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화 (1/280)

제1화

2005년, 대국민 오디션 ‘슈퍼스타 T’ 오디션 결승.

모두가 숨죽이며 무대에 선 한 청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청년의 이름은 권노을. 얼핏 봐도 거대했다. 180대의 키에. 120키로를 훌쩍 넘는 몸무게로 보였다. 단순히 뚱뚱을 넘어선 비대한 몸이었다.

상대방의 무대는 끝났다. 권노을의 차례였다. 천천히 마이크를 잡았다. 노래가 시작됐다. 담담한 도입부를 넘어 자연스럽게 후렴부 고음으로 넘어갔다. 관중석에서 감탄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권노을의 거대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는, 그의 몸보다도 거대했다.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짙고 거친 고음이었다. 속은 거칠면서도 겉은 부드러운, 겉촉속바 목소리였다. 어찌나 성량이 큰지, 무릎에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관객들과 심사위원들 모두 전율했다.

여운이 길었던 무대가 끝나자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권노을 씨 무대가 끝났습니다.”

‘네.”

“기분이 어떠신가요?”

“후련합니다.”

권노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미련은 없었다.

“좋습니다. 바로 공개합니다. 심사위원 여러분의 점수는…. 300점 만점에 297점!”

“아!”

권노을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슈퍼스타 T 심사위원들은 절대 100점을 주지 않았다. 297점은 사실상 만점이었다.

“자! 이제 마지막. 관객 투표만 남았습니다. 권노을 씨가 무려 23점 앞서고 있습니다. 70점만 더 받으면 권노을 씨가 우승합니다.”

믿을 수 없었다. 백 점 만점에 칠십 점만 맞으면 내가 이긴다고?

“관객 점수를…. “

눈에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그간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

- 거 다이어트 못해? 근성이 없어. 넌 탈락이다.’

- 보컬은 참 좋은데. 아휴~

다들 내 노래는 인정했다. 하지만 나를 보기만 하면 기획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디지게 뚱뚱했으니까.

그들은 몰랐다. 내가 뚱뚱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특수한 희귀병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당시에는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는 데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병이라 말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상관없어. 만약 여기서 우승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

살아오면서 꾹꾹 쌓여왔던 한이 이제 풀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럼…. 지금… 관객 점수를… 공개합니다!”

충분히 시간을 끌었다 판단한 진행자가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결과 공개 선언이었다. 번쩍! 하고 무대 뒤 화면이 빛났다.

“그 결과는!”

‘이럴 수가!’

권노을의 점수는 69점. 1점 차로 패배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점 차! 1점 차입니다! 시청자들의 선택으로. 단 1점 차로 우승자의 향방이 결정되었습니다.”

기적은 기적이었다.

‘심사위원 점수는 사실상 만점. 관객 반응도 초대박. 그런데 시청자 투표로 지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단 하나 남은 피붙이인 여동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오빠, 어떡해…. 오빠 데뷔해야 하는데.”

* * *

그 일이 있은 다음 15년이 지났다. 나는 또 한 번 동생 가슴에 대못을 박아 버렸다.

“안돼! 오빠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

권노을, 아니 권노을이었던 영혼이 권노을의 시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디션이 끝나고 15년 후. 권노을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고작 코러스하다 인생이 끝난 거냐.’

근근이 가이드 녹음. 가수 코러스로 먹고살다 끝난 인생이었다. 전염병 이후 코러스 일거리가 끊겼다. 뭐라도 해보려고 운전만 할 수 있으면 가능한 택배 알바를 시작했다. 운전 중 갑자기 심장과 복부에 통증이 생기더니, 그대로 사망했다. 심장마비였다. 아마도 앓던 병의 후유증 때문일 터였다.

‘이승에는 미련이 없어. 딱히 그리운 인생도 아니었고. 하지만…’

동생이 눈에 밟혔다. 동생에겐 나밖에 보호자가 없었다. 내가 죽으면 동생 학비는 누가 댈까?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셨는데. 결혼식에는 누가 함께 들어가지? 결혼 자금은 어쩌고?

‘돈이라도 조금 모아뒀어야 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가수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동생의 앞날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었을 것이다.

‘내 인생 망한 건 그놈 때문이야.’

쓴웃음이 절로 나오는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다음 뉴스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윤강 PD가 모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그의 주요 조작 내용은 슈퍼스타 T 결승 등이었고. 시청자 투표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참가자를 우승시켰던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 15년 전 오디션 결승은 조작되었다. 제작진이 짜고 내 점수를 의도적으로 깎았다. 이유가 가관이었다.

