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결혼 준비라는 건 앞으로 부부가 될 연인이 함께 준비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의견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부터, 때로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돈이지.’
우리나라에서 결혼식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장 큰 요소 또한 축의금이 원인이었으니.
아무리 당사자들이 간소하게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혹은 친인척과 아주 가까운 친구 몇몇만 불러서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의 자존심이나 자신의 아들이, 딸이 이제는 어엿하게 결혼한다며 자랑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으나 그동안 사회적인 행사에서 뿌린 돈을 회수해야 할 기회이기도 했다.
‘이거 때문에 크게 싸워서 결혼 파투 날 뻔했다고도 했던가?’
이하연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놓인 청첩장 샘플들을 바라보며 사촌 언니의 일화를 떠올렸다.
표본만 마흔다섯.
이 청첩장들 모두가 제각기 저마다의 디자인을 가졌다.
게다가 비슷하거나 똑같은 종이 재질도 있었으나 완전히 고급이라며 프리미엄의 종이로 이루어진 청첩장도 존재했다.
물론 프리미엄의 경우가 훨씬 비쌌다.
사실 모든 예비 신랑, 신부가 그러지 않겠는가. 예쁘고 좋고 고급의 청첩장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건. 허나 예산이 부족하다면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니도 그랬으니까.’
이하연이야 돈에 아쉬움이 없기에 그냥 순수하게 마음이 끌리는 걸 고르면 되겠지만, 보통은 돈이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내가 하고 싶은 청첩장은 500장 만드는 데에 45만 원이었어. 내가 똑똑히 기억해. 아직도 그때 떠올리면 아쉬워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45만 원. 그 45만 원 때문에 이하연의 사촌 언니는 결혼 직전 예비 신랑과 크게 다투었다고 했다.
-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그이랑 나랑 모은 돈만으로 준비했으면 상관없었을 문제였던 것 같아. 근데 서로 부모님들에게 도움을 받았단 말이지.
그 덕분에 들어온 이런저런 참견들.
- 나중에 너 결혼하게 되면 꼭 잘 생각해.
아무리 가족이어도 돈이 연관되면 문제가 생길 요소가 다분했다.
부모님은 결혼식 과정에서 내가 이렇게 도와줬는데 그런 한마디 조언도 못 하냐며, 당사자들은 그래도 우리 결혼식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하연은 자신은 다행이라고 여겼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설령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선을 넘으며 참견은 하지 않으시겠지만.
아예 애초에 그 싹을 차단했다.
두 사람은 모든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 양가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을 하나도 받지 않고 진행하고 있었다.
‘아.’
도네이션 목소리에 이하연이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래서 여러분. 청첩장은 이게 나아 보이죠?”
방송해야지.
이하연은 방송에도 자신의 결혼 사실을 알렸다.
사실 굳이 말을 해야 하나나 싶었다. 그러나 또 반대로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것 같았다.
뭔가 애매해서 은후와 상담했고.
-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것도 아닌데? 말해. 오히려 축하받아야 할 일 아냐? 하연이 네가 그냥 내키지 않는다면 또 모르겠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
- 진짜 이상한 시청자가 아니라면 다들 축하해주지 않을까?
이하연 역시 그러리라 생각했다.
자신의 방송을 봐주는 이들이라면. 물론 불특정 다수이기에 이상한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아니, 다들 의견이 분분하네.”
- 모쏠인 내가, 여기서 청첩장을 같이 고르고 있는 내가 ㄹㅈㄷ ㅋㅋㅋㅋㅋㅋㅋㅋ
- 동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는 깜짝 놀라는 듯했으나 몇몇 분탕을 제외하고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 그나저나 결혼식 때 방송 켬?
“그건 예랑이랑 상담해볼게요. 근데 웬만하면 안 켤 거 같네요.”
- 아쉽ㅋㅋ 근데 우리한테는 청첩장 안 줌?
- 옳소! 우리가 같이 이렇게 청첩장 골라주고 있는데!
“청첩장 주면 오려고요?”
그나저나 청첩장.
‘으. 누구한테 돌리지.’
친한 친구들은 당연하고.
‘지인들…… 방송으로 알게 된 사람은 어떻게 한담.’
머리가 아팠다.
* * *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와아.”
이하연의 눈이 반짝였다.
오늘은 웨딩 촬영을 하는 날. 당일에 맞추어 완성된 드레스.
이 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하여 구미호가 적잖은 고생을 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요. 하연 씨도 고생 많았어요?”
“제가 무슨 고생을요.”
“매번 와서 피드백 주는 것도 고생이죠.”
드레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예비 신부의 의견이었으니. 이 부분에 있어서 이하연의 어머니가 적잖은 서운함을 표했다.
같이 드레스를 골라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으니.
직접 만드는 가게나 현장을 방문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하연이 중간에 어머니를 잘 달래며 사진을 매개체로 피드백을 줄 때 어머니와 논의했다.
“도령! 들어오세요!”
잠시 후.
은후가 눈을 크게 만들며 말했다.
“……예쁘네.”
은후는 이하연이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처음 봤다. 원래 예쁜 건 알고 있었지만.
“옷이 날개라더니 더 예뻐진 것 같다?”
“원래 예뻤거든?”
은후의 가벼운 농담에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하는 이하연.
‘옷이 날개…… 아니. 이 정도 옷이면 날개가 맞지만.’
조금은 서운할 것 같은.
그런.
“아예 아무것도 안 입어도 엄청 예쁜 거 알아. 그냥 분위기 차이인 거지.”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그치? 알몸도 봤으니까.’
그나저나.
“멋있다. 정장 입은 거 처음 보는 거 같아.”
“그랬나?”
“그래.”
“뭐.”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이긴 한 것 같았다.
정장을 입는 건.
