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저, 제가 먼저인데요.”
도현준이 처량하게 손을 들었다.
“아이구 이런 실례를. 죄송합니다. 자기소개 먼저 하시죠.”
“괜찮습니다.”
도현준은 최대한 태연한 척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눈웃음을 유지하며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하지만 내게는 꽉 다운 입술 속 빡침이 보였다.
‘저놈 삐졌군.’
한번 뺀또 상하면 20년은 삐질 놈이었다.
도현준은 예고했던 대로 ‘Just Come’를 불렀다. 당연하지만, 기억에서 들었던 그대로였다. 과거가 반복되고 있었다.
도현준의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아이돌 서브 보컬이 되기엔 사실 좀 아까운 재능이었다. 발성이 나쁘지는 않았다. 고음도 쭉 올라갔다.
‘하지만 너무 애써서 부른다는 느낌이야.’
너무 어려운 선곡이었다. 고음에 볼륨감이 없었다. 그냥 ‘간신히 소리가 나긴 나는구나’ 정도였다. 듣는 나까지 불안해지는 소리였다.
노래가 끝났다. 심사위원은 뭔가 묘한 표정으로 서류를 쳐다봤다.
‘표정이 썩었군.’
도현준은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자기만 몰랐다. 오디션 조졌다는 걸.
‘이제 보니 저놈 선곡 조졌네. 너무 어려운 노래를 골랐어.’
이전에 도현준은 이래놓고 간신~히 한 곡 더 불러서 붙었다.
‘원래 심사위원은 탈락시키고 싶던 눈치였지.’
그걸 억지로 기회를 하나 더 달라 한 건 역시나 이윤강 PD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마일드한 조작이었다. 원래 떨어질 녀석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줬던 거니까.
“…다음 분 노래 듣고 함께 이야기하도록 하죠.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325번 참가자님?”
“안양에서 온 가수 지망생 권노을이라고 합니다.”
“네, 노래 들어보죠.”
방금 전 도현준 노래 들을 때보다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해 보인다. 내 착각인가?
“어떤 노래 부르실 건가요?”
“Just Come입니다.”
“뭣!”
도현준 얼굴이 썩었다.
“80년대 노래를. 그것도 유행가도 아닌 팝을 두 참가자가 연속으로 부르다니, 재미있는 우연이네요.”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지요 심사위원님.’
힐끗 도현준을 봤다.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눈빛으로 말을 하고 있구만.’
‘너 이 새끼 무슨 짓이야?’ 뭐 그런 느낌이었다.
‘돼지 새끼가 선사하는 엿 한번 먹어봐라.’
도현준을 떨어뜨리겠다는 목표가 생기자, 선곡은 간단했다.
나는 도현준보다 노래를 잘한다. 둘이 같이 노래를 부르면 실력 차이가 확 비교된다.
그런데 이전 오디션에서는 도현준도 합격했다. 실력 차이가 별로 안 보였다는 뜻이다. 이유는 선곡이었다. 아예 다른 장르에, 다른 언어로 노래를 부르니 나와 도현준의 실력 차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똑같은 노래를 연속으로 불러버리면 어떨까?’ 노래 실력의 차이가 드러나겠지, 그것도 적나라하게!’
나를 씹어 먹으려는 듯한 도현준의 썩은 눈빛을 뒤로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짤막한 피아노 전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번역된 가사)
<너무도 아팠죠
그대가 떠난 뒤
마치 난 모든 것을
잃을 사람처럼 누워만 있네요>
‘엄청난데요.’
심사위원석에서 베이비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처음에는 심사를 위해 분석하면서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두 소절 만에 분석을 포기했다.
‘음정 완벽하구요. 감정 대박이구요. 톤 물건이구요. 리듬감도 놀랍네요.’
아마추어들은 발라드 하면 고음 발성만 생각한다. 이 참가자는 달랐다. 고음도 쫀쫀한 리듬감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고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프로였다.
노래는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치달았다. 천둥 같은 샤우팅과 함께 마지막 후렴에 다다랐다. 권노을뿐 아니라 베이비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간절한 마음이 목소리를 타고 심장에 날아와 박혔다.
<한 번 단 한 번만
돌아봐 줄 수는 없나요
내게는 기회가 없을까요
한 번만 돌아봐 줄 수는 없나요>
후렴에서는 시원하게 고음을 내질렀다. 아껴 놓은 에너지를 아낌없이 토해냈다. 심사위원만이 아니라 제작진에게서도 감탄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전 참가자는 고음을 간신히 숨넘어가듯 부르느라 음정도 잔뜩 플랫 되었는데요. 소리도 작아졌고요.
사실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 차이였다. 이전 참가자의 노래가 평범한 지망생의 노래였다면, 지금 노래는 장인의 작품이랄까?
