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돼지 새끼?
여동생한테 몇 번 들었던 표현이었다. 하지만 또 생판 모르는 놈에게 들으니 기분이 확 더럽네?
“그렇다니까? 냄새는 또 어찌나 오지게 나는지. 웃기는 놈이야. 나? 나는 몸 X나 좋지! 그러니까 여자들이 다 뻑가지.”
‘지는 얼마나 몸이 좋길래 그래?’
슬쩍 화장실 문 틈새로 바깥을 확인했다.
‘좋긴 하군. 어, 인정.’
그러고 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도현준…’
이전 생에서 봤던 오디션 참가자였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가. 본인 말대로 몸이 좋았다. 얼굴도 멀끔했다.
‘문제는 노래였지.’
나를 볼 때마다 붙잡고, 노래 좀 알려 달라 청했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도와주면서 함께 TOP10 라이브 무대까지 갔다. 그때까지는 도현준은 내 동지라 생각했다.
‘오디션 끝나고 난 뒤에야 알았지. 저놈이 친척인 자기 기획사 대표와 짜고 이윤강 PD를 매수한 놈이었단 걸.’
그때야 깨달았다. 나는 그놈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야비한 놈도 잘나가더군.’
내게 배운 노래 덕이었을까? 아니면 이윤강 PD의 밀어주기 덕이었을까?
도현준은 TOP 10까지 갔고, 이후 중소 기획사 아이돌 그룹에 서브 보컬로 들어갔다. 대박은 아니지만 무난하게 성공한 그룹이었다. 코러스만 하다 죽은 나보다는 나았다. 내가 그의 성공에 거름이 된 셈이었다.
‘호구였지 호구.’
도현준은 계속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용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이번에는 심사위원을 깠다.
“야 어이없는 게. 심사위원이 베이비래. 아줌마가 날 감히 심사해?”
베이비 심사위원은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90년대 아시아 음악계를 지배했던 가수였다. 그런 가수를 ‘아줌마’라고 매도했다.
그러면서 정작 오디션 볼 때는 심사위원 앞에서 존경한다며 알랑방귀를 뀌었었다. 하여간 겉과 속이 다른 놈이었다.
“아 선곡? 또 내가 개쩌는 곡 골랐지. Just Come라고 아냐? 니가 알 리가 없지 짜샤. 퀸시 존스 몰라? 걔 노래야.”
‘저기요. Just Come이 이재하 노래보다 오래됐는데요.’
Just Come은 80년대 중반에 미국서 히트했던 알앤비 발라드였다. 나도 좋아해서 즐겨 연습하던 곡이기도 했다.
이윽고 도현준이 화장실을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후~”
과거에 악연을 다시 만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래서 슈퍼스타 T가 싫었는데.’
전국을 강타했던 오디션 열풍. 그중에서도 ‘슈퍼스타 T’는 진짜 노래 실력만으로 뽑겠다고 공언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공정은 개뿔, 실제로는 말뿐이었다. 제작진은 갖가지 편법으로 자신에게 돈을 찔러준 특정 참가자를 밀어줬다.
‘최고 점수를 받았는데 미션에서 통편집되는 경우도 있었지. 내가 했던 선행이 도현준처럼 잘생긴 놈이 한 일로 교묘하게 바뀌기도 했고.’
도현준 같이 제작진을 돈으로 매수한 참가자가 PR 영상으로 덕후몰이를 하면 노래를 못 해도 상위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 편집 분량은 물론, 연습 가능 시간부터 메이크업 분량까지. 갖은 방법을 써서 나같이 빽이 없는 참가자를 차별했다.
그렇게 하다 하다 안 되니 결국 제작진은 마지막 수를 썼다. 자존심이 강한 심사위원들을 포섭할 수는 없었다. 대신 점수의 50%를 차지한 시청자 투표를 조작했다.
[권노을 씨는… 스, 스타성이 부족함다.]
'몰래 돈 좀 쥐어 줬으면 저도 그 개 같은 스타성 좀 생겼겠는데요? 그죠?'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동안 내 인생이 팍팍해서 잊고 있었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형이 내 등 뒤를 찔렀을 때 그 더러운 기분을. 내 잘못으로 졌다 생각했던 결승이 알고 보니 조작된 결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때의 그 억울함을. 생각해보니 이 오디션에서 갚아줘야 할 일이 그 외에도 산더미였다. 다시 그때의 배신감과 모멸감이 오장육부를 뚫고 올라왔다.
이번 생에는 예전처럼 호락호락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나는 한번 죽었던 놈이니까. 눈에 뵈는 게 없거든.’
원래는 그냥 가볍게 이재하 노래를 기본기에 충실하게 부를 작정이었다. 그 정도로도 이전 생에서도 1차 예선은 가볍게 통과했으니까.
