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4화 (4/280)

제4화

‘걱정은. 설마 제가 TV 카메라 앞에서 나체쇼를 하겠습니까?’

화장실에서 회귀했을 때. 제일 문제가 내 옷차림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몸무게를 40kg 넘게 감량했다. 지금 입고 입던 옷이 내 몸에 맞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캐쥬얼한 옷이라 ‘힙합 패션’이라고 우길 수 있었다. 벨트가 있던 덕에 옷이 벗겨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웃기는 차림임은 분명했다.

‘가수가 무슨 옷차림이냐 할 수 있어. 하지만 비주얼도 중요하지.’

이 또한 코러스로, 수많은 스타의 무대를 지켜보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가수는 노래만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상품이었다. 무대에서의 모습, 의상도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아무런 개성도 없는 내 베이지색 무지 티셔츠와 반바지는 최악의 의상이었다. 게다가 사이즈도 안 맞는다.

‘없으면 스토리는 만들면 되지.’

그래서 강수를 준비했다. 탈의 쇼였다.

“어머!”

“뭐 하시는 겁니까!”

제작진 모두가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 번졌다. 당연했다. 스트립쇼라도 하는 줄 알았을 테니까.

하지만 틀렸다. 미리 오디션장 옆 마트에서 반바지와 티셔츠를 사서 속에 입어 둔 채로였다.

‘내 팬티 색깔은 나만 알아야지. 암!’

“이게 제 각오입니다.”

“이건…”

벗어 재낀 옷을 펼쳐 카메라가 잘 보이는 각도로 들었다. 현재 내 몸과 비교가 한 눈에 되었다. 조금 뻥 쳐서 내 몸에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제가 한 달 전까지 입었던 옷입니다. 한 달간 40kg을 뺐습니다.”

“한 달…”

“그게… 가능한가요?”

“가수가 되고 싶어서요.”

이 정도면, 각오는 충분한 거 아닌가요 방송국 님들?

“으음…”

이윤강 PD가 낮은 신음을 흘렀다. 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이걸 어떻게 편집 각으로 만드는지 궁리하는 거겠지. 딱 니가 보고 싶어 하던 그림이지?’

1회차 오디션 때 나는, 이런 ‘연출’을 하지 않았다. 노래로만 승부해야지, 감정에 호소하는 건 비겁하다 생각했다. 희귀병도 분명, 나를 부각시킬 수 있는 요소였는데 생방송에서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참 바보 같았지.’

코러스가 된 다음에, 레전드 보컬리스트들을 봤다. 그들은 노래도 중요하지만 자기 관리, 마케팅, 스토리에 힘썼다. 자기 자신이 상품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를 제대로 포장해봤다. 사실 내가 노력해서 뺀 건 아니지만 뭐 어떤가.

‘그렇다고 ‘mp3 플레이어가 소원이라니까 살 빼주던데요’ 이럴 순 없잖아.’

“노래 실력과는 별개로. 다이어트 비법은 배우고 싶네요.”

“풋!”

베이비의 솔직한 답변에 제작진부터 나까지 모두 빵 터졌다. 여지까지의 말투와는 달리 매우 진솔한 자연인의 목소리였다.

이윤강 PD도 말을 보탰다.

“이번에는 이유가 있으니 좋슴다. 하지만 이런 거, 앵콜은 안됩니다. 슈퍼 캠프 때는 더 매력적인 차림으로 오셨으면 좋겠슴다.”

충고 한마디를 끝으로 이윤강 PD는 다시 제작진 자리로 돌아갔다. 뭐 나쁜 놈이긴 해도 저 충고는 좋은 의도였을 거다.

자리에 돌아간 이윤강 PD는 돌연 작가들을 불러 뭐라 뭐라 지시를 했다. 제작진이 바빠졌다. 추가 질문 리스트가 심사위원에게 전달되었다. 질문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분량 늘어나는 소리가 들리네.’

계획대로였다.

“권노을 님 학창 시절 별명은 있었나요?”

내 예전 티셔츠를 보여주며 대화를 시작했다. 워낙 거대한 크기라 시선을 퐉! 하고 사로잡는다.

“보시다시피… 돼지 계열이었습니다. 똥돼지, 뚱돼지, 꽃돼지, 꿀꿀돼지. 뭐 돼지 붙은 별명은 다 있었다 보심 돼요.”

참 생각해보니 별 설움을 다 받았다. 이제는 뭐 옛날이야기였다.

그 사이, 확연하게 많아진 카메라가 여러 각도에서 나를 담고 있었다.

‘아마 지금의 늘씬한 내 모습을 티셔츠와 비교하려 하는 거겠지. 음. 좋은 방송 감이야.’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인터뷰는 계속되었다.

“권노을 님은 목표가 뭐에요?”

