 속도를 비약적으로 빠르게 한다.
: 본인이 선택한 분야에서 본인의 능력치와 현재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
: 선택 분야는 하루에 한 번씩 바꿀 수 있다.
이 특성을 선택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서순.’
매력적인 특성은 그 외에도 많았다. 심지어 더 높은 S급 등급도 있었다. 하지만 학습이야말로 지금 당장, 하루라도 빨리 얻을수록 좋은 특성이었다.
‘그리고 효율.’
다른 특성과는 달리 ‘빈 서판의 잠재력’만 특성에 설명이 3개가 달려 있었다. 사실상 두 개의 특성이 하나로 달려 있는 셈이었다.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능력과 내 현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 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빈 서판의 잠재력’으로 확인한 내 가수 스탯은 다음과 같았다.
톤: A+
발성: SSS
체력 C
테크닉 C
감정표현: C
보아하니 ‘톤’과 ‘발성’과 ‘체력’은 가수의 피지컬 적인 성량, 호흡, 그리고 타고난 목소리 등을 말했다. 테크닉과 감정 표현은 리듬감, 음악, 발음 등 가수의 뇌지컬 적인 능력. 즉 머리에 가까웠다.
‘나는 언제나 문무겸장이 되고 싶었는데.’
역시나, 정확하게 계산표를 받고 나니, 나는 무대뽀 과였다.
그게 꼭 나쁜 뜻은 아니었다. 되려 상태창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일단은 잘하는 ‘피지컬’적인 면을 까지 올려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 장점이 확실한 것이, 당장 오디션을 우승할 때는 더 유리할 듯해서였다.
‘과거에도 이 정도 스탯으로 결승까지 갔었으니까. 어설프게 만능이 되기보단 차라리 잘하는 걸 아주 잘하는 게 임팩트가 더 있겠지.’
테크닉이나 감정 표현은 딱히 어떻게 해야 늘 수 있는지 감이 안 잡히기도 했다. 노래를 많이 들으면 되는 걸까? 아니면 연기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 뜬구름 잡는 트레이닝만 떠올랐다.
‘그러니까 테크닉이나 감정 표현이 평범했던 건가.’
일단은 ‘완전체 가수’라는 욕심은 버리고, 내 강점을 왕창 살려보기로 했다.
‘우선 발성과 체력으로 한번 최고의 가수가 돼 보는 거야.’
기록을 확인했다. 또 내 인생 최고 기록이었다. 체력으로 내 잠재력을 집중한 다음부터 운동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10KM 달리기 기록이 1시간도 넘었는데, 이제는 40분 내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상태창의 체력 수치는 벌써 C+을 넘어 B-가 되었다.
‘하루 한 번, 10KM씩 뛰었을 뿐인데 말이지.’
달리기 선수가 목표가 아니니 이제는 다른 미션을 찾기로 했다. ‘노래하며 달리기’였다. 코러스 하던 시절, 레전드 가수가 하던 연습법 중 하나였다.
‘그때는 이런 걸 왜 하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일종의 모래주머니 달고 달리기 같은 거네.’
달리면서도 쉽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노래를 집중해서 부를 때는 정말 편해질 터였다.
‘오늘 귀갓길은 노래 부르면서 달린다.’
그 사이 주변 시야가 밝아졌다. 동쪽 강가에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새벽노을이 권노을 주변에 가득했다. 마치 권노을 인생도 해가 뜨기 직전이라고 알려주듯.
다시 권노을은 강가를 달렸다. 얼굴은 수건을 두른 채였다. 햇빛에서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가수의 애티튜드였다. 그렇게 권노을은 서서히 만년 유망주에서 프로 가수로 변해가고 있었다.
* * *
오디션 준비를 하려면 노래만으로는 부족했다.
‘도현준, 그 녀석을 미리 화장실에서 만나서 망정이지. 잘못하면 그 녀석 페이스에 넘어갈 뻔했어.’
운이 좋았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미리 오디션에서 일어났던, 혹은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과거에 오디션장에서 있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말이 과거 기억이지, 벌써 15년 전 일이었다. 내용이 많이 기억날 리가 거의 없다. 엔간한 미친놈이 아닌 다음에야 15년 전에 있던 일을 누가 기억하는가?
‘그 미친놈이 바로 나였다.’
그냥 마음속에서 문을 닫아 잠갔을 뿐, 막상 떠올려 보니 온갖 시시콜콜한 디테일까지 다 생각이 났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매일 밤마다 우승하지 못했던 오디션을 떠올리며 후회했으니까. 기억이 안 날 수가 없지.’
다행이었다. ‘기억’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생긴 셈이니까. 그래서 최대한 많이, 오디션에서 있었던 일이나 정보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선 인덱스 카드를 잔뜩 샀다. 그리고 기억 나는 정보를 카드당 하나씩 적었다. 그리고 서로 연관이 있을 법한 정보끼리 서로 묶었다. 금방 인덱스 카드만으로 종이박스가 가득 찼다.
‘이 정도 노력했으면 의사도 했겠… 그건 무리였으려나. 여튼.’
카드를 만들다 보니 새삼 정말 많은 일이 있던 오디션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오디션 룰부터, 미션들. 선곡들. 참가자들. 스케쥴. 지금 생각하면 조작을 암시했던 이 PD의 수상했던 행적들까지. 아무튼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법한 모든 정보들을 노트에 쏟아 넣었다.
그중 가장 쓰기에 재미있던 노트는 역시 다른 참가자들 노트였다.
“도현준. 노래 실력은 쏘쏘였지만 얼굴 덕에 라이브 무대까지 올라감.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기획사를 통해 PD까지 매수했었음.”
카드를 업데이트할 차례였다.
“2회차에서는 나와 같은 선곡으로 대결해 예.선.탈.락.함. 예선탈락 따리.”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예선탈락 따리. 그렇게 듣기 좋은 말이 없었다.
도현준의 정보를 적은 카드를 박스에 집어넣었다. 다른 참가자의 카드를 하나씩 확인했다. 그러다 눈에 띄는 한 참가자를 발견했다.
“원재호.”
기억났다. 아니, 까먹을래야 까먹을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오디션 전부터 알았던 참가자였다. 어릴 적부터 알던 동네 친구였으니 말이다.
‘사실 슈퍼스타 T 참가자 중 가장 성공한 녀석이기도 했지. TOP4였지만. 음원 차트 1위도 해보고. 정점에 선 녀석은 결국 재호뿐이었으니까.’
그렇게 그 친구는 내 자랑거리가 되었다. 한낱 코러스인 나에게도 늘 변함없이 대해준 좋은 녀석이었다. 그 녀석 소개 덕분에 먹고는 살 수 있게 되었다.
노래 실력은 물론 인성, 외모, 편곡 실력까지, 도저히 깔 게 없는 친구였다.
‘또, 내게 엄청난 충격을 줬던 참가자기도 했지.’
[가수 원재호 씨가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원재호 씨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마약쟁이라니… 대체 왜 그렇게 된 거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