이번에는 달랐다. 그냥 내가 통과만 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엿 좀 먹여줄 일이 생겼다.
‘어디 보자. 그때 오디션이 어땠더라?’
내게 오디션은 이미 한번 정답지를 본 시험을 다시 푸는 일과 비슷했다. 이미 모든 과정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예선은 심사위원 1명이 참가자 둘을 한꺼번에 심사했다. 1명도 통과하지 못할 수 있고. 전원 통과할 수도 있었다.
‘그때는 도현준과 내가 같이 합격했었지.’
이번에는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나의 최고점 합격, 그리고 도현준의 탈락. 이렇게 두 개가 오늘의 내 목표였다.
‘오늘이 도현준 니 자존심 뭉개지는 날이다. 그다음은…’
슈퍼스타 T 우승, 우승이라. 그 정도면 가수 생활 시작으로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우승 상금만 해도 3억이니까.’
거기다가 중형차 한대, 음반 발매, 연말 공연 스페셜 무대 공연, 마지막으로 자체 예능 시리즈까지 찍어줬던 기억이 났다. 충분히 가수로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좋은 조건이었다.
게다가 거기서 멈출 생각도 없었다.
‘10년 후면 케이팝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지. 내가 거기에 한 몫 끼지 말라는 법 없잖아? 오디션 우승을 기반으로 가수로 데뷔하고. 이후에 트렌드를 잘 따라가서 월드 스타가 돼 보는 거야. 어때?’
-좋은 생각입니다.
‘깜짝이야. 야 좀 깜빡이 키고 들어와!’
-키고 있는데요.
Mp3의 화면이 반짝반짝했다.
‘…내가 말을 말자.’
-그리고요.
“왜 왜, 왜!!”
-급격한 감량으로 옷 사이즈가 안 맞습니다. 바지가 벗겨질 거 같습니다. 벨트 사이즈를 조정하세요.
……
“감사.”
‘내 팬티 색깔은 나만 알고 싶으니까.’
* * *
복도를 나가 대기 줄에 섰다. 자리를 찾기는 쉬웠다. 방금 확인한 그 꼴 보기 싫은 놈을 확인하면 됐으니까.
“여기가 325번이죠?”
도현준. 그놈이 324번인 줄 알고 일부러 물어봤다.
“네네… 헛.”
놈은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하다 나를 확인한 후 동공이 커졌다.
이전에는 나를 확인할 때는 비웃는 듯한 초승달 눈빛이 되었다. ‘니 같은 돼지 새끼는 나한테 안돼’라는 눈빛이었달까? 이번에는 뭔가 당황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
“참가… 자신가요?”
“네 325번입니다.”
놈에게 참가표와 참가자 스티커를 보여줬다. 내 몸통에는 ‘권노을’이라는 세 글자가 붙어 있었다.
도현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원래 내 뒤에는 돼…”
내 눈치를 살피더니 도현준이 말을 이었다.
“되, 되게 잘생긴 분이 한 명 있었는데 그게 권노을 님이었나 보네요. 아이구, 저는 도현준입니다. 네네.”
뻘쭘한 듯 말을 바꿨다. 원래대로라면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이미 그 녀석의 본모습을 아는 내게는 다 보였다. 그 녀석이 쓰고 있는 가면이.
‘이전 생에는 저 과하게 굽신대는 태도에 속았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영양가 없는 말을 하기보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그거 아세요?”
그놈 목소리에 집중이 깨졌다. 아, 짜증.
“네?”
“눈 감고 중얼거리시는 거 보니. 가사가 잘 안 외워지시나 봐요. 그러면 차라리 틀려서 어버버 하느니 가사 보고하는 게 나아요. 네네.”
“그래요?”
‘또, 또 시작이구만. 상습적인 거짓말.’
“프로 가수들도 프롬프트라고. 가사 보면서 부르는 경우 많아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렸어요.”
“우와, 그렇군요~ 몰랐어요.”
코웃음이 나왔다. 지금 저 녀석, 준우승자(사실은 우승자다. 궁서체다.)인 내게 수작을 걸고 있었다. 제발 내 무대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며 만든 함정이었다.
“특별히 노을 님에게만 알려드리는 꿀팁이에요. 네네.”
‘심사위원 앞에서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부르라고? 가사도 숙지를 못 하는데 어떻게 노래에 감정을 실어서 부르냐? 무엇보다, 눈이 관객이 아니라 가사를 보고 있는데 무슨 교감이 되겠어?’
부끄러운 사실 하나, 이전 생에는 정말 저 녀석 계략에 당해서 가사를 힐끔 보고 노래를 불렀다.
‘그때 난 참 순진했지.’
당연히 떨어질 뻔했다. 가사지 없이 다시 부르라는 심사위원의 배려가 없었다면 얄짤 없이 1차 탈락이었다.