“오디션 목표요?”

“오디션 목표야 다들 우승이겠죠. 그보다는 가수 인생 목표랄까요? 어떤 가수가 되고 싶어요?”

역시나 마지막 추가 질문은 까다로웠다. 예전에는 우물쭈물하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가수’라는, 어정쩡한 대답을 했었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맞을 수도 없는 답이지. 한마디로 뻔한 노잼 답.’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미 한번 헛된 인생을 살아봤던 내게는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제아무리 허황되고 큰 꿈이라도, 어차피 그게 내 꿈이라면 부정하지 않는다.

남에게는 가끔 거짓말을 조금은 해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안 된다. 내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세계제패요.”

“네?”

“세.계.제.패.요.”

“노래로요?”

“네.”

“한국에서 그게… 가능한가요?”

“왜 안돼요?”

‘BTS brought me here.’ 아이돌로 세계 1등 하는 나라인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어?’

“내 노래로 세계 1등이 될 거예요. 월드 스타가 될래요.”

“진심이신 거군요?”

“네,”

“파하하하하하하하.”

베이비는 자지러졌다. 그야말로 ‘빵’ 터진 모양이었다. 입을 손으로 가릴 틈도 없이 시원하게 파안대소했다.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무시한 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란 걸 깨닫고 나니까.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그래서 좀 크게 웃었어요.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목이네요.”

제작진이 ‘오…’하는 느낌으로 술렁거렸다. 흔히 나오는 립서비스는 아닌 모양이었다.

“건방져서 좋았던 거 같아요. 처음부터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그 무모한 객기.”

‘윽, 디스신가. 칭찬하실 줄 알았더니만.’

“그런 객기야말로 신인 때만 부릴 수 있는 특권이죠. 그 정도 꿈은 있어야 아시아 스타라도 돼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넵.”

‘전 진짜 월드 스타가 될 거지만요.’

“노을 씨가 이번 오디션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권노을 씨의 그 큰 꿈! 어디까지 이루어질지 저도 앞으로 지켜보겠습니다.”

* * *

오디션이 끝나고, 다음 촬영 일정과 장소를 받았다. 회귀자인 나는 다 알고 있던 정보였지만.

어디 보자 다음 미션은 슈퍼 캠프였지.

2주간 합숙 훈련을 통해 생방송으로 가는 정예 멤버를 뽑는 관문이었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편집 장난질이 가장 많았던 파트였지 아마?’

일단 지금은 제작진이 내 편인 거 같지만, 신뢰하기 어려운 PD가 있는 만큼 속단할 수는 없었다.

우웅 우웅.

응?

여동생의 전화였다. 갑자기 덜컥, 마음이 애잔해졌다.

“여보세요.”

-오디션 어떻게 됐어?

분명 어제도 들었던 목소리인데, 죽음을 거치고 다시 듣는 동생 목소리에 뭔가 찡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어땠을 거 같아?”

-아 뭐야!

“어땠을 거 같냐고~”

-아 몰라! 모른다구~ 내가 어떻게 알어! 그냥 답 내놔~ 쫌~

“붙었어.”

-뭐?

“1차 오디션 붙었다고.”

-헐… 대박. 진짜야?

“그럼 가짜겠냐?”

-대박!

“너 가수 베이비 좋아하지?”

-당연하지. 초딩 때부터 팬이었는데.

“그래. 그분이 나보고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래,”

-대박!!! 짱이다!! 이제 권노을 TV서 보는 거야?

평소라면 반말하지마 이 싸가지야~ 하면서 욕이 튀어나왔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 빨리 이번 주말에 집 가야겠다. 축하파티 해야지이~

‘그럼 내 몸무게를 설명할 방법이…’

“안 돼. 곧 시험이잖아. 기숙사서 공부해.”

-치~!

“끝나면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알았지?”

-됐어! 집값에나 보태. 돈도 없으면서.

‘돈… 없긴 하지.’

그러고 보니. 지난 생에서 동생이 아쉬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야 권노을! 내가 베이비 초딩 때부터 좋아했던 거 알면서! 오디션 갔으면 사인이라도 하나 받아주지. 센스가 없냐?]

“너, 베이비 사인 받고 싶지?”

-헐 대박. 당연하지!

“분위기 보니까 다음 오디션 때는 베이비 님에게는 사인 부탁할 수 있을 거 같아. 다음에 갖다 줄게.”

-오빠.

“응?”

‘뭐야. 갑자기 왜 오빠 대접이야. 맨날 이름으로 부르던 게.’

-사랑해.

으엑.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징그러우니까.”

-응 구라야.

“꺼져.”

-헤헤헤헤.

“끊는다.”

딸깍, 전화를 끊었다.

‘나도 사랑해.’

