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보물.
가슴이 뛰는 단어였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성이 결여된 낭만이었다. 과거였다면 모를까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특히. 물론 여전히 현대 과학 기술로도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유적지라거나 전설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들과 거리가 멀지.’
그건 재벌 3세인 우현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어렸을 적 보물선에 관한 동화책을 보고 가슴이 뛴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그런 꿈을 꾸기도 했다. 직접 보물선을 발굴하는 그러한 일. 하지만 현실을 알게 된 이후 깔끔하게 그 꿈을 접었다.
사실 현대에도 세계 곳곳에서 소위 보물선 사업이 벌어졌고, 또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면 실패하거나 사기로 끝을 맺었다.
당장에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전 대통령의 처조카이자 전 예금보험공사의 전무가 벌인 보물선 금괴 사업. 하지만 실상은 주가 조작을 위한 사기이지 않았던가.
“보물선이라고요.”
그래서 우현도는 김영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관심 없으신가요?”
“그냥 어이가 없네요.”
김영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저도 어이가 없습니다.”
“그래요?”
“네, 그런데 방금 만난…… 선생님의 이야기라면 좀 다르죠.”
“대체 누군데요?”
“그러게요. 저도 누군지 궁금하네요.”
우현도가 한숨을 폭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손님으로 오셨으니 내쫓지는 않겠습니다. 술값은 안 받을 테니까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세요.”
그런 우현도에게 김영호가 툭 내뱉었다.
“며칠 뒤에 조카가 생기시겠군요.”
“네?”
“그리고…… 그래요. 까맣게 잊고 있던 땅의 가치가 적잖이 오를 겁니다. 팔지 말고 꼭 쥐고 계세요. 분명히 누군가 은근슬쩍 팔라며 접근해 올 겁니다.”
“그게 대체 무슨.”
“그 이후에 보물선에 관심이 생기시면 가덕산으로 찾아오세요. 따로 예약을 잡지 않아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 * *
얼마 후.
“네?”
“이번에 임신에 성공했다고 하는구나!”
둘째 형수의 임신 소식.
“진, 진짜요?”
“그럼!”
둘째 형의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조카가 생겼다는 소식에 우현도에게 기쁨과 황당함이란 감정이 동시에 찾아왔다.
난임으로 그토록 고생한 둘째 형. 아들이건 딸이건 자식을 바랐지만 잘 안 되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오랜만이다?”
“그러게?”
친한 동생으로부터 초대된 파티. 거기에서 마주하게 된 친구. 사실 친구라고 부르기도 뭐 했다.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너 예전에 대학교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았다고 한 땅 있잖아.”
“그게 어딘데?”
“으휴. 그렇게 자랑하더니. 나는 기억하는데 넌 왜 기억 못 하냐?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거냐?”
“아니, 진짜 기억 안 나는데.”
그 친구로부터 받게 된 제안.
그때 문득 얼마 전 박수무당 김영호가 한 말이 떠올랐다.
- 팔지 말고 꼭 쥐고 계세요.
더불어 그 이후 관심이 생기면 가덕산으로 찾아오라고.
‘보물선, 보물선.’
진짜일까.
‘……일단 이야기만 듣는 것이라면.’
결국 우현도는 가덕산에서 김영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겨울이 잠자리에 들고 봄이 고개를 숙이며 여름이 노래 부를 준비하던 어느 날.
“하암.”
이하연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몇…… 시지.’
정오가 되기 5분 전이었다.
‘으, 늘어지게 잤네.’
방송을 업으로 삼게 되면서 얻은 장점이자 단점. 여느 프리랜서처럼 자유로이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다만 그런 만큼 자기 관리가 더더욱 힘들어졌다.
물론 여타 프리랜서와 다르게 이하연뿐만이 아니라 대개 개인 방송인은 자체적으로 시간을 정해두고 방송을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다른 직장인들에 비하여 시간 조율이 용이했다.
여차하면 방송 시간을 수정하거나 혹은 며칠 정도 쉬어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아예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배부른 소리지만 차라리 낮 밤을 지키는 건 직장 다닐 때가 좋았어.’