<한 번 단 한 번만
돌아봐 줄 수는 없나요
한 번 단 한 번만
그저 내게 돌아와 줘요>
권노을은 마지막 최고음을 쳤다. 순간 방 안 사람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믿을 수 없지만 몸이 고음의 ‘파동’을 느꼈다. 귀로 듣는 게 아닌, 피부로 느끼는 성량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성량을 아껴놨던 거에요? 마지막 임팩트를 위해서?’
어이가 없었다. 1절의 후렴에서의 성량만 해도 웬만한 가수를 씹어먹고 남았는데, 그게 절제한 거라고?
* * *
‘괜찮았나? 왜 이리 조용해?’
제작진도, 심사위원도,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초나 지났을까? 영원 같던 정적이 지나자,
짝
짝
짝
심사위원석에서 천천히 박수 소리가 나왔다. 베이비는 아예 기립박수를 하고 있었다.
“가수 생활 시작한 다음에는 거의 느껴보지 못한 기분인데요. 순수하게 노래에 취한 느낌.”
오오~ 하고 뒤의 제작진들이 술렁거렸다.
“권노을 님의 노래는 제가 감히 평가할 수준의 노래는 아닌 거 같습니다.”
제작진이 술렁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흔히 있는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음정. 리듬감. 창의적인 곡 해석. 무엇보다 감정까지. 뭐 다 흠잡을 게 없었어요.”
“감사합니다.”
최대한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실제로는 다 의도한 실력이었지만. 준우승자 (사실은 우승자. 궁서체다.)인 데다가 코러스 경력까지 쌓였으니 이 정도는 해야 했다.
“나이도 어리시던데. 감정이 너무 좋아요. 가사 같은 사랑 해보셨나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제가 연애 경험이 없어서요.”
“그냥 상상해서 부른 거예요?”
심사위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정말 놀란 모양이다.
“아 그건 아니고요. 제 꿈과 저의 관계라 생각하고 불렀습니다.”
“아하~ 멋진 해석이네요.”
베이비는 다시 가사를 곱씹어봤다. 사랑 가사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의 간절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제작진이 좋아할 스토리네요.’
스타 감이었다.
“무엇보다 성량이 너무 좋아요. 카메라 렌즈 막 깨지고 그런 거 아니에요? 어쩜 저리 힘이 좋아?”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성량만은 지구에서 누가 와도 자신 있었다. 이전 생에도 성량에 대한 칭찬은 귀가 닳도록 들었었다.
‘오죽하면 성량이 너무 커서 코러스 시절, 마이크 없이도 가수보다 크게 노래 부르다 혼났을 때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비주얼. 너무 괜찮아요.”
씨익
이건 처음 들어본 칭찬이었다. 입이 귀에 걸렸다.
“늘씬하니 키도 크시고. 이목구비도 단정~하니 너무 매력 있어요. 키도 훤칠하니 모델 키고. 근데 연애를 안 해봤다니. 거짓말 아닌가요? 여자 꽤나 울렸겠는데?”
‘여자 울리긴 울렸죠. 고백할 때마다. 니가 왜 고백하냐던데요.’
“비쥬얼 가수상이에요.”
‘세상에, 이번 생에서는 한번 비주얼 가수 돼 보나.’
꿈에도 그리던 칭호였다. 얼굴로 대충 노래하는 가수 한번 해보고 싶었다.
“무튼, 애니 웨이. 노래 너무 좋았구요. 하지만 룰은 룰이라서요.”
이전 오디션에서도 이랬다. 팝을 부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가요 미션이 주어졌다. 그래서 팝을 불렀던 도현준은 가요를 불러서 간신히 합격했다. 이전 생에서는 가요를 불렀던 나는 바로 합격이었지만.
“두 분 모두. 가요 한 곡만 더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준비시간 필요하신가요?”
“잠깐.”
누군가 난입했다. 모두가 말이 나온 방향을 쳐다봤다. 갑자기 내 온몸이 분노로 경직됐다.
‘이윤강!’
조작을 주도해서 내 우승을 훔쳐 간 담당 PD, 이윤강 PD가 서 있었다.
‘저 자식이?’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담당 PD가 방송 중 진행에 들어가는 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에 그가 내게 저지르는 악행을 아는 나로서는 고깝게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조작이 전부도 아니었어.’
방송마다, 내가 좀 잘하는 거 같으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편집으로 내 분량 삭제하는 일은 기본이었다. 룰을 바꿔서 내게 불리하게 경연을 유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못 하는 장르와 노래를 골라서 미션 곡으로 주기도 했다.
‘도현준처럼 돈을 주지 않아서 그랬나? 어떻게든 나를 떨어뜨리려 안간힘이었지. 이번에는 또 왜?’
“325번 참가자는 심사위원님 반응을 보더라도 평소 합격자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슴다. 외국인 참가자나 교포도 아니구요. 이번 라운드는 이 노래로 합격 처리해도 좋다 생각함다.”