갑자기 미안한 감정이 몰려왔다.

사실 진짜 음악 천재는 내가 아니라 동생이라 생각해왔다. 분야가 달랐다. 국악 천재였다. 덕분에 지금도 저렴한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머물 수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근근이 코러스로 버는 돈으로는 단칸방 하나도 벅찼다. 외국에 공연도 다니는 음악 전공자를 서포팅 하기는 힘들었다.

도저히 안 된다 생각했는지, 동생은 결국 가야금과 주력으로 밀고 있던 신생 장르인 국악 피아노를 포기했다.

내가 좀 더 성공했더라면. 그래서 동생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일단 동생 소원이던 ‘자기 방’은 줬을 거다. 어쩌면 나아가 공부를 계속해 세계를 누비는 국악 피아니스트가 되었을지도.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성공의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띵동]

‘깜짝이야.’

Mp3 플레이어였다. 다시 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첫날 소원을 이뤄 준 이후에는 조용해서 잊고 있었다.

-Gift Mode: 특성이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특성을 골라 주십시오.

‘뭐라고? 특성이 추가돼? 왜? 내가 뭘 했다고?’

화면을 뚫어져라 살펴봤다. 한참을 알아본 뒤에야 뭔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Mp3에 빌었던 소원이 바뀌어 있었다.

[월드 스타로 만들어줘.]

분명 내가 빈 소원은 ‘이름 모를 희귀병 치료하고 미용 체중으로 바꿔줘’였다. 그런데 이렇게 바뀌었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진짜 내 소원이 뭔지 알았던 거군.’

사실 병 치료와 다이어트는 중간 지점에 불과했었다. 내가 진짜 바라는 소원은 월드 스타였다.

대체 어떻게 Mp3가 나보다 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일단 접어뒀다. 생각을 한다 해도 소용이 없었으니까.

일단은 내가 또 하나, ‘특성’이란 걸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번에는 여러 이미 주어진 특성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특성을 쑥 흝어봤다. 죄다 가수를 위한 특성들이었다.

‘뭔가 꽂히는 게 없는데.’

그러다 뭔가 하나가 ‘팍!’ 하고 내 눈에 꽂혔다.

‘바로 이거다!’

* * *

강남의 모 빌딩,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TYB의 본사였다.

차이나 드레스와 선글라스 차림의 한 여성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슈퍼스타 T’ 심사위원 베이비였다. 그녀가 누른 층수는 최고층. 그곳은 TYB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천채왕의 사무실이었다.

천채왕 대표는 워낙 바빴다. 한국에서 제작하는 가수들만 4팀이 넘었다. 게다가 몇몇 가수의 일본 진출까지 진두지휘 중이기까지 했다. 이미 전성기를 지나 결혼 후 평온한 삶을 누리는 40대 가수를 부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문을 열자, 고급 호텔 못지않은 멀끔한 응접실이 나왔다. 모든 가구가 최고급이었다. 티파니 장신구들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반짝이는 게 있었다.

2천년대만 해도 가수의 최고 영예는 연말 연예 대상이었다. 천채왕의 응접일에는 자신이 프로듀싱한 팀들의 연예 대상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그 외에도 가요무대 5주 연속 우승 골든컵, 정부에서 준 상패 등 얼핏 봐도 트로피만 20개가 넘었다. 평생 한 번 만져볼까 말까인 연예인 상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매번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어, 지현이 왔어?”

‘지현’은 베이비의 본명이었다. 베이비는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에 천채왕이 서 있었다. 편한 회색 나이키 츄리닝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덕분에 예순에 가까운 나이지만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90년대 초부터 함께 활동했던 전우기에 이런 허물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리라.

“안녕하세요 선생님.”

“일단 마시고 시작하자. 자, 마셔 마셔.”

천채왕은 베이비에게 커피를 권했다. 딱 봐도 최고급 커피가 최고급 컵에 들어있었다.

“커피 맛 괜찮지?”

“좋네요.”

“하와이서 산 코나 커피야. 이 커피가 말이야 지현아. 버터랑 같이 먹으면 그렇게 조화가 좋다? 그렇게 먹으면 몸이 키토제닉 모드란 걸 발동시키는데…”

화술이 뛰어난 천채왕이지만, 건강 주제만 되면 떠벌이가 되었다. 계속 듣다간 몇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선생님, 어떤 일이시죠?”

커피를 마시던 천채왕이 뭔가 해석하기 어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건을 하나 찾았다며?”

“물건이요?”

“노래로 세계제패를 하겠다는 미친놈 말이야. 그 친구 어때?”

“그 친구요?”

베이비는 커피잔을 손에 내려놓았다.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지금 할 말은 그녀에게도 무게감이 컸다.

“권노을, 그 참가자는 넘버원이 될 겁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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