적어도 강제로 출근 시간에 일어나야 했으니까.
‘낮 밤이 바뀌어도 아예 고정되면 차라리 나은데.’
종종 변했다.
긴장감이 없어서.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우. 은후한테 또 잔소리 들으려나.’
하지만 뭐어.
‘헤헤.’
들으면 또 어떤가.
그게 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인데. 그렇기에 이하연은 은후에게 듣는 그런 자잘한 잔소리가 오히려 기꺼웠다. 아직까지는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 벗겨지지 않았단 의미이기도 했다.
다만.
‘조금은, 조금은.’
아니.
‘솔직히 많이.’
신경이 쓰였다.
최근에 듣게 된 은후의 과거 이야기가.
‘이세계에…… 다녀 왔다고 해서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말하는 개구리를 비롯하여 도깨비와 구미호. 절대 사람이 아닌 낙원의 주민을 소개받은 일부터 시작해서 유령마가 되어 버린 스타더스트와의 재회. 또 순식간에 해외를 넘나드는 공간 이동이라든가. 그 정도면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결혼. 결혼을 한 번 했었다고 했다. 비록 이세계서의 일이라지만. 또 그 사람은 죽었다고 했다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순 없었다.
‘…….’
이미 죽은 사람.
“후우.”
괜스레 심란했다.
혹여 그 점이 걸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헤어져도 괜찮다며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때 이하연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 괜찮아! 절대 안 헤어져!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나니까.
‘재혼……이 딱히 눈총받을 짓도 아니고.’
뭐어.
사람들에게는 초혼으로 비치겠지.
‘어렵네.’
어렵다.
여전히 은후를 좋아했다.
사랑했고.
헤어질 생각도 절대 없었다. 이해도 할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며 헤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니던가. 하물며 헤어짐의 원인은 사별이었다.
그래도.
‘답답해.’
말로 무언가 표현할 수 없을 갑갑함.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저 그런 감정으로 그칠 수 있었던 건 은후의 진솔함 때문이었다. 지금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또 과거의 일은 흘려보내겠다며.
- 아예 잊을 수는 없지만 애써 떠올리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는 언제나 너에게 늘 충실하려고 애썼으니까.
사실은 아예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그래도 결혼을 생각한다면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며.
- 수명 문제도 있거든.
- 수명?
귀족이 있고,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와이번이 날아다니며 엘프가, 드워프가 있는 세계.
‘궁금하기는 하네.’
하지만 굳이 가 보고 싶진 않았다.
‘힘이 없으면. 아니, 힘이 있어도 잘못하면 고생길이 훤한 세상이야.’
쇼핑이나 갈까.
내일모레 은후를 만나기로 했다.
‘지금 이 시기에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단 말야.’
아예 없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연인이자 미래의 남편에게 예쁘고 고운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게 이하연의 마음이었다.
‘참.’
그런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이하연이 픽 웃었다.
‘여전히 중증이구나.’
과거를 알았음에도.
‘더…… 좋아졌을지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싫기는 하지만. 그래도 은후가 겪은 과거를 들은 후 너무 슬퍼서. 그 슬픔을 자신이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던 게 이하연의 본심이었다.
“하아.”
일단 쇼핑을 나가자.
평소에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물며 그 쇼핑의 목적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러나 이하연에게는 지금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방송을 하기는 좀 그래.’
어차피 옷도 사야 하기도 했고.
‘나가자.’
친구를 부를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냥 이하연은 혼자 나가기로 했다. 친한 친구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 친구들은 모두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급한 일이라며 연락하면 반차라도 내고 바로 나오겠으나 굳이. 딱히 그럴 만한 일도 아닌데. 그렇다고 연락하고 지내는 이들 중 미리 약속을 잡지 않고 불러낼 사람은 또 없었다.
‘참. 내 인간관계도 많이 좁아졌네.’
아니.
‘애초에 좁았나?’
사람 사귀는 게 서툴렀다.
‘지금도 그렇고.’