‘이윤강 PD가 내 편을 들어? 매번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던 인간이?’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금세 이해가 되었다.
‘이득충이군.’
이윤강 PD는 무슨 철학이나 원칙이 있는 게 아니었다. 시청률의 노예일 따름이었다. 살이 쪘을 때 나는 화제성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사사건건 방해했다. 지금의 훤칠한 나는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설사 내가 그를 돈을 주고 매수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속물이네.’
최대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 감정을 감췄다. 여튼 내게 유리한 방향의 제안이니 막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요… 하긴, 쉽게 볼 수 있는 실력은 아니네요.”
그렇다면…
“325번 참가자님, 합격입니다!”
얏호! 하고 속으로만 외쳤다. 일단은 냉정한 냉미남 이미지로 가보기로 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네. 냉.미.남. 권노을.’
얼굴은 굳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324번 참가자는요?”
그때, 이윤강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324번, 324번 참가자가 있었죠?”
도현준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서 있었다. 지가 봐도 나랑 자기는 노래 실력 격차가 있었겠지.
내가 슬쩍 쳐다보자 그가 나를 ‘찌릿’하고 노려봤다.
‘뭐? 어쩔 건데?’
(속으로만) 비웃으며 다시 심사위원을 쳐다봤다.
“324번 참가자님은… 룰은 룰이니까. 가요를 하나 불러 주시겠어요?”
“노래를 한 곡 더 부르라고요? 지금?”
“그래 주십사 합니다. 가요 감성을 어떻게 소화할지 궁금해서요.”
“저 사람은요?”
도현준이 나를 가리켰다.
“저분은 워낙 실력이 특별하셔서. 솔직히 324번님은 아직 확신이 안 서는데요.”
“크으윽…”
도현준이 나를 노려보며 작게 속삭였다.
“일부러 같은 노래 불렀지? 나 엿먹이려고.”
‘어허 말 뽄새 봐라. 본성 벌써 나오네?’
일부러 다소곳하게 대답해줬다. 카메라가 보고 있었다.
“가사를 숙지 못하면 안 된다고 해주셔서. 그래서 제가 이미 가사를 숙지해둔 다른 노래를 불렀을 따름입니다.”
나는 이전 생에 도현준을 잘 알았다. 뭐가 그를 열 받게 하는지도 정확히 알았다.
웃기게도 자기에게 거짓말하는 걸 못 참았다. 자기가 거짓말쟁이인 주제에.
도현준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하지 마! 영어 가사를 어쩌다 보니 외우냐!”
한번 뚜껑 열린 도현준은 거칠 것이 없었다.
“에라이 이딴 X망 오디션.”
도현준은 ‘뻥~’하고 문을 발로 쳤다.
“내가 뭐 여기 말고 갈 데 없는 줄 알아? 태준 형한테 가서 아이돌 할 거야. 잘 가라 새끼들아. 카악~ 퉤!”
도현준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바닥에는 가래침 자국이 선명했다. 심사위원과 제작진은 벙찐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나만 빼고. 간신히 웃음을 참느라 바빴다. 저놈 미래가 보였으니까.
이태준이라면 알고 있었다. 천재 연습생 이태준. 스스로 작곡해서 팀을 만들겠다는 호기로운 말을 하며 등장한 아마추어 친구였다. 실제로 다른 그룹에게 준 곡이 몇 개 히트하긴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깟 명성 뭐 대단하다고 그거 이용해서 빚지고 다니다가 감옥 가서 팀 전체가 와해됐지 아마? 안됐지만 니가 잡은 동아줄은, 썩은 동아줄이다.’
게다가,
“멘탈이 안 좋네요.”
“아무리 케이블이라지만 우리도 방송국인데. 이런 무시를 당하네.”
“요새 애들 원래 다 저렇게 버릇이 없나?”
방송 작가부터 PD, 그리고 선배 가수 베이비까지, 모두에게 확고하게 ‘미친놈’이란 딱지를 받았다. 저 이미지는 아마 평생 갈 거다. 멍청한 놈.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도현준이 이윤강 PD를 매수한 건 본선 진출 이후였다. 지금 시점에는 둘이 아무 관계도 없었다. 지금의 도현준은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시간이 소진되었네요. 그럼 빨리 진행을…”
“잠시만요.”
갑자기 이윤강 PD가 끼어들었다.
“책임 PD 이윤강임다. 방송 책임자로서 하나만 물어보겠슴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무슨 질문을 하려고?’
이윤강 PD가 손가락으로 내 옷을 가리켰다.
“그 옷차림은 대체 왜 그런 건가요? 옷 사이즈가 하나도 안 맞는데요?”
씨익.
‘그 말 왜 안 하나 했습니다.’
이미 대답이 준비된 질문이었다. 바로 거침없이 윗옷과 바지를 벗었다.
“꺄악!”
“뭐… 뭐 하는 거죠?”
“쟤.. 말려 빨리!”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