이윽고 두 사람은 덕진 공원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성백을 찾았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명진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이자, 취미인 사진에 진심인 사람.
김성백은 두 사람의 결혼 소식에 크게 기뻐하며 화보 촬영과 결혼식 날 사진을 부탁해도 괜찮겠냐는 은후의 제안에 바로 수락했다.
처음 만난 것도 두 사람을 모델로 삼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인연이지 않던가.
“은후 씨는 멋지고, 하연 씨는 아름다우시네요.”
“감사합니다.”
“진담입니다.”
“압니다.”
은후의 너스레에 김성백이 웃었다.
이윽고 이어진 본격적인 촬영. 여름이 오기 직전의 따스한 봄이 잠으로 꾸벅꾸벅 졸던 시기여서 그랬을까.
덕진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더더욱.
그건 덕진 공원에서 천도 복숭아나무가 령의 바람대로 퍼트리는 자연의 기운 때문이었다.
“여기에만 오면 유독 좀 살 것 같다니까. 피톤치드 효과 때문인가?”
“아무래도 도심 속에서 이런 자연을 즐길만한 데가 많이 없지.”
대부분 사람들은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은 천도 복숭아나무로 덕에 공원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효과가 있었다.
“야. 저기 봐봐. 웨딩 촬영하는 모양인데?”
멋들어지게 입은 슈트와 화려한 드레스는 절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물며 은후와 이하연의 외모는 어지간한 연예인 못지않았으니.
“선남선녀네.”
“그러게. 진짜 잘 어울린다.”
은후와 이하연의 투 샷.
“은후 멋있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령이 중얼거렸다.
“누나도 예쁘고.”
* * *
너무 기쁜 나머지 가을도 단풍잎을 발갛게 물들이던 어느 날.
은후와 이하연의 결혼식이 열렸다.
“오셨습니까.”
“그래요.”
은후의 인맥은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으나 하나하나가 튼튼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전주 유지 이창석이라거나. 또 근래에 우리나라의 최고 무당이라 일컬어지는 김영호 등.
처음에는 그런 인연을 아예 안 부를까 싶기도 했으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섭섭하지 않을까 싶어 은후는 그냥 어지간해서는 모두에게 청첩장을 돌렸다.
오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고.
“선생님 어머니십니까?”
“아, 네.”
“이창석이라고 합니다. 항상 선생께 신세를 지고 있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은후의 어머니가 멋쩍게 웃었다.
‘얘는 대체.’
은후의 손님 중에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이들도 있었다.
기껏해야 대학교 친구들이나 고등학교 동창들. 그리고 사업을 한다고 했으니까 회사 사람들이나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은후를 깊이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로서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하객들이 전부 모였고 이내 행사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언제나…….”
사회는 일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통해 인연을 맺었던 김현석이.
주례는 전북 대학교 교수 강장원이 맡았다.
“……이로써 두 사람은 평생 고락을 함께하며 서로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이루어졌음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이어지는 건 축가였다.
축가의 경우엔 은후가 직접 부르기로 했다.
사실 따로 돈을 들일 수도 있었고, 또 불러주겠다고 자처한 이도 있었다.
국내의 인기 아이돌 그룹 블레인. 은후의 찐 팬인 블레인의 서브 보컬인 하연석이 이하연의 방송을 보고 공식적으로 제안을 보낸 것. 하지만 그 제안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런 날은 직접.’
비록 자신의 진짜 실력은 아니고. 성호의 힘을 빌리는 것이지만. 그래도 은후의 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부터 축복받은 결혼을 위한 축가 순서입니다. 오늘 축가는 신랑 이은후 님께서 직접 준비해주셨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은후의 노래 실력을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 비율은 약 반반. 그래서 반은 기대의 찬 눈동자로. 반은 점잖게 앉아서 손뼉을 마주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은후의 목소리에 다들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렘.
기쁨.
감정에 직접 와닿는 것 같은.
그런 기타 소리와 은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스타더스트가 질주했고, 하늘 고래가 큰 울음소리와 함께 분수를 내뿜었다.
천도 복숭아나무는 어느 때보다 더 흐드러지게 복숭아 향을 퍼트렸다.
* * *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했던가.
공정과 공평과 평등을 강조하는 시대. 하지만 겉으로 우리들이 외치는 것과 다르게 막상 누구에게나 동등한 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사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도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불공평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사람은 물론, 무생물이나 정령들에게도 공평이라는 단어를 들먹일 수 있는 건 시간. 그런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이하연이 덕진 공원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몇 번째였더라.’
오늘은 결혼기념일이었다.
매년.
생일과 결혼한 날만큼은 기념일로서 남편인 은후는 잊지 않았다.
어떨 때는 사소하게, 언제는 거창하게, 이따금 이하연이 선수 쳐서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누나.”
“응, 령아.”
“은후가 밥 먹으래.”
“그래?”
이제는 익숙해진 낙원에서의 생활.
“삼촌이 오늘은 누나 좋아하는 파스타 했다고 했어.”
“파스타?”
“응응. 종류별로 이것저것 많이 했다던데?”
“알았어. 금방 갈게.”
령은 쪼르르 다른 낙원의 주민을 부르러 달려갔다.
‘……파스타.’
엄마가 곧잘 해주던 파스타.
이하연의 어머니는 진즉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친구들도 대부분.
‘선아도 곧 죽는다고 했지.’
이하연 역시 대외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파스타는 예전부터 적잖이 좋아했다.
맛도 맛이지만 자주 해 주셔서.
‘눈이네.’
은후와 이하연의 결혼으로부터 약 70년 후, 그해 첫눈이 내리던 어느 날.
이하연은 저녁 식사 후 은후와 함께 마지막으로 자신을 기억하는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용산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