[우승자가 잘되어야 참가자들 모두가 삽니다. 권노을 씨는… 스, 스타성이 부족함다.]

비겁한 변명이었다.

[권노을 참가는 아무것도 없슴까? 뭘 믿고 그러는 검까?]

PD는 내 자리에 자신을 돈으로 매수한 기획사 가수를 밀어줬다. 그리고 돈을 주지 않았고 기획사 빽도 없는 나 같은 참가자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방송에서 매장시켰다.

[이럴줄 알았음. 다 주작팀 아님? 뮤직씨 그냥 이렇게 된거 폐국해라.]

[지금까지 번 돈 다 토해내야 하는거 아니냐? 역겨운 놈들.]

[슈퍼스타T 우승자 걔는 무슨 낮짝으로 티비 계속 나오는 거임?]

기사에는 이 PD를 조롱하는 댓글로 가득했다. 하지만 날 구제해달라는 의견은 없었다.

오디션 당시라면 모를까 지금 난 그저 잊혀진 가수일 뿐이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살을 뺐다면 내게도 기회가 왔을까?

다시 한번만 기회가 온다면. 지긋지긋한 병에서 나을 수 있다면. 그놈의 스타성을 가질 수 있다면. 내 목소리로 월드 스타가 되는 게 가능했을까?

‘뭐, 이미 죽었는데. 부질없는 생각이지.’

쓴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생각이 정리되자 슬슬 누가 와서 나를 지옥이든 천국이든 들여 보내줬으면 싶었다. 그때, 앞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이건 또 뭐야?’

홀린 듯 빛으로 다가갔다. 죽기 전에 내가 배달하던 물건이 빛나고 있었다. 사고의 충격으로 상자에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무심코 집었다.

‘mp3 플레이어?’

애플사의 구형 mp3 플레이어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이런 기계를 가지고 음악을 들었었다. 안에 들어있는 음악도 죄다 내가 좋아하고 불렀던 00년대 알앤비 발라드였다.

갑자기 기계 화면이 눈부시게 빛났다.

-Gift Mode를 실행하시겠습니까?

기프트 모드? 그게 뭐야?

-인생에 단 한 번, 당신의 소원을 이뤄 줍니다.

뭐?

‘방금 너 내 생각에 대답한 거야?’

-그렇습니다.

어디서부터 놀라야 할지 애매했다. 내게 기계가 스스로 대답한다는 사실에 놀라야 하는 건가? 아니면 소원을 이뤄 준다는 사실에 놀라야 하는 건가?

-둘 다 놀라시면 됩니다.

…!

‘이 기계, 지금 분명히 나랑 말을 걸고 있어. 미친 게 아니었어. 하긴 뭐, 망자가 멀쩡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돌아다니는 시점에서 미친 거 같지만 아무튼.’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에는 질문 떠 있었다.

-Gift Mode를 실행하시겠습니까?

‘…’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미 조진 인생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죽었다. 뭐라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잘못되어봤자 죽기밖에 더하겠나. 어이쿠, 이미 죽었네?

‘예’라고 진지하게 궁서체로 입력했다.

-Gift Mode를 실행합니다. 우선 가수 인생을 초기화합니다.

‘잠깐만, 인생을 초기화해? 그건 또 무슨….’

이미 늦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눈 부신 빛에 온몸이 둘러싸인 상태였다. 눈앞이 흐려졌다. 무언가가 나를 어마어마한 속도로 어딘가로 보내 버리고 있었다.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 이런 걸까? 이거 멈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순간, 무시무시하게 빠르게 감속되며 어딘가에 착석했다.

* * *

"안 돼! 오빠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

"안 돼!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어?’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었다. 문은 잠겨져 있다. 거울에는 ‘뮤직 씨’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방송국 화장실인가.’

눈을 떴다. 식은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가슴에는 숫자가 박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내 모습이 낯이 익었다.

‘이건… 익숙하다. 잊을 수가 없지.’

슈퍼스타 T 첫 일반인 오디션 때 내 옷차림이었다. 여기서 내 악운이 시작됐지.

탁탁탁! 뺨을 손으로 쳐봤다.

“꿈이 아니구나.”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쳐다봤다. 15년 전에 내 모습 그대로였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열아홉 살 권노을이었다. 믿을 수 없지만, 시간을 거슬렀다.