근래에 들어 생긴 인맥이라면 죄다 방송하는 사람들이었다. 개중에서도 거르고 걸렀으며 따로 직접 만나 친분을 쌓지도 않았다. 합방이라든가 따로 만나고 싶다는 제안을 받은 적은 많았지만 말이다.
‘직업이 바뀌면 알고 지내는 이들도 바뀐다더니.’
공무원을 하고 있던 시절엔 자연스레 그들과 어울렸다. 따돌림을 당하기 전까진. 지금은 방송하는 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도착했습니다.”
“얼마예요?”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용산 아이파크 쇼핑몰. 쇼핑뿐만이 아니라 각종 생활 편의 시설 및 다양한 상점이 입점해 있으며 집에서 가까운 편이었기에 쇼핑할 일이 있다면 이하연은 대개 이곳을 찾았다.
“하연이?”
“응?”
막 건물에 들어섰을 때 이하연의 귓가에 다가온 목소리.
“연서?”
“오. 뭐야. 진짜 이하연이네?”
고등학교 때의 반 친구였다. 그렇게 친분이 깊지는 않았으나 중간에 연결 고리가 되는 친구 한 명 덕분에 여전히 종종 마주하게 되는 그런 친구였다.
“여전히 이쁘다?”
“아하하. 땡큐.”
“이제 부정은 안 하네?”
“내가 예쁘긴 하잖아?”
유연서가 픽 웃었다.
“당당하게 말하니까 훨씬 좋네. 예전부터…… 아니다.”
“예전부터 뭐?”
“됐어.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면 그때 말해 줄게.”
“괜히 사람 궁금하게. 그나저나 옆에는 남자 친구?”
“어우. 남자 친구는 무슨. 내 동생이야.”
뒤에서 뻘쭘하게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우연히 마주하게 된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서로 갈 길을 가려던 찰나. 유연서의 동생이 갑자기 이하연에게 말했다.
“저어. 혹시 괜찮으시면 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 남자 친구 있어요.”
“아.”
“뭐야. 너 남자 친구 생겼어?”
“좀 됐지. 빠르면 내년이나 내후년에 결혼할 것 같은데. 정식으로 날짜 잡히면 청첩장 보낼게.”
골키퍼가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지 않으냐는 생각을 하고 있던 유연서의 동생이 흠칫했다. 아무리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으며, 곧 날짜가 잡힌다고 했으니 말이다.
“결혼이라니. 야. 내 주위에서도 결혼하는 사람이 나오는구나.”
“주위에 그래도 있긴 하지 않아?”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누나들 나이 때 결혼은 빠른 거죠.”
그때 쇼핑몰 입구에서 일부러 전시해 둔 티브이에 홍보 영상을 재생하려던 직원이 실수로 뉴스를 틀었다. 그리고 마침 뉴스는 일전 이하연도 들었던 군산 앞바다의 보물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뉴스 엄청 쏟아지고 있네.’
설마 공중파 방송까지 탈 줄이야.
“진짜 보물선이 있을까?”
“있으면 신기하긴 하겠다. 현재 시세로 5천억이라던데.”
일반 대중들이 주목하는 건 5천억이란 수치였다. 하기야 돈만큼 어떠한 가치를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자극적이기도 했으니.
‘은후가 낙원의 주민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갔다가 발견한 보물.’
나도.
‘언젠가 낙원의 주민으로 살아가게 되려나.’
수명이라.
수명.
보통 사람보다 긴 세월을 살아가게 될 은후. 그리고 낙원의 주민들. 그 옆에 자신도 있어 주면 좋겠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연인.
‘……어렵네.’
영생까지는 아니라지만.
몇백 년이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은 세월. 하물며 그렇게 나이를 먹고도 살아 있다면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도 없을 텐데. 부모님도, 친구도, 아는 사람들도 모두가 세상을 떠났을 시기도 찾아올 터였고.
‘그래도.’
은후가 옆에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지금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흐르고 흘러.
‘그때도 지금처럼 좋을까.’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지금 말이다. 언제까지나 그러진 않을 것이다. 지금과 다른 감정의 변화가 생길 터. 감정은 휘발성이며 영원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이하연은 그렇게 생각했다.