‘이전 생에서는 나중에야 그게 저 녀석의 장난질이었다는 걸 깨닫고 화가 났었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
오히려 고마웠다. 먼저 나를 칼로 찔러줘서. 앞으로 내가 하는 행위도, 양심에 찔리지 않는 정당방위가 될 테니까.
‘내게는 너에게 없는 엄청난 이점이 하나 있지. 나는 인생 2회차, 경력 있는 신인이거든?’
“고맙습니다.”
눈은 웃고 있지만, 입은 자꾸만 와드득, 이를 갈게 되었다. 최대한 분노를 감추며 대답했다.
“저희 같이 오디션 보는 거죠? 하하, 살살 부탁드려요.”
‘살살?’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오늘 내 사전에 ‘살살’이란 없을 예정이었으니까.
‘단지 내 복수 때문만은 아니야.’
거짓말에, 모략에, PD 매수까지. 저렇게 리스크로 가득한 녀석을 가수로 만들다니, 안될 말이었다. 그것도 소녀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아이돌이라니,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뭐랄까, 이 복수는 일종에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인 셈이었다.
‘집 앞 길거리 쓰레기 청소랄까?’
오디션이 더욱 기다려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현준 씨.”
* * *
슈퍼스타 T 1차 오디션장.
단출한 구성이었다. 무대 앞에는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책상 근처에는 카메라와 소수의 제작진, 그리고 심사위원 한 명뿐이었다. 왕년의 솔로 댄스 여가수 ‘베이비’가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에구구!”
살짝 다리를 움직이자 저절로 비명이 흘렀다. 당연했다. 벌써 9시간째, 샌드위치와 물만 먹으며 수백 명의 참가자들을 봐왔다. 체력이 떨어질 만도 했다.
작가가 걱정스러운 듯 다가와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네!”
휴우, 하고 몰래 베이비는 한숨을 쉬었다.
‘괜찮을 리가 있겠어요. 작가님?’
사실 괜찮지 않았다. 신선한 가수를 찾고 싶어 약간 무리해서 심사위원에 참여했건만, 소득이 없었으니까.
‘하루종일 심사를 했는데,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어떻게 한~ 명이 없을 수 있나요?’
다들 판에 박히게 노래했다. 어설프게 유행을 따라 하다 보니 다들 비슷하게 들렸다. SG워너비와 빅마마 다운그레이드만 오늘 50명은 들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매력. 매력. 매력!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가수는 결국 상품이다. 꼭 잘생기지 않더라도, 외적으로 보이는 매력이나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베이비의 지론이었다. 그런 스타성이 있는 참가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이면 이번 시즌 이거 실망인데요.’
씁쓸하게 베이비는 남은 참가자 그룹 지원 서류를 슬쩍 흝어봤다.
‘이 친구는... 개성은 있네요.’
썩 좋은 개성은 아니라 문제였다. 좀 많이 몸이 컸다.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몸이었다. 무난하게 생기긴 했지만 약간 양아치 느낌이 나는 옆 번호 참가자보다 개성이야 있었다.
‘권노을… 권노을… 이 친구는 어찌하여 살을 못 빼고 있을까요. 무대에 서겠다는 사람이 왜 이런 몸 상태인 거죠?’
이런저런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베이비는 감정을 끊고, 프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 녹화 재개하시지요.”
바로 기다렸다는 듯 제작진의 신호와 함께 스태프가 문을 열었다. 지원자 두 명이 들어왔다.
“어?”
베이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사람, 사진과 전혀 다르게 생겼다? 살에 박혀 짜부라졌던 눈이 번쩍번쩍 광채가 났다. 턱선은 사과 껍질도 깎을 수 있을 만큼 날카로웠다. 자로 대고 그린 듯한 높은 콧날과 목탄으로 그린 듯한 눈썹도 이제야 제 진가를 발휘했다. 뭉툭한 쇳덩이였던 몸이, 잘 제련된 보검이 되었다.
‘설마 같은 사람인가요? 이목구비는 비슷한데. 대체 몇 kg을 감량한 거죠?’
미소가 절로 나왔다. 노력 점수 만점. 매력 점수 십만 점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 마스크면 노래를 못해도 좋았다. 한글만 할 수 있으면 됐다 싶었다.
“안녕하십니까. 참가자 325번 권노을입니…”
‘한국말 가능하구요.’
“합격.”
“네?”
“이 외모면 그냥 합격이죠 뭐. 노래 볼 게 뭐 있나요?”
“아…”
참가자는 바보같이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워낙 외모가 출중하니, 어벙한 표정마저 귀여웠다.
“풋! 농담이에요.”
베이비가 호호호 소리 내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노을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서 있었다. 옆에 같이 들어간 참가자 또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엉거주춤 서 있었다. 간신히 웃음을 진정시킨 베이비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잘생겨서 나쁠 건 없죠. 빨리 노래 불러봐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