‘여전히 살은 무지하게 쪘네.’

그래도 왠지 어리니까 좀 귀여워 보였다. 어리면 다 용서된다는 말이 실감 났다.

‘……’

아니다. 그래도 용서받기 좀 어려울 정도로 쪘다. 미안하다 15년 전의 나!

‘이왕이면 병도 고쳐줬으면 좋았을 텐데.’

물에 빠진 놈 구해놓았더니 봇짐까지 내놓으라 하는 격이다.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때, 갑자기 주머니가 울렸다.

‘뭐야?’

mp3 플레이어였다. 화면이 아직도 반짝반짝 빛났다.

“아 또 왜!”

-Gift Mode: 축복이 남았습니다. 소원을 빌겠습니까?

“어이쿠 그런 용건이 있으셨습니까~ mp3님.”

‘대박! 소원도 들어주는 거였어?’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이거 완전히 업그레이드된 지니 아니야?’

…갑자기 슬쩍 욕심이 차올랐다.

슬쩍 ‘소원을 두 개만 더 들어줘’라고 쳐 보았다.

-[Denied] 소원은 한 개로 제한됩니다.

‘쳇. 쓸데없는 데서 깐깐하군.’

사실 진짜 바라는 소원은 따로 있었다.

‘어디 보자. 지금은 오디션 당일이지.'

병을 고친다고 해서 살을 뺄 시간은 없었다.

'몸무게를 줄여달라 해주면 병도 치료해줄 거?‘

-권노을 님의 치유 소원은 특별히 몸무게도 원하시는 체중으로 바꾸어 드립니다.

몸무게를 바꾸는 질병이니만큼, 치료 또한 몸무게를 원하는 수준으로 바꿔주는 모양이었다.

‘내 키가 183정도 되니까. 연예인들이 보통 유지하는 미용 체중이 어느 정도더라?’

-그냥 미용 체중 만들어 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

-어차피 다시 살찌면 도루묵이니 다이어트와 병행이 필요합니다.

꼭 한 마디가 많네.

투덜투덜대면서 소원을 입력했다.

[이름 모를 희귀병 치료하고 미용 체중으로 바꿔줘.]

-소원을 실행합니다… 특성이 추가됩니다.

‘특성?’

-이데아의 육체-

등급: S

설명

: 현재 가수에게 이상적인 미적 기준의 육체를 얻는다.

: (조건) 단 한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다시 태어나? 방금 죽은 몸인데 뭘 다시 태어난단 말이… 으악!'

갑자기 몸이 뜨거워졌다. 심장에 엄청난 충격이 왔다.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몸살 기운이었다.

아니, 몸살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불에 온몸의 살과 뼈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으악!"

‘설마, 68키로가 될 때까지 이렇게 아픈 거야?’

내 몸무게는 잘 봐줘도 110키로는 된다. 그럼 40키로가 녹아내린다고?

화장실 안이라 다행이었다. 몸이 불타는 듯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68키로가 될 때까지 녹아내리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68키로의 나 자신이 몸 바깥으로 나올 때까지 온몸이 녹아내리는 일에 가까웠다.

‘아니 잠깐, 40키로보다 68키로가 더 많잖아?’

산통이 끝났다. 열병에 걸린 듯 온몸이 멍했다.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살펴봤다. 뉴 권노을이 등장했다. 신기하게도 과거의 나는 껍질처럼 사라져 버렸다.

‘뭔가… 발걸음이 가벼운데.’

그야 그럴 법했다. 초등학생 때 병에 걸린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몸무게, 68키로를 달성했으니까. 몸이 슬림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다.

‘이렇게 보니까 내가 제법 생긴 거 같기도 하고.’

화장실 앞에서 거울을 슬쩍 봤다. 괜히 엄청 잘생긴 사람인 거 같았다. 날카로운 콧날, 짙은 눈썹, 무쌍에 적당히 크고 선한 눈매, 앙다문 작은 입술,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 자신이니까 객관성이 결여된 평가지만, 나 혹시 ‘긁지 않은 복권’이라던가 그거냐?’

이 정도면, PD가 아무리 편집으로 조작해도 우승해볼 만한 거 같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소란스럽게 화장실로 들어왔다.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통화 중이었다.

“야 근데 웃긴 놈도 있더라? 가수 하겠다는 놈 중에 디룩디룩 찐 돼지 새끼도 있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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